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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알라모에 있는 <윌리의 서커스 학교> 아이들은 일 년 중에 9월을 제일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그들이 가을철 불어오는 네바다 황무지의 따가운 모래바람을 반겼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매년 이맘때쯤 인근의 대도시인 베가스로 가서 2주 정도 묵고 왔다.

         

       그들이 베가스를 방문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극장가 축제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낮이면 삼삼오오 자기네들끼리 짝지어 극장가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밤이면 숙소에 모여 자신들이 본 공연에 대해 떠들며 언젠가 자신들도 그런 무대에 서는 것을 꿈꿨다.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표는 가장 싼 기본 입장권이었다. 그것으로 축제 기간 극장가의 공연 절반 정도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들은 거리 무대나 작은 극장에서 행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명하고 큰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것은 가난한 학교의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베가스에서 잡은 숙소만 해도 그랬다. 그곳은 말이 숙소지 낡은 창고에다가 해먹 수십 개를 매달아뒀을 뿐이었다. 숙박비가 치솟는 극장가 축제 기간이라 구할 수 있는 잠자리가 마땅치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불평하는 아이는 없었다. 그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공연을 실컷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아이들은 이때를 위해 1년 동안 푼푼이 쌈짓돈을 모았다. 그들은 그 돈으로 꼭 보고 싶은 공연을 추가로 구매해서 보거나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사곤 했다.

         

       엘라도 1년 동안 모아둔 돈이 제법 있었다. 목장의 소들을 몰아 주거나, 상인들의 낙타를 돌봐주는 일로 제법 두둑하게 주머니를 챙겨 왔던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미 돈들을 어디에 써둘지 모두 계획해 두고 있었다. 최우선으로 구매할 것은 당연히 ‘크리스티앙 기념관’의 본 공연 표였다. 그곳은 베가스 최대의 극장으로 그 이름 그대로 1년 내내 크리스티앙의 작품을 상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도 각색된 판본이 아닌 원본으로 말이다.

         

       크리스티앙의 작품은 배우에게 연기, 노래, 곡예 모두를 요구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극장에서도 원본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러나 이곳 크리스티앙 기념관에서는 언제나 원본을 즐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극장가 축제 기간에는 그동안 로테이션을 돌며 번갈아 배역을 맡던 A급 배우들이 한꺼번에 총출동했다. 크리스티앙의 팬인 엘라로서 이 기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나, 너도 크리스티앙 기념관 보러 갈 거지?”

       “물론이지.”

         

       안나는 자신의 일정표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요구하는 보고서 목록에 그것이 빠질 리 없었다.

         

       “그럼 오늘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가이드의 평가원은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혼자 다니는 게 권장되었다. 아무래도 어떤 공연이든 함께 가면 그 흥에 취한다거나 일행이 내린 평가에 휘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나는 엘라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엘라는 공연을 파악하는 눈이 학교 친구 중에서 최고였다.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수학여행 첫날에 함께 크리스티앙 기념관을 방문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웅장한 열주들과 그것을 덮고 있는 반듯한 형태의 지붕을 보면 그곳은 극장보다 신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기념관 앞은 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크리스티앙 기념관은 예매가 기본이었지만, 축제 기간만은 당일 현장 발권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소수의 사람은 그 원칙에서 예외였다.

         

       “저기 좀 봐.”

       “뭐야, 저 사람은 왜 줄 안 서?”

       “이런, 무식하긴. 누군지 얼굴을 좀 봐.”

       “시인 뮬 선생님 아니야?”

         

       사람들은 매표소를 지나쳐 당당히 극장의 정문을 통과하는 중년의 남자를 바라봤다.

         

       시인 뮬.

       그는 베가스의 극장가에서 유명 인사였다. 본업인 시인으로서는 그렇게 이름을 날리지 못했지만, 공연 비평에 있어서는 그 펜 끝이 매섭기로 소문나 있었다.

       특히 얼마 전부터는 <빵과 서커스>에서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름난 공연에도 가차 없이 쓴소리를 던져대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은 기념관의 특별 회원으로서 자유로운 극장 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것 없이 모두 매표소에 줄을 서야 했다.

         

       “2인석, 3인석, 4인석 구매자들은 대표 한 분만 나서주십시오. 신분증 등록은 표를 구매한 후에 진행하겠습니다.”

       “이러면 나만 서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안나 너는 전시실이라도 구경하고 있을래?”

         

       안나는 엘라에게 자신이 대신 서 있어도 되지 않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배려하는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까부터 자꾸 그녀의 얼굴에 난 화상 자국을 훔쳐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고마워, 엘라.”

       “무슨 말씀을! 대신 나중에 나랑 쇼핑이나 같이 해 줘.”

       “쇼핑?”

       “응. 저번에 말했던 원더스타인 단장님이랑 같이 서커스단을 꾸리게 되면, 창업 기념으로 선물이라도 주고 싶은데……. 음,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녀의 말에 안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넌 여전히 그 사람이랑 떠날 생각인가 보구나?”

       “당연하지! 딱 느낌이 왔어. 그 사람이 내 운명이야!”

         

       안나는 그녀의 말을 찰리가 못 들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아무것도 안 결정됐는데 선물부터 사는 건 좀…….”

       “일단 샀다가 아니다 싶으면 찰리 녀석이나 주지 뭐. 졸업식 때 선물로.”

         

       다른 남자에게 주려고 샀던 선물을 찰리에게……?

       안나는 그녀의 말을 그가 못 들어서 정말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알았어.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좋아. 자, 가서 놀고 있어! 표가 구해지면 구돌이를 보낼게.”

         

       안나는 엘라와 헤어져 전시실로 향했다.

       크리스티앙 기념관은 극장이기도 했지만, 박물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주로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등장 배경, 그의 정체에 대한 추측, 그가 남긴 12개의 극본에 대한 해설, 환상의 13번에 대한 소문 등.

       안나는 몇 년 전에 친구들과 이곳은 견학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전시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아까 극장 앞에서 지나쳤던 얼굴과 마주쳤다.

         

       “이곳 배우들의 실력은 인정하지. 하지만 기념관의 이름을 내걸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꽤 있어. 예를 들어 이곳에서 소장 중인 크리스티앙 관련 물품은 말일세. 어느 귀족의 개인 소장품보다 그 양이나 질이 모자라. 나는 예전에 예테린푸르크에 갔을 때, 여기 있는 복제품의 진품을 본 적 있는데 말이야…….”

         

       시인 뮬이 이곳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잘난 척 떠들어대며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 그는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구역을 넘어가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곳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 같았다.

         

       안나는 그가 평론가로서 특권을 과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익명의 평가원들을 활용하여 최대한 공정한 평론을 작성하는 데 비해, <빵과 서커스>는 스타 평론가 키우기를 좋아했다. 그 때문에 그곳에는 전문적인 분석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한껏 드러내며 생트집을 잡거나 맹비난을 날리는 식의 평론이 많았다.

         

       비록 수습이긴 했지만, 안나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평가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난 저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전시실 관람을 계속하려는 그때, 아까 뮬이 들어갔던 제한구역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 지저분한 영감이 어딜 몰래 들어오려고 해?”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곳에는 경비원들이 어떤 사람을 붙들고 있었다.

         

       “이것 놔, 이놈들아!”

         

       그건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회색빛 머리카락의 노인이었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댔지만, 경비원들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그는 안나가 태어나면서부터 본 사람 중에 가장 기묘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의 키는 그녀의 턱에 겨우 닿을 만큼 땅딸막했는데, 그의 배는 커다란 공처럼 빵빵했다. 그런데 그의 팔과 다리는 또 몸통에 비해 길쭉한 편이었다.

       그의 입은 귀에 닿을 만큼 길게 찢어져 있었고, 언뜻 보이는 이빨들은 하나 같이 뾰족한 것이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그의 코였다. 새의 부리처럼 끝이 뾰족하고 구부러진 것이 남들보다 3배는 길어 보였다.

         

       경비원들은 관람객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게 부담스러운지 그를 바닥에 내려놓아 주었다.

       안나는 그제야 그가 꼽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혹이 그의 등에 불쑥 솟아 있었다.

         

       “이놈들! 이 수모는 못 넘어간다!”

         

       경비원의 손에서 풀려난 노인은 바로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로 경비원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노인의 공격은 별로 위력적이지는 않았지만, 경비원의 화를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이 노인네가!”

         

       경비원은 그를 번쩍 들어서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는 비명을 꽥 질렀다.

         

       “끄윽! 이놈이!”

         

       바닥에 널브러진 꼽추 노인은 다시 일어나 반격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곱사등 때문에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뒤집힌 거북이처럼 버둥거리기만 했다. 경비원은 그런 그의 꼴을 보며 피식 웃더니 그의 몸을 걷어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아갔다.

         

       사태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그가 불쌍하다 생각했지만, 그가 경비원을 공격한 뒤로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에 마음껏 비웃을 수 있었다.

         

       안나는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화상 자국 때문에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아 온 경험 때문에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노인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며 그의 흐트러진 복장을 정돈해주었다.

         

       “괜찮으세요?”

       “끙. 착한 아가씨로군. 고맙네, 고마워. 하지만 괜한 짓을 했어. 깔보고 비웃고 우스갯거리가 되고……. 어쨌거나 그를 만족시켰는데 말이지.”

       “그?”

         

       누구를 말하는 걸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본 그녀는 곧 제한구역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는 시인 뮬이 이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안나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영감님, 일어서세요. 여기서 떠나죠.”

         

       안나는 노인의 몸을 부축해주며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경비원도 그를 더 괴롭히려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른 전시실로 넘어온 그녀는 다시 그의 몸을 자세히 살펴주었다. 그는 다행히 별로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등이 굽고 키가 작았지만, 그의 체격 자체는 상당히 다부진 편에 속했다.

         

       “고마워, 아가씨.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그냥 제가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에요. 어떻게 된 일이었죠?”

       “그곳이 제한구역인 줄 모르고 넘어가려고 했네. 그런데 그놈들이 다짜고짜 붙잡더군. 그런데 아까 어땠어? 내 팽이 쇼? 재밌었어?”

         

       노인이 목을 풀며 짐짓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자신의 장애도 농담거리로 삼는 그의 태도에 안나는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웃는 그의 모습이 퍽 유쾌해 보였다.

         

       그때, 그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틀렸어, 쯧쯧.”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안나는 그곳에 석상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들어온 방은 조형물들이 전시된 곳으로, 크리스티앙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은 조각가들이 극의 장면을 재현한 작품들이 있었다.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성 빅터의 삶과 고난>.

       다른 극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티앙 역시 종교 관련 극본을 하나 썼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조각도 그 극본에서 나온 장면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것은 성 빅터가 역병 군주에게 성정을 박아넣는 순간이었다. 종교화마다 묘사하는 방식이 달랐지만, 크리스티앙의 연극에서는 빅터가 직접 망치과 못을 들고 역병 군주에게 박아넣는 식으로 연출했다.

         

       노인은 역병 군주의 이마와 심장에 박힌 못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빅터가 박아넣은 부위는 목이었어. 양옆에 2개.”

         

       노인은 마치 자신이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목 양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어딘가 괴팍한 듯 보였지만, 그 역시 이쪽 분야에는 조예가 있는 듯했다.

       안나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성명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안나라고 해요. 극 평론가가 되는 게 꿈이죠.”

       “내 이름은 이고르라고 한다네.”

         

       그는 날카로운 이를 빛내며 말했다.

         

       “괴물 서커스단의 단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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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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