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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클레어는 이미 몇 년 전에 ‘누나’ 소리 듣는 것을 포기했다.

        

       레오와 클레어는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누나’, ‘오빠’라고 주장했다. 사실 누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오래된 기억 안에서도 둘은 그렇게 싸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랜 기억보다도 더 전에, 클레어는 실비아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기억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지울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클레어의 인생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난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이미지가 달라지긴 했지만.

        

       마냥 천사처럼 보였던 ‘언니’는 사실 그렇게까지 완벽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답게 실수도 하고,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도 꽤 명확하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실패가 설령 자기 몸을 희생하는 일이라도 하더라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나서도 클레어는 실비아를 언니라고 부를 생각이었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준 사람을 언니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다만.

        

       “너, 언니한테 누님이라고 했잖아.”

        

       “또 그 소리냐.”

        

       클레어의 말에 레오가 미간을 확 찡그렸다.

        

       사실 클레어는 이 표정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털털해 보이고 세세한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인상이지만, 사실 레오는 진짜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뭐, 평소에도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긴 했지만, 뭐랄까, 그 정도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물론 싫지 않다고 해서 거슬리지 않는다는 소리는 또 아니었다.

        

       “말 했잖아. 실비아……누님은 그렇게 불릴만한 사람이라니까. 네가 언니라는 표현을 쓰는 거랑 같은 이유 아니겠어?”

        

       “아니, 이번에는 그것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물론 분한 마음도 있다. 실비아에게 질투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정이었지만, ‘왜 나는 그런 소리를 못 듣지’하는 미미한 짜증은 있었다.

        

       뭐, 그냥 철없는 남동생의 치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긴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호칭을 쓰려고?”

        

       “…….”

        

       그 말에 레오는 입을 다물었다.

        

       이전의 기억 속에서 레오는 실비아와 형제 자매지간이었다.

        

       분명 그 몇 년간의 시간 동안 서로 추억도 쌓였으리라. 그것 때문에 레오가 실비아에게 연애 감정을 품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연스럽게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긴 했으니까.

        

       “쓰면 안 될까?”

        

       “…….”

        

       잠깐 대답이 없던 레오가 입을 열고, 이번에는 클레어가 입을 다물었다.

        

       쓰면 안 되나?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실비아를 다시 만난 이후로 줄곧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클레어도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클레어에게 황제의 피가 섞였다는 것은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에선 클레어는 고작 남작가의 여식일 뿐이니까.

        

       친한 사이에 서로 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는 종종 있다. 특히 귀족간에는 꽤 자주 있는 일이다. 다른 가문의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혈연으로 이어진 존재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교류가 있어서 정말로 자매처럼 자라난 사례도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황족과 귀족은 다르다. 평민의 눈으로는 모두 고귀한 신분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구분되는 호칭이다. 귀족이 황족이나 왕족이 되는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두 부류는 애초에 같은 곳에 두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부류였다.

        

       물론 그런 것도 돈이나 이득 앞에서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얇은 막 같은 것이지만. 일단 겉으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뭐, 언니랑 오래 같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클레어가 괜히 콧대를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 내가 허락해줄게. 어차피 너는 막내잖아.”

        

       “그걸 왜 네가 허락을 해? 그리고 막내는 너겠지.”

        

       레오가 툴툴거리는 것을 보며, 클레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마차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황궁 내로 들어왔다.

        

       법국에서의 결전이 있었던 뒤로 한 달이 흘렀다. 11월도 이제 중순을 지났는데, 아카데미 수업은 다시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단순히 뛰어난 업적뿐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무시하기 어려운 위치의 귀족이기도 했다. 그레이스 가가 남작이면서도 이름이 꽤 알려진 가문이듯, 아카데미의 선생들의 가문들도 마찬가지였다. 윈터필드나 노스우드 같은 명문 공작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거대한 정치적 지각변동이 있었는데 자기 가문의 후계자가 그저 손 놓고 있도록 할 가문은 없다.

        

       선생들 뿐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의 4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은 곳이다. 그만두는 이유는 대부분 집안의 사정 때문. 많은 경우에 후계자 수업을 직접 받기 위함이고, 가끔은 결혼해 가정을 차려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급하게 황제 자리가 바뀌는 상황이 생겼으니, 귀족들이 자기네 자식들을 다시 데리고 가버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카데미 자체가 폐쇄될 일은 없다.

        

       오히려 지방 귀족들은 자식들이 제도에 나가 있는 것을 기회로 여겼으니까. 게다가 당장 교장인 윈터필드가 조만간 아카데미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혼란스럽지는 않은 모양이네.”

        

       “글쎄,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거 아니야?”

        

       클레어의 중얼거림에 레오가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앨리스의 이미지는 원래 있던 황제 폐하의 이미지가 아니니까…….”

        

       클레어는 그 말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앨리스도 똑 부러지는 성격이긴 했지만, 똑 부러지다 못해 상대방을 분질러버리던 황제와는 그 이미지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엄밀히 따지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다. 앨리스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에 황제 자리에 오르겠다고 했기에, 공식적으로 아직 황제 자리는 공석이다. 말만 공석이지, 사실상 앨리스의 자리이긴 했지만.

        

       아카데미가 언젠가 다시 정상화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물론 ‘사실상의 황제’가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귀족반 애들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래도 언니가 황제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야.”

        

       “보통은 아쉬워할 일 아니냐고.”

        

       레오는 그렇게 딴지를 걸면서도 클레어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리폰을 타고, 황제의 음모를 저지하고, 심지어 팬그리폰이 그랬듯 여신의 계획을 저지하기까지 했다.

        

       사실 제일 마지막의 이야기는 기밀이긴 했지만, 앞의 두 가지만으로도 실비아는 이미 칭송받고 있었다.

        

       “뭐, 그래도 앨리스의 말도 맞는 말이야. 실비아를 황제 자리에 앉히면 황제파가 엄청나게 반발할 테니까.”

        

       기껏 황제의 밑으로 들어간 이들인데, 그 수장이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실비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일이다. 실비아는 귀족파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황제파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는 이도 아니었으니까. 그 황제를 저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실비아가 자리에 앉으면—

        

       —하긴, 실비아라면 어떻게든 잘 헤쳐 나가긴 했겠지만.

        

       앨리스도 황제를 저지하는데 한몫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 황제의 친딸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오히려 앨리스가 평소에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반발심리를 막는데 한몫했다는 것 같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레오와 클레어 앞을 걸어가며 길 안내를 하던 기사가 멈춰 서며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얌전히 그 말을 들었다.

        

       사실 클레어의 입 모양이 살짝 굳어지긴 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수 있던 언니를 보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일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내심 불만스러웠으니까.

        

       기사는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하긴, 알아본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이미 실비아로부터 ‘각별하게 모시라’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

        

       ……생각해보니 제국 권력의 중심에 선 것이 아닌가, 하는, 몹시 번거로운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조금씩 혼담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 같은데, 이 일로 그게 가속되지나 않았으면 할 뿐이었다.

        

       “들어와도 좋다고 하십니다.”

        

       알현실 앞을 지키는 기사에게 말을 전달받고, 굳이 그 말을 다시 전달하기 위해 레오와 클레어한테 걸어온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조금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기사의 안내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에는 매일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있네요ㅠㅠㅠㅠ

    퇴근 전 시간까지 반드시 다음 화를 올릴 수있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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