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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혹세무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

         

       그렇다면 묻는다.

         

       고대로부터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존재해온바.

         

       그들은 무엇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무엇으로 무지한 자들을 현혹하는가?

         

         

         

        * * *

         

         

         

       서울의 밤은 환하게 빛을 낸다.

         

       하늘의 별을 볼 수 없게 된 대신 인간은 땅에 별을 켤 수 있게 되었고, 하늘의 뜻에 움직이지 않게 되는 대신 땅의 별에 종속된 채 밤낮의 구별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서울의 건물은 자신이 땅의 별이라는 듯 환하게 빛을 발했고, 그 빛나는 별 속에서 수많은 이들은 초췌해진 얼굴로 계속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일.

       일.

       일.

         

       아, 축복받은 야근이여.

       ‘자발적인’ 야근의 즐거움이여!

       애사정신(愛社精神)을 갖고 행하는 일의 행복함이여!

         

       “파파, 파파라치- 파파라치.”

         

       남자 역시 이 엿 같을 정도로 ‘축복받은’ 야근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야근한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자조 섞인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으며, 그의 눈은 타우린과 카페인을 한계까지 주입하며 버틴 덕분에 토끼의 눈처럼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발. 엿 같은, 씨발.”

         

       게다가 그를 더 엿 같게 만드는 것은 이게 정상적인 야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했었다.

       계속되는 야근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서 게임 몇 판 하고 잘 생각에 싱글벙글 웃고 있었던 것이 바로 30분, 고작 30분 전이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전화가 걸려 오는 게 아닌가.

         

       『 야, 사건 터졌다! 이거 진짜 미안한데, 기사 하나만 빠르게 써주면 안 되겠냐? 뭐? 퇴근? 야, 기자들한테 퇴근이 어디 있어. 』

       『 야근 계속하던 거는 아는데, 어쩔 수 없잖냐. 특종 터지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스탠바이 하는 게 기자의 자세 아니겠냐? 응? 너도 기자 생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까 알 거 아니냐? 이게 바로 기자 정신이라는 거다 기자 정신. 』

       『 야 그래도 선배 좋다는 게 뭐냐? 내가 다른 놈한테 연락 안 하고 너한테 연락해줬다 인마. 솔직히 특종 정도는 아니기는 한데 이 정도면 가벼운 것은 아니거든. 너한테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이야. 이게 후배 사랑 나라 사랑 아니겠냐? 』

       『 근데 제보받은 거랑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들이 좀 중구난방이거든? 근데 이거 빨리 터뜨려야 할 것 같은데 네가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

       『 야 그래도 별거 아니야. 내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너한테 연락이나 했겠냐? 응? 네 능력이면 충~분히 이거 할 수 있어. 이게 다 너를 믿고 있으니까 이런 거 물어다 주는 거 아니겠냐? 캬, 이게 선배의 하늘 같은 은혜라는 거다. 』

       『 어, 그래. 그리고 뭐 굳이 다시 돌아올 필요는 없고. 내가 메일로 자료 보낼 테니까 근처 카페든 집이든…. 아니다. 거 기사 쓰는데 시원하게 카페인 하나 쭉 빨고 하면 좋지 않겠냐? 내가 커피 기프티콘 하나 줄 테니까 거기 가서 시원하게 커피 하나 빨면서 기사 쓰면 되겠네! 어, 수고 좀 하고. 어. 』

       『 아, 그렇지. 그리고 선배 후배 사이가 좋은 게 뭐냐. 정보는 공유하고 자료도 공유하면서 어, 사이 돈독하게 하고 말이야. 응? 지금처럼 선배가 후배한테 좋은 건수 물어다 주고, 후배는 선배한테 좋은 자료도 건네고 막 그러는 거 아니겠냐? 』

       『 자료 정리 어느 정도 끝나면 그거 나한테도 좀 보내줘. 어, 내가 원래 이런 부탁은 잘 안 하는데 말이야 내가 지금 바빠서 일을 여러 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단 말이야.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멀티 태스킹이 잘 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거 뭐냐, 알지? 』

       『 이 선배는 기특한 후배가 자료를 잘 정리해서 줄 거라고 믿는다. 파이팅! 아, 이만 끊는다. 』

         

       “선배….”

         

       남자는 30분 전 ‘선배’라는 개자식과 통화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같이 들어온 얼음을 있는 힘껏 씹어대었고, 얼음과 함께 ‘하늘 같으신’ 선배 역시 같이 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씹고 씹어도 스트레스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고작 그 정도로 풀릴 분노가 아니었으니까.

         

       “이 개새끼 알짜배기는 지가 다 처먹고 효율 개 엿 같은 것만 나에게 짬을 때려버리고….”

         

       ‘선배’라는 작자가 그에게 넘긴 것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건이었으니까.

         

       선배라는 놈이 특종은 아니지만 만만찮게 커다란 건이라고 포장한 것은 계륵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일단 파급 효과는 작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일어날 것으로 보이니, 얼핏 보면 나쁘지 않게 보인다.

         

       그래.

       얼핏 보면 말이다.

         

       중구난방인데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심지어 온갖 허위 제보가 섞인 자료들을 뒤지고, 교차 검증을 하고, 발로 뛰고, 전화를 걸고, 인맥을 총동원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온갖 기름칠을 해두며 친해진 연예인들에게 연락해서 귀찮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선배라는 작자는 이 엿 같은 자료 정리를 자신에게 짬을 때렸으면서 그것을 또 날름 처먹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멀티 태스킹이 안 돼? 이 저주로 죽여버릴 새끼 같으니….”

         

       그 자료를 어디다 쓸지는 뻔하다.

       그가 받은 자료를 토대로 ‘심층적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그 기사를 토대로 더 큰 건을 다루려고 하는 거겠지. 게다가 그에게 풀지 않은 중요한 정보를 이용해 인맥을 다지려고 한다거나, 당사자에게 연락해서 거래를 통해 빚을 지워준다던가, 다른 기자들과 정보를 교환하려고 한다거나….

         

       한마디로 재주는 그가 부리고, 알맹이는 선배가 모조리 처먹는 양아치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일하는 곳도 카페다.

       사옥이 아닌, 카페.

         

       그 말은 뭐냐?

         

       지금 남자는 일이 너무너무 좋아서,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돈도 받지 않고 야근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추가 근무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바로 기프티콘.

         

       선배가 보낸 ‘커피’는 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제일 싼 거.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남자는 온몸에 엄습해오는 엿 같음에 치를 떨며 열심히 자료를 정리하고 기사를 썼다.

         

       엿 같은 건 엿 같은 거고, 어쨌든, 일은 해야 했으니까.

         

       선배라는 작자가 힘이라도 없다면 들이박는 것을 고려라도 해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배는 연예부의 고참인데다가 정치부와 사회부에 끈끈한 인맥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좌천된 그가 다시 사회부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동아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사고만 안 쳤다면 이딴 곳에서 고생하는 게 아니라 성골, 적자 소리 들으면서 대접받으면서 살았을 텐데. 제기랄.’

         

       남자는 공채 출신의 ‘적자’였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사회부로 배속되었을, 찬란히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던 적자(嫡子).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습 당시 대형 사고 하나를 저질렀고, 그 덕분에 그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서자 취급받는 연예부 소속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 연예부에서마저 대형 사고를 친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일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그가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 서서히 일이 들어오고 취재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녹아드는 것에 성공하기는 했다.

         

       그래.

       어느 정도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남자는 다른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 끼지 못한 채 겉돌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공유하는 정보조차 제대로 공유받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엿 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대형 사고를 치고 왔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 시작이 나쁘다고 한들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빌어먹을. 내가 이렇게 취급받을 사람이 아닌데!’

         

       그가 어떤 사람인가.

       공채 출신이다.

       말도 안 되는 난이도 때문에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그 마의 시험을 통과하고 당당하게 입사한 공채 출신의 기자였단 말이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이렇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언론고시도 없이 편하게 입사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트였으며, 엘리트로서 다른 사람과 엄격히 구분되어야만 했다.

       아니,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물론이고 존중받아 마땅했다.

         

       그의 빛나는 지성은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현실은?

       이게 뭐란 말인가.

         

       이름만 선배지 양아치나 다름없는 놈한테 빌빌 기면서 잔업이나 하고 있고, 특종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자신의 찬란한 재능을 썩히고만 있다. 게다가 다른 기자 연놈들은 빛나는 지성을 가진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할망정 질투나 해서 배척하고 있고, 심지어 친분조차 제대로 쌓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새파랗게 어린 년들도 나를 무시하고 말이야.’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신입이랍시고 들어온 여기자들은 그를 무슨 위험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슬슬 피하기까지 한다.

         

       그저 선배로서의 조언과 선후배 사이에서 좀 친근해지기 위해서 스킨십을 조금 했을 뿐인데 말이다.

         

       게다가 술을 좀 권했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까지 한다.

         

       기자는 술과 친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고, 신입 때부터 술에 익숙해지게 하려고 강권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예쁜 녀석들에게 중점적으로 그러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사람인데 당연히 예쁜 기자들과 더 친밀해지고, 친밀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그래.

       그는 죄가 없었다.

         

       적어도 남자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제기랄. 이 빌어먹을 연예부, 내가 특종 하나 잡아서 이 빌어먹을 곳을 떠나고 말 테다.’

         

       나는 이런 곳에서 썩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더 높은 곳에 날아가서 성공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의 재능을 이곳에서 썩힐 수는 없다.

       나에게는 더욱 더 잘 어울리는 빛나는 장소가 있다.

         

       남자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열심히 자료 정리를 했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료 정리와 기사 작성했고, 그것이 끝나자 짜증이 가득 서린 얼굴로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서 카페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야말로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쉴 생각이었다.

         

       그는 오직 집에서의 휴식만을 생각하면서 인적이 드문 음산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었다.

         

       음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가로등도 고장 나 있어 평소라면 이곳을 가로지를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남자는 그 무엇보다도 휴식이 간절했다.

         

       휴식을 갈망하는 마음이 공포마저 이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그 간절한 마음을 배반이라도 하듯,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젊은이.”

         

       꺼져버린 가로등 아래에 있는 사람의 그림자.

         

       그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쇠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말했다.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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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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