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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무력과 공포로 자리를 점거한 선객들의 분위기가 영 별로다.

         수군거리는 소리, 살피는 듯한 눈초리가 몸 이곳저곳을 마구잡이로 찔러댄다.

         

         섣불리 판단하는 게 위험한 세상이기는 해도, 상대가 무력해 보이고 무기 하나 숨길 곳 없는 차림새의 여성 이인조에게 향하는 것치고는 상당한 경계심이다.

         

         뭐, 저들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있는 와중일 것도 뻔하고.

         게다가 내 경우에는 옷 안에 무기 한두 개 정도는 거뜬히 숨길 공간이 남기도 해서, 저들의 경계는 꽤나 합당한… 아니지, 크흠! 흠!!

         

         ……한동안 연구원 코트를 걸치고 지내본 덕분에 그나마 맵시 있게 차려 입은 건데도 이런 대접은 존나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불쾌하지만 묵묵히 참았다. 목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다른 수색팀에서 본대로 떠넘긴 포로’의 역할이었으므로, 수동적인 태도로 처우를 기다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으니까.

         

         어라? 허면 왜 굳이 다친 사람을 치료하겠다는 말은 대답을 듣기도 전부터 덧붙였냐고?

         

        그건…… 잠깐만, 방금 마무리는 그럭저럭 잘 지어도 이때다! 싶은 상황에 제 무덤파는 버릇을 고치긴 힘든 거냐고 혀를 찬 놈 누구야. 나한테 죽는다 진짜?

         

         그런 못돼먹은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니까 살릴 사람은 살려보자고 노력하는 선한 영향력의 부작용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지금 일선에 서서 연기하는 교란용 미끼 둘의 목숨이 달려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정답이기도 한데, 우리야 어쨌든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나댄 이유는. 자격 취득이 더 간편한 간호사의 경우엔 저렇게 벌벌 떠는 게 어울릴지 몰라도, 단순히 의료 키트 다루는 걸 넘어 처방전 작성 권한이 있는 의사는 더 냉정한 게 자연스럽다는 대본(출처, 제로)에 따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동네엔 긴급 구호 활동에 대한 의료 관련직 종사자의 강제 참여 관련 법률도 있어서, 아는 사람이 보면 이 피 철철 흘리는 경비원 같은 분들을 발견하고도 외면하는 자칭 의사의 행태가 더 의심스러울 수 있다는 점도 컸고.

         

         “……여기로 가라고 했다고? 누가??”

         

         “흐익…!!”

         

         역시, 닫혀 있는 구급 키트 상자와 내 옷자락을 면밀히 살피는 기색은 강하지만. 의사라고 자기소개한 사람을 다짜고짜 바닥에 찍어 누르기엔 뭐한지, 이 별동대를 이끈 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목소리를 내리 깔고선 질문부터 내던졌다.

         

         입구 쪽에 가까이 있던 몇몇이 총구를 까딱이며 접근하긴 했는데,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대응이라 본다. 시작이 좋다. 음.

         

         그러니까 알리바이 제시도 확실하게 끝마쳐 놔야겠지.

         원래는 베서니 언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기로 한 부분이지만… 너무 겁먹으셔서 일단 내가 대신하는 걸로.

         

         “교단 분들의 부상자 치료에 저희를 동원하신 알베르 교인님이. ‘이단자에게는 총알을, 이해자에게는 손을 아끼지 말라’며 엄한 의료진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으니 팔라딘께서 계신 여기로 와서 얌전히 있으라고 하셨어요.”

         

         “알베르라면…… C-2팀 배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미심쩍게 으르렁거린 그는 잠시 침묵.

         슈트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연락이라도 해서 왜 포로를 멋대로 떠넘기냐고 물어보려는 모양인데… 연락이 될 리가 없지. 그 팀을 전멸시키고 온 게 우리인데.

         

         아, 참고로 알베르는 그 사람의 이름이다.

         여기 도착하기 직전에, 침투 구성원의 정보란 정보는 실컷 다 토해 놓고 제로한테 기절 찹(Chop)까지 얻어맞고 꾸엑! 하며 기절한 아저씨.

         

         자포자기하고 넘기신 데이터는 정말 알뜰살뜰하게 여러 방면에서 써먹게 되었네요. 네.

         

         “그럼 문제는 없으신 걸로 알고… 일단 치료부터, 베서니? 증혈제와 응고 젤을. 정밀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압박 지혈은 돼있어서 생명에 지장은 없겠네요.”

         “어, 으… 네! 여기 있습니다 아나스타샤 선생님….”

         

         그렇지만 헤어진 다음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한다.

         

         실제로는 사건의 순서가 완전 반대지만 그걸 증명할 사람이 우리밖에 안 남았는데 뭐 어쩌라고.

         

         무저항의 표시로서 여태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리고 있느라 뻐근함이 감돌던 양팔을 천천히 내려 응급 키트를 받아 들고, 문가에 기대진 경비원의 혈류를 체크하며 증혈제부터 투여했다.

         

         맨들맨들한 생 주사기가 아니라 버튼을 누르면 바늘이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형태의 간이 소모품이라 다행이다.

         

         진료 스텝이야 머리속에서 울리는 제로의 지시대로 따라하면 그만이지만 능숙하게 잡는 모습까지 연출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거든. 생각보다 좀 크네 이게.

         

         주변의 분위기는… 갑자기 들이닥친 이인조가 신경에 거슬리긴 한데, 막상 의사와 간호사라고 하니까 위협은 하되 적극적으로 막아서긴 애매해서 약간 관망하는 느낌?

         

         거기에 더해 자기네 병력 중 하나의 연락이 끊어져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걸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도 너무 약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교차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말도 아직 없었고.

         

         이야, 감투가 날개구만 이거.

         세금이 어쩌구 크레딧 세탁이 저쩌구 이제 겨우 알아보는 단계에 있는 학습 수준이라도, 자격증 취득이 짬짬이 공부해서 될 레벨이라면 나중에 진짜 따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뭐, 전생에서 본 여러 영상 컨텐츠들의 영향인지 뭔가 수술대 앞에서 ‘간호사, 메스.’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 복면 의사 말투가 뒤섞여서 조금 우스워지긴 했는데 이 정도는 지장 없겠지.

         

         원래는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신세 졌던 진짜 닥터 씨를 흉내 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겉으로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니, 개성이 중요한 시대라느니 떠들면서도. 또 뒤에서는 흉볼 거 다 보는 게 사람이지만… 영어 악센트야 몇 백 년이 넘게 썩 자유분방했으니까.

         

         그거 가지고 트집잡는 새끼는 진짜 악질 중에서도 유감이 있는 녀석이 틀림없다.

         그러니 만약 치고 들어올 거라면 다른 곳을 찌르는 게 더 유력하지 않았나. …그래, 바로 이 부분처럼.

         

         “아나스타샤 의사님에 베서니 간호사 양이라고 했나? 방송국에선 이제 막 일하기 시작했나 보군.”

         

         “…에나마에서 일하다 이직해서 아직 새 직장에 적응하는 중이에요.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건 계약에 없었던 터라 조금 긴장되네요.”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팔에다 소염 진통제를 주사하고, 심하게 갈라진 두피 부분에 응고 젤을 발라서 맥박이 안정되는 걸 확인하며 등뒤의 목소리에 무심하게 대꾸했다.

         

         저들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각도로 얼어붙은 것처럼 오들오들 떠는 베서니 언니의 손을 슬쩍 잡아주면서.

         

         이상한 인간들이라고 증거를 가지고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공교롭고 어색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다.

         

         사실 나나 베서니 매니저님이나 아무래도 그냥 비치되어 있던 옷을 억지로 껴입은 상태인지라 약간 코스프레 느낌이 감도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한데.

         

         “아니, 이렇게 아리따운 레이디들이 제 발로 인질이 되러 오셨다면 다들 안타까워해야 맞는 것 같은데… 의아하다는 기색이 강해서 말이지. 분명 반응을 보면 서로 구면인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만.”

         

         “그건…… 뭐, 칭찬이라 들어도 될까요?”

         

         어, 눈썰미가 꽤 제법이다.

         그 짧은 시간만에 우리만 무작정 살피는 게 아니라 다른 직원분들이 어떻게 쳐다보고 있는지도 대조해서 내린 결론이라 이거지.

         

         이런 가능성도 십분 고려해서 자주 뉴스 룸에 들락날락하며 관계자분들과 익숙한 매니저 언니를 같이 내세우길 잘했다고 내심 한숨 쉬었으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런 괴한들에게 입 발린 소리를 들어봐야 불쾌하다는 듯이 담백하게 흘려 넘겼다.

         

         정작 데스크에 앉아있는 에린 언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 못 때려잡을 것 같은 얘들이 둘이서 대체 뭘 믿고 미쳤다고 이러는 건가… 싶은 뒤죽박죽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시긴 해도!

         

         나름 다 이동 시간이랑 사격각까지 계산을 끝내고 들어온 거라니까요? 믿고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거 참.

         

         정말 지금 와서 하는 얘기에, 내가 강력히 자청한 일이기는 한데, 졸지에 ‘호위 대상이 적들의 사선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다’는 액션을 방치하는 역할이 된 마사나리는 거의 정신이 나가려고 했다.

         

         자신의 상식과 본분이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 역사와 전통의 미끼 작전 입안에 약간 범우주적 혼란을 겪으며 반대를 했다 해야 하나?

         

         은밀 호위인 경우에야, 모시는 분의 의향을 존중하되 최선을 다해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면 이건 전혀 다른 얘기라나 뭐라나. 결국 명령 불복종이 더 큰 죄악인지 승복했지만.

         

         응? 그럼 제로는 특별히 뭐라 안 했냐고? 얘가 나랑 합 맞춰본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이 정도로 당황하기엔 경험의 차이가 있지.

         

         그냥 맡은 바는 다하겠지만. 여차할 경우엔 작전이고 나발이고 바로 제압 사격으로 적들의 관심만 끌 테니 바짝 엎드려서 엄폐해달라는 부탁만 하더라. …딱히 체념한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하하, 마사나리 너도 가혹한 근무 환경에 하루빨리 익숙해지렴. 나는 쓸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뭐든 판돈으로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테이블을 쓸어가는 타입이니까.

         

         어디 그럼 당위성은 챙겼고, 갑자기 총 맞을 염려도 일단 덜었고.

         수상쩍게 여기고는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어영부영 넘어가주려는 것 같은데… 한 번 도화선을 거하게 당겨보실까요?

         

         “치료를 마쳤으면 이제 방해가 안 되게 얌전히 벽을 보고 앉아 있어주면 고맙겠군, 손은 뒤로 돌린 채로. 사용이 끝난 구급 상자도 미안하지만 우리 쪽에서 보관하겠어.”

         

         “아직 아나운서님이 위험할 정도로 피를 뚝뚝 흘리고 계신데. 그래도 저분까지만 지혈해드리고….”

         “어허…!! 과장은 삼가주었으면 좋겠는데 의사 선생님. 개머리판으로 후려친 것도 아니고 그냥 모서리에 찧어서 좀 길게 찢어진 수준이야. 설마 우리가 그것도 구분 못하겠나?”

         

         벌떡!

         안 그래도 방송 송출이 갑자기 막힌 터라 예민한 와중에 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킨 걸로도 모자라, 데스크 쪽으로 허락도 없이 발을 내딛자 좌중의 시선이 우르르 쏠렸다.

         

         덤으로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은 총구도 같이 몰려들었고, 그걸 본 우리 간호사님도 자연히 내 곁에 찰싹. 다른 인질들 중에는 벌써 안 좋은 상상이 들었는지 헛숨을 들이켜는 분들도 계셨고.

         

         경계심이 바짝 치솟은 적들의 눈엔 어마어마하게 언밸런스한 광경이 비춰지고 있으리라.

         

         벌벌 떠느라 바빠서 아무런 위해도 못 끼칠 것 같은 여자가 하나, 나머지 묘하게 자신만만하게 굴던 주제에 막상 위협하니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는 계집 하나.

         

         “쿨하게 단답하던 것치고는 묘하게 업무에 열정적이신데. 일부러 여기 가까이 다가와야 할 용무라도 있으신가?”

         

         “그건…….”

         

         일부러 말끝을 흐린다. 시선 처리도 어딘가 불안하게 눈 둘 곳이 마땅찮은 것처럼 뒤흔든다.

         

         ‘저는 누가 보더라도 당신들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좆되게 만들 수도 있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같은 티를 팍팍 내주자, 최대한 사무적으로 우리를 치워버리려던 대장이 곧바로 정색했다.

         

         “…어이, 가까이 있는 B팀. 저 의사 아가씨 신체 수색부터 해. 따로 통신 장비 같은 게 있으면 당장 벗겨버리고, 사이버웨어 작동 방해 클립도 목에다 박아. 뭔가 이상하다.”

         

         “읏…!! 이거 놔!”

         

         쿠당탕!

         

         원래도 열심히 반항하는 척을 열심히 연기하려고 계획하긴 했다. 음, 했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남에 의해서 반강제로 탈의 당한다는 체험을 또 겪자 나도 모르게 너무 맛깔 난(?) 반응을 돌려주었다.

         

         이게 참. 곧 뒤질 놈 속여넘기는데 수단 따질 여유가 어디 있냐고 자기 최면을 걸고 넘어갔어도 마음 한구석에선 내심 꺼림칙한 흑역사로 남겨놓고 있었다는 걸 덕분에 깨달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시발놈들아!!

         

         “흐약!? 햑!! 아나스타샤님…!”

         “아니, 몸수색은 적극 협조할 테니까! 너희들 이거 성희롱…… 잠깐, 뭘 어디까지 보려고?!”

         

         “!? 야 이 미친 강간범 새끼들아! 방송 끊겼다고 무슨 개짓거리를…!!”

         

         격노한 에린 언니가 우리 대신 뭐라고 항의하시다가 또 밀쳐졌다.

         

         의사 가운을 확 들춰내자, 그 안에 복합 소재로 이루어진 검은 슈트가 있는 걸 확인한 테러리스트들이 이걸 패션의 일부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뭘 정말 숨기고 있는 건가… 고민하며.

         아예 그 밑까지 들춰보려고 하길래 거기엔 속옷밖에 없다는 점을 나는 적극 강조했지만, 뭐 이것들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일단 한 번 지펴진 불씨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듯, 여성 둘을 자칫 추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자신들이 내건 대의명분에 전혀 어긋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어딘가 불안한 것처럼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바쁘게 수색 과정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탄창 같은 걸 다 미리 빼놓은 나는 걸릴 게 전혀 없었고, 베서니 언니도 아예 행거에 있던 제복으로 싹 갈아입고 왔으니 뭐가 있을 리 만무.

         

         의심하고 있나? 당연히 존나게 의심하겠지.

         이 타이밍에, 그것도 하필 연락이 끊긴 팀에서 이쪽으로 사람을 보냈다? 검증도 불가능하게?

         

         치료 행위 자체는 그럭저럭 진지하게 임하는 것처럼 보여서 애써 무시하려고 넘기려던 찰나에, 심지어 뭔가 급발진하다가 실수했다는 것처럼 곤란해한다?

         

         좆 같은 거짓말의 냄새가 술술 풍기지 않나?

         

         여지껏 그러라고 빈정거린 거다. 아예 의심을 안 받는다는 줄타기를 해내느니, 차라리 그 방향성을 원하는 쪽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대테러 부대가 벌써 숨어들었나, 미처 고려하지 못한 3세력이 존재했나.

         설마 우리도 안 한 자폭 테러 같은 걸 하지는 않겠지만, 방송국 쪽에서 인질을 포기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라도 한 건가.

         

         내가 한 가지… 되는대로 평범하게 살던 21세기와 다르게 어딘가 미쳐 있고, 게임 캐릭터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과 남다른 자아를 지닌 현대의 기린아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랬고. 우리는 결국 각자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

         

         헛되게 품은 기대, 투영하는 욕망. 관계를 맺으면서 나오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자기자신한테서 나온 부산물인 법이다. 관계가 맺은 매듭을 풀려면 솔직하게 내면을 마주봐야 겨우 될까 말까 하다는 뜻이지. 음음.

         

         따라서 복장으로 판단하건대, 남들 눈을 속여먹는 걸로 침입하는데 성공한 이 놈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슷하게 속아넘어가는 걸 극도로 혐오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이쯤에서 마무리로. 너희들이 발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배길 낌새를 느끼게 해줄게.

         

         어디 지정된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애들이 폭발하기 전에 훌륭히 자폭해주겠어? 친히 하는 내 부탁이니까.

         

         “대체, 언제까지…!!”

         

         “음…?”

         

         상당히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남자에게서 새어 나온다.

         

         ‘언제까지 성희롱에 가까운 수색을 계속할 거냐.’라고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으론 옳은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불안하고 애절한 시선 처리를 담으면 어떨까?

         

         옆쪽, 커다란 박스 형태의 방송용 낡은 대형 신호 교류기가 위치한 뒤편.

         사람 하나 웅크린 채 숨어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구석 부근을 계속 간헐적으로 힐끔거린다면?

         

         ‘언제까지 내가 더 시선을 끌어줘야 하냐.’면서 숨어있는 누군가를 재촉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비록 누군가가 숨어들만한 틈도, 줄곧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방이기에 수상한 짓거리를 벌였을 위험 분자도 없었다고 확신하고 싶겠지만 원체 간판 아나운서님에게 신경 쓰느라 소란스럽지 않았나?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인 거다. 그 무엇도.

         

         아니, 그야 가만히 내버려두면 누군가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클리어링이라도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재미없는 방식으로 이들이 내외적 갈등을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씨발! 여기서 실패하면 개쪽팔린 건 둘째 치고, 진짜 대형 사고다 아나스타샤 너…!!’

         

         파츠츠츳…!!

         ……끽!

         

         미리 무슨 장치라도 숨겨 놨냐고? 아니.

         베서니 외에 안에 따로 섭외한 사람이 있냐고? 그럴 리가.

         

         그렇지만 저 스위치 박스는 누가 몸을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명확히 바닥 긁는 소음을 내며 살짝이나마 움직였다.

         

         열심히 아르카디아 새끼들의 하자 있는 인성을 씹어대면서도.

         자존심을 비롯해 여러가지의 성패가 달린 만큼 빈틈없이 팔에다 준비한 자기장 망을 내가 감전될 각오로 확장시키자, 몸 내부에서 회로가 타는 이명이 들렸다.

         

         그 학구열 넘치는 실험 과정을, 망할 트램펄린 놀이 취급당하면서 소득이 있을 것 같다고 항변한 게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는 말씀이 되시겠다.

         

         여태 그 적은 출력을 가지고 빠르게 가속, 회전시켜서 더 강한 자력을 발생시킨다는 게 얼마나 허황되고 엇나간 발상이었는지 원.

         물리 시간에 멀쩡히 배워 놓고도 초능력이라는 사실에만 관심이 쏠려서 당연한 해결법을 망각한 셈이다.

         

         우선은 지지대-팔-에 코일을 존나게 감고, 구조를 미친듯이 촘촘하게 짜야 하는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봤던 마그넷 필드의 그물망처럼!

         

         끼기긱—!!

         

         “거기냐!?”

         

         쾅———!!!

         

         마이크 근처에서 반사적으로 발포한 탓인지 우선 대포 터지는 소리가, 그리고 그 뒤를 따르듯 삐이이… 하는 고 데시벨 이명이 뉴스 룸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갑자기 누가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덜컹거린 스위치 박스를 깔끔하게 터트린 사격 솜씨.

         훌륭하다. 솔직히 짠 것 같이 기대한 리액션을 취해줘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반고리관이 망가질 것처럼 흔들리는 와중에도 지휘관의 선제 공격을 보고 잇따라 총구를 돌린 테러리스트들이 뿌연 먼지 속으로 방아쇠를 연거푸 당기는 꼴 좀 보라.

         

         멍청하게. 어정쩡하게 미끼인 우리도, 정작 경계해야 할 출입구도, 오싹한 기척이 감돌던 천장도 전부 내버려둔 채로.

         

         자, 여기서 중요하 질문 하나.

         엉뚱한 쪽으로 향한 이들의 경계가 원상 복구되려면 몇 초나 걸릴까요?

         

         또 추가적으로 진짜 위협이 도래한다고 쳤을 때, 개개인이 즉각적인 판단으로 저 무수한 위협 중에서 올바른 정답을 골라 대처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고?

         

         정답은… 지금 막 조명 뒤편에서 활공하듯 뛰어내리는 특수 요원과 정문으로 시뻘건 안광을 줄줄 흘리며 진입하는 드로이드가 손수 공개할 예정이오니 알아서들 채점 받으시기 바랍니다. 네~

         

         어? 난 그동안 그럼 뭘 하냐고?

         

         남의 속옷 들춰보려던 이 새끼부터 조져야지! 뭘 뭐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뱀의 눈에는 뱀만 보인다.

    오늘 많이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저께부터 KT 인터넷 지역 장애가 발생해서 안 그래도 인터넷이 좀 ‘내가 얘들한테 유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게 맞지…?’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끊기긴 했는데, 업로드는 할 수 있으니까 참았거든요?
    그러다가 완전히 끊긴 채로 비문명인 신세가;

    기사님이 다녀가셔도 뭐, 저희 집 문제가 아니고 KT쪽 문제여서 그런지 해결이 안 됐네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언제 복구 예정인지도 안 알려 주는 건 좀. 허허.

    하여간 돌아올 때까지 그냥 무작정 계속 쓸까… 하고 자판을 두들겼더니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래도!
    연참 대신이라 생각하고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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