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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아이의 성장은 당연 기뻐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갑작스러운 성장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곤란할 뿐이다.

     

    저렇게 커버리면 아카데미의 친구들하고는 대체 어떻게 어울리겠는가?

    당장에 밖에 나갈 때 입을 옷도, 맞는 속옷도 준비되어있지 않아 나가는 것도 곤란할 뿐더러, 평소처럼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도 문제가 생긴다.

     

    자신만 해도 이런저런 고민이 이렇게나 많이 드는데, 루크 본인은 오죽할까?

    그 증거로 아까 전부터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루크의 표정이 그닥 밝지 않다.

     

    보통 신체의 성장은 이런저런 심리적인 성장과 함께 동시에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져야만 건전한 사고가 자리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루크는 신체의 성장에 전혀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루크도 일단 여자아이인 만큼, 여자아이들이라면 다들 겪는 일들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루크는 지금 그 모든 것을 건너뛰고 커버린 몸만 덩그러니, 떠안아버린 셈이다.

     

    최근 새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그 ‘힘’과 더불어, 이런 부작용이 굉장히 혼란스럽겠지.

     

    “그래서, 언니가 이제 뭘 어떻게 도와주면 돼? 뭔가 필요한 게 있니?”

     

    예르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딱히 언니한테 제가 따로 부탁드릴 만한 일은 없어요. 제가 혼자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거에요.”

     

    애초에 명상을 하다가 멍청하게 졸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예르나가 오기 전에 끝낼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 그리고 집중력이었다.

     

    “그러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나보구나. 그렇다면 다행인데……. 정말로 괜찮겠어?”

     

    루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러고보니 하나 부탁드릴 게 있네요. 제가 명상에 집중할 수 있게 방해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어. 어차피 나도 샤워하고 나서 자려고 했으니까.”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나야말로, 부디 잘 해결되길 빌게.”

     

    예르나는 되도록이면 루크가 빨리 예전의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도, 루크도 바라는 결과일 테니까.

     

     

    ——

     

    그렇게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에 거실로 나온 예르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

     

    예르나는 루크를 바라보며 괜스레 침을 삼켰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편안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는 루크는, 정말로 무슨 여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니까.

     

    나중에 루크가 크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항상 귀엽기만하던 루크가, 나중에는 저렇게 예쁘게 자란다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해보니 기분이 상당히 미묘했다.

     

    이제 루크를 만난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자신은 루크와 함께 참 많은 일들을 겪었구나, 싶다.

     

    하긴, 루크라고 언제나 귀여운 10살인 채 살아갈 수는 없겠지.

     

    루크도 모두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아카데미도 졸업하고, 직장도 얻게 될 것이다.

     

    아마 저렇게 예쁘면 남자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지 않을까?

    되도록 사귄다면 착하고 좋은 남자랑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루크는 똑똑하니까, 남자를 보는 눈도 틀림없이 깐깐하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루크가 알아서 잘 하리라.

     

    ‘후훗, 벌써부터 엄마 같은 고민이 다 드네.’

     

    예르나는 소리없이 웃었다.

     

    루크의 커버린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나중에 있을 일들을 상상하니까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비록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루크도 엄연히 예르나의 자식이었으니까.

     

    “…….”

     

    하지만 현재 루크의 모습은 단지 ‘커졌다’라고 하기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 뿔.

     

    4개의 뿔이라니, 그런 건 너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일반적인 사람들과 형태가 다르니까.

     

    혹시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는 않을까.

     

    예르나는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 루크의 모습을 보면, 루크는 그런 것도 다 금방 떨쳐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창 밖을 보았다.

     

    하늘은 조금 흐렸다.

    어쩌면 오후엔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목욕가운만 계속 걸치고 있으면 춥지 않을까?’

     

    지금은 가을답게 꽤나 쌀쌀한 날씨다.

    아무리 집이라지만 요즘같은 환절기에 목욕가운만 걸치고 있다간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담요라도 가져와서 덮어줘야겠다.’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몸이 따듯해야 집중도 더 잘되는 법이니까.

     

    그렇게 예르나가 담요를 가져와서 루크의 어깨에 두르는 순간.

     

    “흐으아…….”

     

    루크가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조금씩 앞으로 숙이기 시작했다.

     

    “……!”

     

    예르나는 그런 루크의 행동에 순간 혹시나 자신이 잘못했나 싶어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그러나, 이내 루크가 보인 행동은 예르나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루크는 숙인 고개를 빠르게 다시 들어올리고는, 몇 초 뒤에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또 어느정도 고개가 내려가면, 다시 빠르게 고개를 들어올려 원위치에 되돌리고는 몇 초 뒤에 다시 서서히 고개를 내렸다.

     

    마치 아주 천천히 방아를 찧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몇 번 루크의 행동이 반복 된 이후, 예르나는 확신했다.

     

    예르나는 이 행동의 의미를 알았다.

     

     

    “루크……? 혹시 자니?”

     

    이건 자신 뿐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게 명상일 리는 없으니까.

     

    “루?”

    “음냐……. 흠……. 냐…….”

     

    누가봐도 잠꼬대인 웅얼거림을 들으며, 예르나는 맥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명상을 한다더니, 결국 자버린 모양이다.

    “하, 하하. 많이 피곤했나보네.”

     

    예르나는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루, 졸리면 들어가서 침대에서 자렴, 언니는 소파에서 잘 테니까.”

    “응음……. 조금 더…….”

     

    루크의 나른한 중얼거림을 들은 예르나는 순간 손을 멈추며 말했다.

     

    “일어났니? 그럼 얼른 침대로 가자.”

     

    하지만 루크는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엄마.”

    “……루? 바, 방금 나한테 엄마라고 한 거니?”

     

    예르나는 루크의 잠꼬대에서 예상치못한 호칭이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그러자 루크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엄마, 가지마…… 조금만 더 쓰다듬어줘…….”

    “아……. 잠꼬대였구나.”

     

    예르나는 그 말에 루크가 아직 잠꼬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루크가 부른 ‘엄마’는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루크는 지금 자신의 ‘진짜 엄마’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예르나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루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으헤헤……. 기분좋아…….”

     

    그러자 루크는 귀까지 쫑긋거리면서 웃는다.

    루크는 대체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까.

     

    예르나는 루크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참, 몸이 크니까 더 어린애 같아졌네, 루크는.”

    “헤에…….”

    그렇게 예르나는 한동안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며칠 후.

     

    루크는 성인 남성과 비견될 정도로 컸던 신장은 이제 훌쩍 줄어들어 어린이라는 범주에 맞게 되었고,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던 가슴은 이제 전보다 약간 더 큰 정도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으며, 머리를 장식하던 4개의 뿔 역시 기존의 두개로 줄어든 상태였다.

     

    “드디어, 드디어 5서클에 도달했다…….”

     

    그렇게 이전과 같은 어린아이의 몸으로 돌아온 루크는 이마를 테이블에 찧으며 쓰러졌다.

     

    ‘키는 나중에 재자.’

     

    본래라면 곧장 키를 재서 ‘서클이 성장하면 키도 성장한다’라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려고 했겠지만, 지금의 루크는 그럴 기력도 없었다.

    서클을 올리는 작업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아아…….”

     

     

    루크는 피곤함이 찌든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어떻게 명상을 할 때마다 자버릴 수가 있단 말이냐…….’

     

    그 뒤로도 몇번이고 몇번이고 명상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히 자신은 잠에 빠졌다.

    한두번이라면 실수라고 하지만, 어떻게 모든 상황에서 계속 자버린단 말인가?

     

    이건 더 이상 집중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몸에서 정순하게 정제된 마나를 거부하는 듯 한 반응.

     

    ‘어쩌면 신성력의 비중이 더 높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서클을 다루려 한다면 잠들어버리는 걸지도…….’

     

    신성력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었던 경험이 있는 존재는 루크가 있던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으니 그 사실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실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육신은 그렇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쓰러져있는 루크를 바라보며 예르나는 웃으며 박수를 쳐 주었다.

     

    “축하해, 이제 정말로 돌아왔네.”

    “축하 고맙군, 예르나…….”

     

    루크는 어느새 곁에 다가온 리브에게서 피로 회복의 영약을 담은 컵을 건네받아 홀짝이며 예르나를 바라보았다.

    예르나는 어쩐지 조금 아쉬운 듯 한 표정이었다.

     

    “…….”

     

     

    그 이유를 짐작한 루크는, 쉽사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잠꼬대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어째서인지 자신이 명상을 하다가 졸고 일어나면 언제나 예르나의 무릎 위에서 눈을 뜨곤 했다.

     

    그 때마다 예르나는 항상 ‘좋은 꿈 꿨어?’라고 물어보았는데, 루크는 도무지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꿈 같은 거 꾼 적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예르나는 언제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으래?’라고 웃어버릴 뿐이라, 그것은 항상 루크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도무지 자신이 무슨 잠꼬대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 루크는 결국 자신이 혹시 뭐라고 잠꼬대를 하느냐 물어보았는데, 그 때 들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라느니, 안아달라느니, 쓰다듬어달라느니…….

     

    자신이 제정신으로는 결코 하지 않았을 그런 말들을 혼자서 마구 내뱉으며 행복하게 웃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어쩌면……. 그건 파르바티의 잔여인격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절대 자신은 아닌 것이다.

     

    “으음……!”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컵을 바짝 들어올려 컵에 담긴 영약을 모조리 삼킴과 동시에 얼굴을 가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몸이 크면 오히려 능지가 떨어지는 마법사…
    능지떡락이 싫으면 신성력은 꼭 필요할 때만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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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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