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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뭐?”

   “내 스킬이라면 가능할 거다.”

     

   크라슈의 눈을 잠시간 바라본 바이오렌은 곧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이 기억의 정체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난 뭘 하면 되는데.”

   “내게 결계를 넘겨주겠다고 마음속으로 확실하게 허락만 하면 된다.”

   “허락할게.”

     

   바이오렌의 대답과 함께 크라슈의 손에서 빛무리가 일렁였다.

     

   ‘블랙 후드.’

     

   대상은 바이오렌의 기억에 쳐진 결계.

   크라슈가 블랙 후드를 발동한 순간 바이오렌에게 있던 결계가 강제로 크라슈에게 빼앗겼다.

     

   크라슈는 쥐어진 결계를 즉시 이그니스를 이용해 불태워 버렸다.

   결국 세계 침식의 힘으로 만들어진 결계인 만큼 이그니스는 자근자근 잘 씹어 먹었다.

     

   “윽!”

     

   그 순간 기억이 전부 흘러 들어오며 바이오렌이 비명을 삼켰다.

   그녀는 이를 악 깨문 채 기억을 간신히 버티더니 이내 서서히 눈을 떴다.

     

   “…….”

     

   그녀는 조용히 침묵한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기억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크라슈는 바이오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연, 회귀 전 바이오렌도 자신의 기억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그리고 알고 나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어쩌면 바이오렌이 결계사의 시체를 그토록 착잡하게 바라본 건 봉인해두었던 기억의 영향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기 손을 감싼 채 부서질 듯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기억이 그녀에게 여러 감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였어…….”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을 되새긴 채 말하였다.

     

   “……엄마와 간 곳이 한 곳 있어. 누가 와도 절대 알려 주면 안 된다는 그곳. 거기에서 엄마는 분명 내게 결계술을 두 번 사용했었어.”

     

   하나는 기억.

   그리고 또 하나는 기억 이전에 무언가를 바이오렌에게서 결계술로 빼내었다.

     

   「바이오렌, 여긴 앞으로 누가 와도 절대 알려주면 안 돼. 알았지.」

     

   바이오렌은 되찾은 기억 속에서 결계사의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를 떠올렸다.

     

   거대한 버드나무 아래.

   땅거미가 진 하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결계사는 애틋한 눈동자로 바이오렌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일도 영원히 잊게 하자.」

     

   그녀의 눈에 담긴 애석한 감정은 바이오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러한 감정을 담은 채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크라슈의 푸른 눈과 마주하니 과거의 기억이 흩어지고,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그녀에게 있어서 현실을 되새기기에 가장 좋은 존재였다.

     

   크라슈로 인해 그녀의 현재 삶은 여러 가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위치는?”

   “제블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야.”

     

   바이오렌은 절대 알려 주면 안 된다고 말해놓고, 순순히 알려줬다.

   크라슈는 자기가 묻고도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막 말해줘도 괜찮냐.”

   “……내 복수해 주겠다고 천상사강에 검 휘두르는 놈을 안 믿으면 누굴 믿어.”

     

   왜인지 따르지 않던 야생 동물이 잘 따르게 된 기분이었다.

   바이오렌이 그의 가슴팍을 손등으로 툭 때렸다.

     

   “그 눈 왜인지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말래?”

     

   그녀의 눈에 살짝 부끄러움이 서렸다.

     

   크라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괜히 심술 난 바이오렌은 크라슈를 한 대 더 치려다가 말았다.

   그의 몸이 원상태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오렌, 마황이 네게 관심을 끊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

     

   곧이어 크라슈가 입을 연 순간 바이오렌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엄마가 떠나고 나서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던 바이오렌이 몸을 굳혔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지.”

     

   마황과 익시온은 바이오렌을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게 있었다.

     

   그러나 결계사는 바이오렌을 떠나갈 당시.

   그녀가 지닌 가능성을 결계로 봉인시켰고, 그 뒤에 잠적했다.

     

   덕분에 마황도, 익시온도 바이오렌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었다.

     

   바이오렌이 창공의 세대에 속할 무렵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그녀의 사전 공작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크라슈는 곧이어 왜 결계사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깨달았다.

     

   ‘……바이오렌을 지키기 위해서다.’

     

   원래는 익시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낳은 바이오렌이었으나.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것은 때때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녀를 키워 가는 과정 중 결계사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회귀 전 결계사가 한참 전에 죽어 있었던 이유.’

     

   그건 바이오렌을 지키기 위해 익시온과 맞섰던 게 분명했다.

     

   익시온에게 맞선 결계사는 비운의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바이오렌은 지킬 수 있었다.

     

   ‘원래라면 결계사 혼자서 익시온이 바이오렌을 건드리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바이오렌의 기억에 본인조차 풀 수 없는 결계를 쳐둔 만큼.

   익시온도 결국 바이오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많은 개입이 들어가며 익시온 쪽에서도 움직임이 빨라진 결과.

   결계사는 혼자 힘으로 바이오렌을 지키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녀는 익시온의 적인 크라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크라슈라면 익시온을 막기 위해서라도 바이오렌을 지켜줄 테니까.

     

   크라슈는 굳은 얼굴로 있는 바이오렌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바이오렌은 어머니가 마황과 자신을 증오해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전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면?

     

   “하…….”

     

   바이오렌이 짧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자조감이 뒤섞인 웃음과 함께 바이오렌이 크라슈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서 은근한 걱정을 읽은 바이오렌은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런 눈으로 봐? 나도 애초에 엄마가 나를 지키기 위해 크라슈 너와 거래했을 때부터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거니 하고 말이야.”

     

   그녀는 생각보다도 더 어른스러웠다.

     

   “지금 와서 이런 걸로 멘탈이 부서지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무리하지 마라.”

   “흥, 무리는 무슨.”

     

   바이오렌은 콧방귀를 내쉬며 당찬 표정을 지었다.

   그와는 별개로 그녀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크라슈는 눈감아주기로 했다.

     

   ‘진실은 결계사가 안다.’

     

   결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면, 전부 알게 될 사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익시온에게 있다.

   그렇다면 파편적인 이야기라도 들려줄 수 있는 이, 마황을 만나야 했다.

     

   그라면 결계사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거래의 목적을 안다면 익시온이 바이오렌을 납치하려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제블람에 간다면 결계사가 바이오렌에게 무엇을 떼어 봉인시켰는지도 알 수 있었다.

     

   바이오렌과 크라슈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같은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제블람으로 간다.”

     

   바이오렌의 비밀과 크라슈의 강화.

   두 이벤트를 둘 다 해치운다.

     

   그때였다.

     

   “어딜 간다고요?”

     

   어느새 열려 있던 문에서 스산한 한기가 들어왔다.

     

   거기에는 백발의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크라슈는 자연스럽게 움찔거렸다.

     

   마치, 친구와 외박 약속을 잡았다가 걸린 남편 같은 모습이었다.

     

   비앙카 하덴하르츠.

   크라슈의 약혼녀였다.

     

   “나가자마자 이렇게 다쳐왔잖아요.”

     

   비앙카는 싸늘한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첫 임무에 나갔더니 대뜸 천상사강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약혼녀 처지에서는 가슴이 철렁할 일이었다.

     

   “그런데 또 가요?”

     

   그것도 자신이 검을 휘둘렀던 천상사강에게 간다고 한다.

     

   비앙카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보자 크라슈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비앙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크라슈였다.

     

   “나 때문이야.”

     

   그러는 순간 바이오렌이 서둘러 비앙카와 크라슈 사이에 끼였다.

   비앙카의 싸늘한 눈이 바이오렌에게 닿았다.

     

   “내가 익시온에게 노려져서 저 녀석이 돕게 된 거니까. 너무 구박하지는 마.”

     

   비앙카는 바이오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크라슈를 보았다.

     

   “알아요. 크라슈 님은 늘 그러시니까요.”

     

   짧게 숨을 내쉰 비앙카는 크라슈의 곁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의 옆에 천천히 앉더니 크라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걱정만 덜하게 해주세요.”

   “미안, 안 하게 할게.”

   “그렇게 해도 걱정할 거지만요.”

     

   크라슈는 쓴웃음을 삼킨 채 비앙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이오렌은 어째선가 조금 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누군가와 저렇게 정을 쌓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가실 건가요.”

   “아슬란도 데려갈 생각이야.”

     

   제블람에 가보는 건 아슬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이참에 마황을 꼬드겨 아슬란의 마법도 봐주게 할 속셈도 있었다.

     

   “그럼 허락할게요. 다녀오세요.”

     

   비앙카 본인도 자신에게 수련이 필요하단 걸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그녀는 데려가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돌아오면 저도 더 강해져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등을 곱게 편 채 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크라슈의 눈에는 흰색 병아리가 당당한 표정을 지은 모습이라.

   늠름보다는 귀여움이 더 강해 웃음부터 새어 나왔지만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고 있을게.”

   “또 둘이서만 있는 세계에 갇혔지.”

     

   그러는 순간 아스트리아가 문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살짝 불만 섞인 얼굴로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료해준 건 나인데. 감사 인사는?”

   “늘 고맙다.”

   “그럼 감사하는 김에 보상이라도 줘.”

     

   늘 치료해주던 녀석이 무슨 보상을 바라는 걸까.

     

   “……뽀뽀라도 해주든가.”

     

   그러자 성녀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될 말이 튀어나왔다.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워졌는지 귀끝이 새빨갛게 변한 아스트리아가 휘파람을 휘휘 불며 시선을 돌렸다.

     

   “안 돼요.”

     

   그리고 그것을 막은 건 다름 아닌 비앙카였다.

   비앙카는 크라슈의 팔을 꽈악 끌어안았다.

     

   자기 것이라는 확고한 의미였다.

     

   비앙카와 아스트리아의 눈이 한차례 허공에서 빠직하고 맞부딪쳤다.

     

   “크라슈 님과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 저뿐이에요.”

     

   비앙카는 병아리가 위협을 하기 위해 털을 부풀리듯 등을 더더욱 폈다.

   그러자 아스트리아는 감히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상체를 더 크게 폈다.

     

   “……흥, 그 정돈 나도 이미 해봤거든.”

     

   비앙카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아스트리아, 너…….”

   “왜 한 건 한 거잖아.”

     

   일방적으로 당한 걸 했다고 편하다니.

   크라슈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자 크라슈는 자기 팔이 더 조여옴을 깨달았다.

     

   크라슈는 처음으로 비앙카의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걸 보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변하지 않은 표정이지만 이건 지금 명백히 심술이었다.

     

   “저 오늘 크라슈 님이랑 안 떨어지고, 잘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말을 내놓았다.

     

   비앙카의 성격상 정말 그냥 예전처럼 같이 옆에서 자겠다는 소리겠지만.

     

   “뭐, 뭐어?”

     

   말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한 아스트리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경악이 서렸다.

     

   그러고는 이내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자기 치마를 꽈악 잡았다.

     

   “나, 나도!”

   “그만.”

     

   크라슈는 둘을 제지 시켰다.

   예전에 한 번 경고했지만 역시 한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크라슈가 둘을 동시에 쏘아보자 아스트리아와 비앙카가 시선을 살짝 피했다.

   둘 다 서로 불이 붙은 걸 눈치챈 것이다.

     

   “개판이네.”

     

   유일하게 이 상황에 방관자인 바이오렌만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왜인지 바이오렌이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쓰레기를 보는 듯한 의도가 서린 기분인 건 착각일까.

     

   “으응? 무슨 일 났어?”

     

   그사이, 뒤늦게 나타난 하링이 지금 상황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크라슈에게 주기 위해 품에 따뜻한 우유를 하나 챙겨온 하링을 보며 그나마 마음이 평온해진 크라슈는 조용히 말했다.

     

   “하링, 넌 이렇게 되지 말아줘.”

   “어, 으응, 크라슈가 바라면 안 될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인 하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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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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