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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한참을 고민하던 레너윌이 입을 열었다.

       

       “뚫고 간다.”

       “아버지!”

       

       빽 소리를 내지르는 클라이스와 클라라.

       

       자매가 한목소리가 되어 아버지를 뜯어말린다.

       

       “결정을 섣불리 내리시면 안 돼요. 잘못하다가 모두 죽을 수도 있어요!”

       “아비도 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니.”

       

       마왕군의 계략이란 참으로 교묘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교착 상태를 유지한다면 보급 문제로 사기가 크게 꺾이게 된다.

       

       반대로, 돌출구를 일점돌파하는 짓은 도박수나 다름없었다.

       

       진퇴양난, 아니면 계륵.

       

       딱 그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상황이리라.

       

       “카우렐리아에 원군을 요청하고 기다려 봐요.”

       “통신선이 끊겨서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기다리라고?”

       

       자매와는 달리, 레너윌은 지금 교착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차라리 동쪽 거점을 먹고 산을 낀 채로 수비하는 편이 훨씬 낫다.”

       “아버지….”

       

       딸들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사실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아버지는 본래 한 번 정한 일은 고집불통으로 밀고 나갔으니까.

       

       “만일 여기서 죽더라도 내 영지에 묻히는 것이다. 여한은 없다. 제국에게 공작위를 받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조국의 충신으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각오를 굳힌 레너윌이 주위 참모들에게 소리쳤다.

       

       “전략급 마도사만으로 구성된 돌격대를 준비하라! 내 직접 나서서 동부전선을 타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싹 든 하스펠트의 정예병들이 나선다.

       

       이들 모두가 틸레트 아카데미의 동기와 선후배 관계에 있었다. 즉, 전원이 베테랑인 셈이었다.

       

       “동쪽 사령부에 연락했습니다. 지원은 언제든지 환영이랍니다.”

       “좋다. 백야 스크롤을 챙겨라.”

       

       백야(白夜).

       

       이번 개전의 일등 공신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 스크롤이었다.

       

       ‘이게 미완성이라고 했나?’

       

       현재 상천(上天)이라는 것이 밝혀진 에테르. 이것은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의 고유마도라고, 로즈마리라는 마수가 일러주었다.

       

       – 미완성이지만 맞으면 더럽게 아파. 죽을 수도 있다고.

       

       절멸급 마수라는 그녀가 그리 말할 정도였다. 아마 마왕이 나타나더라도 유효타는 먹일 수 있겠지.

       

       ‘보증, 잘 서고 있는 게 맞나?’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면, 이미 투항했을지도 모르는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

       

       만나서 믿음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이 백야라는 것이, 신원 보증에 대한 결과물이 맞는지를.

       

       그런 미래를 품에 안은 채로, 레너윌의 정예병 3만 명은 동부전선으로 향했다.

       

       “어떡하죠, 언니.”

       “괜찮아. 클라이스. 괜찮을 거야.”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클라이스는 손톱을 자근거렸다.

       

       이미 수많은 일가 친척이 마수의 손에 죽었다. 더는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고 싶어진다.

       

       탈영.

       

       물론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밟는다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전략급 마도사에 위치한 두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성이 자리를 이탈하면 서부 전선 지휘는 대체 누가 하라고?

       

       결국 울상을 지으면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

       

       동쪽 하늘에서 거대한 백광(白光)이 떠올랐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

       

       

       백야로 중무장한 마도사들을 이끄는 하스펠트 공작.

       

       동부전선의 군인들까지 가세하여 돌출부를 뚫고, 마수들을 몰아내어 산을 장악하는 덴 어찌어찌 성공하였다.

       

       – 와아아아!

       

       “됐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백야 덕분에 그의 부대는 아주 경미한 손해만을 입고 거점을 탈취했다.

       

       심지어 선봉에 있었던 ‘캐슬 브라보’조차도 백야 무리를 맞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여기서 진을 치고 경계를 강화한다. 우리의 목표는 엘프들이 지원을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리 말할 무렵이었다.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

       

       함성을 지르던 마도사들이 하나둘씩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저게 뭐냐.”

       “여신이시여.”

       

       무언가, 커다란 것이.

       

       점점 하강하며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속았구나.’

       

       어떻게 보아도 폭탄을 방불케 하는 모양새에, 레너윌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모두 철수, 철수하라!”

       

       히히힝!

       

       말이고 골렘이고 상관없이, 아무거나 탈 것을 잡아 고삐를 쥔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떼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직감.

       

       수천 년 인류가 생존해 오면서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적인 공포가, 폭탄이라는 형태로 레너윌의 눈동자를 스쳐 들어왔다.

       

       피해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벗어나야 한다.

       

       – 적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 살려줘!

       – 끄아아아악!!

       – 밟지 마라!!

       

       여기까지 거의 3초도 안 걸렸을까?

       

       종단속도로 떨어지던 원자폭탄에 열감이 차오르고, 이윽고 기폭 준비가 되었을 때.

       

       “딸들아.”

       

       레너윌은 죽을 각오를 마쳤다.

       

       “──!!”

       

       다음 순간, 선연히 들려오는 폭발음이 고막을 찢어놓는다.

       

       머리가 울리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땅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몸을 못 가누게 만든다.

       

       전신이 전율했다.

       

       레너윌은 등 부분에서 아주 뜨거운 감각을 느꼈다.

       

       ‘잠깐만. 감각이 느껴진다고?’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은 그가 뒤를 둘러보았다. 두르고 있었던 로브와 겨울철 군용 모자에 자그마한 불씨가 붙었다.

       

       레너윌은 서둘러 눈밭을 굴렀다. 다행히 기온이 영하였는지라 눈에 몸을 파묻은 것만으로도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심신을 다잡고 신속하게 간이 이글루를 만드는 레너윌. 눈으로 된 굴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부하들도 교육받은 대로 비슷한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살아남은, 건가?’

       

       어떻게?

       

       분명 조금 전까지, 그라운드 제로 지점에 있었는데.

       

       레너윌은 저 멀리, 구름이 유별나게 많이 낀 지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난생처음 보는 버섯구름이 뭉실뭉실 올라오고 있었다.

       

       – 저게 대체 뭐야.

       

       그 말대로였다. 저것이 대체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정녕 마왕군의 신병기란 말인가?”

       

       레너윌이 그리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아버지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딸.

       

       클라라 하스펠트와 클라이스 하스펠트가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뛰어왔다. 그녀들의 뒤에는 예비 병력도 있었다.

       

       “아버지…!”

       “다행이다. 다행이야…….”

       

       클라이스는 풀썩 주저앉았고, 클라라는 자신을 와락 껴안았다.

       

       딸들의 반응에 레너윌도 격한 감정이 쏟아진다.

       

       그것은 안도감이었다.

       

       “미안하구나. 괜히 나가서 걱정을 시켰어.”

       “아뇨,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이런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날 뻔했다는 생각에 뒤늦게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 뭐야. 우리 산 거야?

       – 어떻게 살아있지?

       – 저건 대체 무슨 마법이냐.

       

       “모두 이쪽으로 모여라!”

       

       레너윌은 흩어진 병사를 한 부대씩 수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돌출부에서 전투를 끝낸 직후 계산한 인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각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귀관도 그런가? 누구 아는 사람 없는가?”

       “…….”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클라이스, 여기가 어디더냐?”

       “서부 전선이에요. 저쪽 동부와는 못해도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을 텐데…….”

       “우리는 분명히 저쪽에 있었단다.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는데.”

       

       레너윌은 땅과 하늘을 차례로 훑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신님이 보우하시기라도 했단 말인가?’

       

       “순간이동 마법일 수도 있어요.”

       “순간이동? 대체 누가?”

       

       순간이동은 격이 높은 마법이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터.

       

       심지어 3만 명을 한 번에 이동시킬 정도라면, 해당 마법진을 구축하는 데 엄청난 조예와 연산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역일 텐데.

       

       “적들이 다시 몰려오고 있습니다!!”

       

       고민은 깊지 않았다.

       

       시체가 된 동료들을 밟고, 늑대처럼 생긴 마수들이 산맥을 넘어온다.

       

       “요격 태세를 취하라!”

       

       계속된 전투로 이미 체력은 한계에 달했지만, 그런데도 힘을 합쳐서 저것들을 막아내야만 했다.

       

       거대한 폭발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윽!”

       “아버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큰일이다. 마나 고갈 증상이야.”

       “언니, 아버지를 뒤로 모셔요. 여긴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너도 조금밖에 못 쉬다 왔잖아.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잡는데!”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요.”

       

       투두두두두두두.

       

       광야를 달리는 백마처럼 사납게 돌진해 오는 마수의 무리.

       

       단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재앙급 이상이다. 플레어라도 있지 않는 한 까다로운 상대.

       

       이미 열 차례가 넘는 전투로 인해 플레어 스크롤은 전부 소진했다. 클라이스는 이제 순수 실력으로 저 마수들을 잡아야만 했다.

       

       “큭….”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 ♬]

       

       창공을 관통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

       “뭐지?”

       “갑자기 왠 바이올린?”

       

       전투 태세를 갖추던 마도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끽.

       

       돌진을 멈추던 마수들이 하나둘씩 멈추었다.

       

       끼긱, 끽.

       

       조금 전까지 공격성을 보이던 펜릴들이, 상대적으로 순한 기계음을 내며 뒤를 돌았다.

       

       콰득!

       

       그러더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으면서 뒤따라오는 동료들을 할퀴고 물어대기 시작한다.

       

       [──!!!]

       

       바이올린 연주는 갈수록 빨라지고, 이에 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한 마수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죽은 마수들, 땅에 파묻힌 금속들.

       

       차가운 기계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군으로 탈바꿈하여 마왕군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으니.

       

       “이건….”

       

       하스펠트 자매는 눈을 비비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최상급 지계마도에 속한 ‘메카로멘시아’와 동등하거나 훨씬 웃도는 수준의 마도.

       

       [전설급 고유마도 ─ 위령(慰靈)]

       

       뚝, 하고 끊기는 바이올린 소리.

       

       1악장을 거쳐 종장까지 이어온 독주가 끝을 고한다. 동시에, 무언가에 홀린 듯 행동하던 마수들의 움직임도 그 자리에서 멎었다.

       

       제 역할을 다한 마수들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죽었다.

       

       “아하하하하하─!!”

       

       광기에 찬 웃음이 뒤이어 들려온다.

       

       연주하는 소리와는 달리,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됐다.

       

       “그래, 이 맛에 군단을 부려 먹는 거지. 전황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고양감! 쾌감! 이러니까 유격대를 그만둘 수 없는 거라니까?”

       

       휘날리는 블루베리 색 머리카락. 은칠을 한 것처럼 빛나는 티타늄 의수. 태양처럼 노랗게 이글거리는 금빛 눈동자.

       

       마지막으로, 인간이라면 지을 수 없는 악독한 표정까지.

       

       “열등한 인간들아, 고마운 줄 알면 당장 머리를 조아리거라!”

       

       절멸급 마수, 그중에서도 구천지대계 4석.

       

       “위령의 로즈마리 님 등장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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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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