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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3

       

       컨셉을 완벽히 이해한 이유하가 다시 물었다. 

       

       “헌데, 그대와 나 모두 한어를 못하니 어찌하오?”

       “그것도 문제 없어. 여기 있어봐.”

       

       나는 길가의 호떡 장수에게 다가가, 조선인 짐꾼같은 말투로 물었다.

       

       “보소. 호떡 좀 사려는데, 얼마요?” 

       “하나개 량 쩐에 팔아 해!”

       

       손가락을 두 개 세워보이며 대꾸하는 중국 상인. 나는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며 말했다.  

       

       “하나에 2전 말이오? 그럼 두 개만 주쇼.”

       “두얼개 싸 쩐요. ……예 잇서!” 

       “예에. 많이 파쇼.”

       

       나는 이유하에게로 되돌아가서, 신문지에 싸인 호떡을 하나 건네주며 말했다. 

       

       “봤지? 아까 점심 먹을 때도 봤지만, 여기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조선어를 어느정도 할 줄 알아. 어쨌든 조선 땅에서 장사하는 거니까.” 

       “그렇구, 려.”

       

       이유하는 호떡을 오물오물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인들과 조선어로 소통하는 것은 조선 짐꾼인 내가 할테니까, 너는 아무 말 안하고 있어도 돼.”

       “알겠소.” 

       “그건 그렇고 호떡 맛은 어때? 처음 먹어보는 거지?”

       “음……”

       

       이유하는 잠시 오물거리며 마지막 한 입까지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이 호떡이라는 것은 과히 달고 기름진 것이, 내 구미에는 맞지 않는 듯 하오.”

       “다 먹어놓고 무슨. 그래도 겨울에 먹으면 맛있을 거야. 아무튼, 저 상인이 조선어를 한다는 것은 확인했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자.” 

       

       나는 눈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가게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있는 노인. 차려놓은 모양새를 보니 손금도 보고 침도 놓고 한방(漢方) 보약도 파는 한의사, 아니 중의사인 듯 했다. 저 사람이 적당하겠네.

       

       “저, 말 좀 물읍시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다른게 아니라, 이 아가씨는 저기 중국 본토에서 막 오신 귀한 분인데…… 이 아가씨께서 묻기를 이런게 아니라, 약 파는 곳을 찾으신다고……”

       “약? 무션 약 찾아? 울리 가게 보약 많지.”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예에. 저기, 그냥 약이 아니라, 아편이나 모루히네같은 걸 찾으시는 모양인데……”

       “모얼르오! 나 모얼르오!” 

       

       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울리 가게 보약 해, 보약! 울리 가게 침 노아, 손금 보아, 관상 보아. 울리 가게 마약 아니 해.” 

       

       마약 같은 건 취급 안한다는 말인가. 노인은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살람, 조선 살람, 모두 마약 만이 해. 그거 못 고쳐. 보약 먹어 해도 못 고쳐.” 

       “알겠습니다. 많이 파세요.” 

       

       으음. 여기 사는 현지인이면 마약 소굴이 어딨는지 모를리 없을 텐데, 비협조적이네. 나는 이유하에게 돌아와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바로 골목으로 들어가자. 어차피 봐둔 곳이 있어.” 

       

       아까 상점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 젊은 사내들이 유난히 눈치를 보며 들락날락하던 골목이 있었다. 

       

       “자, 드가자. 조심해서 따라 와.”

       

       우리는 햇빛도 안 들어오는 어두운 골목에 들어섰다. 바닥의 움푹한 곳에는 인근 식당에서 흘러나온 돼지기름 따위가 고여있고,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좁은 골목 깊숙히 들어서서 모퉁이를 도니, 이유하가 입은 것보다 더 노골적인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얼굴에 백분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이, 벽에 등을 기댄 채로 궐련같은 것을 피우고 있다가 우리를 힐긋힐긋 바라보았다.

       

       사람 둘이 나란히 지나가기도 힘든 골목이었기에 그 여자들을 닿을 듯 말 듯 겨우 스쳐지나가고 나서 이유하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이 길이 맞소? 아무래도……” 

       “으음. 그러게……”

       

       아까 그 여자들은 창부같았는데. 사내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린다고 전부 마약을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아편굴이 아니라 매음굴인가?’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좀더 깊숙히 들어가다 보니 한쪽 모퉁이에 술에 취한 것인지 무엇에 취한 것인지 사내 몇이 골복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있었다.  

       

       “맞는 것 같은데.”

       

       어느정도 확신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좀 더 들어서자, 등이 굽은 꼽추 한 명이 어느 건물로 통하는 뒷문을 지키고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일어섰다. 

       

       문짝에 ‘阿片(아편)’이라고 붉은 종이에 휘갈겨 써 놓은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듯한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봐봐.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며 이유하를 돌아보다가, 

       

       “……?”

       

       대뜸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하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유하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쳐들고,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고개만 까딱까딱 움직여 턱짓으로 저 꼽추를 가리킨다.

       

       ‘뭐지?’

       

       내가 멀뚱멀뚱 서 있자, 이유하는 평소답지 않게 얼굴을 히스테리적으로 찌푸리며,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빈 깡통을 신경질적으로 뻥 차기까지 한다. 그리고선 다시 나를 노려본다.

       

       ‘??????’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이유하 얘, 뭔가 잘못 먹었나? 이러던 애가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나 싶어 멀뚱멀뚱 이유하를 쳐다보고 있자니, 이유하가 작게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컨셉이오.”

       

       아아. 

       

       그렇지. 지금 이유하는 부유한 중국인 아가씨 컨셉이고, 나는 그런 아가씨의 시중을 들어주고 있는 조선인 짐꾼, 그런 컨셉이었지.  

       

       컨셉을 훌륭히 소화한 이유하에 맞춰서, 나도 컨셉을 수행할 때였다. 나는 꼽추에게 다가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헤헤, 저기. 보소! 중국인 양반……. 엣헴! 저 아가씨로 말할 것 같으면, 저기 중국 상하이인가 어데서 막 오신, 아주 돈 많구 귀하신 분이신데…… 저 분께서 경성에서 아편을 하는 곳을 찾는다구 해서, 제가 이렇게 모셔왔습니다만, 여기가 아편 하는 곳이 맞는지요?”

        

       나는 이유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연기까지 하며 이렇게 말했다. 꼽추 중국인은, 

       

       “후웅……” 

       

       하고 콧수염을 만지작거며 나와 이유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하오! 조아! 딸라오씨오!”

       

       하고 등을 돌려 문을 열어주었다. 

       

       ‘통했다!’

       

       이유하와 나의 컨셉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꼽추의 안내를 따라, 아편굴로 의심되는 곳에 들어섰다.

       

       바로 눈에 띄는 것은, 허름하면서도 화려한 중국풍 인테리어. 어두운 주황색 조명 아래, 마치 너구리굴처럼 연기가 가득 차 있고 사방에 널부러져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가 봐도 아편굴이 맞았다. 

       

       ‘아편을 하기가 이렇게 쉽다고?’

       

       내부를 슥 둘러보니 비단인지 천 같은 커튼으로 조그만 방으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길래 나는 꼽추에게 말했다.

       

       “방 하나 주쇼.” 

       “일로, 일로.”

       

       나는 꼽추를 따라 이유하와 함께 빈 방에 들어갔다. 방이라고 해도 여관방같은 것이 아니라, 비단 방석이 깔린 소파가 마치 기차 객실처럼 마주보며 있고, 벽도 벽이 아니라 커튼 가림막으로 구분되어있을 뿐인 조그만 임시 방이다. 

       

       안내해준 꼽추가 물담배 피울 때 쓰는 도구같은 것을 가운데 탁자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너 처음 왓서? 너 야폔 어떳게 해 방법 알라? 나 너 도와 해?” 

       “아뇨. 도와줄 필요 없으니 가쇼. 이따 부를테니.” 

       

       꼽추를 물리고 나서, 나는 탁자 위의 아편 흡연도구를 살펴보며 이유하에게 말했다. 

       

       “흠. 일단 여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럼 된 것 아니오? 이곳이라고, 경찰에게 가르쳐주면 되는 것 아니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임무는 단순히 아편굴을 찾는 게 아냐. 유통업자를 찾아내야 돼. 중국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업자를.” 

       “그렇구려.” 

       “경찰들도 아편굴 찾아내는 것 쯤이야 쉬웠을 거야. 이 정도면 뭐 숨기고 장사하는 수준도 아니니까. 하지만 경찰이 들이닥치면 유통업자는 진작에 몸을 숨기고 도망칠테니 근절이 안 되는 거지.” 

       

       나는 이유하에게 말했다.

       

       “다른 마약도 있냐고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서장 말로는 아편 말고도 모르핀(morphine)이나 필로폰(Philopon) 같은 마약도 돌아다닌다니까, 그렇게 찾다보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것이다.

       

       나는 커튼을 슬쩍 걷고, 아까의 꼽추를 불러 물었다. 

       

       “이 아가씨가 식성이 고급이라 아편은 싫다는구먼! 여기 아편 말고 모루히네나 히로뽕같은 것도 있는감?

       “울리 가게, 야폔 하나 잇지. 너 마페이, 씨뤄뻔 찾아? 그거 따런 데얼 가봐 해.”

       

       여긴 아편만 취급하고, 모르핀이나 필로폰은 다른 곳에 있는 건가. 나는 꼽추의 손을 붙잡고, 몇십 원어치 지폐를 얹어주며 말했다.

       

       “이 아가씨 비위를 못 맞추면 내가 큰일이구만! 돈은 드릴테니 좀 알려 주쇼.”

       

       꼽추는 이게 웬 돈이냐 하고 헤죽 웃더니, 다른 가게(?)들이 어디 있는지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 길로 아편굴을 나온 우리는, 꼽추의 말대로 골목을 돌아다니며 과연 몇 군데를 더 찾을 수 있었다. 

       

       아편만 취급하는 곳, 모루히네만 취급하는 곳, 히로뽕만 취급하는 곳, 대마를 취급하는 곳, 그중에서 두 가지를 함께 취급하는 곳, 여러가지를 다 취급하는 곳, 창부를 불러 매음굴 역할도 병행해서 하는 곳까지…….

       

       진짜 널린게 마약 소굴이었고, 접하기도 쉬웠다. 이유하가 고개를 저으며 한탄하듯 말했다. 

       

       “세간에서 작금의 청국을 일컬어 동아병부(東亞病夫; 동아시아의 병든 남자)라 하더니, 오늘 보니 그 말이 흉금에 와닿는 듯 하오. 어찌하여 이리 되었는지.” 

       

       그렇게 몇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곧 저녁 6시가 되는 시간이었다. 

       

       “아까 여섯 시에 보자고 했었지.”

       

       점심을 먹었던 식당 앞으로 돌아가니, 송병오와 홍옥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송병오 녀석이 진저리난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도 봤는가? 세상에, 온통 아편굴 천지더군!” 

       

       홍옥례도 맞장구쳤다.

       

       “송 동지의 말이 맞아. 그것도 얼마나 접근하기 쉬운지, 물론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아니까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냥 아무나 들어갈 수 있겠더라고.” 

       

       녀석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도 이유하랑 함께 여러군데 돌아다니면서 확인했어. 대충 어디어디서 마약을 파는지는 확인했는데,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공급되는지까지 오늘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네. 우선 오늘은 실태조사만 했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이만 마무리 짓자.” 

       

       딱히 기간이 정해진 급한 임무도 아니고, 우리 분대원들 경험 쌓는 용도로 얻은 임무였으니 조급해할 것은 없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양복자는 아직도 긴따마와 정신공유를 하고 있으려나. 나는 긴따마에 대고 말했다.

       

       “복자야, 듣고 있어? 오늘 임무는 여기까지야. 긴따마는 내일 학교에서 돌려줄게.” 

       

       나는 긴따마를 다시 바지춤에 넣고 녀석들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서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자. 저녁도 내가 거하게 쏠게. 너희들도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수고했을테니 맛있는 것좀 먹자고.” 

       “정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일 반색하는 것은 송병오 녀석이었다.

       

       “좋지! 저녁이라면, 아까 그 집이나 가세나! 우동도 그렇고 자네가 먹은 그 짜장면이라는 것도 썩 잘하는 것을 보니, 요리도 그럴싸할 테지!”

       “그럴까.”

       

       어차피 더 돌아다니기도 뭐하고, 어차피 저녁 먹고 시마이할테니 그냥 거리 초입에 있는 이 중국집에서 먹는게 좋겠지. 

       

       우리는 아까처럼 ‘燕鈴樓(연령루)’ 간판을 내건 중식당에 들어섰다. 

       

       딸랑, 딸랑!

       

       “일라쌰이마세…… 아! 조선살람 손님, 또 오셧어 해!”

       

       낮에 본 만두머리 소녀가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자마자 분위기가 왁자지껄한 것이니, 한가하던 낮과는 달리 저녁에는 손님이 꽤 많았다.

       

       어디 멀쩡한 회사원들의 회식자리같은 손님들도 있었고, 대부분이 중국인같지 않은 사람들. 

       

       아마 중국인거리 초입에 있는 식당이라서, 공공기관이나 회사가 많은 태평통 대로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이렇게 저녁 술자리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거,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네.”

       “이층에 하나 잇지요! 딸라 오세요!”

       

       소녀는 만두머리에 매달린 종을 딸랑거리며 앞서 계단을 올랐고, 우리는 소녀의 안내를 따라 2층 연회석에 자리잡았다. 

       

       송병오 녀석이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 뭘 시킬텐가?”

       “얘들아, 잠깐 들어 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유하, 송병오, 홍옥례…… 녀석들이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말똥말똥 바라보자 나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 마약을 찾는 임무는 내가 경찰한테서 받은 임무잖아. 그래서 이건 사실 너희들이 꼭 해야 할 일도 아니고, 나 혼자 해도 충분한 일이야.”

       “자네, 무슨 말을 그리 서운히 하나!”

       “사실이 그렇잖아. 근데 앞으로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사보타주를 하기 위해서는 너희들이 이런 것도 미리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너희들을 끌어들인 거야. 그런데 오늘 이렇게 함께 고생해줘서 정말 고맙다.”

       “자네 여전히 말이 길군! 이건 고생도 아닐세그려!” 

       

       열의가 넘치는 송병오 녀석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짧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시키고 싶은 거 다 시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쓰다보니 분량이 길어져서 조금 늦었습니다!!!

    비정기연재라서 시간은 맞추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오후 5시에 업로드해왔으니 그 시간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종종 늦는 때가 있네요. 하지만, 연참!!!!

    연참 바로 이어집니당!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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