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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놀라지는 않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예견된 일에 불과했으니까.

       

       일 년 사이에 미궁에 나오는 마물이니 함정이니 뭐니하는 것도 많이 바뀌었는데 미궁의 길이라 해서 바뀌지 않았을 리가 없지.

       

       엔리라고 하여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알고도 자신의 무능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겠지.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 개트롤이네 진짜.]

       

       – 가방 꽉 찬 상태로 못 돌아가는 거야?

       – 조졌네.

       – 엔리 개답답하네.

       – 하는 것도 없으면서 뭐 하는 짓임?

       

       채팅창의 여론이 사납구나. 본인의 방송에서 이럴 정도라면 엔리의 방송은 더하겠지.

       

       과거 본인이 방송을 불태웠을 때만큼이나 사납지 않을까? 아니면 저 쪽은 엔리의 바보짓에 익숙해서 하긴 네가 그러면 그렇지. 라는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

       

       어느 쪽이던 간에 엔리의 입장에서 곤란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이는 군.

       

       엔리는 멀뚱히 회색의 벽을 바라보다가 슬쩍 눈동자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보더니 식은땀을 흘렸다. 불타고 있나 보구나.

       

       어쩌겠느냐. 자신만만하던 그대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된 순간부터 이러한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다.

       

       방송경험이 많은 그대이니 이쯤은 예측했을 터.

       

       어찌 대처할 것이냐. 그것이 궁금하여 엔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녀가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와서는 무릎을 꿇어 시선을 낮췄다.

       

       무얼 하는 게야?

       

       “화령마망! 도와줘요!”

       

       …마망?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은 저 단어를 들어본 바가 있었다.

       

       시청자들이 저런 식으로 헛소리를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던지라.

       

       “응애 엔리는 아무것도 모르겠소요! 마망이 해결해주세요!”

       

       누군가가 혀를 베어간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는 엔리를 보고 있자니 곰방대가 그리워졌다.

       

       현실에서 메이드복을 입었을 적에는 부끄러워서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던 녀석이 VR이라는 가면 하나를 썼다고 이 정도로 바뀌는 것인가.

       

       어찌 본다면 프로다운 행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불을 진압하기 위해 지인이 몸을 내던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구나.

       

       – 엌ㅋㅋㅋ

       – 응애!

       – 화령! 해줘!

       – 화령이면 할 수 있잖아!

       

       – 리부엔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가 엔리. 이거 귀하진 않네요. 가져다가 버리죠.]

       

       “본인도 그러고 싶다만 이 놈이 들고 있는 물건이 꽤 많아서 말이다.”

       

       엔리의 목을 날려버리면 버려야 하는 물건이 한 가득이지 않으냐. 그 때문에라도 본인은 엔리를 곁에 두어야 하느니라.

       

       엔리가 스스로를 내던진 덕분에 채팅창의 험악했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아직 투덜거리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 알아 진화되겠지.

       

       과연 이것이 베테랑의 품격인가. 놀랍기는 하다만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대충 당장의 문제도 해결됐겠다 이제 이 미궁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마는.

       

       “마망.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볼까요?”

       “왔던 길을 기억하기는 하느냐?”

       “어… 그게에. 아뇨. 응애 엔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는 척을 해봐야 험한 이야기만 들을 테니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컨셉으로 가려는 게냐. 그래. 차라리 그게 낫구나.

       

       “사실 기억하건 말건 해결책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길을 지나올 때에 실시간으로 길이 바뀌고 있었거든.”

       “…네에?!”

       

       길을 지나올 때에 뒤편에서 길이 움직여가며 경로를 바꾸고 있었다. 그러니 여태까지 지나온 경로를 돌아간다 하더라도 또 다시 회색의 벽을 마주할 뿐이겠지.

       

       “그… 그럼 어떡하면 좋죠?”

       “어쩌긴 뭘 어째. 돌아가야지.”

       

       지금 미궁을 돌아다니며 가방을 한 가득 채웠거늘 이를 버리고 갈 셈이더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돌아가는 것.

       

       “그치만 방법이.”

       “언제든 본인을 가리키며 해달라 하더니 이젠 포기더냐? 가만 있거라. 해 줄 터이니.”

       

       여지까지 걸어온 길이 바뀌었을 뿐 본인들이 걸어온 방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직선거리로 갈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족하다는 이야기지.

       

       기대를 담아 본인을 바라보는 엔리를 내버려 두고서 회색 벽 앞에 섰다.

       

       손바닥을 벽에 가져다 대어 강도를 확인해 본다. 분명 이 벽은 단단하지만 그렇다하여 부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본인의 손바닥에 힘을 더하자 여러 잔해들이 떨어지지 않나.

       

       허나 지금 이 몸으로 부술 수 있는 녀석은 아닐 듯하구나. 최소한 방금 전 내게 굴러왔던 바위를 부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임이 분명하니까.

       

       가만 벽을 바라보며 고민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나와 엔리가 죽어서 안 되는 이유는 자원을 잃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을 하자면 어쨌든 간에 집에 도착해서 자원을 가져다두기만 한다면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소리일 터.

       

       목숨을 내다버려도 괜찮다면이야 선택지는 넘쳐나지.

       

       어디 보자. 나와 엔리가 미궁 안에서 걸어왔던 거리와 미궁에서부터 본인들의 거처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본다면 시간이 부족할 리는 없을 듯 하구나.

       

       결정을 내린 본인은 다시금 엔리에게로 돌아가 그녀를 어깨에 짊어졌다.

       

       “화령 씨?!”

       

       합의된 바 없는 행동이었기에 엔리가 당황했지만 나는 그를 무시하고서 혈도 몇 군데를 짚었다.

       

       – 화령조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건가?]

       

       – 그거네.

       – 그거구나.

       – 그게 뭔데 씹덕들아!

       – 미궁 박살나도 복구가 되나?

       – 여기 천장 튼튼하지?

       – 그게 뭐냐고!

       

       이제는 본인의 행동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대부분 본인이 혈도를 누른 시점에서 무얼 할지 추측하고 있었다.

       

       엔리도 마찬가지였다. 뭘 할 생각이냐 그러던 엔리는 본인이 혈도를 누른 것을 보고는 발버둥을 멈췄다.

       

       “벽을 박살내시려고요?”

       “그래.”

       “…화령 씨. 다른 건 모르겠는데 천장은 무너트리면 안 돼요?! 그럼 저희 압사당해서 죽어요?!”

       

       벽을 부술 수 있냐고는 묻지 않는 게냐? 그대도 본인에게 많이 익숙해졌나 보구나.

       

       “걱정마라. 본인이 그 정도 조절도 못하겠느냐. 설령 천장이 무너진다할지라도 살아나갈 수 있을 터이니 그대는 그저 옆에서 구경하고만 있으면 충분하니라.”

       “꺄아아아! 누구. 누구 없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러다 굶어죽기 전에 압사당해서 죽겠어요!”

       

       이리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엔리가 옆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러댔다.

       

       본인에게 해달라 이야기를 할 때는 언제고 이러는 것인지.

       

       엔리. 그대가 선택했으며 강요한 일이다.

       

       막말로 하여서 그대가 미궁의 길을 모두 다 외우고 있었다면 본인이 이런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지 않았겠느냐.

       

       그러니 이를 꾹 다물고서 견디도록 하라.

       

       몸속을 휘젓는 천마신공의 내기를 담아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과자가 박살나듯 벽에 구멍이 뚫리며 한 때 벽이었던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자아. 엔리. 속도를 낼 터이니 혀를 깨물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내가 생각한 미궁 공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에에에에!”

       

       *

       

       “이걸로 골조는 완성됐나.”

       

       바깥으로 나와서 자신이 만들어낸 집의 풍경을 감상하던 피피는 상쾌함에 웃음을 지었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벌써 완성함?]

       

       “아직 할 게 남아있지만 대충은 됐어요. 다 화령님 덕분이죠.”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시간에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모든 건 다 화령이 가져와 준 자원 덕분이었다.

       

       그녀가 여러 사람들을 약탈해서 가지고 온 자원의 양은 초반 한 시간 만에 벌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었으니.

       

       그만한 양의 물건이 쓰레드 고인물 피피의 손에 들어온다면 이러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이제 테크 올리고 외벽 깔고 도랑 만들고 보호마법 정도만 깔아 놓으면 되겠네요.”

       

       – 할 일 겁나 많네.

       – 저거 다 끝내려면 얼마나 걸림?

       

       “글쎄요. 대충 하루 이틀 정도 밤새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 그거밖에 안 걸린다고?!

       – 이 사람 진짜 고인물이긴 하구나.

       –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임?

       – 딴팀 가보셈. 그 쪽은 걍 원시인이야.

       

       피피는 활발하게 소통이 진행되는 채팅창을 보고는 헤실거리며 웃었다.

       

       평소 그녀의 방에는 이렇게 채팅이 활발하지가 않다.

       

       쓰레드는 약탈이나 공성하는 걸 보는 건 즐겁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보는 게 재밌는 게임은 아니다.

       

       파밍하고 테크 올리고 건물 짓고 하는 일련의 과정은 무척이나 지루하다.

       

       그 덕분에 하루 종일 쓰레드만 주구장창 하는 피피의 생방송 시청자 수는 그리 많지 못했다.

       

       간신히 백을 넘을까 말까하는 정도로.

       

       허나 오늘은 달랐다. 엔리와 화령이라는 대기업 두 명과 한 팀이 된 덕분에 시청자가 잔뜩 펌핑되어 있는 것이다.

       

       쉬지 않고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던 피피는 의욕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주먹을 꼭 쥐었다.

       

       이번에 스트리머 서버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잠은 포기한다! 최선을 다하는 거야!

       

       – 뻒꾺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피피야. 엔리랑 화령이 조때써.]

       

       “네? 무슨 일인데요?”

       

       – 미궁에서 길을 잃었음.

       – 가방 꽉 찬 거 그대로 미궁에서 잃어버릴 위기.

       – 엔리 자신만만할 때부터 불안하더라.

       

       그러니까 엔리님께서 1년 전 기억을 믿고 화령님을 데리고서 미궁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길을 잃어버렸다는 거죠? 어…

       

       “큰일났네요?”

       

       쓰레드가 유저 관리를 잘 하지 않는 게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게임은 아니다.

       

       요 1년간 쓰레드에는 수많은 컨텐츠 업데이트가 존재했고 거기에는 미궁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다양한 몬스터들의 추가. 여러 함정의 추가. 주기적으로 길이 바뀌는 시스템의 추가. 등.

       

       거기서 파밍할 수 있는 아이템들의 효율이 좋은 것에 반해 그를 파밍하는 게 너무 쉽다 판단한 제작사 측에서 미궁의 난이도를 잔뜩 올려둔 것이다.

       

       그러니 1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서 미궁에 들어간다면 그대로 미아가 될 수밖에 없다.

       

       “통화 걸어서 길을 알려드려야 하나? 아니 근데 먼저 연락을 드리는 것도 또 그런데.”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던 피피는 일단 두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엔리의 방송을 켰다.

       

       ‘화령 씨! 천장이 흔들리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죠?! 그쵸?!’

       ‘응애엔리는 걱정이 너무 많구나. 괜찮다. 기껏 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느냐?’

       ‘그게 문제라고요오오오!’

       

       “…응?”

       

       피피가 보게 된 풍경은 주먹으로 미궁의 벽을 부수어 가며 앞으로 전진하는 화령과 그 어깨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엔리의 모습이었다.

       

       “어라?”

       

       음? 이게 무슨? 피피는 자신의 상식과는 저만치 떨어져있는 풍경에 눈을 끔뻑거렸다.

       

       미궁의 벽이 부술 수 있는 오브젝트가 맞긴 하다. 실제로 미궁 안에서 다른 유저를 기습할 때 써먹는 테크닉 중 하나니까.

       

       그렇지만 주먹을 툭하고 내질러서 박살낼 수 있는 오브젝트는 아니다.

       

       미궁 벽의 강도는 상당한 화력을 지닌 마법으로 박살을 내야 간신히 부술 수 있는 수준이니까.

       

       화령님이 지금 마법이 인챈트된 장비를 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화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닐 텐데 왜 저게 되는 거야?!

       

       – 베텐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이잖아.]

       

       “…아. 그렇네요.”

       

       여태까지 쌓아온 고인물로써의 상식이 박살나는 풍경에 당혹스러워 하던 피피였지만 도네로 날아든 목소리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고 말았다.

       

       화령의 방송을 오랫동안 시청해 온 그녀는 화령이라는 사람을 상식선에 묶어선 안 된단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화령님 걱정은 하는 게 아니군요.”

       

       둘이 알아서 미궁에서 빠져나올 것을 확신한 피피는 엔리의 비명을 뒤로 한 채 방송을 꺼버렸다.

       

       두 분께서 재료들을 가지고 오면 뭘 할지나 고민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의 단어. 화령이잖아.

    ——–

    무림서우님 27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의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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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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