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5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도 가족은 있었다.

        

       그러니까, 이쪽 세상으로 오기 전에도 말이다.

        

       대단히 잘산다고 할 정도의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어 굶어본 기억은 없다. 아주 어렸을 때는 돈 문제로 쪼들린 기억이 있지만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쯤이 되었을 때는 가계 사정이 많이 나아져 그냥저냥 먹고살 만했다.

        

       용돈으로 게임기를 사거나 게임을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종종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사다 읽을 정도는 되었고, 나, 그리고 동생을 대학교에 보내줄 정도의 돈은 있는 집안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아낄 줄은 알았다.

        

       내가 게임이나 만화 등 진짜로 취미생활에 몰두하게 된 것은 대학교 졸업 후 취업한 뒤부터였고.

        

       ……나는 아마 원래 있던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이겠지. 어떻게 이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때를 기억해내려고 하면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그럴 것이다.

        

       남은 가족은 어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도 의미 없다고 본다. 먼 미래에, 삶을 다하고 죽은 뒤 사후세계에서 만난다면 그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여신도 있고 온갖 괴물들과 마법이 존재하니, 당연히 영혼도 존재하겠지.

        

       그렇게 나에게 ‘원래 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이미 몇 년 전에 접어두었다.

        

       그렇다면, 이쪽 세상에서는?

        

       내 사고방식이 지극히 동아시아적 관점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족을 완전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상대로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자매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나로서는 서른이 넘어서야 만난 지인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나를 언니라고 불러주는 클레어나, 당당하게 나를 동생이라고 선언한 앨리스나. 놀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입에 붙어버린 것인지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레오나.

        

       친한가? 그렇게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겠다.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는가?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가족처럼 느껴지는가? 그런 질문에는 차마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아이들한테 해준 것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멋대로 가족이라고 부르고 다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진 나였기에, 사실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다.

        

       “…….”

        

       그레이스 남작가에 방문하여 서로 가볍게 인사를 마친 뒤, 우리는 그레이스 저택의 손님맞이 방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최대한 천천히 차를 홀짝이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아 나를 따라 하고 있는 앨리스, 조금 열받게도 우리 두 사람보다 훨씬 편한 표정과 자세로 앉아있는 클레어와 레오.

        

       그리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레이스 남작 부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레이스 남작 부인이 엄청나게 익숙했다.

        

       돌아간 시간을 온전하게 다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깨어있던 시간을 다 합치면 수년의 기간은 된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그레이스 남작 부인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건 상당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루카스가 내가 아닌 클레어를 잡아갔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레이스 가에 남은 나는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았다. 내가 클레어처럼 검술을 수련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그때까지 확실하게 가지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천재’ 노릇을 한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고 나면 사그라들 천재 타이틀이긴 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읽을만한 수준의 책을 읽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어른이 어른의 책을 읽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레이스 가를 속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시간 속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속였다는 사실조차 끝까지 몰랐겠지.

        

       나는 그렇게 상대를 속였지만, 정작 내가 속였던 상대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그레이스 남작 부부는 이런 것으로 음모를 꾸밀 만큼 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니까.

        

       나를 딸이라고 부르던 건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던 것도 진심이었을 것이고, 내가 받아온 성적을 보고 칭찬하던 때나 아픈 나를 걱정하던 때도—

        

       ……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속담에서, 양심은 세모 모양이라 잘못된 일을 할 때마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한다. 어른이 되면 몇 번이고 돌았던 그 세모 모양의 양심이 원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양심이 돌아가도 마음이 아프지 않기에 서슴없이 거짓말을 한다던가.

        

       만약 내 양심이 닳고 닳아서 둥근 원형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양심이 내 마음 안에서 맹렬하게 돌아 오히려 끝이 깎여 다시 세모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가슴 속 양심 부분이 거의 송곳으로 후비는 듯 찔렸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부인이 입을 열지 않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짓을 저지른 입장에서 먼저 대화를 재촉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몇 시간이고 이런 불편한 자리에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을 자신이 없었다.

        

       “예, 그래서 불렀지요.”

        

       ……으으음.

        

       내 기억 안에서 그레이스 남작 부인의 모습은 두 모습이었다.

        

       첫 번째 모습은 나를 황녀로서 대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여름방학 때 여기 왔을 때 보여주었던, 기품 있는 귀족 부인으로서의 모습. 당연히 나이 차이 이전에 우리 둘 사이의 신분의 차이가 있었기에 그레이스 남작 부인은 내게 존댓말을 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모습은, 여신이 만들어낸 세상 안에서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내 신분은 ‘그레이스 남작 영애’였으므로, 당연히 ‘어머니’는 나에게 말을 놓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는 않으셨지만, 동시에 격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친근한 태도였다. 그만큼 나를 진정으로 딸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더 오랫동안 보아온 그레이스 남작 부인의 모습은 후자였다.

        

       아마 그레이스 남작 부인이 나를 볼 때도 똑같겠지.

        

       “다만, 지금 앞에 앉아 계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조금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앞에 계신 분이 황녀님이라면 저는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 위에 계신 분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저의 여식이라면 훨씬 더 친근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옳을 테니까요.”

        

       ……으으으으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마구 후벼파던 양심이라는 이름의 송곳마저도 순간 ‘이러다 얘 죽는 거 아닌가?’ 하며 흠칫 멈출 정도로 내 속을 후려치는 말이었다. 물론 그레이스 남작 부인은 그럴 의도까지는 없으셨겠지만.

        

       “…….”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거기에 차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부인.”

        

       상황을 보다 못했는지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예, 황태녀 전하.”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황녀’ 신분인 앨리스는 그레이스 남작 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로기에 걸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상황이 불편할 뿐이지 그레이스 남작가를 상대로 양심 없는 짓을 한 적은 없으니까.

        

       “제가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부인께서 걱정하는 것이 ‘지위의 고하’에 대한 것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비아는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니까요.”

        

       …….

        

       그런가?

        

       연연하지 않는 것치고는 나는 나의 지위를 엄청나게 잘 써먹고 다녔는데. 물론 지금 그런 딴지를 걸 정도로 정신없는 인간은 아니었기에, 나는 입 다문 채 앨리스의 변호를 들었다.

        

       “그렇습니까.”

        

       앨리스의 말을 들은 그레이스 부인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대답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의견을 듣기 전까지는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황녀님의 모습이 진정으로 황녀님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연기였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만약 전자라면 저는 기꺼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후자라면—”

        

       부인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무너졌다. 물론 무너졌다고 해서 그 미소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눈썹 끝이 살짝 내려오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살짝 내려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인의 표정은 몹시 슬퍼 보였다.

        

       “만약 후자라면, 저는 저의 마음을 그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 수밖에 없겠죠.”

        

       “…….”

        

       그런가.

        

       앨리스의 시선이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인의 말대로, 지금 입을 열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으니까. 앨리스가 아무리 나를 변호하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의 의견이 없는 이상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공허한 낱말의 모음일 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연재분 후기에 후원감사인사를 적었습니다. 후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다음 화는 최대한 빠르게 완성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