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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자, 한 번 케이크를 잘라 봐. 지금 우리 분당 최고 시청률은?”

         “계속 최고치를 조금씩 갱신하고 있어서 말씀드리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44.72%입니다 국장님. 아무래도 이 시간대엔 주요 예능도 없고, 저희 쪽 다른 프로그램들도 침묵 중인 게 크게 유효했네요. 네….”

         

         전체적으로 살짝 어두컴컴한 실내 광량에 비해, 거대한 단일 패널에 분할 모니터링 시스템을 적용하여 건물 내부와 여러 채널의 방송 화면을 다양하게 띄워 놓은 일반적인 현대 관찰 시스템의 불빛이 눈부셨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은 모니터를 수십 개씩 따로따로 붙여서 열악한 해상도를 가진 이미지를 억지로 잡아 늘려 놓은 것 같은 구시대적인 풍경도 공존하는 이곳은 메모리얼 타임즈의 여러 심장 중 하나, 보도국 소속 부조정실이었다.

         

         분명 일하던 직원들은 차라리 그 밀실에 틀어박히라는 대피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유능하고 숙련된 직원으로 가득해야 할 이 장소엔 두 명밖에 없었지만.

         

         “44.72…!? 씨발. 숫자가 꼴릴 수도 있다는 건 또 처음이군! 당장 바지와 팬티를 벗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몸이 불편해지는데…!!”

         

         “모건 국장님 제발… 그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정보를 왜 하필 제 뇌에다가.”

         

         처절하게 한탄하던 부조정실 담당 고참 직원은, 촉망받는 인재답게 그런다고 이 지옥이 빨리 끝나게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금세 깨닫고는.

         현재 인질 겸 직원으로서 두 배의 급여를 받아도 모자라게 혹사당하고 있는 뉴스 룸 사람들과 한층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화면을 세부 조정하기 시작했다.

         

         망할 시청률을 50%까지 끌어올리면 저 시청률에 미친 귀신 피트 모건이 기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담아.

         

         그래,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사실이다.

         

         저기 스튜디오들과 라이브 채널 룸에서 죽어라 카메라로 뭔가를 찍어봐야 실질적으로 모든 송출 권한을 가진 전지전능한 부조정실에서 ‘너네 미쳤니? 응~ 이건 시발 절대 방송에 못 써~’하고 잘라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방송 윤리와 컨텐츠 규범을 따져서 실시간 방송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셈이지.

         

         따라서 테러리스트가 생방송 한중간에 난입해 자기들이 열심히 지어온 시문을 읊는 낭독회를 가지려면 먼저 ‘협조하지 않으면 인질은 모두 죽는다!’와 같은 여러 협박과 협상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겨우 가능한 법인데….

         

         ……그런 선행 과정이 당최 있긴 있었나?

         

         저 아르카디아 놈들이 들이닥치자마자 모건 국장님은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다는 것처럼 모든 번외 프로그램을 긴급 중단하고 여기에 포커싱을 맞추지 않았는가?

         

         마치… 무슨 긴밀한 약속. 아니, 약조라도 되어있던 것처럼.

         

         “저기, 모건 국장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음? 뭔가? 일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뭐든 떠들어도 괜찮지만, 만약 시청률이떨어져서내판단을물으려는거라면난자네들의능력에정말실망을금치못할.”

         

         “방금 또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기쁜 소식을 그냥 빨리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옙!!”

         

         체면치레로라도 그런 불경한 합의가 없었다는 걸 확인받으려던 부하 직원은 황급히 뒷말을 정정하는 걸로 주제를 돌렸다.

         

         평소엔 볼록 나온 배와 풍성한 수염이 주는 후덕한 인상 뒤에 숨어있는 개또라이 기질이 금방이라도 피부를 찢고 튀어나올 것 같았기에.

         

         여러가지를 알게 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최대한 모르고 사는 게 존나 안전한 약이라는 상식을 연신 되새기며 말이다.

         

         기실, 논리적 추론을 통해 근접한 진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르카디아 교단 측은 다가오는 종말의 디데이에 맞서 사상 전파는 물론, 언더그라운드 컬트 신세를 벗어나 세간에 크게 이름을 날릴 기회를 원했고.

         

         피트 모건 보도국장은 긴급 상황이라는 핑계로 모든 방송 관련 법령을 무시한 채 아주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재료를 식탁에 올리기를 바랬다.

         

         단지 이 사이비 교단은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기껏 물려준 드로이드를 역으로 빼돌린 걸로도 모자라 지하에서 뭔가 막 신나게 터트리고 있으며.

         교활한 국장은 수틀리면 집안 식구조차 사람들 앞에서 물어 죽여버리는 에나마의 미친 감찰 이사를 초청하는 날에 맞춰 그들을 같이 불러들이는 걸로 안전 장치를 걸었으니.

         

         좋게 말해서 만일을 대비하는 거지, 실제로 합의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전부터 서로 뒤통수 칠 궁리만 하고 실행으로 옮긴 아름다운 모습은 끼리끼리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래도 한가지 다행인 것은 표면적 합의가 남아있는 한 생방송 도중에 극단적인 참수 쇼가 펼쳐지지도 않을 것이며, 협조하는 한 아무도 죽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현장 인원들에게 뒤늦게나마 귀띔 되었다는 건데.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협의였음에도, 그걸 토대로 언제나 당차던 미모의 아나운서가 피를 흘려가며 본분을 다하는 모습은 통쾌함이던 음습한 욕망이던 시청자들 스스로도 자신이 원하고 있었는지 모를 무언가를 충족시켜 주는 느낌이 있었다.

         

         시청률은 연신 고공행진, 개고생하는 건 기본이고 죽어 나가는 보안 부문 직원들도 있었으나… 원래 계약에 포함된 업무이니 문제없음!

         

         이제 여기서 한 가지 변수라면 정작 굉장히 신경 써서 불러들인 소재거리 겸 맹견이, 선 넘는 사이비 찌끄레기들을 잡아 찢기는커녕 배부른 것처럼 완전히 늘어져 있다는 것 정도?

         

         “더글라스. 우리의 에다마츠 이사님은 여전히 홀로그래픽 스튜디오에 가만히 계신가?”

         

         – …예, 대테러 특수부대나 여러 기업 소속 병력들이 진입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거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실 텐데 내부 대치가 곧 해소될 것처럼 편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무슨 일인지 적당히 좀 알고 싶은… 국장님? 저기요 국장님?? –

         

         “그렇단 말이지….”

         

         원하던 정보만 쏙 빼내고선 자신을 애타게 찾는 더기 MD의 목소리 수신을 야박하게 차단한 모건의 눈이 엄청난 속도로 굴러 사이버웨어 화면과 부조정실 모니터들을 훑어냈다.

         

         원인을 분석하고 추측하는 과정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현재 방송국 건물 전체를 샅샅이 뒤집어 엎는다 가정하더라도 그가 그린 그림을 벗어나서 행동하는 변수들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하나같이 전부 그의 초대받은 손님들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국장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르카디아 세력이 아니라… 걸리적거리는 걸 모두 분쇄하면서 뉴스 룸에 도달한 검은 소녀의 무리.

         

         아나스타샤 마카로비치, 전 에나마 소속 생명공학 연구원.

         

         무려 아마기 가문 사람의 열렬한 구애를 거절한 걸로도 모자라 웬만한 이들은 붙어있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는 메가 코프 생활을 시원하게 때려 치우고 야인으로 전향하는 걸 택한 겁 없는 젊은 피.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인지, 발렌타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기까지 한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잠시 반추했다.

         

         사교회장에서 인사를 나눈 얌전한 화복 소녀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모건 국장이라도 많이 놀랄 만큼 에다마츠 이사와 가까워 보였지만.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표할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묘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 비하면 친근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분증의 등급만 고려해도 일반적인 경우에 절대 성립할 수 없는 파워 밸런스다. 그래서 처음엔 약점이라도 쥔 게 아닌가 떠봤지만 반응이 피차 미묘했고.

         

         이사 본인에게 죽일듯이 엠바고가 걸린 것도 있으니 그냥 남의 연애 놀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도로 마무리해두고 써먹으려 했는데. 어디까지나 재밌는 인맥쯤으로 분류해 두려고 했는데.

         

         허나 지금 휘하 전투원을 마음껏 휘둘러 날뛰며 길을 뚫은 걸로도 모자라, 직접 어설픈 변장까지 두르고 뉴스 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좀 보라.

         

         수려함 속에 감춰져 있던 자립성.

         품은 한 자루 비수가 있는 여자라는 건 진작 알았지만, 마음에 드는 길이 보이지 않으면 벽을 허물고 나갈 줄도 아는 야생마였나?

         

         사람의 전혀 색다른 면모를 보는 건 언제나 재밌는 경험이지만 이건 상당히 기쁜 오산이었다.

         

         아무리 공연이 계속될 수 있게(The Show Must Go On) 정돈하는 게 그들의 사명이라 해도. 슬슬 역할을 다한 배우, 아르카디아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주고 퇴장시켜야 하는 만큼 시기적절한 오산.

         

         시선을 사로잡는 타오르는 매력, 끊이지 않는 말썽과 골치의 향기를 풍기는 것도 딱 알맞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스타의 자질을 보유한 인재가 아닐까? 공식적인 데뷔는 당연히 안 될 말씀이고 찬조 출연 수준이겠지만, 이렇게까지 시청률이 집중된 상황이라면….

         

         “크흐흠!”

         

         지나치게 즐거워지는 망상을 국장은 잠시 멈췄다.

         왜? 그야 걱정되는 점이 아예 없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으니까.

         

         끔찍이 아낀다고 표현할 수준을 한참 넘어, 아나스타샤를 어디 남에게 보여주기도 싫어하는 것처럼 굴던 쇼우의 성정을 고려하였을 때, 여기서 자신이 독단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누군가가 지지부진한 테러 대치를 한방에 해결!’ 같은 걸 생중계하면 꽤 많은 사람이 피곤해진다.

         

         아니, 단순히 피곤해지면 다행이지. 자칫 책임을 져야 하는 몇몇은 어디 뇌수술대 위에 올라갔다가 근처 요양지에서 깨어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아무리 에나마 분위기가 뒤숭숭한 요즘이라 해도 구태여 지뢰밭에 얼마나 튼실한 폭발물이 묻혀 있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여자, 소녀의 얼굴이 절대 드러나지 않게. 그래도 전체적인 그림이나 일어날만한 액션은 확실하게 담을 수 있게 조절해. 환경 정비를 핑계로 라이브 스트림 서비스는 대기 화면 걸어 놓고 중단하고, 대신 편집 가능한 녹화본을 만들고.”

         

         “테러 도중이고, 촬영장에 들어온 건 저쪽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이거 초상권 위반이라는 건 아시죠 국장님…?”

         

         “야, 임마!! 얼굴이 안 나오는데 무슨 초상권 위반이야 짜식이. 얼빠진 소리하지 말고 세팅이나 얼른 바꿔 봐!”

         

         ‘……인물 데이터 및 개인 정보 보호법 개정 이후로, 신체 일부 촬영도 상호 동의 없이는 더럽게 아슬아슬한 걸로 아는데 말이죠.’

         

         어쩌면 오늘 저지를 수 있었던 최후의 정당한 반론을 삼켜버린 남자가 바쁘게 손을 놀렸다.

         

         진작 송출을 중단할 수도 있었는데 여지껏 활개친 대가로 방송국 PR(Public Relations; 인물, 브랜드, 기업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사회적 시각)이 지랄나지 않겠냐는 걱정도 묻어두고.

         

         여태 국장은 시청률에 미친 광인이고 자신은 불쌍한 상식인… 피해자처럼 굴었지만, 막상 넘어오는 영상을 물 흐르듯 중계하는 걸 넘어 다시 조정하는 본업무에 돌입하자 혈액 순환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 일하는 탓에 수십억 인간의 관심을 직접적으로 받는 건 아니더라도.

         

         뉴스를 시청하는 모두의 남은 삶, 손끝에서 만들어낸 작품이 그 인간의 무의식에 지워지지 못할 자국을 남긴다는 쾌감은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마약이었으니까.

         

         아마 이러니까 방송 업계는 하나같이 자기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인간 석탄 같은 괴짜들의 집합소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추측은 가슴 한 켠에 밀어 넣은 채로.

         

         

       

       

         “저, 저기! 닥터 아나스타샤와 간호사인 베서니라고 합니다! 여기로 오면 아르카디아 교단의 상급자 분들이 알아서 저희 처우를 결정해주실 거라고 했, 는데요오….”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 경비분들, 위급한 환자부터 치료해드리고 거기 아나운서님의 외상도 살피고 싶군요.”

         

         그러니 둘의 목소리가 뉴스 룸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자마자.

         

         일부 테러리스트의 총구와 함께 카메라도 냅다 반전하여, 헐렁한 품새가 인상적인 작은 의사와 반대로 여기저기가 꽉 조이는 간호사 듀오를 담은 건 세상의 총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쿨한 타입의 미녀 의사는 취향이신가요? 아, 안타깝지만 신장은 약간 아담하군ㅇ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난장판의 원흉 풀이는 여기서 끝.

    후원 자율 입력이 아예 삭제된 건 너무 슬프네요…. 그렇지만 악용될 여지가 많다는 건 저도 겪은 게 있는 만큼 약간 이해는 됩니다.
    그저 소통이 활발하다는 웹 소설 플랫폼의 장점이 큰 만큼 단점도 굉장히 날카롭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저는 채찍으로 때리시면서 ‘왜 또 이거밖에 안 가져왔어! 크아아악!!’ 하셔도 무방합니다. 아하하하 아파파파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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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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