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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학교에 도착한 엘라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사부님의 방이었다. 중간중간 친구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사부님을 설득할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과 그의 얼굴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앞치마 차림의 소녀가 있었다.

         

       “엘라 왔니?”

         

       갈색 머리의 소녀는 따뜻한 미소로 엘라를 맞아주었다. 가는 눈매 덕에 언제나 서글서글한 인상을 풍기는 그녀의 이름은 안나였다.

         

       “사부님 붕대 가는 시간이었어?”

         

       엘라가 능청맞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미리 구돌이를 정찰시킨 덕에 사부님과 안나가 같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나는 찰리와 더불어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으로, 이 학교에서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연습 중에 찢어먹은 옷을 수선하고, 때때로 사부님을 대신해 마을 밖으로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사부님은 그녀의 요청은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부님께 부탁할 거리가 있으면, 그녀에게 먼저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아이들의 편을 잘 들어주었고, 아이들 대부분도 맏언니라 할 수 있는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엘라도 그녀가 있으면 사부님을 설득하는 일이 한결 쉬워질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부러 상황을 살피다가 사부님 붕대 가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한 것이었다.

         

       “오늘 공연은 어때? 수입이 좀 있었어?”

       “물론. 아주 큰 게 걸렸지!”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안나는 짐작이 간다는 듯 눈웃음을 쳤다.

         

       “후훗, 네 표정을 보면……또 어디선가 영입 제의를 받은 모양이네?”

       “엇, 어떻게 알았어?”

       “아까 애들이 그러더라. 네가 웬 외지인이랑 같이 있다고.”

         

       그 말에 엘라는 사부님 쪽을 슬쩍 바라봤다. 붕대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쳇, 뭐야. 다 알고 있었잖아.

         

       “고자질쟁이들.”

       “애들이 말 안 해도 난 눈치챘을 거다.”

         

       붕대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는 어깨 너머 창문을 가리키며 끌끌 웃어 보였다.

         

       “구돌이가 그렇게 밖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니?”

         

       그의 말에 엘라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동물들의 기척은 기가 막히게 잘 감지하는 그였다.

         

       “그래서 이미 결정을 내린 거야?”

       “아니. 사실 나도 네가 들어오기 직전에 안나에게 막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네가 왜 구돌이로 날 관찰하나 싶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 그래. 얘기해 보거라, 엘라. 이번에는 어디냐. 젊은 남자라고 들었는데, 혹시 저번처럼 카바레에서 온 것은 아니겠지?”

       “에이, 참. 그러면 내가 이렇게 안 달려왔지. 나도 그런 곳은 들어가기 싫다고.”

         

       엘라는 이곳 학생 중에서 윌리에게 반말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녀는 아기 때부터 그를 친할아버지로 여기며 자랐기 때문에 그를 편하게 대했다.

         

       윌리 역시 엘라에게 유독 약했다. 아무리 엄하게 나가려고 해도 그녀가 생글거리면서 할아버지 소리를 하면 그도 더는 화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부님이 화가 났다 싶으면 엘라의 뒤에 숨곤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엘라는 오늘 만난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에 대해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엘라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안나에게 곁눈질을 보냈다. 그녀보고 사부님 설득하는 것 좀 거들어 달라는 신호였다.

         

       “어때? 괜찮지 않아?”

         

       그러나 엘라의 이야기가 끝날을 때, 안나는 마땅찮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좀 위험하지 않을까?”

       “뭐? 왜?”

       “아니, 그렇잖아. 그렇게 젊은 나이에 혼자 서커스단을 창업한다는 것도 그런데, 15살짜리 여자애를 첫 영입 대상으로 삼는다? 수상쩍지. 어린 여자애를 노리는 사람이면 어떡해? 예전에도 그런 사람 있었잖아.”

       “하, 하지만 이분은 그런 이상한 부류랑은 달라! 내 길들이기 쇼를 알아봐 줬단 말이야!”

       “그냥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은 거 아니야? 인상이 좋다던가, 재능이 보인다던가.”

       “아니라니까!”

         

       엘라는 그녀가 자꾸 초 치는 소리만 하는 게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물론 그녀는 순수하게 그녀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였지만, 이러다가 또 사부님 입에서 안 된다는 말이 나올까 엘라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때, 여태껏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윌리가 입을 열었다. 엘라는 그가 뭐라고 하든 반박할 작정으로 도전적인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도 안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네가 좋다면 그렇게 해라.”

       “사부님?”

         

       안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렇게 영입 제안을 초장에 받아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서커스단에서 온 제의도 그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검토하고, 아이에게 해당 서커스단에 들어갔을 때의 이점과 단점을 설명해주고 동의를 받은 다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엘라도 그가 이렇게 나올 줄 전혀 몰랐는지 잠시 멍청히 그를 바라봤다가 말했다.

         

       “어, 할아버지, 진짜야? 빈정대는 거 아니지? 혹시 새로운 재담의 도입부야? 이래놓고 뒤에 ‘계약금으로 황금 10톤이 필요하겠지만’ 같은 단서를 붙이는 건 아니지?”

       “진심이다. 그러니까……음, 네 길들이기 공연을 그렇게까지 꿰뚫어 봤다면, 확실히 널 믿고 맡겨도 될 것 같구나. 일단 몇 주 뒤에 직접 얼굴을 보고 확실히 결정할 일이지만.”

       “정말이지? 무르기 없기다? 나중에 딴 말 하면 안 돼?”

         

       엘라는 신나서 펄쩍펄쩍 뛰며 방을 나갔다. 안나는 윌리에게 뭔가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음으로써 그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이윽고 안나까지 방을 나가자, 윌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서서 먼 사막의 언덕을 바라봤다.

         

       그는 방금 엘라가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겨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금발 미남자라. 원더스타인. 여전히 그 얼굴을 하고 다니는 건가.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의 모습을?”

         

         

       ***

         

         

       엘라가 서커스단에 영입 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은 학교 전체에 금방 퍼졌다. 그러나 본인이 신난 것과 달리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1인 서커스단이라고?”

       “무명의 20대 마술사? 수상쩍은데.”

       “사부님도 몇 주 뒤에 얼굴 보고 결정하자고 했잖아. 그냥 엘라랑 말싸움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냐? 어차피 안 나타날 것 같으니까.”

       “야, 너 사기 당한 거야.”

         

       아이들이 그녀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부님이 계약에 대해서 얼마나 까다롭게 구는지 다들 봐왔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이미 몇 번이나 제의를 받았지만, 사부님의 반대로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부님이 친손녀처럼 아끼는 엘라를 웬 뜨내기에게 넘긴다고?

       도저히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엘라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빈정대거나 농담을 던지곤 했다.

         

       특히, 남자애 중 찰리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어거스트가 가장 짓궂게 굴었다. 그는 ‘꼬맹이 엘라’라는 어릴 적 별명을 아직도 입에 붙이고 살면서 그녀를 놀릴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물론 그때마다 그는 분노에 찬 엘라의 발길질에 걷어차여야 했다. 그래도 그는 뭐가 좋은지 껄껄대며 그녀에게 웃으면서 얻어맞곤 했다.

         

       구석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비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거스트는 저래서야 평생 무리겠지?”

         

       그녀의 말에 광대 분장을 반쯤 지우다 만 베로니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관심을 끌고 싶으면 다르게 해야지. 저게 뭐냐. 시비 걸고 장난치고…….”

       “평생 친구로 지내겠네.”

       “그게 만족스럽나 보지. 저 미련한 자식은.”

         

       베로니카의 빈정거림에 비올라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어거스트가 잘 좀 해서 엘라를 데려가 준다면, 남은 찰리의 옆자리는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엘라에게 적극적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는 그녀로서 찰리가 어떻게든 엘라를 포기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거실 구석에서는 안나가 아이들이 꾸려놓은 짐을 검사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미키! 너 어떻게 된 거야? 예비 옷이 3벌밖에 없잖아. 내가 미리 빨아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괜찮아, 나 베가스 바닥 잘 알잖아. 동문 쪽 의류 시장에 가서 훔치면 돼.”

       “얘가! 서커스를 배우기로 한 이상, 다시는 도둑질에 손 안 대기로 했잖아!”

         

       안나는 엉거주춤 서 있는 미키의 뺨아 당기며 말했다.

         

       “우, 우앗! 농담이었어, 안나 누나! 빨게! 빨게! 지금 빨면 내일 밤까진 마를 거야!”

         

       안나는 학교 개설 초창기에 들어왔지만, 곡예에 대한 재능은 별로 없었다. 아직도 기초 곡예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미키보다도 실력이 떨어졌다.

       물론 미키는 어렸을 때부터 베가스 시장바닥에서 소매치기로 살아온 덕에 엘라와 찰리를 제외한 누구보다 곡예를 익히는 속도가 빠른 탓도 있었다.

         

       어쨌든 안나가 어느 순간부터 살림꾼을 자처하고 나선 것도 그런 재능의 차이를 실감해서였다. 이미 자신은 곡예사로서 성공하기 힘드니 다른 방식으로 이곳에 보탬이 될 거리를 찾은 것이다.

         

       그녀의 얼굴 절반을 덮고 있는 붉은 반점도 그 때문에 생긴 거라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그녀가 아직 길거리 공연을 나가곤 했을 때, 그녀는 공연의 수고비로 염색 공장에서 쓰는 탈색제를 받아 왔었다. 그녀는 그것을 단체 세탁 시간에 함께 나눠 쓰려고 했다.

         

       그녀는 그것이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는 공업용 화학물질임을 몰랐다. 상인들이 가진 제일 좋은 물건이라고 해서 마냥 비싼 세제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단체로 빨래하는 물에 풀었고 그 때문에 그 물로 빨래를 했던 아이들은 손이 퉁퉁 붓고 말았다. 그 물을 직접 몸에 끼얹기까지 했던 그녀는 전신의 피부가 벗겨지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녀의 피부도 많이 회복되었지만, 새살이 돋은 흔적은 감출 수 없었다.

         

       미키는 그녀의 화상 자국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그걸로 몸을 씻으려다가 사고를 당한 걸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미키가 장난을 치다가 그만 탈색제가 담긴 물을 엎어 그녀가 뒤집어썼기 때문이었다.

       그가 유독 안나에게 약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녀는 그 사고 이후로 무대에 오르기를 확실히 포기했다. 그래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질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곡예 외적인 면에서 친구들을 도우며, 지금은 다른 꿈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비록 직업의 특성상, 주변에 함부로 밝히고 다닐 수 없었기에 사부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평가원이 되는 수습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것은 곡예사의 길을 포기한 그녀가 안타까워서 사부님의 인맥으로 소개받은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근 1년 동안 사부님의 심부름을 핑계로 자주 다른 동네에 자주 왔다갔다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 이제 몇 주만 있으면 장장 15개월에 걸친 그 과정도 끝이 났다. 그러면 그녀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정식 평가원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 과제는 며칠 뒤에 있을 베가스의 ‘극장가 축제’에 참여해 그곳의 공연들을 보고 그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마침 잘된 일이었다.

       모레는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서커스 학교 전체가 그곳으로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굴해 님, 5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새우냥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최대한 완결까지 잘 안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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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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