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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거짓된 황금이 사라진다.

     나의 경우나 로버트, 그리고 몇몇 실험대상자들이 거짓된 황금을 섭취했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

     

     황제 입장에서는 손뼉을 칠 일이다.

     안 그래도 거짓된 황금이 범람하고 있는 마당인데, 그걸 없앨 수만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먹는 거라면?

     ‘먹어서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아주 오래 전.

     세빌리야의 옆 오염지대에서 마수가 넘어와 범람하는 바람에, 세빌리야의 농지가 마수의 마기에 전부 오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누군가는 이를 전부 불태워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세빌리야 가주는 ‘먹어서 없애자’라면서 기근을 떨쳐낼 것을 주장했다.

     당연히 문제가 생겼다.

     배탈이 난다거나, 건강이 악화된다거나.

     

     하지만 그 순간의 공복은 해결할 수 있었고, 그 때 오염된 곡물은 ‘마의 음식’으로 분류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마의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게 만든 노스트럼의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포테토 경’이다.

     지금은 후손조차 없다.

     노스트럼의 위기를 구해낸 영웅이 후손을 낳지 못하고 죽는다거나, 후손을 낳았어도 그 대가 몇 대를 이어지지 못하고 이름을 잃고 사라지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다.

     지금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거짓된 황금을 먹어서 없애기 시작한 이 광인들을 영웅으로 칭송해야 할까?

     아니면 이들이 깨어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걸까?

     “미치겠군.”

     현재, 거짓된 황금을 먹어치우고 있는 이들은 기사들에 의해 인근 건물로 이송되었다.

      

     인근 건물이라고 해봐야 이런 이들을 놔둘 마땅한 곳이 없어, 보육원 건물 중에서 그나마 사람을 가장 빠르게 빼낼 수 있는 곳에 전부 몰아넣었다.

     “그레이 도련님. 전원 격리를 마쳤습니다.”

     “고생했다, 메를린.”

     “별말씀을.”

     보육원장으로 모든 보육원을 총괄 관리하는 자리에 오른 메를린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거짓된 황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보육원 각 개인실마다 한 명씩 집어넣을 수 있었다.

     “로버트 경. 이들이 잠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거의 12시간이 지났습니다.”

     12시간.

     나나 다른 이들이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시간과 달리, 거짓된 황금을 먹어치운 이들은 생각보다 깊게 잠들어있다.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희는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랐고, 저들은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꿈에서 깨어났을 테니까.”

     의아하지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우리와 저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현실에서의 지위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귀족과 평민.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무력이 뛰어난 자와 일반병사보다 못한 자.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저들은 꿈 속에서의 세상이 현실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나면 분명 난리를 칠 거야. 다시 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겠지.”

     백은중독자들이 그런 모습을 주로 보였다.

     “추악하고 더러운 현실을 부정하고 꿈 속 세상의 자신을 본인으로 인지하고 뻗어있을지도 몰라. 진한 탈력감에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거짓된 황금을 찾아나서려고 할지도 모르지.”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기사들 동원해서 침대에 제대로 묶었지?”

     “예.”

     “그거, 아예 사지를 묶어버려.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꼼짝도 못하게.”

     백은에 중독된 이들이 가장 얌전했을 때는 꿈을 꾸고 있을 때지만, 가장 거칠어질 때는 막 꿈에서 깨어났을 때다.

     다시 꿈을 꾸기 위해 백은을 찾고, 꿈에 빠져드는 걸 막으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건 기본이고, 백은을 얻기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사들 동원해서 교대로 근무 시키고.”

     “도련님. 그랬다가는….”

     “알아. 제국에 알려지겠지. 하지만 이미 보고가 들어갔을걸?”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그림자 이외에도 다른 그림자들이 현상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황제는 모든 걸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편이 더 좋다.

     “로버트 경. 아무리 지브롤터가 제국과 친한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꾼 꿈의 내용을 생각하면 제국을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야.”

     “그렇죠. 시간은 다르지만….”

     로버트가 나를 가리켰다.

     “도련님이 20살이 되는 해 이후로 제국과 노스트럼이 전쟁이 일어난 게 꿈 속 세상의 공통점이니까요.”

     “…그래.”

     전쟁은 정해져있다.

     내가 회귀 전에도 20살에 전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그저 그걸 지브롤터가 제국에 붙어 1개월만에 단기전쟁으로 끝냈느냐.

     아니면 꿈 속의 경우처럼 지브롤터가 노스트럼 최후의 수호자가 되어 지브롤터 이외의 모든 땅이 제국에 점령당한 뒤, 대륙 정중앙에 지브롤터만 남게 되느냐.

     그 차이만 있을뿐.

     “로버트 경. 이쪽은 멘테 경에게 맡기고, 경은 나를 따라오도록.”

     “……도련님. 꿈 속을 헤매이는 이들이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데, 지켜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유사시를 대비해서.”

     “그 유사시를 대비해서 꽁꽁 묶어두라고 지시를 했잖아.”

     내 명령을 들은 메를린의 지시에 따라, 멘테 경을 비롯한 리프트령 기사들이 익숙한 손길로 사람들을 침대에 꽁꽁 묶어두고 있다.

     리프트령에 소속된 이들 중 70%가 지브롤터령 출신 기사들이고, 나머지 30%는 외부에서 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 전부 보육원에서 이런저런 교육을 이미 배웠기에, 전부 사람을 어떻게 해야 침대에 꼼짝도 못하게 구속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튼튼한 밧줄.

     많은 밧줄. 

     사람을 밧줄로 묶고 이불로 휘감은 다음, 그 이불을 침대와 함께 한 번 더 밧줄로 묶으면 완성.

     “이 정도로 했는데 난동을 부린다면 그 때는 슬립 마법이라도 써서 재워야지.”

     “그 때를 대비해서….”

     “따라오기나 하게. 뭐 해. 삽 들어야지.”

     “…예.”

     나는 로버트 경과 함께, 꿈 속을 누비는 이들로부터 떠나 현장으로 향했다.

     “아. 로버트 경. 좀 있다가 제국인들이 열심히 땅 파고 있는 곳에 가서 이야기할 때는, 적절히 언어 수위를 낮추도록.”

     “황제에게 전해질 정도로만 조절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지.”

     협곡.

     “그러면서 우리끼리 다시 한 번 정보를 정리해보자고.”

     “제가 언급하면 안 될 부분은 혹시 있습니까?”

     “언급하면 안 될 건 없지만, 적당히 실수하는 척 흘리자고.”

     한창 제국의 공사장 인원들이 공사에 열중하고 있는 곳을 향하여.

     “꿈 속에서는, 지브롤터가 제국과 전쟁을 하더라.”

     황제에게 어떤 메세지로 전해질 지는 황제만이 알 일이지만….

     “궁금하지 않나? 황제가 꿈의 내용처럼 전쟁을 일으킬지, 아니면 꿈처럼 되지 않도록 전쟁을 억제하려고 할지.”

     * * *

     [그 시각, 테르시안 제국 황궁.]

     “…그러니까, 거짓된 황금을 먹었다?”

     “예.”

     합스베르크 황제는 자신의 앞에 선 청년, 그림자-프란츠의 말에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한 쪽은 입에 넣고 도망치려고 했고, 한 쪽은 그걸 먹으면 몸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

     합스베르크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푸른 그래프의 선이 있었으나, 황제는 그걸 보는 것보다 더 골치아프다는듯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망할 노스트럼. 황금을 왜 먹어. 왜.”

     “폐하. 문제는….”

     “문제는 지금 그레이 지브롤터가 수습한 보육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

     “…….”

     프란츠는 그레이 지브롤터라는 이름에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으나, 황제는 그런 걸 신경도 쓰지 않았다.

     “거짓된 황금을 먹어서 없애고 있다고?”

     “예. 현장 보고에 따르면, 그러했습니다.”

     “먹어서 없앨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인가?”

     “어떤 이들에게는 가능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불가능했습니다.”

     “흠.”

     황제는 자세를 반듯하게 잡았고, 프란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미리 준비한 자료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 14-H호 그림자 양성실의 그림자들에게 액화 상태의 거짓된 황금을 먹였습니다.”

     “제국인도 거짓된 황금을 먹었을 때 특별한 반응이 있던가?”

     “아니오.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원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쯧. 아깝게.”

     황제는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제국인’에게는 효과가 발동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 반대로 노스트럼인에게는 효과가 있겠군.”

     “예. 그래서 노스트럼 유학생과 여행객 중 일부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 빠르게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17명에게 실험한 결과, 16명은 평균 6시간 정도의 수면 이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 명,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실험의 과정을 물어본 게 아니라, 연구 결과를 물어본 건데.”

     황제의 나지막한 말에 프란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으나,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저로서는….”

     “아니, 아니야. 노스트럼의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범인(凡人)이 이해하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지. 수재라고 하는 이들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야.”

     “…….”

     “괜찮다네. 이미,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니.”

     황제는 다리를 꼬며 프란츠를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프란츠. 하나 물어보마. 네가 만일 이번이 첫 번째 인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너는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

     “꿈 속 세상이 사실은 한 번 있었던 세상이고, 이번은 두 번째 세상이라고 한다면?”

     “세상이 한 번 멸망하기라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노스트럼의 재앙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의뭉스러운 황제의 말에 프란츠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걸 가지고 따지고 들지는 못했다.

     “아니면 이렇게 물어보마. 만일 네가 과거…대충 8살 정도로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너는 무엇부터 하겠느냐?”

     “그게….”

     “네 어미를 죽인 나에게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를 원하면서 다른 동기들을 잡아먹고 빠르게 성장할 것이냐? 아니면 노스트럼으로 가서 나를 죽이기 위해 칼을 갈 것이냐?”

     “제가 어찌 그런 불경한 짓을 꿈꾸겠습니까.”

     “……흠.”

     황제는 시시하다는듯 혀를 찼다.

     “나는 만일…그래, 20년 전 정도로 돌아간다면, 당장 지브롤터로 갈 것이야.”

     “…예?”

     “그리고 크림슨 후작과 샤를로트 부인을 상대로 ‘딸을 태어나게 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야.”

     “……예?”

     “그레이 지브롤터를 딸로 태어나게 만들면, 그것만큼 확실한 역사의 변화가 또 없을 테지. 그리고 20년만 기다리면 되는 거고.”

     황제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는듯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차라리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마법을 연구하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처음으로 네 의견이 제법 도움이 되는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내게 다시금 인지하게 만드는 충언이로다.”

     “…….”

     “아, 그래. 내가 그렇다는 거고.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 가령….”

     황제가 자신의 머리 위를 향해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을 빼앗긴 남자가 과거로 떨어졌다면, 그 남자는 그 여인을 다시 품으려고 할까? 아니면 다른 여자를 품고자 할까.”

     “…….”

     “꿈 속의 지브롤터 백작이 두 명의 부인을 들였다. 그 부인 중 한 명은 여왕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하지만 말이다.”

     황제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거꾸로 쭉 감았다.

     “그런 ‘있을 수도 있는 일’이, ‘없었던 일로 되는 것’으로 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 불가사의한 일만 가득한 노스트럼이라면 말이야. 프란츠여.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시계의 시침이 거꾸로 돌아, 기어이 한 바퀴를 넘게 돌았다.

     “노스트럼은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를 지워왔다. 그리고 그 위를 성공으로 덮었지. 하지만…흐흐.”

     황제가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돌아오고 나서도 실패하신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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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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