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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세희 연구소,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비상계단 근처.

    세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곳에 연결된 비밀 공간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저번 지하통로처럼 서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오랜만이네.”

    세희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방 내부로 들어섰다.

    발각되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만들어진 공간이라 그런지 상당히 좁았지만, 필요한 것들이 빼곡히 갖춰져 있었다.

    바닥은 침대처럼 쓸 수 있도록 푹신푹신했고, 벽을 따라서 냉장고나 화장실 등의 필요한 것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 곳곳에는 황금으로 만든 작은 조각상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온갖 색상의 미니 사신들과 회색 사신.

    상당히 정밀하게 만들어진 황금상들은 여러 가지 자세를 역동적으로 취하고 있었다.

    세희가 잔뜩 배치한 황금상 때문인지, 아니면 이 공간에 황금 사신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세희 비밀 공간은 완공된 이후로, 언제나 황금 사신들이 잔뜩 뒹굴뒹굴 돌아다녔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세희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던 황금 사신 하나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앗!’

    이제서야 세희를 발견한 황금 사신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세희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치 오랜만에 와서 정말 반갑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세희는 그 모습을 보더니, 과장된 기합 소리를 내며 황금 사신들 틈으로 몸을 던졌다.

    “이얍!” 

    갑작스럽게 다이빙한 세희 밑에 깔린 황금 사신들은 즐거운 것처럼 키득거렸다.

    세희도 황금 사신들처럼 천장을 보며, 황금 사신들 사이에 누웠다.

    황금 사신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폭신한 침대에 누운 것보다는 볼풀 안에 들어온 것처럼 황금빛 파도가 세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세희는 황금 사신들 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황금 사신이 들으라는 것처럼.

    “웬만하면 이 방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부터 신세 좀 질게.”

    그 말에 즐겁게 뒹굴뒹굴하던 황금 사신들이 일제히 세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뒹굴뒹굴 구르던 아이도.

    낮잠을 자는 황금 사신의 뱃살을 깨물고 있던 아이도.

    세희의 배 위에서 레슬링하고 있던 아이들도.

    ‘!’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정말이냐는 것처럼 세희를 향해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요즘 인형이 너무 많아져서 말이야. 연구소 밖을 나가고 싶지 않더라고.”

    세희는 ‘나는 납치를 자주 당하니까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세희는 손가락으로 인형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 인형들 걸음걸이 봤어? 되게 이상해.”

    “박자도 똑같고, 다리 각도도 전부 똑같아.”

    “철컥. 철컥. 철컥.”

    “좀 저가형 모델은 소리까지 나서, 좀 섬뜩한 느낌이 들어.”

    마치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세희는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형들이 너무 무서운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라.”

    “왠지 미니 사신과 친근할수록 무섭게 느끼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세희는 황금 사신 하나를 손에 쥐고 물었지만, 황금 사신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렇게 세희는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천장에 달린 TV를 켰다.

    TV에서는 이제 곧 개최하는 ‘인형 박람회’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송파구 제임스 타워 인근, 임시 격리실.

    새벽녘의 푸른 빛이 보이지도 않은 이른 새벽.

    격리실 안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안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던, 알렉스가 갇혀 있었다.

    “사장님! 여기서 좀 꺼내주세요.”

    알렉스는 격리실 안에 갇혀서, 초조한 것처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음.”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침음성을 냈다.

    “사장님. 정신 오염 수치가 검출되지 않습니다.”

    한 연구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제임스는 지난밤,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알렉스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뒤 포획했지만.

    붙잡은 알렉스에게서 수상한 점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착각인 건가?’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제임스에게 또 다른 자료가 전달되었다.

    “사장님. 정밀 검사 결과 인형과 유사한 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측정을 피하려고 여러 번 같은 검사를 수행했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문제없었다.

    ‘CCTV를 너무 오랫동안 봐서 착각한 거라고?’

    제임스는 ‘감’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믿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감을 믿고 싶은 기분이었다.

    연구원들이 모두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제임스는 팔짱을 끼고 생각을 거듭했다.

    눈을 감고 고민하던 제임스는 눈을 뜨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렉스의 임시 격리 조치를….”

    제임스가 ‘해제한다.’라고 마저 내뱉으려는 순간, 찰싹하는 감각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메카 티라노 설계도를 등 뒤에 붙인 황금 사신이 보였다.

    그 황금 사신은 손바닥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접착제를 유령화로 떼어내고 있었다.

    ‘!’

    그 순간, 제임스는 뇌리에 번개가 치는 기분이 들었다.

    황금 사신을 조심스럽게 손아귀에 들자, 황금 사신은 마냥 즐거운 것처럼 히히 웃었다.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놀아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제임스가 너무 바쁜 바람에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지, 황금 사신의 표정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제임스는 손에 든 황금 사신을 천천히 알렉스의 격리실로 가까이했다.

    ‘!’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짓던 황금 사신은 알렉스를 보는 순간, 사나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뭐, 조그맣고 귀여운 황금 사신이 사나워 봐야 귀여울 뿐이었지만,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알렉스는 지금부터 특급 오브젝트 격리 조치에 들어간다! 반론은 받지 않겠다.”

    제임스는 황금 사신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황금 사신은 갑자기 제임스가 큰 소리를 내서 그런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언제나 아늑한 격리실.

    나는 격리실 침대에 누워서 두근두근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인형 박람회!

    마치 정말 기대하던 게임이 곧 발매된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뭐, 심장은 없지만.

    TV에서는 인형 박람회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다양한 인형들이 전시된 큰 홀과 사람들과 친숙하게 생긴 인형들이 나오고 있었다.

    [여러분 위험천만한 오브젝트 시대에 인생을 같이할 동반자를 구하고 계셨나요?]

    [그래서 황금 사신 같은 오브젝트에게 인생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황금 사신들의 모습도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사악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황금 사신에게 의지를 뿜어냈다.

    ‘저게 인간들이 보는 너희들의 모습이래.’

    TV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황금 사신이었지만.

    결국 ‘사악한 황금 사신 형상’을 이해하더니, 더듬이가 느낌표처럼 솟아올랐다.

    ‘사악한 황금 사신이래!’

    황금 사신은 인간들이 자신을 저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서 그런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우으.

    그리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것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 내 몸 위에 쓰러져 버렸다.

    흐물흐물한 황금 사신을 들어 올려서 더 놀려주려고 했는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악한 인간들이 만든 광고니까 괜찮아.’

    ‘정말?’

    나는 초롱초롱한 황금 사신에게 괜찮다고 계속 의지를 전달하며, 박람회 관광 계획을 고쳐 썼다.

    미니 사신들도 데리고 박람회에 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가야겠네.

    광고가 이 정도면 박람회에서도 ‘사악한 미니 사신들’이 잔뜩 나올 거 같아.

    황금 사신을 토닥이다 보니, 굉장히 길게 이어지던 박람회 광고도 마무리를 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 사신은 오브젝트입니다! 위험을 내포하고 있죠.]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협회 인형이 있습니다. 바로 내일 협회 인형 박람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형 박람회 로고와 날짜, 장소 정보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으로 광고가 끝나버렸다.

    이제 박람회는 바로 내일!

    ***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저택, 오무룡의 개인실.

    오무룡은 검게 물든 액체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군.”

    노환으로 당장 죽을 것처럼 보였던 오무룡이었지만, 최근 몇 달 동안 건강과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짙은 석유 냄새를 풍기는 액체를 꼼꼼히 닦아내고, 옷을 입은 오무룡은 천천히 저택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산책을 즐기는 오무룡의 앞으로 한 소녀가 빠른 속도로 뛰어들었다.

    “할아버지!”

    아름다운 금색 머리칼과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오무룡의 손녀였다.

    “그래, 우리 손주 왔구나.”

    그리고 오무룡과 그 손녀는 사이좋은 조손처럼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이 할애비는 일이 많아서 슬슬 가야겠구나.”

    “네, 할아버지!”

    손녀가 멀어지자, 오무룡은 웃은 적이 없는 것처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오무룡은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어떤 방으로 들어서더니, 어떤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화면 속에는 금발의 소녀가 비치고 있었다.

    “뭔가 달라. 아직도 모자라.”

    화면 속의 손녀와 방금 만났던 손녀는 완전히 판박이처럼 생겼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무룡은 뭔가가 다르다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가 부족한 거지?”

    “모르겠어.”

    “하지만 부족해.”

    “진화액인가?”

    “그런 흉측한 건, 절대로 아니야.”

    오무룡은 마치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뭔가가 이상하다고 되뇌었다.

    “그래, 그거야.”

    한참을 중얼거리던 오무룡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게 부족한 거였어.”

    광기로 희번덕거리는 오무룡의 눈동자에는 왠지, 붉은빛이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죽기 전의 손녀를 끊임없이 재생하는 방안에서, 고풍스러운 램프 두 개가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램프에서는 왠지 조그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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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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