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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 ***

         

       “정렬! 정렬하라!”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집중이 깨졌다. 적귀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앞으로-갓!”

         

       착! 착! 착! 착!

         

       같은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적지 않은 병력이 빠져나간 것을 보니 강추모루가 암룡문주를 만나기 위해 암룡문으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후아아으아아으으아음.”

         

       나는 [경운심법]이 적힌 비급서를 덮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상허산에서 경운무심공을 얻은 이래로 틈틈이 비급서를 읽고는 있었지만 아직 경운심법을 수련한 적은 없었다.

         

       이설의 수하 노릇을 하는 동안은 새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 떠돌이 무인이라는 자가 고절한 무공들을 새로 익힌다? 너무 수상하잖아.

         

       이번 일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새 무공들을 익혀야 하니 미리미리 예습을 하는 셈이었다.

         

       그런 의미로 비급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무공이라는 것은 본래 몸으로 익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무공서만 읽는다고 무공을 이해하는 것은 그런 특성을 보유한 극소수의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천재 하니까 사라가 생각나네. 사라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만약 사라가 이별의 아픔을 잘 떨쳐냈다면 지금쯤 무시무시한 속도로 포달랍궁의 무공을 흡수하고 있겠지.

         

       빙공의 속성을 지닌 밀종대수인이라.

         

       거대한 얼음손바닥이 사방을 점유하며 냉기를 흩뿌리는 모습을 상상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 안에 갇혀 있으려니 심심해 죽겠군. 뭐…강추모루가 독고영천을 만나러 갔으니 이제 구금 생활도 곧 끝나겠지만 그래도 심심한 건 심심한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웬 놈…! 컥!”

         

       “억!”

         

       내 방에서 나를 밀착 경호하던 적귀대원 두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지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더니.

         

       이설이 적귀대원을 조용히 눕히고 있었다.

         

       “아니, 이설 님?”

         

       나는 정말로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아무리 강추모루가 적지 않은 수의 적귀대원을 이끌고 암룡문으로 향했을 지라도 지금 이 상화루에 깔려 있는 적귀대원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이 엄중한 경계를 어찌…?”

         

       “금명월 소저의 협조를 받았다.”

         

       이설의 대답에 숨이 턱 막혔다. 혁기린이 협조했다고…? 아니 이건 혁기린이 협조해서 될 수준이 아니었다. 현재 혁기린이 황녀라는 것은 알고 있는 건 오직 강추모루 뿐이니 혁기린 혼자서는 적귀대의 감시망을 무력화 할 수 없다.

         

       혁기린의 말을 들은 강추모루가 일부러 이설이 침입할 수 있도록 경계망을 풀어 줬다 봐야겠지.

         

       아니 이런 일을 벌였으면 언질이라도 줘야지!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고 이설은 그런 나를 타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어찌 수습하시려고 이런…”

         

       반사적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자니 이설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왜? 왜 이런 일을 꾸몄느냐? 네가 희생하면 내가 하하호호 웃으며 살아갈 것이라 여겼더냐? 네가 아는 이설이라는 여자는 그런 사람이었더냐?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냐?”

         

       결코 과하지 않은 은은한 사향냄새가 내 코를 간질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설이 나에게 원망을 토해냈다.

         

       “내 못난 주군인 것은 안다. 너는 늘 완벽하고 고고했으며 유능했지만 나는 그런 너에게 아무것도 베풀어주지 못했지. 그러나…그래도 나는 너의 주군이란 말이다. 내가 미덥지 않을지언정 어찌 이리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느냐!”

         

       이설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내 앞섶을 쥐고 감정을 토해냈다.

         

       “내가 소문주가 되기로 한 이유를 아느냐? 그건 신참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요란처럼 너에게 비급이고, 영약이고, 당주의 직위를 주겠노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 네가 내 주군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이설 님.”

         

       “내가 죄를 짊어지겠다.”

         

       이설은 이미 모든 각오를 끝마쳤다는 듯이 굳은 눈빛을 발하며 그렇게 말했다.

         

       “역적이라는 살벌한 말이 오고 갔지만 결국 황국에서도 한발 물러섰더구나. 그래. 옥계의 사태를 역모로 몰면 적어도 수백의 무인의 목을 베어야 하니 아무리 황국이라도 부담스럽겠지. 그러니 죄를 시인해도 몇개월만 옥살이를 하면 그만이다.”

         

       “…그것은 그들이 주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의 시발점인 저는 중형이 선고되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이설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몸이 부딪힐 것 같았기에 나는 한발 물러섰으나 이설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그러나 나도 이제는 너를 안다. 너라면, 지금 이 순간을 타계할 수 있는 수를 짜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과대평가이십니다.”

         

       벽의 끝까지 몰렸다. 벽 끝까지 몰아넣은 이설은 나를 향해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싫은 것이냐? 내가 이리 너와 함께하는 것을 애타게 바라거늘 어째서 너는 나를 거부하는 것이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용지맹’을 향한 이설의 절절한 마음에 그저 그렇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싹퉁바가지 내기살인마 잔머리대마왕 용지맹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설이 용지맹을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지맹은 그저 가상의 인물이었다.

         

       있지도 않은 일휘문에서 수학하고, 금명월이라는 가짜 사제를 둔, 호천안이라는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 만든 허상에 불과했다.

         

       “제발 부탁이다. 나와 함께하자꾸나. 용지맹…”

         

       툭 하고, 이설의 고개가 내 심장에 떨구어졌다. 이설의 이마가 내 심장에 닿고 그 파문은 내 마음속으로 번져나갔다.

         

       “저는….이설 님과 함께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앞으로 내가 할 말은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마음을 전해오는 사람에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저는 이설님을 이용하려 접근했습니다. 아니 그저 우연히 만난 이설 님을 보고 이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군요.”

         

       “…속령파의 일을 위해서 말이냐?”

         

       “맞습니다.”

         

       이설의 손이 내 등을 휘감았다.

         

       “정말 나를 바보로 알았더냐? 그런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허나 그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이냐. 나 역시 신입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너를 해코지하려 너를 불렀거늘…”

         

       이설의 팔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딸려온 이설의 상체가 내 몸에 닿았고 이설의 얼굴이 내 어깨에 올려졌다.

         

       나긋나긋한 이설의 신체가 느껴졌다. 은은한 사향과 함께 올라오는 이설의 체취도 내 코를 간질였다.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이설의 길고 흰 목덜미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와 함께 하자. 용지맹. 그 모든 것을 잊고 너를 사랑하겠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설 님.”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내 손으로 정철을 꺾겠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장에도 다녀왔으며 이렇게 암룡문에 잠입하기도 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나는 살포시 이설을 떼어내고 눈을 마주쳤다.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순간만큼은 용지맹이 아니라 오롯이 호천안으로서 이설을 바라보았다.

         

       주르륵.

         

       한참을 내 눈을 들여다보던 이설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무심한 사내구나…참으로 무심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설이 내 멱살을 쥐었다. 파르르 떨리는 주먹의 움직임에 한 대 맞을 각오까지 하던 순간이었다.

         

       이설이 내 상체를 거칠게 당겼다. 순식간에 이설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감촉이 지나가고 그 위로 이설의 뺨에서 흐른 눈물이 맞닿은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긴 시간이었는지 짧은 시간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스쳐 지나가고 이설은 입술을 떼며 물러섰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본 이설은 그저 말없이 몸을 돌려 사라졌다.

         

       “하아.”

         

       나는 이설이 떠난 빈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설은 용지맹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을까. 용지맹과의 이별을 납득하고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설의 입술이 남긴 달콤함과 이설의 눈물이 남긴 짠맛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뒷맛은 쓰디쓴 맛이었다.

         

       “후우…”

         

       착! 착! 착! 착!

         

       바깥에서 적귀대원들이 귀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추모루가 독고영천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내가 부린 마지막 계책이 끝났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나는 혀끝에 남은 씁쓸함을 되새겼다. 혀 끝에 남은 씁쓸함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이로서 용지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설과의 인연도 나름대로의 결말을 맞이했다.

         

       “끝이군.”

         

       호천안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 ***

         

       “놔라! 이 녀석들! 본녀가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흑패 독고영천의 장녀! 독고요란이다!”

         

       “무언가 오해가 있소! 아버님께서 내 계책을 받아들여주었단 말이오! 내가 바로 암룡문의 후계자란 말이다!”

         

       “내 얼굴을 모조리 기억했다! 지금이라도 날 풀어준다면 없던 일로 할 수 있으니..!”

         

       강추모루가 잡혀온 독고영천의 자식들을 바라보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죄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이송을 시작해라!”

         

       “악!”

         

       “나머지 인원들은 철수를 준비해라!”

         

       “악!”

         

       삭응은 일사불란하게 철수 준비를 하는 적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적귀대원들이 별채 앞에서 버티고 있는 삭응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삭응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상화루 본채의 전각이 소란스러워졌다. 삭응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용지맹.”

         

       수많은 적귀대원들에게 포위된 채 나타난 호천안 때문이었다.

         

       호천안과 삭응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삭응은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용지맹과 함께한 시간은 극히 짧았으나 용지맹이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컸다.

         

       그리고 그 변화는 모두 이설을 위한 것이었으니 삭응은 마지막으로 용지맹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삭응은 허리를 숙이며 길게 포권을 해 보였다.

         

       용지맹은 그런 삭응은 모습을 바라보고는 적귀대의 채근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라지는 용지맹의 뒷모습을 보며 삭응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싸가지 없는 자식.”

         

       마지막 가는 길에 고개라도 한 번 끄덕여 줄 것이지 하여간 정이 안 가요. 그렇게 생각하며 삭응은 기루의 별채로 들어갔다.

         

       신입들은 우중충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삭응은 쓴웃음을 지었다. 독고영천의 나머지 자식들이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이설이 소문주 자리에 오르게 될 일이었다. 당연히 신입들 정도는 암룡문도로 받아줄 힘이 생긴다.

         

       신입들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다. 그런데도 신입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용지맹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잡혀간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를 대로 구른 사파 무인답지 않은 순진함이라고 생각했으나…이내 삭응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이겠지.’

         

       구를 대로 구른 사파 무인들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해 준 경험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삭응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이군.’

         

       그렇다면 사실 용지맹은 협객이 아니었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삭응은 2층으로 올라갔다.

         

       “주군, 삭응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삭응은 이설의 방문을 열려 했지만 이내 두터운 손에게 제지당했다. 굳은 얼굴로 이설의 문 앞을 지키고있던 창웅의 손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이설의 방문앞을 지키고 있던 창웅이 고개를 저었지만 삭응은 손을 들어 창웅의 손을 내렸다.

         

       “허어…자네.”

         

       “괜찮네.”

         

       창웅이 어쩔 수 없이 비켜서고 삭응은 이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설의 방에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바닥에는 수많은 병들이 굴러다녔다. 삭응이 들어왔음에도 이설은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저 술을 삼켰다.

         

       마치 술을 삼켜야만 마음의 상처가 소독되리라 믿는 사람의 몸부림 같았다.

         

       ‘용지맹 개새끼.’

         

       그 모습을 보며 삭응은 다시 한번 용지맹을 욕했다. 협객은 개뿔. 그놈은 똥을 퍼 먹여야 했다.

         

       머리는 산발이고 화장은 번졌으며 입가에는 술이 흐른 흔적이 역력한 이설.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모습임에도 이설은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움에 반해 수하를 자처했다. 사실 이설의 수하들의 대부분은 다 이설의 미모에 홀려 수하가 되었다.

         

       지금이야 이설의 ‘외모’가 아닌 이설이라는 그 사람 자체에게 반해버렸지만 말이다.

         

       ‘이런 주군의 어디가 부족하다고 마음에 상처를 남겨!’

         

       속으로 용지맹에게 욕을 퍼부은 삭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그 개자식이 남긴 서신의 지령을 이행하기 위해 이설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삭응의 입이 열렸다.

         

       *** ***

         

       독고영천은 자식들을 떠올렸다. 네 자식들은 각기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두는 결단력이 부족했고, 요란은 인내심이 부족했으며, 대막은 담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독고영천이 본 이설은 욕망이 부족했다.

         

       원하는 것이 없으니 능력이 출중함에도 싸움을 피곤하게 여겼다.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투쟁을 기피했으니 점차 구석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영천은 네 자식중에서 이설이 가장 자질이 출중하다고 판단했지만 이설을 밀어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한들 결과를 만들어 낼 줄 모른다면 그 재능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기에 이설이 문파 바깥까지 밀려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속령파 일에서 돌연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독고영천은 이설이 공을 세우고 돌아왔을 때, 후계의 세력 구도 같은 것으로 이설의 공을 깎아내지 않고 말끔하게 후대했다. 물론 그 후의 이설의 반응을 보고 그 호의를 거절하고 반항심을 품었다 여겨 화를 냈지만…

         

       그때의 반응이 반항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설은 그 뒤로도 기가 막힌 수완을 보여주었으니까. 밑에 배속된 열 아홉 명의 수하들을 모두 살리고 적귀대의 수사는 자신이 직접 주워왔다는 외부인 한사람을 희생양으로 돌려 모든 피해를 막아냈다.

         

       그렇기에 이설을 불러냈다.

         

       정말로 이설이 변화했는가, 그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큭큭큭…”

         

       독고영천은 이설을 보자마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절실함.

         

       사무치고 사무친 절실함이 독기로 변해 흘러넘치고 있는 이설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권모술수에 약하던 이설이 언제 저런 귀계를 펼치는 법을 익혔으며, 싸움을 기피하던 성정이 어떤 일을 계기로 저렇게 변했을까.

         

       속령파를 둘러싼 귀계는 본인이 펼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그런 지낭을 얻었을까.

         

       그런 의문들이 독고영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나 다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독고이설은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냈고 독고영천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자신을 변화시켰다.

         

       그러니 이제는 인정해 줘야 할 시간이었다.

         

       “소문주 자리를 주마.”

         

       “아버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독고영천은 끌끌 웃었다. 아주 조금도 감사한 마음을 품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담으며 거리낌없이 고개를 숙이는 이설을 보며 이설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만 하거라. 그렇다면 언젠가 이 암룡파는 네 것이 될 터이니.”

         

       이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이설의 머릿속에서는 삭응이 해 준 말이 맴돌고 있었다.

         

       [강해지십시오. 주군.]

         

       그 말에 이설은 술을 마시던 행동을 멈추었다.

         

       [강한 자만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용지맹을 놓쳐 괴로우십니까? 그렇다면 이리 술을 마실 일이 아닙니다. 땀흘려 무공을 연마하고, 세력을 늘려야 하실 일입니다.]

         

       강한자만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그 말에 이설은 잔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잔 안에는 꼴사나운 패배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용지맹에게 연모한다고, 함께 하자고 그리 애원했는데도 차여버린 계집이 있었다.

         

       이설은 삭응의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강자가 되자.

         

       힘을 얻어서 용지맹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용지맹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가명이 분명할 용지맹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한 힘이 필요했고, 용지맹이 해야 할 일을 해결해 줄 힘이 필요했으며, 혹여나 도망쳐 나갈 용지맹을 구속할 힘 역시 필요했다.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이설은 소가주의 자리를 받아들였다.

         

       이설은 욱씬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소가주의 자리에 서서 다른 형제자매들의 세력을 와해하고 흡수해 강해질 것이다.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웃으며 권모술수를 펼치겠다. 종국에는 암룡파를 모두 집어삼키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이 운남을 집어삼키겠다.

         

       ‘용지맹, 나는 강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기필코 너를 되찾고 말겠어.

         

       이설은 그렇게 다짐했다.

         

       용지맹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호천안이 적귀대와 함께 곤명을 떠난 날.

         

       이설은 정식으로 암룡문의 소문주 자리에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용지맹 에피소드가 끝났군요.

    개인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수정을 많이 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썼다가 버린 텍스트만 모아도 용지맹 에피소드 두배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에피소드가 끝난 김에 호천안의 if 루트 플랜을 풀어볼까요.

    1. 만약 호천안이 우릉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호천안이 실행할 계획과 벌어질 일.

    당연히 이설과의 만남도 없었고 독고영천의 자식들 중 누군가의 휘하로 들어가 조용히 속계에 잠입했겠지요.
    그리고 본인의 활동 증거는 물론이고 속계에서 활동하는 다른 문파의 끄나플의 뒤를 밟아 그 증거를 모은 다음에 그 증거를 속령파에 투척! 속령파가 사도련에 증좌를 들고 사도련에 항의하고 사도련의 문파들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춘다.
    이 정도가 호천안의 본래 계획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신참들을 이끌고 옥계에 도착한 호천안이 혁기린을 만나지 못했다면.

    혁기린이 흑묘에게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는 루트겠네요.

    혁기린은 그냥 적귀대를 만나기 위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카피캣들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퇴각하는 것은 같았고 호천안은 옥계에서 곤명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용히 사라지려 했습니다.
    혁기린이 없는 상태로 이설에게 돌아가면, 이설이 용지맹이란 인물을 희생양으로 내세우려 할 때 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 뒤에 황군이 누가 등장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관군의 조사가 들어갔으니 속령파는 사도련의 압박을 떨칠 명분을 얻거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도련을 탈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호천안의 목적 달성입니다.
    그 시점에서는 용지맹을 향한 이설의 마음도 크지 않았으니 용지맹을 주동자로 지목하고 이설은 빠져나갔지요.
    황군의 수사결과에 따라 독고영천의 자식들이 잡혀 가느냐 마느냐는 달라졌을 겁니다.
    나머지 자식들이 다 잡혀갔다고 치더라도 이 시점의 이설은 흑화이설이 아니니 독고영천은 굳이 이설을 소가주로 올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옥살이를 하고 온 자식이 돌아와 소가주 자리를 두고 다시 경쟁을 펼쳤겠지요.
    이설은 적당한 시기에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독립해 문파를 차렸을 테고요.

    음.

    혁기린이 복장 터질 일도 없고 이설도 후피집 안찍어도 되고 호천안도 깔끔하게 목적을 달성하고. 독고영천의 자식들도 한 사람은 원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이 루트가 해피 엔딩인가…?

    3. 혁기린만 만나고 조사를 위해 파견된 부대가 적귀대가 아닐 경우.

    이 경우 강추모루가 적귀부대장 자리를 고사했거나,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지금 시점보다 적귀대의 발족이 지연되었다는 루트입니다.

    혁기린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얻은 호천안은 이설의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귀환합니다.
    이 시점부터 호천안은 암룡문에도 손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각을 잽니다.
    속령파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고도 여력이 남았으니 추가 목표를 세운 셈이지요.
    파견된 부대가 적귀대가 아니라 일반 황군이었다면 호천안이 기습적으로 체포당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소문이랑 비슷하게 날아온 육체개조 해병대, 아, 아니 적귀대와 달리 일반 병졸이 다수인 다른 황군들은 소문보다 느릿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황군이 온다는 소식을 먼저 들을 수 있으니 충분히 대처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 루트의 호천안은 다른 루트의 호천안에 비해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왜나하면 이미 목적도 달성했고 혁기린과도 합류했으니까요.
    어차피 보상금이라는 안전장치는 마련된 상황이니 호천안은 사마염과의 연줄을 동원하던, 아니면 혁기린의 연줄을 동원하던 추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황군에게 잡혀갔을 겁니다.
    그리고는 이설을 제외한 독고영천의 자식들의 행적을 싹 다 고자질 하는 거죠.
    가장 잘 나가는 황국 관리 중 한명인 사마염의 서신이나 황녀의 서신을 등에 업은 호천안을 현장 지휘관이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니 호천안의 제보를 받아 들였을 겁니다.
    호천안이야 뭐 인맥빨이 있으니 잘 살아 나왔을 테지만 강추모루가 있었던 지금 상황처럼 자유자재로 상황을 조절할 수는 없었겠지요.
    적절한 충격(아님)으로 이설의 각성을 유도하고 나머지 자식들에게 딱 세력구도가 뒤집힐 만한 타격을 입힌 지금 상황과는 다르게.
    다른 자식들은 중형을 선고 받을 수밖에 없으며 호천안도 처벌이 아니라 처형으로 정체를 감출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호천안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 생각한 이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독고영천 역시 다른 자식들이 재기불능급의 타격을 입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이설을 소가주로 올렸을 겁니다.
    형제들을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문파 내부에서도 반발이 더 심했을 테니 이게 정말로 이설 피폐 루트일지 모르겠네요.

    사실 전 이렇게 IF썰을 늘어 놓을 수 있는 것도 이번 에피소드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뭐…소설을 쓰다보면 당연히 고민이라는 것을 하게 되지만 용지맹 편을 쓰면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지 유독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절정고수에 불과한 호천안이 사도련을 등에 업은 정철과 어떻게 맞서는 것이 옳을까에 대한 고민이다고 봐야 할까요.

    다 써놓고 보니까 또 수정 마렵네요. 그렇다고 수정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이 아쉬움을 다음 글에 대한 원동력으로 써야겠죠.

    잡설이 길었네요.

    오늘 연참을 하기로 약속드렸는데 정각 연참이 아니라 이렇게 애매한 시간대의 새벽에 올리는 점 죄송합니다.

    좋은 새벽 OR 아침 되세용!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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