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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사막 횡단로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알라모는 지나가던 상인들이 잠시 목을 축이고 가는 흔한 동네 중 하나였다. 그런데 15년 전, 은퇴한 늙은 곡예사가 이곳에 서커스 학교라는 것을 설립한 뒤로 이곳은 여행객들에게 한 번 들리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었다.

         

       학교의 운영자인 통칭 ‘사부님’은 사고로 얼굴이 크게 망가져 항상 가면을 쓰고 다녔다. 그러나 그 실력은 생전 제대로 된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다고 느낄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서커스 학교로 받아들여 재주를 가르쳤다.

         

       “저희 3인의 차력사가 선보이는 힘자랑! 5분 뒤에 시작합니다!”

       “제가 우선 간단한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자!”

         

       빡빡머리 소년이 단단해 보이는 돌을 손에 쥐더니 그대로 자기의 이마에 갖다 박았다.

         

       구경하던 상인들이 헉 소리를 냈으나, 곧 반으로 쩍 갈라진 돌을 보더니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소년은 쪼개진 돌을 들어 보이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저희 쇼를 보러 오세요!”

       “절대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산을 뽑아 던져 보이겠습니다!”

         

       기개 하나만은 세상을 엎어 보일 만한 소년들이었다.

       상인들은 그 쇼맨십에 크게 감명받은 듯 박수를 쳤다.

         

       “애들치고 제법이야.”

       “괜찮은데! 이거나 보고 갈까.”

       “아침에 봤는데 저기 줄타기하는 애들도 굉장하더라고.”

       “나는 통 굴리는 애들 구경하러 가야지.”

         

       서커스 학교의 아이들은 마을을 들르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은 잠자리와 아침과 저녁 2끼의 식사, 그리고 곡예를 연습할 공간뿐이었다. 나머지는 제각기 갈고닦은 재주로 용돈을 벌어 채워야 했다.

         

       워낙 다재다능한 사부님 덕분에, 학생들은 각자의 적성에 맞는 재주를 골라 익힐 수 있었다.

         

       힘자랑.

       땅재주.

       줄타기.

       길들이기.

       쏴.

         

       흔히 ‘전통의 다섯 마당’이라 불리는 서커스의 다섯 가지 기초 곡예.

       모든 것에 능통한 사부님이었지만, 사정상 이곳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길들이기였다. 다른 재주야 사부님이 직접 망치와 못을 들고 뚝딱거려 훈련 도구를 만들면 됐지만, 길들이기만은 그럴 수 없었다.

       코끼리, 사자, 말 등.

       서커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동물들은 먹이는 데만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있는 아이들 건사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동물들까지 먹여 살릴 돈은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길들이기를 주력으로 익힌 아이는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맹수조련사 엘라의 동물 쇼가 3분 뒤 시작합니다!”

         

       소녀의 기운찬 목소리에 지나가던 여행자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 놓인 두 동물을 확인하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가던 길을 가버렸다.

         

       -비둘기랑 쥐라니…….

       -최소 독수리는 가져다 둬야지…….

         

       종종 다른 동물은 없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소녀는 이 둘이 전부라고 답할 뿐이었다.

         

       “엘라. 오늘도 허탕인가 보네.”

       “또 점심 식사는 건너뛰는 거냐? 킥킥.”

       “그러니까 키가 안 크지, 꼬맹이 엘라.”

         

       그런 그녀를 지나가면서 놀리고 가는 친구들.

       엘라는 불퉁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안 도와줄 거면 꺼져.”

       “쯧, 다른 재주도 잘하는 애가 왜 자꾸 길들이기를 고집하는지.”

         

       아이들은 혀를 차며 떠나갔다.

         

       엘라는 심술이 잔뜩 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라고 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자신이라도 주변에 다른 서커스를 놔두고, 쥐나 비둘기 한 마리씩 두고 하는 동물 쇼를 보지는 않을 테니까.

         

       정말 다른 재주로 갈아타야 하나. 하지만 나는 꼭 길들이기를 하고 싶은데.

       어디 돈 많은 서커스단에서 영입 제의라도 들어오면 좋겠다.

         

       그렇게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그때, 그녀를 향해 말을 거는 목소리가 있었다.

         

       “3분 지났는데요.”

         

       응?

       고개를 든 엘라의 앞에는 큰 키의 신사 한 명이 서 있었다.

         

       한여름의 네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에다 잘생긴 얼굴에 새하얀 피부, 눈부신 금발. 지나가는 것만으로 주변의 시선을 확 끄는 미남자였다.

       그는 엘라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물 쇼. 안 하나요?”

       “어……마, 막 하려고 했어요…….”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유일한 관객에게 인사를 한 후, 준비한 쇼를 시작했다.

         

       그녀가 선보인 것은 비둘기와 쥐의 특성을 잘 활용한 여러 가지 재주였다. 화려한 맛은 없었지만, 적절한 호흡과 맺고 끊기 덕분에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지루해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밤새 대본을 고치고, 아이들과 훈련을 거듭해가며 준비한 것이었다.

       기대, 충족, 의외성. 공연의 3대 포인트를 전부 잘 활용한 짜임새 좋은 공연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공연을 마칩니다!”

         

       엘라, 구돌이, 찍순이가 마치 한 몸처럼 허리를 숙이며 무대 인사를 했다.

       남자는 크게 감명받은 듯 감탄사를 섞어가며 박수를 쳤다.

         

       “정말 멋진데요? 이걸 다 혼자 준비한 거예요?”

       “음, 네……헤헤.”

         

       처음으로 관객에게 받은 칭찬이었다.

       대본이나 연기, 구성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부님과 친구들은 그녀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쇼의 화려함과 자극만 즐길 줄 아는 관객들은 그녀의 쇼를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쇼를 인정해준 것이다.

       서커스를 보는 안목이 있는 이임이 틀림없었다.

         

       “혹시 손님도 서커스 관계자세요?”

         

       엘라의 질문에 남자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후후, 서커스단을 꾸리려고 준비 중인 마술사입니다.”

       “마술사…….”

         

       과연.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이 맞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아, 뭔가 떠올리려 애쓸 필요는 없어요. 특별히 쌓은 명성은 없으니까요.”

         

       엘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렇게 된 거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네? 아니, 그, 사부님이 곡예사로 살 거면, 절대 밥을 얻어먹지 말랬는데…….”

       “후훗, 훌륭한 사부님이군요. 근데 이건 얻어먹는 게 아닙니다. 제가 엘라 양의 공연을 봤지 않습니까. 관람료를 내야죠.”

         

       원더스타인은 그 미소만큼이나 씀씀이 역시 넉넉한 남자였다.

       그는 엘라를 데리고 알라모에서 제일 좋은 식당으로 갔다.

         

       둘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말을 하는 쪽은 주로 엘라였다.

       그녀는 어떻게 서커스 학교에 있게 됐고, 어떻게 자랐는지 털어놓았다. 원더스타인은 간간이 맞장구를 쳐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둘은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했고,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수도 마셨다.

       엘라로서 사부님을 제외한 남자 어른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에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서커스 학교의 친구들과는 다른 느낌의 가족 같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갈 무렵.

       원더스타인이 떠날 시간이 왔다.

         

       “저보고 서커스단에 들어와 달라고요?”

         

       그가 떠나기 전에 건넨 제안에 큰 소리로 반문했지만, 엘라는 사실 그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핏 느꼈으니까.

         

       “네. 엘라 양이 함께해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하, 하지만 저는 그냥 별거 없는 조련사일 뿐인데…….”

       “그거 괜찮군요. 저도 그냥 별거 없는 마술사일 뿐인데요. 제 서커스단도 아직 단원은 저 한 명밖에 없고요.”

         

       이미 여기까지 왔을 때, 엘라는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한 뒤였다.

       아니면 이렇게 오후 늦게까지 계속 따라다닐 리가 없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친절하고 믿음직스럽고, 서커스에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부님이 반대할 수 있어요. 사부님은 항상 우리를 최소 2군 이상 되는 서커스단에 넣어주려고 하셨어요. 신생 서커스단이라면 반대하실지도…….”

         

       그의 말에 원더스타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노을빛에 의한 착각이었을까?

       그는 한결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설득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아마, 저랑 둘이서 대화를 나눈다면……사부님도 납득갈 겁니다.”

         

       원더스타인이 악수를 건냈다.

       엘라는 두 손으로 꼭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럼 볼일을 보고 오겠습니다. 몇 주 뒤에 봅시다, 엘라 양.”

       “네. 원더스타인 씨……가 아니라, 단장님! 살펴 가세요! 꼭 오셔야 해요! 꼭이요!”

         

       엘라는 그를 향해 마구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작은 함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이것 보라지. 언젠가는 알아줄 사람이 나타난다니까. 헤헷, 찰리 녀석 이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겠지?”

         

       엘라는 어제 그가 했던 제안을 떠올리며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1년 동안 어디에도 못 갈 거라 여겼단 말이지? 흥.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그와 함께 서커스단을 시작하는 거라면, 창립 파트너가 되는 건가? 히힛, 15살짜리한테 설마 그래도 부단장을 맡겨주지는 않겠지?

         

       그러나 들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사부님의 엄한 눈빛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해도 정작 그 노인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힘들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 있다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이런 영입 제의는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그들의 제안을 모두 퇴짜놓았다. 그중에는 제법 이름 있는 곳도 있었고, 다른 졸업생이 들어가서 이미 일하고 있는 곳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사부님이 과연 이제 막 창립한 1인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걸 허락해 줄지 의문이었다.

         

       “진짜 이번에 허락 안 해주면 야반도주라도 해야지.”

         

       이런 소리도 대뜸 꺼낼 정도로 그녀는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서커스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고, 가볍게 선보인 재주도 놀라웠다. 거기다 잘생긴 얼굴도…….

         

       그 대목에서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엘라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 그러니까 잘 생기면 사람들 이목을 끌기 좋으니까 유리하다는 말이라고.

       그건 그렇고 솔직히 예명은 좀 구닥다리긴 해. ‘원더’스타인이 뭐야, 원더스타인이.

         

       한때 이름에 원더를 붙이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원더보이니, 원더 매지션이니, 마스터 원더니. 키르쿠스의 천국인 원더랜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었지만, 그것도 너무 지나치게 많아져서 그 이름을 쓰는 것만으로 한물간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요즘 분위기였다.

         

       “원더를 빼면……프랑크……스타인? 잠깐, 남성형 단어를 연결하려면 앞 글자에 어미로 en을 붙이던가? 아니, 사람 이름이면 안 붙이던가? 성씨에는 붙이던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그녀는 학교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을 중앙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가로로 기다란 형태의 2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그 입구에는 <윌리의 서커스 학교>라는 낡은 나무푯말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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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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