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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벌판.

    핫초코의 달콤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마시멜로 평원에서 4족 보행 황금 사신들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빛을 쬐고 있기도 했고, 마치 술래잡기하는 것처럼 사방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옴뇸뇸.

    몇몇 녀석들은 마치 풀을 뜯어 먹는 양처럼, 부들부들한 마시멜로 바닥을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4족 보행 황금 사신들도 히히 웃으며 따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수상한 기분이 점점 커져만 갔다.

    우선 하얀 아귀가 너무 줄었다.

    게다가 4족 보행 황금 사신들은 황금 사신치고는 너무 얌전한 녀석들이 많았다.

    내가 미간을 살짝 좁히고 4족 보행 황금 사신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대략 7할 정도의 4족 보행 황금 사신들은 아닌 척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폴짝폴짝 뛰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저번처럼 근처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4족 보행 황금 사신을 잡아서 확인하자, 인형 옷 안에서는 역시 황금 사신이 튀어나왔다.

    ‘잡혔어!’

    내가 인형 옷의 지퍼를 열자, 황금 사신은 열린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 해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흠.

    인형 옷 속에서 황금 사신을 확인했지만, 의심암귀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얌전한 4족 황금 사신과 활달한 4족 황금 사신.

    도망가는 4족 황금 사신과 다가오는 4족 황금 사신.

    나는 잡은 황금 사신을 다시 인형 옷 속에 집어넣고 바닥에 내려놓은 뒤, 불타는 지렁이 호객 인형을 보며 뀨히히 웃는 하얀 아귀들을 바라보는 척했다.

    그러자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슬금슬금 다시 자리를 잡고 쉬기 시작하는 4족 보행 황금 사신들.

    아니, 간악한 하얀 아귀들.

    그렇게 하얀 아귀가 방심하는 순간, 나는 공간 이동으로 순식간에 식빵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하얀 아귀 근처로 이동했다.

    덥석.

    ‘잡았다!’

    잡혀서 버둥버둥하는 4족 보행 황금 사신의 인형 옷을 벗기자, 그 안에는 역시 뽀송뽀송한 하얀 속살이 있었다.

    히히.

    나는 오들오들 떠는 하얀 아귀를 인형 옷 속에서 꺼낸 뒤, 옆구리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뀨힝힝.

    억울한 하얀 아귀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인형 옷을 입은 간악한 하얀 아귀들이 마구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 사신들도 인형 옷을 벗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들켰어!’

    ‘엄마가 알아챘어!’

    ‘도망쳐!’

    황금 사신들은 몰래카메라가 들켰다는 것처럼 히히 웃으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들은 굉장히 장난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하얀 아귀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필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 가속도 유령화도 없는 하얀 아귀들이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히 나를 속이려고 한 간악한 하얀 아귀들에게 남은 운명은 끔찍한 미래뿐이었다.

    ***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대형 유람선, 그 위에서 청과 이탈리아에서 온 남매가 나란히 서 있었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상쾌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였다.

    절로 마음마저 풍요로워지는 그런 날씨였다.

    “여기 정말 좋네요. 이런 경치라면 푯값이 비싼 것도 이해가 가요.” 

    망원경으로 돌고래를 구경하고 있는 청이 주황 사신을 머리 위에 얹은 채 말했다.

    청의 머리 위에는 보라 사신이 만들어 준 조그마한 망원경을 쓴 주황 사신이 서 있었다.

    그 주황 사신은 바다를 구경하는 청을 따라 하며,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며, 여자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푯값의 상당 부분은 오브젝트 습격을 피하거나, 처리하는 비용이겠지.”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 여자가 팔꿈치로 쿡 찔렀다.

    “아, 여기 내부 시설들이 상당히 좋으니까, 나중에 같이 돌아볼래?”

    청은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얼마 전 승선할 때만 해도 청과 남매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연히 미니 사신끼리 눈이 마주친 이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도 그랬다.

    미니 사신들이 전 세계에 퍼졌다고는 하지만,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보기 힘들었으니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니 사신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귀찮아하는 보라 사신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던 여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점심 먹으러 가는 게 어때?”

    청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은 유람선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화려하게 꾸며진 레스토랑에 도착했는데, 은은한 음악과 함께 TV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 오브젝트 협회는 최근 새로 개발한 가사용 인형을 조만간 시중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대해 미국 오브젝트 협회를 비롯한 여러 연구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충분한 안전성 검증 없이 섣불리 인형을 출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오브젝트 협회 관계자는 “모든 절차를 꼼꼼히 준수하여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며,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목적지가 한국이라서 그런지, TV에서는 한국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청은 TV를 보고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꽤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하지만 이탈리아 남매나 미니 사신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자, 이길 수 있어! 보라 사신!”

    오히려 식전 빵을 가지고 이상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옴뇸뇸.

    주황 사신과 보라 사신은 어느새 식전 빵을 가운데 두고 경쟁적으로 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마치 누가 많이 먹는지 대결하는 모양새였다.

    TV를 보는 잠깐 사이에 어찌나 많은 식전 빵을 먹인 건지, 주황 사신의 배가 올챙이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빵 먹기 승부의 승자는 보라 사신이었다.

    주황 사신은 실격패. 

    폭신한 머리카락 사이에 빵을 숨기다가, 보라 사신에게 걸려버렸다.

    힝힝.

    바닥에 널브러져 슬픈 표정을 짓는 주황 사신을 다독이다 보니, 청도 어느새 한국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뭐 주황 사신이 하나가 ‘거신’을 이겼는데, 미니 사신이 우글우글한 한국은 당연히 괜찮겠지.’

    ***

    미니 사신 정원에 하얀 아귀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모두 잡아먹어 버렸어!’

    황금 사신들 사이에서는 이런 흉흉한 소문이 도는 가운데, 한 무리의 용감한 황금 사신들이 하얀 아귀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마시멜로 평원 깊숙한 곳.

    갑자기 생긴 커다란 구덩이를 향해, 탐험가 모자를 쓴 황금 사신들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뚜방. 뚜방. 뚜방.

    조심스럽게 구덩이를 내려가자, 거대한 동굴 입구가 황금 사신들에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

    동굴 입구에는 위협적인 꼬챙이가 잔뜩 세워져 있었고, 그 꼬챙이에는 수많은 하얀 아귀들이 닭꼬치처럼 꽂혀있었다.

    꼬챙이에 찔린 채, 온몸이 불에 타는 하얀 아귀들은 조그마한 발을 끊임없이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하얀 아귀들의 ‘뀨힝힝’소리가 동굴 속을 울리자, 마치 지옥에서 올라오는 귀곡성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하얀 아귀들 위에는 황금 사신도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를 담은 수정 구슬이 떠 있었다.

    <하얀 아귀 지옥>

    황금 사신들이 <하얀 아귀 지옥>을 지나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악한 하얀 아귀 지옥>이라고 이름표가 붙어있는 지옥이었다.

    황금 사신들도 깜짝 놀라서 두 눈을 가리게 되는 지옥이었다.

    그 지옥은 너무 끔찍해서 수많은 탐험가 황금 사신들은 기록을 전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뀨힝힝.

    ***

    서울 강남구, 오브젝트 협회 건물.

    세희는 오브젝트 협회의 호출에 불려 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서울에 있는 온갖 연구소 대표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들 피곤해 보이는 표정의 불쌍한 연구원들이었다.

    세희는 손바닥 위의 황금 사신의 통통한 뺨을 찌르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세희 연구소 안뜰에 눕고 싶어질 정도로 맑은 하늘과 적당한 햇살.

    그리고 그 햇살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내는 행복한 웃음소리.

    짝을 이루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

    서울은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변해있었다.

    ‘협회 인형’이라고 불리는 인형이 서울에서만 선 발매된 지 6개월.

    서울의 거리는 협회 인형들이 잔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인형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놀라운 능력은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보모 인형, 건물을 짓는 인부 인형, 칠판 앞에서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 인형까지.

    인형들은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인형들은 주인을 대신해 돈을 벌어오기까지 했다.

    인간을 닮은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점점 인형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협회 인형 없는 서울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인형은 정말 없는 곳이 없어서, 서울에서 협회 인형이 없는 곳은 손에 꼽을 수 있었다.

    마포구, 제임스 타워, 그리고 세희 연구소.

    아마 서울에서는 이 세 곳 정도일 것이다.

    미니 사신들이 협회 인형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분명 마포구와 세희 연구소에도 인형들이 가득했겠지.

    얼마나 싫어하냐면 세희가 외출하려고 하자, 물로 만든 창과 투구를 쓴 황금 사신 경호원이 쫓아올 정도였다.

    제임스를 포함한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오브젝트는 위험하다’는 견해를 고수 중이었다.

    정말 화창한 날씨에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세희에게는 어쩐지 폭풍전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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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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