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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동쪽 하늘 위로 불기둥이 솟구쳐 오른다. 

       

       그 광경을 직접 목도한 마왕군은 한목소리로 탄성을 내질렀다.

       

       “잘 타는구나. 아주 잘 타.”

       

       마왕도 흡족하게 웃으며 에테르를 거듭 칭찬했다.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3만은 족히 죽었을 겁니다.”

       “역시 상천의 기술이로다.”

       

       민간인도 아니고, 단련된 군인 3만 명의 목숨값이 겨우 폭탄 한 발이라니.

       

       1천 년 전이었더라면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마법이었다.

       

       군의 사기가 오른 것을 확인한 마왕이 연설을 개시했다.

       

       “보라, 제군들. 저만한 마도를 부릴 수 있는 건 우리 종족이 유일하다. 다른 미개한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실제로 원자폭탄을 이해하려면 전계마도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원폭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것은 상천 에테르지, 금안족 전체가 아니다.

       

       그러나 마왕은 교묘하게 거짓을 섞어 말했다.

       

       “저 불기둥은 우리 종족의 분노를 담은 업화이다. 즉, 금안을 지닌 모든 이의 성과라.”

       

       하나의 공을 모두의 공으로 돌린다.

       

       의문을 제기하는 자도 있겠으나, 마왕은 이에 대해서도 미리 변명거리를 준비해 두었다.

       

       “전체는 하나, 하나는 전체이니. 상천의 업적은 우리 모두의 업적이고, 상천의 잘못은 또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 기계의 몸을 지닌 상천이 인간의 마음을 품었으니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상천의 공을 전체의 공으로 빼돌렸듯이, 그녀의 잘못도 전체의 잘못으로 호도한다.

       

       이렇게 되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기게 된다.

       

       “어찌 상천의 잘못이 저희 모두의 잘못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전부 짐이 부덕한 탓이다.”

       “아닙니다. 폐하.”

       

       긍정하면 졸지에 다 같은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마왕군 간부들은 진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틈을 본 마왕이 애통함을 연기하며 물었다.

       

       “그녀의 죄를 어떻게 사하면 좋을꼬?”

       “마왕이시여, 하루라도 빨리 배신자를 벌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군과 종족의 기강이 설 것입니다.”

       

       금안들은 하나같이 ‘그런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

       

       마왕의 연설로 인해 군의 사기는 올라갔다.

       

       “그렇군, 창천의 말이 일백 번 옳도다. 흑주가 있는데 우리에게 장애가 어디 있더냐? 반항하는 자는 이번과 같은 꼴을 수십 수백 번이고 보게 되리라.”

       “마왕님의 말씀을 들었나? 진군을 명령하셨다. 반항하는 것들은 전부 죽여 버려라!”

       

       – 우와와아!!

       

       우우우웅.

       

       열두 번째 공격이 시작된다.

       

       대열을 맞춘 군단이 들판을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들은 밥 대신 기름을 보급받고, 스태프 대신 포를 지급받았다.

       

       “출격하라!”

       

       쿵, 쿵, 쿵, 쿵!

       

       오와 열을 맞추어 폐허가 된 동부전선으로 들이닥치는 마수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보초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이윽고 상대 진영에서 긴박한 사이렌이 울렸다. 참호에 틀어박혀 있던 마도사들이 주섬주섬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전열의 마수들은 탄환과 포를 쏘아대며 한 명씩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놓았다.

       

       공군의 위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마왕에게 의탁한 용들이 입에서 낙뢰를 내뿜었다. 제국군은 까맣게 구워지거나 입에 거품을 물었다.

       

       소수의 항공마도사들이 분전했지만 용족 상대로 인간은 무력했다. 제공권은 이미 빼앗긴 뒤였다.

       

       “이기겠군.”

       

       때문에 마왕은 이번 전쟁의 승기를 예측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내에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수도는 붕괴되었으니, 이곳 북부 전선만 넘기면 모든 게 일사천리이리라.

       

       게다가.

       

       호천의 군대가 엘프국을 남방으로부터 압박할 예정이다. 양동 작전은 처음부터 예정된 바였다.

       

       머지않아 엘프국도 완전히 패망하고, 정령계도 무너지리라.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폐하, 폐하!”

       

       전령 하나가 헐레벌떡 사령부 앞으로 달려왔다.

       

       “전장에 배신자가 나타났습니다!”

       “…소상히 말해 보라.”

       

       배신자라니. 마왕은 순간 기대하고 말았다.

       

       지금 현장에 에테르가 나타났다면 바로 취할 수 있을 테니까.

       

       “구천지대계 4석인 로즈마리입니다!”

       

       하지만 보고받은 건 전혀 다른 존재였다.

       

       “4석께서 인간을 돕고 있습니다.”

       “똑똑히 보았느냐? 특징을 말해보거라.”

       “예. 머리카락은 포도알과도 같았으며, 흑단나무보다도 어두운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마는 넓은데다가 양쪽 팔은 의수였습니다. 키는 150 언저리였습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자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우리 군을 홀리고 있습니다!”

       “성가신 계집이군.”

       

       언젠가 창천과 호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로즈마리는 에테르의 심복인데, 에테르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다고.

       

       “제 직속상관이 실각했으니 틀림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거겠지. 머리가 나쁘진 않을 테니 살기 위해서라도 배신한 것이리라.”

       “…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인간을 도와 우리 군의 진로를 방해했다.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겠군.”

       

       마왕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짐의 앞으로 녀석을 대령하라. 생사는 묻지 않겠다.”

       

       

       **

       

       

       “아하하하!”

       

       그래, 저 얼빠진 표정들을 봐. 이래서 인간들은 재미있다니까.

       

       로즈마리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깔깔거렸다. 가뜩이나 추운 설산지대를 더 싸늘하게 만드는 조소였다.

       

       “흐으음. 저건 또 뭐야. 또 오네?”

       

       이번엔 더 많은 수의 마수들이 들이닥치고 있다.

       

       땅에는 철갑을 두른 거미와 지네들.

       

       하늘에는 와이번과 삼족오들.

       

       거기에, 중간중간 보이는 용과 기간토피아까지.

       

       그야말로 대환장파티였다.

       

       “그래봤자 조무래기지.”

       

       로즈마리는 이번에도 위령을 연주했다.

       

       청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마수들의 의지를 완전히 앗아갔다. 와이번은 지네를, 거미는 삼족오를 공격하며 서로 뒤엉켰다.

       

       순식간에 두 웨이브를 정리한 로즈마리는 하스펠트 자매가 있는 곳으로 슬쩍 내려왔다.

       

       “블루베리, 너…….”

       “친한 척 하지 마, 인간. 큰언니 얼굴 봐서 도와주는 거니까.”

       

       로즈마리는 본래 인간들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인간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국인은 자신의 나라를 무너뜨린 녀석들인데.

       

       그건 아직도 용서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버멜 호르데라는 엘프와의 약속도 있었으니, 언니 얼굴을 봐서라도 이들을 도와주는 편이 좋으리라고 판단했다.

       

       “네가 우리 아버지를 살려준 거야?”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고마워, 블루베리.”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클라라.

       

       영문 모를 언짢음을 느낀 로즈마리는 손을 설렁설렁 흔들었다.

       

       위령을 두 번 연속으로 연주했던 탓에 속이 울렁거렸다. 전형적인 마력 고갈 증상이었다. 신체가 불덩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인간 앞에서 휘청거릴 수는 없었다. 로즈마리는 탕약처럼 쓴 웃음을 지으며 막사로 돌아갈 것을 독촉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두 군대 사이의 전투가 뜸해지고 있었다.

       

       “고맙군, 금안족 소녀여. 자네가 없었더라면 딸들 얼굴을 못 볼 뻔했어.”

       “흐흥, 알면 됐고.”

       

       총사령관인 레너윌이 직접 고개를 숙였다. 일부 과격한 장교들이 말렸으나 레너윌은 듣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감사를 전해야 체면이 선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하스펠트 자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거, 처음 봐요.”

       “블루베리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거듭 블루베리 블루베리 노래를 부르는 클라라. 로즈마리의 시선이 그녀에게 슬쩍 꽂힌다.

       

       ‘저 녀석…. 이젠 완전히 얕잡아보고 있잖아.’

       

       클라라야 로즈마리를 친근하게 대해주기 위해서 애칭을 부른 것이었지만, 로즈마리는 그런 클라라가 불편하기만 했다.

       

       애초에 두 언니 외에 애칭으로 불린 적이 단 한 번도 없기도 했고.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마왕군에서 대전략을 몇 번이나 짠 적이 있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훤히 꿰뚫고 있지.”

       

       척.

       

       로즈마리는 봉으로 지도를 짚었다.

       

       “마왕군의 군 편제는 인간들과는 달라. 죽은 놈이라도 부품을 회수하면 얼마든지 재활용이 돼.”

       

       그러니 마도사 한 명이 마수를 열 마리씩 잡아도 결국에는 밀리고 만다.

       

       그런 암울한 현실을 말해준 로즈마리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도 알려주었다.

       

       “북부 전선에서 군을 완전히 물려.”

       “뭐라….”

       “수도가 제 기능을 상실했으니 이대로라면 너흰 끝장이야. 다들 병법을 배웠으니 그 정도는 알 거 아니야?”

       

       수도가 뚫렸다는 건 후방이 사라졌다는 것.

       

       후방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보급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군기 바짝 든 정예병들이 여기서 백날이고 버텨 봤자였다. 결국에는 마왕군의 물량 공세와 원자폭탄 몇 발에 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 군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아까 전에 아저씨가 말하지 않았어? 엘프들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그러지 말고 차라리 엘프국으로 가는 게 어때?”

       “민간인은 버리고 가란 말인가?”

       “아이고야.”

       

       로즈마리는 이마를 탁 짚었다.

       

       이렇게 답답해서야 원.

       

       “전쟁에 민간인이 어디 있냐?”

       “민간인만이 문제가 아니네. 이대로 철수하면 군의 사기도 떨어지고, 그전에 습격받아 부대가 와해할 수도 있지. 무엇보다 엘프국에 우리 군을 의탁하면 일이 끝난 후 제국을 재건하는 것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요,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 아니야?”

       “우리 귀족에겐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놈의 의무니 명예이니 하는 것들.

       

       왕족의 정체성을 버린 뒤부터 같이 꺼뜨린 가치관이었다.

       

       그렇긴 해도.

       

       ‘일관적인 건 나쁘지 않아.’

       

       기사도가 유행하던 시대에 태어난 로즈마리였다. 

       

       끝까지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들.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말을 바꾸는 사람보다는, 그런 기사도를 지닌 사람들이 훨씬 나았다.

       

       “염치없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

       

       에테르만 아니었더라도 이런 귀찮은 일, 떠맡지 않았을 텐데.

       

       괜히 북방으로 날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로즈마리는 지도의 서쪽을 가리키며 입을 뗐다.

       

       “…현재 마왕군의 주력은 북부전선에 포진해 있어. 너희가 아무리 노력해 봐야 이길 수 없지. 그리고 그건 여기, 내가 짚은 서쪽도 마찬가지고.”

       “서쪽…. 수인족이 사는 곳 말인가요?”

       “그래, 피치블렌드 산이 있는 곳. 여긴 1번 집단군이 위치한 지역이야.”

       “1번 집단군이 뭐죠?”

       “민천 요르문간드가 이끄는 용족 부대. 숫자는 80만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하나같이 재앙급 이상의 정예들이지.”

       

       백야가 있다지만, 재앙급이 80만 마리.

       

       서방군이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용족이 새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까거든. 민천의 직계 친족만 3천 명에 이른다고 들었어.”

       

       뭐, 정작 요르문간드는 시집간 적이 없지만.

       

       그런 쓸데없는 정보를 덧붙인 로즈마리는 아렌스 대륙의 미개척지 곳곳을 짚어나갔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너흰 모르겠지만 여기가 다 헤츨링 나오는 곳이거든?”

       “말도 안 돼.”

       “아무리 용이라지만, 그렇게 숫자가 많을 수 있나요? 80만이라니….”

       “우리 기계인 거 몰라? 너희 인간이랑은 달라. 재료만 있다면 80만이 아니라 8천만도 만들어 낼 수 있어.”

       “…….”

       “자, 결론은 이거야. 너희가 며칠을 버티더라도 서부가 먼저 붕괴하면 앞뒤로 싸 먹힌다는 거.”

       

       주우욱, 하고 선을 긋는 로즈마리.

       

       피치블렌드 산맥의 끝부분부터 시작해서, 이미 파괴된 수도를 거치고, 다시 하스펠트 영지로 이어지는 포위망이 그려진다.

       

       로즈마리가 그은 선은 1번 집단군의 진격로나 마찬가지였다.

       

       “마왕군이 너희 멍청한 인족보다는 숫자가 더 많아. 당연히 포위가 들어오겠지. 게다가 수도까지 이미 털렸는데, 지금 너희 항복 안 하는 게 이상한 짓이라니까?”

       

       여기까지만 들으면 꼭 투항을 권하러 온 적의 사자 같았다.

       

       그러나 로즈마리의 말은 해결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북부의 군을 물리고 동쪽을 경유해서 남부로 후퇴해. 티림스 강 앞까지 가서 서방군과 합류하는 거야. 거기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카우렐리아의 원조를 받아 연명하라고.”

       “그러면 서부 전선은….”

       “서쪽에 있는 것들은 바로 남부로 뛰면 되잖아. 지금 너희가 후퇴하는 게 우선이라고.”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아니,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보급도 끊기고 마왕군은 계속해서 쳐들어오는 상황. 그나마 믿을 것이라고는 같은 마수가 내세운 작전뿐이다.

       

       레너윌이 물었다.

       

       “자네, 에테르라고 하는 소녀의 심복이라고 했나?”

       “그런데 왜?”

       “좋군.”

       

       레너윌 하스펠트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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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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