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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내가 직접 실험을 하고, 백금경으로부터 간접 확인을 받았다.

     그리고 몇 가지 추론을 통해, 나는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꿈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과거.

     황금 속에 묻어있는 기억.

     회귀로 인해 사라진 세상의 기억.

     그것이 온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어딘가에 남는다면 아마 거짓된 황금의 안에 남아있던 게 아닐까.

     문제는 이 사라진 시간선의 기억이라는 추측이든 시점부터,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거짓된 황금을 마시기만 하면 과거 세계의 흔적을 꿈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매국노 그레이의 일생을 볼 수 있게 될텐데?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황제를 향해 겨누는 칼날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위험하다.

     지금까지 가지고 간직해온 비밀이 전부 사라지고, 내가 가지고 있던 무기를 전부 잃어버릴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게 생겼다.

     어쩌면 합스베르크 황제가 ‘나의 궁극적 목적’을 눈치챌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나름 철저하게 통제를 할까 생각도 했는데-

     “도련님. 저와 카를로스 경, 그리고 보육원의 다른 이들의 꿈을 교차검증해본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꿈 속의 시간은 전부 다른데, 같은 세상…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나의 비밀을 숨기기에는 너무나도 고마운, 기적과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자네의 꿈속에서도 내 어머니는 카르멘 왕비셨나?”

     “그, 예. 공교롭게도.”

     “나리아 여왕께서는 나의 여동생이었고?”

     “그러합니다.”

     “자네는?”

     “…….”

     로버트 경이 거짓된 황금의 꿈으로 들어간 결과, 그는 하급기사 로버트 세빌리야로서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도련님 덕분에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세상에, 이 로버트가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기사였다니!”

     “그럴 수 있지.”

     내가 로버트를 발탁하여 옆에서 키우지 않았으면, 로버트는 혼자서 성장해봐야 중급 기사가 한계였을 것이다.

     “또 다른 정보는?”

     “도련님과 지브롤터 가문에 대한 정보만 떠올리느라 저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찾지 못했지만, 일단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뭔가?”

     “제국이랑 전쟁 중이었어요.”

     “…….”

     기사 윌리엄 테일의 꿈과 겹치는 내용.

     “심지어 카를로스 경은 제국군과의 전쟁 중에 사망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자기 심장을 만지작거리며 일어났죠.”

     “뭐에 죽었는지 기억하나?”

     “제국군의 신식 머스킷에 꿰뚫려 죽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일어나자마자…거짓된 황금을 잡고 벽에 던지더군요.”

     “그렇군.”

     백은과는 다르다.

     백은은 사용자가 마음대로 설정한 꿈 속 세상을 즐기게 만들어주지만, 거짓된 황금은 진짜로 또다른 세상의 자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보다 더 못한 세상이라는 건가.”

     분기점은 아마도, 아버지의 선택일 터.

     “어떻게 할까요? 거짓된 황금, 일제히 회수를 할까요?”

     “최대한 숨기는 게 좋겠지. 적어도…퍼지기 전까지.”

     일단 내가 꾼 꿈의 세계를 다른 이들도 꿈꾼다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누군가는 내가 회귀하기 이전의 세상을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확보한 자료 상으로는 ‘매국노 그레이’는 없었다.

     오히려 노스트럼의 수호자로서 더 부각될 뿐.

     “참. 꿈 속 세상의 노스트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세이레네는 배신하고, 왕도 톨레도는 점령당하고, 지브롤터가 제국을 상대로 남부 전선을 구축해서 싸우는 수호자가 된다니.”

     “그러게 말이야.”

     

     꿈 속 세상에서 노스트럼은 제국과 전쟁 중이었다.

     세이레네 백작가가 해협을 연 사이에 제국의 해군이 상륙한 다음, 왕국을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왕도가 점령당한 순간에서도 도련님 덕분에 노스트럼이 유지된다니.”

     “너무나도 노스트럼의 수호자같은 모습이라 조금 불쾌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꿈 속의 내가 그런 능력을 보여준다는 게 일단 기쁘기는 하군.”

     “제가 함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요….”

     “꿈 때문에 그렇게 슬퍼할 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버지는 죽었고, 나는 지브롤터 변경백이자 왕국의 수호자로서 제국군을 상대로 싸웠다.

     “도련님. 이거, 정말로 있었던 일일까요? 아니면 이렇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걸까요?”

     “글쎄. 황금룡의 기적이든 뭐든, 워낙 미지의 일이라 짐작만 할 뿐이지.”

     “도련님은 과거가 신경 쓰이지 않으십니까?”

     “신경 쓰이지. 당연히.”

     매국노 그레이의 삶을 보는 사람이 한두 명 쯤은 있을까봐.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니겠나. 과거는 과거고, 만일은 만일일 뿐이야. 지금 내 앞에 있는 로버트 세빌리야 마드리드 경이 나의 보좌이자 소드마스터인 것처럼.”

     “도련님….”

     “이참에 그 뭐냐, 환영기사단이라는 것도 한 번 진짜로 만들어볼까? 당연히 단장은 자네일세.”

     “듣기만 해도 기쁘군요! …동시에,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요.”

     로버트는 볼을 긁적였다.

     “거짓된 황금을 통해 또다른 자신을 볼 수 있다. 그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는 호기심 만으로도 사람들은 황금을 찾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 당장 현실에 이렇게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다들 꿈을 쫓을까 걱정되는군.”

     나나 로버트도 잠시 홀렸을 정도로, 꿈 속 세상에 대한 체험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도련님. 도련님은 어쩌다 깨어나셨습니까? 저는 검을 휘두르는데 지금보다 더 검을 못 쓴다는 거에 충격을 받아서 깨어났는데.”

     “…….”

     한 가지, 나와 다른 이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로버트 경. 꿈 속에서 자네는 자네 마음대로 움직였나?”

     “아니오. 그냥 꿈 속의 제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기만 했습니다만.”

     “그런가.”

     “도련님은 달랐습니까?”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나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었지.”

     나는 백은을 통해 루시퍼 드림, 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초자아를 깨우쳤기에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크으…! 그러면 꿈 속 세상을 따로 체험하신 거나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어떻게 탈출하신 거죠?”

     “현실에 대한 갈망.”

     “갈망…?”

     “꿈 속에는 아스타시아가 없었어.”

     “아.”

     로버트는 내 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 이건 진짜 만일입니다만, 듣고 화내시면 안 됩니다.”

     “화낼 것 같은 질문이라고 한다면, 그런 질문이겠지. 꿈 속에서도 아스타시아를 사랑했을 거냐고.”

     “그, 그게.”

     “……자네니까 답해주는 거야.”

     다른 이들이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면, 대놓고 면박을 줬을 것이다.

     “아스타시아를 알았다면 사랑했을 거고, 몰랐다면 아마 다른 사람을 사랑했겠지.”

     “…….”

     “당연한 거야. 아스타시아를 몰랐다면, 어떻게 아스타시아를 사랑하겠나?”

     “…황녀님 입장에서는 13살에 이곳에 온 게 천만다행이었겠군요.”

     “글쎄. 17살에 아카데미에 오는 건 정해져있는 일이었으니, 스쳐지나가다가 봤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꿈속에서는….”

     “…….”

     로버트 경이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부분.

     나도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렇기에 더욱더 확실하게 꿈에서 깨어났던 부분.

     카르멘 왕비가 샤를로트 어머니처럼 큰 가슴을 가지고 있어서 깨어났다?

     

     아니다.

     아스타시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깨어났다.

     “됐네. 머리 아프기도 하고, 복잡하기만 하니 일단 머리 좀 식히러 가야겠어.”

     “목욕하시는 겁니까?”

     “아니. 땅 파러…어딜 그렇게 가려고 하시나.”

     로버트 경은 소드마스터다.

     하지만 나의 인지와 속도, 그리고 추적을 벗어날만큼의 실력은 아니다.

     

     “도련님. 소드마스터를 고작 땅 파는데 쓰시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호오? 자네는 지금 지브롤터 성 지하 안치실에 누워계시는 지브롤터의 영령들이 헛짓을 했다고 말하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

     “아니면 협곡을 없애고 제국과의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꿈 속 세상에서는 제국이랑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

     “아무래도 그쪽인 모양이군.”

     로버트 경의 경계심이 생긴 이유는 하나.

     “우리가 협곡을 파내려버리고 구멍을 뚫으면, 제국군이 기어이 그쪽으로 전쟁을 일으키리라 생각한 거야. 그렇지?”

     꿈이지만, 제국과 왕국은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

     “뭐…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요?”

     “그래. 하지만 괜찮다네.”

     나는 로버트 경의 등을 두드렸다.

     “우리에게는 환영기사단 단장이자 소드 마스터, 로버트 경이 있잖나?”

     “…그럼.”

     로버트 경은 헛기침을 하더니, 밖을 가리켰다.

     “가는 길에 다른 소드마스터 한 명도 데려가시죠. 일단 관할이기도 하고, 도련님 덕분에 소드마스터가 된 사람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

     “멘테 경, 도련님 아니었으면 아직도 모르가니아의 상급기사였을 걸요? 나리아 여왕님처럼 커지지도 못하고, 지금의 레타르 아가씨와 키가 똑같은 상태로 말입니다.”

     “하긴.”

     내가 영입한 게 아니었다면 모르가니아의 상급기사가 아니라 제국의 소드마스터였겠지만.

     “꿈 속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현재는 우리 사람이니, 가만히 놀려둘 수는 없지. 가세. 마도자동선 준비해.”

     “비행선은요?”

     “그 짧은 거리를 비행선 타고 가자고?”

     “…….”

     “나쁘지 않군. 준비해.”

     “충성!!”

     

     * * *

     거짓된 황금을 마셨을 때, 황금룡이 오감을 덮어 꿈 속 세계로 초대한다.

     나름 통제를 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이 통제라는 게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윌리엄 테일을 버리고 도망간 이들도 있었고, 윌리엄 테일도 지금은 지브롤터 성에 있기도 하지만 그를 관리하는 가솔들도 있고, 실험을 위해 로버트 경과 같이 기꺼이 거짓된 황금을 삼킨 이들도 있고-

     무엇보다, 그런 걸 옆에서 지켜보며 귀로 엿들은 제국의 그림자들도 있기 때문.

     제국의 그림자들이 지브롤터 성에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단지 그들은 역으로 지브롤터를 지키는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며, 지브롤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제국 정보부로 향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건 제국 정보부 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국 첩보부는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황제의 직속인 경우도 있고 황제의 아래에 있는 또다른 그림자의 명령을 받기도 한다.

     “세상에.”

     짧은 거리지만 황금의 비행선을 몰고 리프트 영지에 도착한 순간, 나는 보육원 인근의 공터에 비행선을 착륙시키자마자 차마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멘테 경. 이게 지금 어떻게 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나는 현장을 관리하고 있는 멘테 경에게 달려갔으나, 멘테 경도 뾰족한 수단을 내지 못한 채 손으로 얼굴을 덮을 뿐이었다.

     “소문이 돌았습니다. 거짓된 황금을 마시면 또다른 자신을 체험할 수 있다는 소문이.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다른 자신을 경험할 수 있다는 소문이.”

     “…….”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거짓된 황금을 ‘마셨을 때’의 상황에 대한 소문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것.

     “소문을 퍼뜨린 사람은?”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 윌리엄 테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또 다른 경우입니다. 윌리엄 테일 그 자와는 다른 의도로 거짓된 황금을 마신 자가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멘테 경의 사건 보고는 정말이지,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영령의 흔적인 황금을 물에 태워 먹으면 몸에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셨는데, 그게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만들었다고.”

     “……그걸 왜 마신답니까?”

     “몸에 좋을 줄 알고? 아니면…자신을 영웅, 소드마스터로 만들어줄 엄청난 마나 용액인 줄 알고?”

     “…….”

     “그러고는 말하더군요. 현실에서는 일반 평민이었던 자신이 꿈 속에서는 상급 기사인 귀족이 되어 있었다고. 저기 같이 누워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

     서서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백은에 중독된 사람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미쳐돌아가는군.”

     황금의 재앙.

     그것은, 또다른 방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신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응?”

     착각이 아니었다면.

     “…거짓된 황금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거짓된 황금을 덮어쓴 이들이 한 번씩 ‘꿀꺽’할 때마다, 어딘가 황금이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중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

     마치.

     꿈 속의 환상을, 달게 삼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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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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