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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282 – 무인도 경매>

     

    오크노디의 주장이 황당한 이유는 많지만 지젤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이유는 이것이었다.

     

    “집사분 바로 옆에서 선상반란을 논의해도 되는 겁니까?”

     

    저 인간 하나만 날뛰어도 배에 있는 학생들은 굴비 엮듯이 밧줄에 묶여서 나란히 갇히겠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아가씨를 보필하기 위해 찾아온 집사이자 재단대리인. 제 손으로 직접 여러분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들었죠?”

    “그럼 승산이 없지는 않겠군요. 선상반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지를 생각입니까?”

    “전송진이 설치된 항구로 배를 몰지 않으면 승무원들의 손가락 발가락과 피를 모조리 <포인트>로 바꿔먹겠다고 협박할 거예요!”

     

    이게 선상반란이야 다크프린세스의 사악한 행보의 시작이야.

     

    “언제 저지를 겁니까?”

    “포인트경매가 끝난 뒤에요!”

    “경매는 며칠 남았죠?”

    “하루요!”

     

    지젤의 머릿속에는 빠르게 항로와 이동속도, 항해거리가 그려졌다.

    초대형 마나엔진이 장착된 초호화 크루즈선으로 3일 거리에 있는 무인도.

    평범한 대형선박이라면 위험한 해수(해양마수)를 피해 족히 14일은 걸릴 거리를 3일로 단축한다.

    항해사의 실력도, 배의 장비도, 들어가는 마석도 모두 출중해야 가능한 일이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인력이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거나 다양한 시설에 사람을 채워 넣는 선으로 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조금은 두렵구나. 이들의 준비성이.’

     

    암흑가의 거상들도 힘을 모은다면 비슷한 흉내를 낼 수는 있다.

    배를 구할 돈은 충분하고 돈이 있다면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최고의 품질을 지닌 물건과 믿을 수 있는 실력자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상사 어디든 돈이 모이는 곳에 권력을 지닌 욕심만 많고 무능한 이나 사기꾼, 흑심을 품은 적대조직이 꼬여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수많은 적을 둔 재단이 이 정도 규모의 크루즈선을 완벽하게 항해하는 것은 재단의 강력함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전에도 물었지만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군요. 아가씨는 대체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아시는 겁니까?”

     

    조나의 의문에 오크노디가 에헤헤 웃으며 얼버무리려 시도했지만 조나는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꼬마숙녀의 눈짓이 은근히 지젤에게 향했지만 그는 시미치 뚝 떼고 이를 외면했다.

    지젤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 음… 몰래 봤어요.”

    “어디서 말입니까?”

    “항해실에서.”

     

    조나가 멈칫하다가 재차 물었다.

     

    “제 눈을 속이고 최중요보안시설인 항해실까지 침투해서 정보를 얻고 빠져나왔단 말입니까?”

    “헤헷.”

     

    …아가씨가 아카데미의 첩자가 되었구나.

    용서할 수 없다!

    따위를 외치며 달려드는 상황까지 각오하며 배낭 속에 손을 집어넣고 응전태세를 갖추었던 지젤이었지만 조나의 반응은 훨씬 담백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셨군요. 아가씨는 좀 더 기뻐하셔도 됩니다.”

     

    오크노디의 반응만큼 집사의 교육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재단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함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결국 지젤뿐이었다.

     

     

    * *

     

     

    무인도 상륙까지 앞으로 하루가 남았다는 정보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팔아먹은 지젤.

    덕분에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포인트 모으기 삼매경이었다.

     

    부우우우우━

     

    뱃고동 소리가 들리며 크루즈선에서 무인도 상륙을 위한 소형보트를 내리는 사이, 보트탑승권을 포인트를 주고 구매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128명의 학생 중에서 배에 탄 학생들은 불과 12명.

    각 소그룹의 대표로 포인트를 몰아서 받거나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개인들이었다.

     

    “황녀님은 파산하지 않았나요?”

    “하아~? 그 정도로 낙오될 리가 없잖아♡ 나보다 약한 승무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승무원들이 불쌍해지네요.”

     

    지체 높은 아카디아 백작영애와 제국2황녀 매스각키.

     

    “오우, 고릴라 여자. 힘쓰는 일로 얻는 포인트는 내가 독점한 줄 알았는데 어디서 포인트를 땡겼냐?”

    “단련실의 신기록 달성으로.”

     

    신체가 강건한 손오천과 헤스티아.

     

    “모두가 모아준 포인트, 헛되이 하지 않겠어.”

    “시시하기는. 그러다가 경매로 딴 상품도 N분의 1로 나누겠군.”

    “그러는 자쿠 너도 다른 애들한테 포인트를 몰아 받았잖아.”

    “몰아 받은 게 아니다. 내가 가장 강하니 대신 나서겠다고 힘으로 삥 뜯은 거다.”

    “…그런 소리를 자랑스럽게 얘기해도 되는 거야?”

     

    약자들의 포인트를 모아온 모브와 자쿠.

     

    “비키니전사 파이팅!”

    “날 가져요! 엉엉.”

    “모두들 고마워~! 경매에서 승리하고 비키니아머의 대단함을 보여줄게!”

     

    혼란을 틈타 미인계로 추종자를 만들고 포인트를 쓸어 담은 뾰이.

     

    “반띵 해줄 테니까 그만 좀 닦달해.”

    “약속이다? 약속한 거다?”

    “아 쫌.”

     

    하급반의 다크호스 로지니.

     

    “경쟁자가 꽤 있네.”

    “방심하지 말아요. 우리랑 다르게 저쪽은 여차하면 자기들끼리 힘을 합칠 수 있으니.”

     

    용사 이슈타르와 성녀 유피.

     

    “즈앙은 어디서 포인트를 모아온 거야?”

    “화장실.”

    “…?”

    “사람은 급하면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가기 위해 포인트를 아끼지 않아.”

    “우와. 짱이다!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써봐야지!”

     

    피도 눈물도 없는 오크노디와 즈앙까지.

    12명의 학생의 인솔자로 집사 조나와 메이드 리프가 각각 보트를 한 대씩 몰았다.

     

    “부디 노예라도 취급해주길 바라지. 아카디아 백작영애처럼 물어뜯을 건수가 되어줄 테니.”

    “흥. 그런 시시한 걸 취급하려고 열리는 무인도 이벤트가 아니거든요?”

     

    집사와 메이드 포함 14명의 사람들이 머무르기에는 지나치게 큰 무인도.

    섬에 상륙하자마자 떠나는 보트를 쳐다보던 모브가 멍청한 얼굴로 질문했다.

     

    “경매는 언제 시작합니까?”

    “매일 이 시각에.”

    “뭐야. 너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냐?”

    “경매가 열린다는 말에 모두가 포인트를 몰아주기만 해서…”

     

    자쿠가 딱하다는 눈으로 모브의 갑옷을 쳐다보았다.

    덥고 습한 무인도에서 중갑을 입고 있으면서 며칠에 걸쳐 하루에 상품 하나씩만 공개되는 경매에 참여하는 바보짓을 하다니.

     

    “뭐야, 갑자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기나 하고.”

    “힘들면 기권해라.”

    “하. 재단의 보물이 나올지도 모르는 비밀경매에서 기권을 할 리가 없잖아.”

     

    호화시설의 이용도 온갖 산해진미도 전부 꾹 참고 모두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리 순순히 포기할까보냐.

    모브는 의욕이 넘쳤다.

     

    꼬르륵.

     

    배가 고파지기 전까지는.

    비상용으로 챙겨온 흑빵을 식사 때에만 자동으로 열리는 헬멧의 음식투입구로 집어넣어 으적으적 씹어 먹으니 바닷바람에 묻어난 소금기가 느껴졌다.

    딱딱하고 식감은 최악인데 침으로 녹이면 짠맛까지 나는 최악의 흑빵.

    식수는 당연히 가져온 것이 전부다.

    이래서는 훈련으로 체력을 낭비할 여유도 없다.

     

    철컥철컥

     

    거침없는 걸음으로 식량부터 수색에 나선 모브.

     

    철컥철컥…

     

    그는 힘없는 걸음으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탄식했다.

     

    “로지니 이 미친 여자야…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야…”

     

    눈앞에서 불타오르는 주홍빛의 초목.

    과일이 맺힌 나무가 실시간으로 불타 쓰러졌다.

    적색마법사 로지니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경쟁자 줄이기야. 굶어죽기 싫으면 경매를 포기하고 기권해.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충분한 식량과 식수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경매를 즐길 자격도 없지.”

     

    용사가 아니라도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혐성기술을 배워온 학생들!

    로지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오기로라도 첫날 상품은 가져가고 만다.”

     

    악착같이 하루를 버틴 모브.

    그는 자신의 소지 포인트 25만 포인트를 다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는 건지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무인도 경매 첫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의 상품은 <흑빵 한 박스>입니다.”

    “기권.”

     

    빠르게도 끝난 다짐이었다.

     

     

    * *

     

     

    자쿠는 일이 피곤하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로지니의 화공은 이미 예측했다.

    식량과 식수의 중요함도 깨닫고 충분한 식량도 배낭에 비축해두었다.

    정보를 얻은 다른 학생들도 충분히 대비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상품으로 흑빵이 나왔다.

    준비되지 못한 학생들이 장기전에 돌입할 물자를 판매하는 것이다.

    맛은 더럽게 없지만 저게 있으면 남들보다 하루라도 더 길게 경매에서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딴 거에 쓸 포인트가 남아돌 때의 이야기지만.’

     

    이 뒤로 얼마나 가치 있는 상품이 나올지,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챙겨왔을지도 모른다.

    장기전을 생각하고 포인트를 쓰기는 아깝다.

    자칫 잘못하면 흑빵만 한 무더기로 가지고 배로 돌아가는 불상사가 생긴다.

    모처럼 장학생들의 포인트를 일정비율로 몰아서 뜯어내고 참전했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거든 프라이머조차 그의 실력을 의심하고 얕잡아볼 것이다.

     

    “경매 시작가는 1천 포인트. 시가는 천씩 올리겠습니다. 입찰에 참여하실 분 있습니까?”

     

    자쿠는 승부수를 던졌다.

     

    “자쿠, 1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1만이나?”

    “고작 흑빵에?”

     

    자쿠에게는 필승전략이 있었다.

     

    ‘어차피 이 경매는 무인도에서 하루를 버틸 때마다 다음날의 상품을 볼 수 있는 만큼 뒤로 갈수록 가치 있는 물건이 나오겠지.’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오래 버틸수록 더욱 가치 있는 상품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정말로 귀한 물건을 가지려면 포인트가 아니라 식량과 식수를 얼마만큼 확보했는지에 따라 참여유무가 결정된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허기지고 갈증을 견디지 못해 기권한다면 최저포인트로 후반부의 모든 상품을 독식할 수 있다.

     

    ‘마법배낭에 얼마나 많은 식량을 감췄을지 모를 지젤만 제외하면 경쟁자는 없어.’

     

    경매필승전략의 승리를 확신하는 그때, 경매사회자 역할을 맡던 조나가 입을 열었다.

     

    “리프, 2만 포인트.”

    “…!”

     

    재단의 새로운 꼬리.

    암살메이드 리프가 가소롭다는 눈으로 자쿠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자쿠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손을 들었다.

     

    “자쿠, 3만 포인트.”

    “리프, 4만 포인트.”

    “자쿠, 5만 포인트.”

     

    거침없이 올라가는 포인트.

    지켜보던 즈앙이 돌멩이를 하나씩 입에 머금었다가 퉤퉤 뱉는 오크노디에게 말을 걸었다.

     

    “오크노디는 저거 안 해?”

    “후반전략? 안 해!”

    “지젤한테 음식을 받으려고?”

    “그것도 있지만 정 뭐하면 흑빵 낙찰 받은 사람한테 뺏어 가면 되니깐!”

    “…”

     

    열심히 경매를 하던 자쿠의 의욕이 뚝 꺾이기에 충분한 선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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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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