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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500년.

     지난 500년 동안, 그 누구도 협곡을 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협곡을 파는 건 매국행위에 가까웠다.

     제국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를 스스로 파낸다?

     당장 지브롤터 변경백이 나서서 그 목을 베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지.’

     지브롤터 변경백은 후작이 되었고, 제국과 평화 분위기가 만들어짐에 따라 절벽은 두 국가 사이를 가르는 장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물류가 지브롤터 협곡을 통해 오가는만큼 지브롤터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나는 협곡을 개발하기를 선택했다.

     제국 입장에서는 대환영.

     제국에서 노스트럼을 안쓰럽게 여기는 이들 중에는 ‘스스로 경제적 요충지를 포기하는 지브롤터’라는 사설을 쓰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따로 공식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목적이다.

     

     경제적 요충지는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협곡 자체를 파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이건 온전히 나리아-회귀 전 망국의 공주를 믿었기 때문.

     적어도 그녀가 마지막 순간, 굳이 목숨을 걸고 지브롤터 협곡을 파내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

     그 믿음이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위험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로버트 경을 대동한 채, 터널 안으로 직접 들어왔다.

     “행여나 이 동굴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내부에서부터 삽으로 파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삽도 들고 왔지 않은가.”

     “혹시나 누군가가 도련님을 암살하기 위해 일부러 터널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터널 1km 정도 새로 뚫는 건 지금의 지브롤터에게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야. 무너진 동굴 위로 새로 뚫어도 충분한 시간이 있지.”

     

     아무래도 거대한 땅 아래를 파고들어간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경우와 달리, 땅에 매몰된다는 경우는 자신이 어떻게 대신 목숨을 던지거나 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도련님. 궁금하신 건 알겠지만, 그냥 도련님은 따로 밖에서 기다리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가 직접 땅을 파보겠습니다. 원견의 마법이 걸린 수정구라도 들고 들어갈테니, 제발.”

     “그렇게까지 걱정해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안심하라고.”

     나는 로버트 경의 등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동굴이 무너진 적이 있었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오히려 더 무너지기 쉬울 것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내가 암살 위협으로부터 다치거나 죽은 적이 있었나?”

     “원래 99번을 이기다가도 마지막 1번을 패배하여 죽는다면, 그건 죽음인 겁니다.”

     “내가 호랑이를 키웠군.”

     로버트 경도 나름 땅굴을 오래 다니면서 적응이 되었을텐데, 아무래도 그 땅이 지브롤터 협곡이다보니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황금의 노예도 있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도 있기도 하고.

     제국보다 오히려 노스트럼이 우리에게 더 위험하게 작용하는 만큼, 로버트 경은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

     내가 직접 위험을 감수한다는 게.

     “도련님. 이런 말씀까지 드리지는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도련님이 이러시면 제가 나중에 크림슨 후작님과 아스타시아 아가씨에게 맞아 죽습니다.”

     “그 정도인가?”

     “그러니 제 목숨을 위해서라도, 제발 도련님은 밖에서 기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자네 목숨은?”

     “무너진 동굴에 로버트가 갇히는 건 괜찮지만, 그레이 지브롤터가 갇히는 건 지브롤터 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의 비극입니다!”

     “감동적이군.”

     이런 충신을 두고 쫓아내는 선택을 하다니.

     아마도 가문에서 오래 전부터 보살피고 키웠다면, 제국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을 때도 로버트 경은 지브롤터를 위해 일했을 것이다.

     “로버트 경. 이미 늦었네.”

     “아아…!”

     “안심하게. 그 동안 우리가 다녔던 땅굴이 얼마나 많은가? 땅굴 무너진다 싶으면 구하러 올 사람들도 있지 않나.”

     “…믿겠습니다, 도련님.”

     불안해하는 로버트 경을 진정시키며 약 1km 정도를 걷자, 곧 제국의 공사장 인부들이 발견한 지하 통로가 보였다.

     “깊군.”

     깊고 어둡고, 넓다.

     발광마석을 아래로 비췄지만, 기나긴 통로 끝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 통로라는 게 아래가 아니라, 위로 쭉 뻗어있다는 것.

     “천장으로 올라가는 통로라도 되는 건가?”

     이곳을 올라갈 바에는 차라리 지브롤터 협곡의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일반 광부들의 체력 수준이라고 한다면, 아예 올라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게 맞겠다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쪽으로 넘어간 사람은 있나?”

     

     행여나 광부로 위장한 제국 그림자 중에 누구 하나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나 싶어서 물어봤으나, 인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통로라서 다행인 건가.’

     통로가 아니라 뭔가 입구 같은 곳이었으면-

     ‘입구?’

     혹시 여기, 입구인 건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위로 올라가면 뭔가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도련님. 혹시 올라가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들켰군.”

     “…….”

     “로버트 경. 위에서 뭔가 느껴지지 않나?”

     로버트 경이 따로 나를 제지하지 않은 건, 그 또한 이 공동을 타고 올라가야 뭔가 해결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위에서, 마력이 흘러내려오고 있다.

     누군가의 마력이라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마력이 생각보다 짙게 흘러나오고 있다.

     “로버트 경. 때로는 미친 짓을 해야만 보이는 경우가 있지.”

     “혹시나 위험하면, 저를 버리고 도망치십시오.”

     결국 로버트 경도 어느정도 체념을 했고,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가보자고.”

     광부들로부터 건네받은 갈고리 앵커를 각각 움켜쥔 뒤, 벽에 앵커를 박아넣으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앵커를 박아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앵커 끝에 오러를 어느정도 덧씌우면 망치로 일일이 두드릴 필요는 없어진다.

     팔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건 있지만, 마스터가 되는 동안 힘을 허투루 단련한 건 아니다.

     체력이 부족하면 마나로 어떻게든 버티면 그만이고-

     “로버트 경. 아무리 높아봐야 300m잖나. 할 수 있지?”

     “차라리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게 더 쉬울 것 같습니다만.”

     

     절벽의 높이는 일단 ‘위’로 올라가는 이상, 300m가 최대일 터.

     “도련님. 그냥 니드호그 데려오는 건 어떻습니까? 위로 날아가죠?”

     “그러기에는 뭔가 비좁은 공간이라서.”

     “저희가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것보다, 니드호그가 기어오르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니드호그보다는 드레이크나 와이번 같은 녀석들이 어울리겠지. 니드호그는 벽을 수직으로 타고 올라갈만큼은 아니야.”

     “아쉽군요.”

     공간이 조금만 더 넓다면 비룡이 타고 올라갈 정도는 될 것 같지만-

     아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 마리만 딱 위아래로 움직인다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드호그 데려올까요?”

     “그 사이에 우리가 천장에 닿는 게 더 빠르겠군.”

     “그렇겠죠?”

     니드호그가 당장 옆에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 우리가 무작정 올라가는 게 더 빠르다.

     마스터라는 게 그렇다.

     괜히 고대로부터 영웅이라거나 ‘초인’이라거나 하는 이름으로 불린 게 아니다.

     물론.

     “이거, 터널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냥 위에서부터 파내려가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존재들도, 효율은 생각하기 마련.

     “퍼낸 흙은 제국 방향으로 던지고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협곡의 경사를 깎아서 제국 방향으로 던진 다음, 그걸 다져서 산을 만드는 거야.”

     “제가 살아있는 동안 산 위로 오르내리는 도로가 만들어지면 그게 기적인 것 같군요.”

     잡담을 하며 오르는 동안, 우리는 위를 향해 겨누는 발광마석에 비친 무언가를 보았다.

     “…도련님.”

     “잠깐만. 저거, 뭔가….”

     로버트 경도 보았고, 나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 말로 하기에는 애매한 것으로-

     “…….”

     “도련님. 예전에, 도련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협곡 안에는 뭔가 엄청난 게 숨겨져 있을 거라고.”

     “그랬지.”

     협곡을 개발하기 위한 당위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떻게 다른 이들을 설득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면서 적당히 둘러대고자 한 말이 하나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죠?”

     “모르지. 그건 대륙과 제국의 경제학자들이 알아서 할 일 아니겠나.”

     “…경제가 그냥 박살나겠는데요?”

     “괜찮아. 지브롤터는 박살나지 않으니까.”

     로버트 경과 나는 발광마석의 빛이 반사된 무언가를 향해 다가갔다.

     “원판인가?”

     그것은 거대한 원판이었다.

     사람 한 명이 팔과 다리를 쭉 뻗어도 끝과 끝이 닿지 않을만큼 제법 큰 원판이었다.

     땅으로부터 거의 100m 정도는 올라온 것 같은데, 벽의 안쪽에 생긴 홈 너머로 벽과는 다른 재질의 이질적인 황금색 원판이 있었다.

     “로버트 경. 경사가 있어. 안쪽으로 들어가는 형태야.”

     “발판으로 삼으시게요?”

     “휴게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입구일 수도 있지. 올라오기를 잘했군. 아래에서 멍하니 있었으면 있는 지도 몰랐겠지.”

     나는 앵커를 회수하며 경사에 발을 걸친 뒤, 원판의 옆에 앵커를 박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뭘까요, 이거. 환기구?”

     내 반대편으로 올라온 로버트 경이 원판을 향해 손을 뻗는다.

     딱히 반응은 없었다.

     “환기구라고 하는 건 안에 뭔가 시설이 있다는 말 아닌가, 로버트 경?”

     “…뭔가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드래곤의 레어라거나.”

     “드래곤의 레어라. 농담삼아 한 말이 진짜처럼 되어버린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일이 또 없겠군.”

     만일 망국의 공주가 마지막에 찾고자 한 게 드래곤 레어라고 한다면, 그건 확실히 의미가 있다.

     삽 두 자루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지만.

     “도련님. 만일, 정말 만일입니다만. 안에 드래곤이 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드래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일단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부터 따지고 싶은데.”

     “…그럼, 저희에게 명분이 있으니, 꿀릴 것도 없겠군요.”

     로버트 경이 나를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로버트 세빌리야,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드래곤 잡으려면 꽤나 고생 좀 해야 할텐데.”

     “고대의 노스트럼 영웅들도 드래곤을 힘으로 길들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드래곤을 사로잡은 다음, 진정한 용기병이 되겠습니다.”

     “드래곤 라이더, 기사 로버트의 전설이 시작되는 건가? 좋군. 소드마스터이자 진정한 용기병의 호위를 받아보고.”

     나는 앵커를 한 손으로 잡은 뒤, 송곳니에 엄지를 살짝 긁어 피를 한 방울 만들어냈다.

     “도련님. 설마.”

     “거짓된 황금이라면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겠지. 녹아내리면서, 문이 열리고.”

     “위험하면….”

     “그대로 바닥으로 뛰어내린 다음 도망치자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제가 도련님 짐이 안 되어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로버트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침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로버트 경.”

     나는 손끝에서 나온 피 한 방울을 원판에 튕겼다.

     “드래곤이 있다면 입구에 침 뱉는 것보다는, 뭔가 피를 통해 마법적인….”

     구구구.

     원판이 붉게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곧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무언가 황금의 빛이 반짝인다 싶은 순간.

     “도련님!! 진짜, 위-”

     로버트 경이 나를 향해 몸을 날렸고-

     번쩍.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니.

     “…응?”

     “…….??”

     로버트 경과 나는 새로운 곳에서 눈을 떴다.

     “…내가 마도공학이나 연금술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겪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런 마법과 기적은 정말이지…이해할 수 없군.”

     “저희, 이곳으로 전송된 걸까요? 강제 텔레포트?”

     로버트 경이 허리에 찬 검에 손을 뻗었으나, 그는 좀처럼 목소리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도, 도련님, 이거….”

     “로버트 경. 잘 기억해두게. 손자손녀에게 말해줘야하지 않겠나.”

     나는 로버트 경과 정면에 있는 것을 올려다봤다.

     “지브롤터 협곡에는 드래곤 레어가 실제로 존재하며….”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별 거 있나. 있는 그대로 말해야지.”

     온통, 황금으로 되어있는 신전과도 같은 공간.

     “골드드래곤은 존재한다.”

     황금빛 드래곤이 탑과도 같은 무언가를 휘감고 있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그 길이가 대략 50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집.

     “노스트럼의 수호룡이 지브롤터 협곡에 몸을 뉘인 채, 노스트럼을 수호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노스트럼의 신화와 전설은, 어쩌면 실제 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미, 살아있지 않지만.”

     황금이 된 채.

     생명체는 없다.

     있는 것은 오직, 황금 뿐.

     ‘망국의 공주는 틀리지 않았어.’

     협곡은 골드드래곤의 무덤이었다.

     ‘한 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던 게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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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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