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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긴장했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긴장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딸려오는 옵션 같은 것이라, 막상 그때와 장소를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황궁으로 오는 내내 ‘황태녀’와 ‘황녀’를 만나러 간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검사를 당하고 감시받으며 걷다가, 커다란 문을 지나 마침내 알현실에 들어와 마주한 얼굴이 좀 많이 익숙한 얼굴이라면 그 긴장이 탁 풀려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클레어도 그랬다.

        

       “언—”

        

       언니, 라고 하려던 클레어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기사나 병사는 없었다. ‘알현실’치고는 여러모로 꽤 휑해 보이는 곳이었다. 뭐랄까, 이런 곳에서 외국에서 온 사신을 받았다가는 ‘제국은 의외로 가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받을 것처럼.

        

       “황제가 개인적으로 쓰는 알현실이야. 중요한 사람을 공식적으로 만나야 하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비공식적이어야 할 때 쓰는 곳. 황제와 직접 만나는 이 외에는 따로 들어올 이유가 없는 곳이니 장식도 없지.”

        

       “그런 거야?”

        

       본능적으로 되묻긴 했지만 사실 클레어도 여기 와보는 것은 처음이다. 차기 황제인 앨리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따지자면 실비아가 앨리스의 호위인 것처럼 옆에 서 있긴 했다. 제대로 무장도 하고 있었고. 다만 본인에게서 살기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문자 그대로 무장‘만’하고 있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젠 유일한 황녀인 실비아도 호위받아야 할 처지였다. 앨리스 다음으로 높은 황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폰은?”

        

       “밖에.”

        

       그리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실비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사실 황궁 바깥에서 그리폰이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듣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제국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인간을 따르는 그리폰이다. 귀족들은 그리폰의 모습만 봐도 엄청나게 경계했다.

        

       그냥 사치스러운 짐승 하나가 딸려왔다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사람도 존재했다.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영물 비슷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그리폰이었기에 ‘그리폰이 황실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앨리스는 그 모든 소문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택했고.

        

       “……어제 한 기사의 애마를 주워 먹어서, 한동안은 실내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어.”

        

       실비아의 그런 반응을 보고 앨리스도 똑같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고를 많이 치나 봐?”

        

       “그보다는 너무 많이 먹지. 그것도 순수한 육식으로.”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매일 돼지나 소 같은 걸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배고픔을 굳이 참지 않고 주변에 있는 동물을 사냥해. 다행히 지금까지 사람을 공격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황궁 안에 언제나 존재하는 기사들의 말이 표적이 되기 딱 좋은 것도 사실이니까. ……황궁 안에 돼지우리라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가 실비아를 향해 흘끗 시선을 던지자, 실비아는 그 시선을 살며시 피했다.

        

       “……그냥 짐 덩어리 아니야?”

        

       “그런데 어쩌겠어? 본인이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데. 그리고 원래 비싼 동물은 죄다 짐 덩어리야. 이전에도 황궁에서 굳이 코끼리나 코뿔소를 애완용으로 기른 황제들이 있으니까. 이건 그 연장선이라고 봐야겠지…… 아, 애완동물이라는 말은 그리폰 앞에서는 하지 마. 화내더라.”

        

       “…….”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우리 목숨을 구해준 존재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오가 안되었다는 듯 말하자, 앨리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냥 짐 덩어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얼굴에 원망의 빛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폰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동물을 공급하는 것은 제국 기준으로는 마냥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리폰이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리폰이 가지는 상징성, 그리고 그 상징성 덕분에 얻는 이득을 생각하면 감수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감수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리폰 본인이 비키질 않으니 어쩔 수 없지만.

        

       “뭐, 그리폰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앨리스는 어깨에서 힘을 살짝 빼며 말했다.

        

       황제의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있긴 했지만, 안 그래도 덩치가 큰 황제의 몸에 맞춰 만든 자리이다 보니 앨리스가 차지하고 앉기에는 좀 지나치게 큰 느낌이 있었다. 팔걸이에 팔을 대고 앉으면 양어깨가 위로 불쑥 올라와 잔뜩 긴장된다.

        

       결국 그 자리에 앨리스가—혹은 실비아가—편하게 앉는 법은, 양손을 다소곳이 모아 무릎 위에 올려두는 것뿐이었다.

        

       “전해줄 것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응, 맞아.”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는 품 안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전에도 한 번 본 적 있는, 꽤 고급스러운 종이를 이용한 편지 봉투였다.

        

       그리고 그 봉투를 본 실비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실비아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능력을 잃기 전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지금은 그 ‘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실비아가 당황할 때마다 시간을 얼마나 돌렸는지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의 편지야. 다른 ‘딸’을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내용.”

        

       클레어는 편지를 앨리스가 아닌 실비아에게 향하며 말했다. 사실 이게 맞는 것이긴 했다. 황제씩이나 되는 사람이, 편지를 직접 받을 일은 없으니까. 물론 여기서 클레어가 실비아에게 편지를 건넨 것은 다른 이유였지만.

        

       “어째서인지 편지가 언니한테 배달될 때마다 언니가 자리를 비워서 우리가 직접 가지고 온 거니까, 이번에는 꼭 받아줬으면 하는데.”

        

       클레어의 말에 실비아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클레어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그레이스 남작 부부는 몇 번이고 실비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마다 실비아는 어째서인지 그리폰과 사냥을 나가서 늘 편지가 반송되어왔다. 굳이 반송시키지 않고 보관하려면 방법도 많았을 텐데.

        

       게다가 이상하게도, 편지를 보낼 때마다 도착하기 전에 실비아가 자리를 비웠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은 이제 없으니 사람을 썼다고 생각하는 쪽이 합리적일 것이다. 실비아는 굳이 그런 수고를 들여가면서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

        

       실비아는 말없이 앞으로 나와 클레어의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받았다.

        

       “기왕 받았으니, 이 자리에서 읽어봐.”

        

       “예?”

        

       편지를 품 안으로 넣으려는 실비아에게 클레어가 얼른 말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으니까. 언니가 직접 편지를 읽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라고.”

        

       “…….”

        

       클레어의 그 말에 실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후우, 하고 내쉬었다.

        

       그렇게 심호흡을 몇 번 정도 반복하는 사이, 실비아의 표정은 다시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이제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실비아는 편지 봉투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냈다.

        

       편지 봉투에 담긴 편지이긴 했지만, 굳이 봉투를 봉하지는 않았다. 클레어가 말했던 대로 반드시 실비아가 열어볼 것을 가정하고 쓰였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확인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굳이 닫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클레어나 레오가 직접 읽어서 문제가 될 내용도 아니고.

        

       실비아는 말없이 편지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크림색의 고급 종이를 펼쳐 들고 천천히 편지를 읽는다.

        

       실비아의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며 편지를 읽어갔다.

        

       읽는 내내 그녀의 표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꾹 다물고 있는 입가에 점점 굳게 힘이 들어가는 것은 클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뭐라고 쓰여있어?”

        

       편지를 다 읽었는지 시선을 드는 실비아를 향해 클레어는 조용히 물었다.

        

       “언제 한 번, 집에 와서 차나 한잔하자고 쓰여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습니다.”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편지를 접어 봉투에 다시 넣고, 그 봉투를 입고 있는 코트의 품 안에 넣었다.

        

       “그래서?”

        

       클레어는 다시 한번 물었다.

        

       “우리 집에 올 거야? 언니?”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실비아는 그런 클레어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앨리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뭐, 나는 외부인이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않을게. 편하게 다녀오도록 해.”

        

       실비아와 눈이 마주친 앨리스는 양손을 들고 팔랑팔랑 종잇장 흔들듯 흔들며 실비아를 놀리듯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지만 실비아는 그런 앨리스의 말을 바로 부인했다.

        

       “편지에는 황태녀 전하도 함께 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어?”

        

       실비아의 말에, 클레어는 시선을 돌렸다.

        

       “맞아. 언니를 ‘동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가 더 언니인지는 몰라도, 그러면 우린 자매나 다름없는 거잖아. 안 그래?”

        

       “……어어?”

        

       그렇게 당황하는 앨리스의 목소리는, 의외로 실비아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것보다도 훨씬 안 어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후원해주신 분들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는 밤중에 후기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볼드모트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작가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실때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써두고 혼자 읽어봐야 뭐가 재미있는지 잘 모르거든요. 남이 쓴 글이라면 그 뒷내용을 모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제가 직접 쓴 글은 그걸 판단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독자 여러분들의 칭찬을 들으면 기운이 납니다. 제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거의 끝에 다달해서, 차라리 완결을 확실하게 내고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저의 성격상 아마 한 번 쉬면 정말로 오래 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차라리 느리게라도 계속 연재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받으니 기운이 나네요. 최대한 빠르게 페이스를 되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글이라는 것이 한 번 처지기 시작하면 계속 처지기 마련이니까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벌써 지쳐서는 곤란하겠죠.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어떤 소설을 쓰건, 저의 글을 읽어주시며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의 도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에 보답할 수 있도록 꾸준히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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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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