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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예, 예르나? 어떻게 벌써?”

     

    눈을 뜨자마자 예르나의 얼굴을 맞이하게 된 루크는 기겁하며 얼굴을 뒤로 쭉 뺐다.

    마치 지금 봐서는 안 될 사람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눈을 보니 확실히 루크네.’

     

    처음에는 사실 긴가민가 했는데, 동그랗게 뜬 청록빛 눈동자와 금빛의 눈동자를 본 예르나는 비로소 확신했다.

    이 여인은 틀림없이 루크라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또 이제부터 들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예르나는 어느정도 마음을 다잡았으나, 루크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여전히 허둥대고 있었다.

     

    “언니, 오늘 밤에는 집에 안 들어오시는 거 아니었나요?”

    ‘어, 언니……?’

     

    저 성숙한 얼굴에서 익숙한 듯한 목소리로 언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예르나의 기분을 미묘하게 만들었다.

    뭐랄까, 이제는 이 쪽에서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여성이 어린아이 같은 억양으로 쫑알대고 있으니.

     

    “루크, 지금 아침이야. 벌써 해가 중천에 떴는 걸.”

    “네? 아니, 그럴리가……!”

     

    예르나의 말에 놀라 허겁지겁 고개를 돌린 루크는, 그녀의 말대로 하늘에 밝게 솟아있는 햇살을 보며 경악했다.

    정말로 아침이었다.

     

    “말도 안돼.”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명상을 하고 있었을텐데……?

     

    ‘설마, 이 자신이 명상을 하다가 깜빡 졸아버렸단 말인가?’

     

    대마법사인 자신이, 명상을 하다가 존다고?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법사가 명상중에 존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가속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을뿐더러, 몸 상태와 정신은 정말로 푹 자다가 일어난 것 처럼 너무나 상쾌했다.

     

    이토록 증거는 명확했다.

     

    다만, 납득하고 싶지 않을 뿐.

     

    “말도 안돼!”

     

    이 자신이 레니에나 할 법한 멍청한 짓을 하다니!

     

    루크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다.

     

    ——

     

     

    ‘아니, 아무리 애들이 빨리 큰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1~2cm도 아니고, 갑자기 3~40cm정도를 훌쩍 커버리다니……?

    분명 마지막으로 루크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귀여운 아이였는데, 지금은 여러가지가 무서울 정도로 커다란 여성이 되어버렸다.

     

    사춘기의 딸을 둔 엄마들이 아이가 너무 훌쩍 커버린 것 같다며 한탄을 한다는 말은 좀 들어봤다만, 아마 이런 경험을 겪은 학부모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신기하기도 하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딸의 몸이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납득하겠는가?

     

    하지만 예르나가 루크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생각보다는 빨랐다.

     

    생각해보면 루크는 과거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모습으로 변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숲에서 일어났던 루크의 ‘용 변신’소동…….

    그땐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지.

     

    그래도 자신은 루크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루크라고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면 루크가 갑자기 성장해버리는 것도 크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분명히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냥 적응해버렸다고 해야 하나…….

     

    루크는 남들과는 확실히 다른 키메라니까.

    사실 루크의 마력패턴은 인간보다는 차라리 괴물에 더 가까웠다.

    그 말은 루크에게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특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과 용. 그 뿐 아니라 예르나는 루크가 ‘고양이’의 모습이었을 때로 추정되는 사진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대체 루크에게는 몇 가지의 모습이 있는 걸까?

     

     

    이것은 오랜만에 그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소동이 아닌가 싶다.

     

    예르나는 얼굴을 부여잡은 채 자책하던 루크를 달래서 의자에 앉힌 뒤에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루크? 이제 좀 진정했어?”

    “……네에, 언니.”

    “…….”

     

    예르나는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루크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뒷목을 긁었다.

    항상 듣던 언니라는 말인데, 지금은 너무나 낯설다.

    그래도, 루크의 살며시 웃음짓는 저 표정은 그대로라는 사실에 약간은 안심되었다.

     

    “그럼, 이제 설명해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예르나는 루크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 그게요……. 정말 설명해야 하나요?”

     

    원래 루크는 예르나에게 이 몸에 대한 것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기 몸에 대한 것도 미리 예르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생각하니 굉장히 머리가 아파왔다.

     

    ‘어젯밤에 꼭 5서클 진입에 성공을 했어야 했어……!’

     

    그랬으면 이런 상황에 놓일 일도 없지 않았는가?

    자신은 태연하게 평소처럼 예르나의 퇴근을 맞이하고, 식사를 대접한 뒤에 평소대로 생활을 하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들켜버린 이상, 루크는 이 모습에 대한 설명을 예르나에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버리고 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졸음’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니 자괴감이 루크를 감쌌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루크는 그렇게 난처한 듯이 미소지으며 예르나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걸까?’

     

    예르나는 턱을 쓸며 생각했다.

    이번에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넘어가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게 대충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 자신은 루크가 무슨 실험을 당했는지도 자세히 모르고,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도 잘 모른다.

    그동안 루크에게 상처가 될까봐 굳이 묻지 않고 넘어가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가족이 아닌가?

     

    원래 가족이란 고통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극복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루크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루크, 숨기지 말고 말해줘. 언니도 이젠 루크에 대해서 알고 싶어.”

    “아…….”

     

    루크는 결연한 표정의 예르나를 바라보며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설명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린세이아, 신성력, 여신, 그리고 자신의 기원은 모두 역사에서 잊혀져야 하는 페이지.

    이것은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마법사회의 발전 기반에 대한 이야기다.

     

    여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거기서 신앙심은 피어난다.

    하나 둘 씩 신의 힘을 빌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신앙심은 점차 몸집을 불려 퍼져나가겠지.

     

    그 영향은 여신의 파편, 즉 ‘신앙심’ 그 자체를 봉인한 이 몸에도 일어날 것이다.

    그 때는 인간의 서클인 자신이 비대해진 여신을 억누를 수 없겠지.

     

    그것은 여신의 부활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과거 신화시대로의 회귀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발전도 없고, 변화도 없는. 신이 원하는 죽은 사회로.

     

    “…….”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예르나의 입이 싸다는 것은 아니지만,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안전한 법이니까.

     

     

     

    그런 루크의 모습을 보던 예르나는 허탈하고 실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아, 알겠어. 또 말해주지 않겠다는 거구나. 결국 언니는 루크에게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네. 이제는 가족인데도.”

    “네? 아니, 그렇게까지는…….”

     

    루크는 갑작스런 예르나의 반응에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니?

     

    “아냐, 너도 말하기 힘든 게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얼마든지 루크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언니는 아직도 너한테 그만한 믿음을 주지 못한 거야?”

    “아, 아니. 그러니까…….”

     

    루크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아마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입을 다물었겠지만, 정령어 덕분에 목소리에서 사람의 감정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게 된 루크는 예르나의 감정이 현재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최고로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예르나가 크게 실망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실망만 하면 다행일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이전과 같은 관계가 어긋날 것 같다는 판단마저 든다.

    루크는 조금 다급하게 외쳤다.

     

     

    “그, 그……! 말, 말할게요!”

     

    —–

     

    예르나는 회복된 오른팔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어딜 보아도 정말 깔끔할 정도로 화상이 순식간에 나았다.

     

    현대 마법기술로도 회복이 어렵다는 그 화상이 말이다.

     

    “와아……. 정말 말끔히 나았어.”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 예르나를 바라보며 루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직접 만든 연고를 써서 회복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이 힘’ 때문에, 몸이 커버린 거에요. 아까도 보셨지만…….”

     

    신성력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면서 설명하기에는 이 방법 뿐이었다.

    ‘직접 현상을 보여주기.’

    많은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으며, 굳이 많은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상의 원리보다는 눈앞의 결과에 더 집중하니까.

     

    ‘어떻게 했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렇구나……. 이 힘 때문에……”

     

    “네에…….”

     

    루크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성장해버린 자신의 몸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예르나의 몸에 새겨진 피해는 꽤 오래된 상처인데다, 영웅적인 직업정신을 지닌 숲지기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보다 가치가 훨씬 더 높았다.

    그 중에서도 특출난 예르나 개인의 가치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었기에 예르나를 회복시키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신성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고작 오른팔의 화상을 고쳤을 뿐인데도 몸이 조금 더 성장해버렸다.

     

    “…….”

    대체 이 몸은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완전히 성인의 모습이 되고 나서도 신성력을 더 쓰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해지지만, 굳이 실험을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 몸을 차지한 여신의 비중을 더 늘려봤자 자신에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이 힘은 ‘저 만’쓸 수 있어요. 다른 누구도 사용할 수 없죠. 이게 알려지면 저는 아마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거고요.”

     

    그리고 루크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이 힘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며, 알릴 수 없는 유형의 것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그리고, 타인이 신성력에 대해 알게 되어 신앙심이 생기게 된다면 자신의 몸에 잠든 여신의 파편을 누를 수 없게 되니, 서클인 자신이 죽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난처한 상황이네.”

     

    그 설명에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루크가 실험체 키메라가 된 이유는 저 ‘힘’때문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서 루크의 신체에 그토록 공을 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루크는 저 힘을 제어하기 위해 실험을 당했던 거였을지도.

     

    이제 루크의 말도 이해가 간다.

    저 힘이 들키면 확실히 위험해지긴 했으리라.

     

    딜런트는 죽었지만 여전히 ‘루크의 과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단체나 시설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드래곤하트와 마수를 사용해 키메라 실험을 하고 그 결과인 루크를 감금할 수 있는 시설의 전력에 대한 것조차 아무것도 모른다.

     

    꽤 무서운 예측이지만, 아마도 루크를 만든 것은 한 나라에 비견할 정도로 강력한 단체일 수 있다.

     

    그러니 루크에게는 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 분명하다.

     

     

    “제발, 이 힘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루크의 목소리에서는 어쩐지 물기가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사실 그저 이 육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명상중에 졸아서 이런 상황에 놓여버린 자신에 대한 자괴감탓이었지만, 예르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예르나는 그런 루크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마, 이 얘기는 내가 반드시 무덤까지 가져갈게.”

    “네, 감사해요.”

     

    루크는 눈물을 닦으며 싱긋 웃었다.

    이렇게 보니 몸이 컸어도 여전히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어때, 그래도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지?”

    “네. 정말 그러네요.”

     

    확실히, 비밀을 일부나마 털어놓는 것은 꽤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레니에도 이 감각에 중독되어서 항상 자신의 앞에서는 입이 그토록 가벼워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자신은 딱히 왕성에 가지 않고도 대신들의 버릇과 안 좋은 습관들을 전부 꿰고 있었으니까.

     

    루크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보이자, 예르나는 의자에 앉은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루크가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평소보다 손의 높이가 높아서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머릿결은 여전히 부드러워서 감촉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목욕가운만 걸치고 있는 거니? 방금 목욕하고 나왔어?”

    “그게. 집에는 제 몸에 맞는 옷이 하나도 없어서요.”

    “아…….”

     

    예르나는 잠시 루크의 몸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고양이(Cat)니까 C컵인가? 드래곤(Dragon)이니까 D컵인가? 아니면…. 여신(Goddess)이니까 G컵인가?

    으음… 이제 그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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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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