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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4

     거짓된 황금으로 인해 사람들이 꿈나라에 빠진다고 한들, 내게는 현실이 중요하다.

     ‘오히려 현실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나기 쉽지.’

     현실과 꿈.

     나에게 있어서는 꿈보다는 아무래도 현실 쪽이 좀 더 좋은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닐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9년 반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함에 따라, 나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가령 제로스 바르셀 후작의 경우, 꿈속에서는 아직도 영지가 그대로 유지된 채 떵떵거리는 삶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죽었지만.

     꼭 제로스 후작이 아니더라도, 제로스 아래 황금여명 기사단의 유족들은 꿈 속을 더 원할 수도 있다.

     

     바르셀로나로부터 쫓겨나 렘버리에서 땅을 개간하며 제국식 벽돌집에서 살아가는 굴욕적인 삶이 아닌, 황금여명의 기사 가장이 벌어다오는 막대한 금화를 바탕으로 노스트럼의 전통적인 사치와 허영을 즐기는 삶을 살지도 모르니까.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꿈이라는 건 말 그대로 꿈이다.

     백은처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꿈이 아니기에, 함부로 그 꿈 속 내용을 유추할 수는 없다.

     그저 꿈을 겪고 나온 이들이 하는 말을 종합하여 그 정보를 취합할 뿐.

     노스트럼과 제국의 전쟁.

     세이레네 백작가의 배반.

     노스트럼 최후의 수호자, 지브롤터.

     꿈 속에서의 지브롤터가 제국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협곡이 굳게 닫혀있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꿈 속 세상이 그대로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보면 지금 이 상황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일 지도 모른다.

     구구구구.

     

     발파 소리와 함께 큰 진동이 울려퍼진다.

     제국식 굴착기가 마석엔진 소리를 내며 땅을 파고 들어가고, 뒤로 흙더미를 뱉어내며 계속 제국 방향을 향해 전진한다.

     “다시 봐도 굉장하군.”

     “예. 열정적이고요.”

     나는 로버트 경과 함께 협곡을 방문했다.

     여차하면 삽을 들고 직접 협곡을 파내며 단순노동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었다.

     “제국 말이야. 너무 열심히 판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레이 지브롤터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협곡을 전부 없애버리겠다는 의지인 거죠.”

     협곡개발 사업이 나리아 여왕의 허가를 받아 승인이 난 뒤.

     합스베르크 황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지브롤터 협곡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담당자에 ‘그 사람’을 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 협곡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아앗…! 오셨습니까, 바르셀로나 총독 각하.”

     

     제국식 정장에 머리에는 투구 같은 안전모를 착용한 중년의 남자가 나를 보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남자의 왼팔에는 아이페리아 개발산업공사의 기업 무늬가 박힌 완장이 박혀있었다.

     “프랭클린 테네시, 협곡개발사업 책임자. 맞나?”

     “예, 예! 아이고, 어떻게 제 이름을 다 기억하시는지. 영광입니다, 총독 각하.”

     중년의 남자가 19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게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내가 당장 몇 개월 뒤면 20살 성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이 이전에 신분과 계급이 있지.’

     프랭클린 테네시.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 중에서도 이번 ‘협곡 개발산업 공사’라는 프로젝트팀의 고위 간부 중 한 명.

     “예. 그렇습니다. 황제폐하의 명을 받으 아이페리아 상회…크흠,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의 개발산업공사 협곡개발연구소 소장, 프랭클린 테네시입니다.”

     그리고 이 남자의 위에는-

     “에르윈 황후께서는 황궁으로 돌아가셨나?”

     “그, 예. 아무래도 지금 황금대란으로 인해 전체 산업이 문제가 생기다보니….”

     에르윈 황후가 있다.

     즉, 이 남자는 에르윈 황후의 사람이다.

     ‘능력은 있는데 영입하기에는 너무 늦었지. 외주로 쓰는 수밖에 없겠어.’

     동시에 내가 매국노 그레이였던 당시, 지브롤터 땅의 개발에 관해 거의 70% 정도 권한을 맡겼던 능력자다.

     “황후님을 만나러 오신 거라면 황도로 가시는 게….”

     “온 김에 직접 뵈려고 했을 뿐이야. 협곡 개발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온 것 뿐이거든.”

     “아앗, 그렇습니까….”

     테네시 소장은 내가 쉽게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뉘앙스를 풍기자 은근하게 꺼리는 눈빛을 보였다.

     싫겠지.

     현장 사람들은 원래 갑작스러운 공사 책임자-심지어 물주이기도 하며 쩐주-거기에 더불어 차기 제국의 황제로 물망에 오른 사람이 현장을 기습 점검하러 왔으니.

     애초에 에르윈 황후의 사위격인 사람이며, 협곡 개발을 진행하라고 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어디서부터 보여드리면 좋을지…크흠.”

     예고도 없이 찾아왔으니, 당황할 수밖에.

     “지금 협곡 개발, 도로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

     “아, 예. 저쪽에 보이십니까?”

     테네시 공사는 북쪽으로 쭉 뻗어있는 방향의 한쪽, 제국의 마도건축기들이 시끄러운 마도엔진 소리를 내고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협곡 방향에서 터널을 마구 뚫고 있습니다. 그, 일단은 협곡 방향에서 뚫은 구멍은 제국 방향으로 열린다는 게 확인이 되었으니, 계획대로 공사만 하면 됩니다.”

     대대적인 공사에 앞서, 제국은 500년 동안 제국을 괴롭혀온 문제부터 확인하고 나섰다.

     제국 방향에서는 결코 깎이지 않는 절벽.

     노스트럼 방향에서 구멍을 뚫으면 어떻게 될까?

     ‘뚫리더라.’

     제 1 관문에서 벽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간 다음 제국 방향으로 빙글 돌아나오듯 구멍을 파보니 구멍이 쉽게 파였다.

     처음에는 삽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소드마스터-내가 직접 삽을 들고 오러를 담아 삽을 찔러 구멍을 만들자, 그 뒤로는 그 부분이 보호막이 벗겨진 것처럼 일반 작업자들이 삽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관문도 그렇고 절벽도 그렇고, 황금룡의 마법이 서려있기는 하지만 아예 해체가 불가능하게 해둔 곳은 아니었어.’

     구멍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제국 방향에서는 마법이 지키고 있는듯 깎이지 않았지만, 노스트럼에서 구멍을 뚫으면 길이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충분했다.

     ‘이거지.’

     회귀 전.

     망국의 공주가 마지막에 지브롤터 협곡에서 뭔가를 찾겠다고 하면서 나 한 명만 데리고 삽질을 할 때는, 정말이지 삽으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었다.

     너무나도 절박했지만, 고작 사람 둘의 힘으로 이 협곡을 파헤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터널 진척도는?”

     “앞으로 1개월만 더 파낸다면 구멍이 뚫릴 겁니다. 벽을 다지고 중간 중간 무너지지 않게 잘 조치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터널을 통과하여 협곡이 아닌 곳으로도 오다닐 수 있게 될 겁니다.”

     구구구. 

     500년 동안 제국의 공격을 막아낸 협곡 치고는 지브롤터 방향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해체되고 있다.

     “중간에 혹시 노스트럼의 불가사의한 기적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곳은 없었나?” 

     “다행히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막 무슨 마법진이 새겨진 기둥이 나타난다거나, 황금이 콸콸 쏟아진다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정말로 다행이군.”

     “예. 공사현장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테네시 소장은 정말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로, 무려 무사고 74일차입니다…!”

     “말하지 말지.”

     “예?”

     “노스트럼에는 기묘한 미신 같은 게 있다네.”

     나는 테네시 소장이 밟고 있는 땅을 가리켰다.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이 ‘오늘 손님 없네요’라고 말하면 손님이 몰려든다거나, 무사고 OO일차를 언급하는 순간….”

     “으아아아ㅡㅡㅡ!!”

     “사고가 발생한다는 걸.”

     “……총독 각하.”

     테네시 소장은 억울하다는듯, 비명을 지른 노동자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엄밀히 따지면 총독 각하께서 현장에 오셨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니겠습니까?”

     “못 하는 말이 없군.”

     “저, 테네시. 지금 목이 달아나더라도 할 말은 하는 남자.”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런 걸로 죽으면 총독 각하의 평판이 깎이겠죠.”

     “역시 에르윈 황후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답군.”

     “저도 총독 각하에 대해 들은 게…아니, 그보다!!”

     테네시 소장이 부리나케 몸을 움직이더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로버트 경의 뒤로 몸을 숨겼다.

     “살려주십쇼! 아니, 저것 좀 처리해주십시오!”

     “그래. 나 때문에 왔으니, 내가 처리를 해야지.”

     

     전방.

     무사고 74일차를 무사고 0일차로 바꾸어버린 당사자, 황금의 노예가 삐거덕거리며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저게 나타나는 거, 사고로 여겨야 하는 건가?”

     “초, 총독 각하! 제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협곡을 망가뜨리려는 제국인 노동자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심지어 공사용 마도구들도 전혀 건드리지 않아. 오직 지브롤터만을 죽이겠다고 다가오는 거.”

     “그게 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그 자가 지브롤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저 유령들은 왕의 명령이라고 무작정 따르는 인형들이고요!”

     “…….”

     나는 나도 모르게 테네시 소장을 향해 손뼉을 쳤다.

     

     “제국인이든 노스트럼인이든, 모든 사람이 그대와 같은 상식을 가지고 있으면 참 좋으련만.”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할테니까, 빨리 처리 좀…으아아악!!”

     테네시 소장은 좀비처럼 움직이는 황금의 영령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벌벌 떨었다.

     아무래도 ‘언데드’라는 마물을 좀처럼 보기 힘든 제국으로서는 걸어다니는 신비 그 자체다보니, 두려워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어떻게 처리한다. …응?”

     내가 지팡이를 뽑으려고 한 순간.

     덜컥.

     황금의 영령이 행동을 멈췄다.

     나를 향해 검을 움켜쥐며 걸어오던 걸음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최근 들어 나도 모르는 일들이 연속으로 터지는군. 저건 또 왜 저래?”

     황금의 영령.

     거짓된 황금.

     그리고 이제는-

     “저기, 총독 각하.”

     테네시 소장이 스리슬쩍 로버트 경의 뒤에서 빠져나와 작게 속삭였다.

     “저기 발 디딘 곳 있지 않습니까. 그…협곡을 깎았던 장소인데요.”

     “…음?”

     “삐져나온 곳이 있길래, 보기 흉한 부분은 좀 반듯하게 다져놓기도 했습니다. 꼭 저 괴물의 행동이…금 밟은 것 같지 않습니까?”

     “금을, 밟았다.”

     금지된 선을 밟았다는 느낌인데, 왜 내게는 다르게 들릴까.

     “…그럼.”

     나는 잠시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협곡에 가까워졌다.

     “도련님!”

     “초, 총독 각하!!”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황금의 노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보자. 협곡의 위를 보면…확실히 잘 깎아냈군. 그런데, 여기 있다고 해서 못 들어오는 걸 보면….”

     나는 협곡에 딱 달라붙은 다음, 황금의 노예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아무래도, 이 협곡에 불가사의의 ‘끝’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군.”

     참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나는 확신을 얻었다.

     “테네시 소장.”

     서걱.

     “에르윈 황후에게 제안서를 만들어 올리도록. 협곡 개발을 지금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더 인력을 늘리라고.”

     “그, 그렇게 하면….”

     “예산이 부족해?”

     나는 머리와 심장이 동시에 베여 그 형태를 잃고 서서히 흩어지는 거짓된 황금을 집어들었다.

     “여기, 황금이 있잖나. 이게 예산이야.”

     “…….”

     “농담이야. 그렇게 정색하지 말게. 노스트럼식 농담이 전-혀 통하지 않는군.”

     유감이다.

     바토리 소장은 빵 터지던데.

     “그걸 가지고 폭소하는 사람은 한 60대 이상 노인네들 뿐일 겁니다.”

     “…….”

     “아니면 총독 각하께 아부하려는 아첨꾼이거나.”

     * * *

     잠시 뒤.

     바르셀로나 총독부의 금광에서 캐내는 금을 바탕으로, 나는 협곡 개발 인력을 늘리는데 필요한 예산을 대규모로 확보했다.

     이 협곡.

     분명, 뭔가가 있기에.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총독 각하! 터널 1km 지점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

     망국의 공주에게 말하고 싶다.

     삽 두 자루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 협곡의 비밀을 파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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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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