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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아으, 뭐야.”

        

        

        

        오전 10시 47분. 꼬리에 달라붙는 다이스 때문에 잠에서 깨다.

        

        일출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말려올라간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뉴욕. 눈이 얕게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하얀 구름으로, 그리고 저 멀리 조금 보이는 센트럴 파크는 눈으로 살짝 덮였다. 이번 년도의 마지막 날은 이다지도 조용했다. 방 안은 후끈했고 습도는 적당했다. 밤 사이 건조함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작동된 가습기가 습도를 적당히 유지시키고 있는 듯했다.

        

        …물론 다이스가 내 꼬리에 질질 흘린 침도 거기에 어느 정도 일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물티슈를 가져와 꼬리를 슥슥 닦은 뒤 제멋대로 구겨진 이불을 다시 끌어올렸다. 아직 조금 비몽사몽의 경계를 헤매고 있는 탓에 취침과 기상의 경계를 오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이 되지 못한 파편들이 떠다니지만, 그것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간단했다 – 드디어 파이널 챔피언십도 끝났구나. 대략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6시에 결과 발표와 시상식이 있긴 했지만, 그건 단순히 참석만 하면 되니까. 생사가 걸린 교전을 5일 내내 벌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심력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뭐, 그것도 그렇고….

        

        

        

       ‘…한국은 몇 분 있으면 새해인가?’

        

        

        

        13시간의 시차.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54분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이 내년을 맞기까지 고작해야 6분 가량이 남았단 소리. 고개를 털고 일어나 간단하게 세안. 머리카락에 조금 물을 묻혀 간단하게 빗질한 뒤 거울로 얼굴을 확인. 다행히 비주얼은 큰 문제가 없었다.

        

        드론캠을 왼손에 든 채 방문을 열고, 커피 냄새 향긋한 로비로 직행. 달달한 핫 초콜릿 한 잔을 주문한 후 받아들고는 창가 좌석으로 가서 캠을 가동시켰다. 당연히 사람들이 미친듯이 몰려든다. 채팅창을 띄우자 당연히 난리법석 그 자체였다. 물론 12월 31일치고는 우중충한 뉴욕의 한낮 광경을 보여주니 더더욱 그랬고.

        

        

        

       “…아, 여러분. 반갑습니다. 현재 뉴욕은 오전 10시 56분이네요. 올해는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없어서 아쉽긴 한데, 미국 시민권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오자마자 뭔 개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지금 마시고 있는게 핫초코가 아니라 커피에 브랜디 탄 뭐 그런 건가요?

       -핫초코(위스키봉봉으로만듬)

       -새해를 2번 보내는여자 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굴보니 깬지 얼마 안된거같은데 얼굴에서 빛이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겜도잘하고 얼굴도 예쁘면 우리같은 허접들은 어떻게 살라고!!!!!!!!!!

        

        

        

        정신나갈 것 같애.

        

        그나저나 새해를 2번이나 맞이한다라. 그건 조금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긴 한데, 듣고 보니 또 일리가 있네. 사실 내가 새해를 2번 맞이한다기보단, 내 방송을 보는 한국의 시청자들이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이렇게 말하긴 뭐했지만, 내가 현 시점에서 한국의 신년을 체감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체험 가능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니.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내드리겠습니다.”

        

        

        

        단숨에 물음표로 뒤덮이는 채팅창을 뒤로 하고, 오전 11시까지 고작 3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며 덧붙였다.

        

        

        

       “지금부터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중 ‘내가 가장 새해를 즐겁게 맞이할 수 있다!’라고 자신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방송을 켜주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찾아갈테니 같이 새해를 마무리해보도록 하죠. 방제에 ‘유진과함께’ 라고 달아주시면 검색하기 편하겠죠?’

        

        

        

       -아니 ㅖ?

       -이게 컨텐츠창조경제인가하는 그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치겠다

       -혼자 케이크 사먹는 트수들 헐레벌떡 방송켜는법 인터넷검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싀바 좀 일찍 말해주든가!!!!!!!!!!!!

       -케이크는있는데 가족파티라서 이걸 못켜네 아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말하는 와중에 1분이 지나갔다.

        

        2분의 타임어택. 나는 뱉은 말을 허투루 낭비할 이유가 없었고, 즉각 트리키 메인 사이트에 들어가 방금 내뱉은 키워드를 검색했다. 물론 바로 방송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초 가량 있다가 재차 새로고침을 하니 무수히 많은 방들이 나타났다. 그 수만 해도 천을 훌쩍 넘어가는 와중이었다.

        

        사실상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방송을 켤 수 있는 현 시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싶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화력이 강력했다. 어느 걸 들어가야하나 싶었지만 어느샌가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았길래, 작은 테이블 위에 초까지 꽂아놓고 불을 피운 썸네일이 실로 인상적인 방 하나를 클릭했다.

        

        그리고 들어간 지 몇 초나 지났을까.

        

        

        

       “어, 뭐야! 우와! 세상에! 간택받았어-!”

        

        

        

        한 남자가 제자리에서 팔짝 뛰어오르며 온 몸으로 기쁨을 표한다. 저렇게 좋나 싶긴 했지만 기쁨을 깨는 것도 멋이 없는 관계로 간단히 인사를 남겼다. 채팅으로 마이크 활성화 기능을 요청하자 금방 이 방에서도 내 목소리를 송출할 수 있었다.

        

        뭐부터 말해야만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그닥 오래 있을 예정이 아니었으므로 간단하게 말을 남기기로 했다. 게다가 한국의 신년까지는 고작해야 30초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반갑습니다. 집 안이 조금 한적한 편이네요. 이번 년도만 혼자서 보내시는 건가요?”

        

       “아, 네. 자취 시작한 지 몇 주 안 되서….”

        

       “아하.”

        

        

        

        혼자라. 그렇다면 해줄 말이 하나 있었다.

        

        

        

       “신년에는 이 집이 좀 더 북적북적해지길 기원합니다. 여자친구도 만드실 수 있길 바라고…이미 있으시다면 오래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노력한 만큼. 혹은 노력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결실을 얻으실 수 있기를. 그리고 겨울이니만큼 항상 따뜻하게 지내면서 감기 조심하시구요.”

        

       “아으, 정말 감사합니다…말만으로도 정말 고맙습니다.”

        

        

        

       -와 포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뜻하게(뚠뚠콘다)

       -싀바 진짜 준내부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년운다썼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비얌눈나한테 안부인사듣고싶어!!!!!!!!!!!!!!!!!

        

        

        

        어느덧 10초밖에 남지 않은 한국의 신년. 마지막까지 있어주기로 했기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조촐한 박수 소리와 함께 TV 너머로 새해를 축하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채팅창은 당연히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채팅으로 난리법석이었다. 아쉽게도 여기서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2시간 정도가 지나, 사람으로 가득찬 타임스퀘어의 경관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 역시 신년을 축하해주었다. 상대가 기뻐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짤막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눈 뒤, 방에서 퇴장하고선 덧붙였다.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라고…물론, 오늘 방송을 여기서 끝내지는 않을 겁니다. 방을 만든 분들도 꽤 계실 테니, 한 30분 정도 돌아다녀보도록 하죠.”

        

        

        

        물론 거절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방송으로만 1시간 30분을 태웠고, 날 신나게 찾던 다이스와 하모니에게 이끌려 호텔의 뷔페까지 끌려가 점심식사까지 알차게 방송한 이후에야 간신히 방종을 거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의 오전은 그렇게 흘러갔다.

        

        

        

        

        

        

        

        

        

        

        

        

        

        

        

        

        

        

        

        

        

        

       “경기도 끝났는데 사람이 무지하게 많네요.”

        

       “겸사겸사 1월 1일을 맞이하기 위함인거죠, 뭐어. 그래도 타임스퀘어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건 그렇죠. 거긴 한참 전부터 발디딜 자리조차 없다는데.”

        

        

        

        게다가 하필이면 토요일.

        

        이 세상에서 가장 붐비는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의 휴일,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날짜가 동시에 겹쳐버리며 생겨난 거대한 난리. 덕분에 파이널 챔피언십이 거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하루이틀 정도 더 이카루스 기어를 혹사시켜달라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

        

        물론 이해는 간다. 마지막 행사에서 인명사고라도 나면 헨리의 정치 생명에 그닥 좋은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아마 타 대권 후보들이 이를 비방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건덕지가 잡힐 게 없는지 보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뭐어, 내 일이 아니라고 넘기기에도 좀 그렇지. 실제로 사람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기도 하니.

        

        그리하여 큰 문제 없이 그 일은 승낙되었고, 다시 시선을 돌려 – 파이널 챔피언십.

        

        

        선수들을 위해 존재하던 디브리핑 룸 및 휴게실 등등에 비치된 침대가 어느새 전부 빠져있었고, 그 대신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뒀다. 어차피 길게 머무르지 않을 터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해둔 것 같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내 집처럼 편안했던 공간이 이렇게 변하게 되니 꽤 기분이 요상했다.

        

        아무튼,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요 며칠 동안 몇 번이고 드나들었던 길을 지나 디브리핑 룸은 대략 그런 모습이었다. 거기에 간단한 다과가 준비된 상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인원이 의자에 앉았고, 그 순간 미리 설치해둔 듯한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가동되며 관객들로 꽉 찬 대경기장을 묘사했다.

        

        스피커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 절묘한 크기로 세팅되어있어 굳이 음량을 줄이거나 늘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부터 파이널 챔피언십 순위 발표 및 시상식을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건물 전체를 흔드는 진동.

        

        물론 경기장 내부에 존재하는 6만 명만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이 복합단지 내부에 상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기 때문에 그런 것일 확률이 높겠지.

        

        아무튼, 뭐라고 해야 하나. 사실 시상식 자체는 그렇게 감흥이 없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파이널 챔피언십 자체가 그러했다. 도대체 이 게임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있는지를 알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올 기회를 슬그머니 엿본 것이었지, 설령 본선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자력으로 뉴욕까지 건너왔을 테고….

        

        사실 로건과 정면으로 몇 번이나 맞붙어 절반 이상의 승리를 거둔 것이 조금 더 기쁘다고 해야 할까. 승패와 1등에 연연할 거였으면 애초에 내년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하간, 등수가 계산된다.

        

        토탈 14번의 파이널 챔피언십 경기 중 내 우승 숫자는 6번, 이걸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서 크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번 년도의 에이펙스 프레데터, 포식자의 정점은 – 한국의 유진 선수입니다! 그 뒤를 미국의 로건 선수가 잇습니다!

        

        

        

        울려퍼지는 환호성. 그 뒤를 이어 하나둘씩 공개되는 목록,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이스의 등수 – 그러나 구태여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다이스는 4등이었다.

        

        과연 이 등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싶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이스를 쳐다본 순간,

        

        

        

       “4등, 4등이라. 4등…세상에. 이게 어떻게 진짜로 가능한….”

        

        

        

        그녀는 아주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4등이라는 등수는 조금 애매했다. 과연 저 정도로 만족할 것인가-라고 잠깐 생각했으나, 이번 파이널 챔피언십에서는 나와 로건의 존재를 고려해야만 했다. 사실 이런 대회에는 나와서는 안 되는 번외 격인 유저 두 명이니까, 제대로 평가한다면 다이스는 이번 년도에 2등이라는 성적을 거머쥔 거겠지.

        

        이전에는 20등 안에도 들지 못하던 유저가 몇 개월만의 하드 트레이닝으로 2등까지 올라온다라, 그것도 국제 경기에서 – 그렇다면 다이스가 기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꼬리를 슬쩍 들어, 무릎 위에 올려주고선 덧붙였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이게 다 유진 씨 덕분이에요.”

        

       “잘 따라와준 사람의 덕이죠.”

        

        

        

        물론 그리 말하면서도 다이스는 일절 거부 없이 내 꼬리를 주물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등수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9위에 미카엘, 13위에 갬빗, 15위에 잉크. 단 한 명도 20등 아래로 떨어진 사람이 없었다. 아마 작년과 비슷한 결과를 기대하고 온 선수들은 그야말로 재앙이었으리라. 쟁쟁한 스무 명의 상위권 20명 중 6명이 20등 안에 들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니까.

        

        등수가 발표될수록 다들 표정이 다양해진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 중 그 누구도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부디 이번에 얻은 등수가 분에 넘치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40위까지의 발표가 끝난다. 그 이하의 등수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는지는 몰라도, 그 아래는 개별적으로 안내된다는 말만이 나올 뿐.

        

        

        그리고 이제부터가 본제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스태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상식을 위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걸어가다 보면 숫자가 새겨진 발판이 있을 예정입니다. 등수대로 서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어느 순간 복도가 확 검어지더니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었고, 이내 저 앞에서 금색으로 빛나는 1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말에 따르면 나는 저 자리에 서야만 했다.

        

        그렇게 금색으로 표시된 1등 칸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뒤에서 나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니 – 아니나 다를까 내 선임인 북극곰이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막내가 여기 서있는 걸 보니, 어쩐지 내년에 그 자리에 서고 싶어지는데.”

        

       “다이스가 울지도 몰라요.”

        

       “한 번쯤 울려 줘야지. 자존심에 꽤 스크래치가 났거든.”

        

       “그만둬요….”

        

        

        

        이 양반이 진심이 되면 로렌티나만큼이나 무섭단 말이지 – 물론 상어는 한 번 전투에 돌입하면 말 그대로 모든 걸 찢어발기는 광인이 된다 – .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씩 늘어선다. 상위 20명이 일렬로 늘어서자, 주변이 반짝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나타냈다. 그 길을 따라 스무 명이 걸었다. 다이스의 심장박동이 발끝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작년의 그녀는 30등 후반이었다고 했으니 이 자리에 서는 건 그녀로서도 처음이겠지.

        

        선택받은 자만이 설 수 있는 자리라고 해야 할까, 이곳을. 조금은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아!!!

        

        

        

        살면서 이 정도의 환호성을 듣게 되려면 여러 의미로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했다.

        

        1등부터 5등까지의 단상이 있었다. 뒤에는 계단이 있었고, 바닥에는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듯 홀로그램이 저 위까지 나열되어 있다. 숫자가 떠오르며 GO라는 영어 단어 하나만이 우리를 반기자, 나부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단상 위로 올라섰다.

        

        1등부터 5등이 채워지고, 그 앞에 있는 열다섯 개의 포지션에 한 명씩 들어간다. 이로서 상위 스무 명이 6만 명의 관중을 앞에 두었다.

        

        

        발 밑이 약간 열리더니, 거기서부터 순금으로 된 작은 트로피와 내 이름이 새겨진 순금 군번줄이 나타났다. 마치 목에 걸어보라는 듯 반짝거렸고, 나는 한 손에 트로피를 든 채 그것을 목에 걸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퍼졌다.

        

        쏟아지는 환호를 온 몸으로 받으며 작게 고개를 숙이자, 트로피 받침대가 열리며 안에서 마이크 하나가 튀어나왔다. 우승자 소감문이라도 말해야 하나 싶어 이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자동 번역 기능이 작동되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그걸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내 두 번째 모국어를 담았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유진입니다. 이 자리를 빛낼 수 있어서, 그리고 여러분들의 환호성을 받기에 합당한 자리에 올라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그저 평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내 감상평을 덧붙이도록 하자.

        

        

        

       “이번 파이널 챔피언십을 통해, 그리고 뉴욕 방문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번 년도의 마지막 날에 열린 시상식을 통해 특별했던 기억을 하나 더 적립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런 좋은 시간을 선물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마이크를 받침대 안에 내려놓자, 그것이 다시금 발판 밑으로 들어가며 재차 우레와 같은 박수가 퍼져나갔다.

        

        그 다음은 로건, 3등, 그리고 다이스, 5등….

        

        그리하여 다섯 명 전원이 각자의 소감을 발표했을 때, 박수가 쏟아졌다.

        

        

        

       ───치이익!

        

        

        

        단상이 무대 내부로 수납되었다.

        

        어느덧 다섯 명 역시 평평한 무대 위로 발을 디뎠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가요, 유진 씨. 아직 오늘은 안 끝났잖아요?”

        

        

        

        고개를 끄덕이고, 트로피를 손에 쥔 채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모든 게 끝났다.

        

        실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인커젼 시나리오 전까지는 일일 연재를 유지할 예정입니다

    연참도 종종 있을 거구요

    지루한 부분은 빠르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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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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