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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5

    <285 – 그 시각, 배에서는>

     

    아카디아가 충격적인 소식에 깜짝 놀라는 사이, 크루즈선서도 깜짝 놀라는 이가 있었다.

     

    “안녕! 니 친구 조각상 됐다?”

    “으아악! 내려놔, 빨리 내려놔!”

     

    샌드쿠커는 기겁하며 외쳤다.

     

    “조각상이 된 사람을 수평으로 들고 있다가 하중이 실려서 허리에 금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에에. 괜찮지 않을까? 절대방어의 석화스크롤이라고 경매상품 소개할 때 말했고.”

    “절대방어의 석화스크롤?”

     

    황색마법사인 샌드쿠커는 대지마법과 관련된 석화마법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학식은 찢어진 스크롤에 남은 술식의 모양만 보고도 마법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추측하고 해석해낼 정도로 뛰어났다.

     

    “휴. 허리가 부러질 걱정은 없겠네. 절대방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어력이 높아. 검기나 마법에 직격당해도 티끌 하나 깎여나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뾰이가 방패로 캉캉 로지니의 팔을 때렸다.

     

    “으아아아!! 그 미친 짓 좀 그만해!”

    “네가 방금 말했잖아. 안전하다고.”

    “기분상의 문제잖아! 머리로는 안전하다고 알아도 눈으로 보기가 무섭다고!”

     

    쪼잔해.

    입을 삐죽 내밀고 불평하는 뾰이를 무시하고 스크롤의 분석을 속행한 샌드쿠커.

    방의 등불이 흐릿해질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햇빛을 받으면 다시 움직일 수 있어. 석화해제 조건이 간단한 걸 봐서 무인도에서 며칠을 버티도록 도와주는 스크롤이야. 빠르면 하루, 길어도 15일이면 석화에서 풀릴 수 있어.”

     

    뾰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혼자서 동굴 속에서 사용하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햇빛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겠지…?”

     

    샌드쿠커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람의 취급이 험한 건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단의 경우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험하게 사람을 다루는가.

    어디까지 끔찍한 일을 겪는가.

    그 ‘최악’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가 없다.

    아카데미에서 그토록 재단을 경계하는 이유를 이제는 싫어도 알게 되었다.

    오크노디가 그 밝은 인사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사는 이유도 포함해서.

     

    “역시 도와야겠어.”

    “돕다니, 누구를?”

    “북부대공녀. 너희가 무인도에 가있는 동안 그 여자가 제안을 했어. 선상반란을 일으키자고.”

     

    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선상반란? 어째서?”

    “몰라. 크루즈선에 타면 선상반란을 일으키는 건 상식이라기에 미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재단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보니 그 마음도 이해가 가.”

     

    이런 미친 배에서 하루라도 빨리 떠날 수 있다면 선상반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승무원은 수천 명이나 되는데 반란이 가능해?”

    “걱정 마. 아이린도 혼자가 아니니까. 오크노디와 아카디아에게 선택받은 실력자가 곁에 있어.”

    “앗, 알 거 같아! 검을 쓰는 남자 맞지? 싱이라는 이름의 굉장한 실력을 지닌 동방검객.”

     

    샌드쿠커가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대꾸했다.

     

    “남자도 아니고 검을 쓰지도 않거든? 두 사람에게 동시에 선택받은 실력자는 당연히 빛의 운반자 티토소가잖아. 싱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고.”

    “에에~? 걔가 그렇게 강했어? 그냥 귀엽게 생긴 허당미 있는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뾰이는 불신을 참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티토소가에 대한 소문은 뾰이도 어느 정도는 안다.

    하급반 학생이면서 학년수석인 오크노디나 한때 1학년 최대파벌인 아카디아 영애파벌의 최측근으로 자리하던 아이.

    수상할 정도로 커다란 조명대를 항상 드륵드륵 바퀴로 끌고 다니고 계단만 마주치면 무거운 한숨과 함께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던 바보.

    그런 바보가 선상반란에서 아이린의 선택을 받아 동참하다니.

     

    ‘실은 바보가 아니었던 건가?’

     

    설마 하는 생각은 샌드쿠커가 가르쳐준 접선장소로 향하자 굉장해!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예비조명이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나?”

    “3층 전 구역에서도 비상조명까지 조명이란 조명이 모조리 뽑혀나가서 이쪽에 지급할 예비조명이 없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 숨어사는 몬스터라도 침투한 건가? 어째서 조명만 닥치는 대로 뽑아가는 거지? 정말 불길한 소동이군.”

     

    계단 밑에 숨어서 엿듣는 승무원들의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티토소가가 배에서 상당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오크노디나 아카디아 영애의 곁에서는 무해한 소동물 행세를 해왔지만 실은 티토소가도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역시 오크노디는 대단해!’

     

    저런 근사한 힘숨찐 친구를 데리고 다니다니.

    분명 펑퍼짐한 교복 아래에도 비키니아머가 잘 어울리는 몸매를 숨기고 있으리라.

    한시라도 빨리 숨은 실력자에게 비키니아머의 훌륭함을 전수하기 위해 아이린과 티토소가의 흔적을 쫓아 선내를 돌아다니던 뾰이.

    접선장소에 도착한 뾰이의 눈에 때마침 선상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으아악! 앞을 볼 수가 없어!”

    “모두 안대를 둘러! 얼음벽에 반사되는 엄청난 광채를 맨눈으로 보았다간 실명 당할지도 몰라!”

    “티토소가… 교단의 사전조사에서는 볼품없는 낙제위기생이라고만 여겼건만 이만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니, 수석장학생의 안목은 정말 두렵군.”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놈들을 막지 못하면 제어실의 침입을 허용해버린다!”

     

    단 둘이서 수천 명의 승무원들을 쩔쩔 매게 만들 정도로 눈부신 섬광을 층 전체에 흩뿌리는 아이린과 티토소가라는 뜻밖의 조합.

    얼음벽과 조명으로 예기치 못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좋지만 뾰이는 곤란함을 느꼈다.

     

    “접선장소에 없을 거면 장소는 왜 정한 거야!”

     

    이대로는 두 사람이 선상반란을 성공시키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생겼다.

     

    -하? 비키니아머? 바~보. 선상반란도 못하는 허접의 옷 따위, 입을 리가 없잖아요.

     

    …이런 매도를 당할지도 몰라!

    뾰이는 눈 딱 감고 빛 때문에 발밑만 보고 걷기도 버거운 복도에 발을 들였다.

    뒷북.

    오기.

    하나마나한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비키니아머단의 자존심을 걸고 나선 뾰이.

    그녀가 용기를 내기 무섭게 상황이 급변했다.

     

    “멋대로 설치는 건 여기까지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제어실의 문밖으로 거칠게 튕겨 나오는 두 사람.

    누가 봐도 북부대공녀다 싶은 은발의 긴 머리를 흩날리며 전투태세를 취하는 하얀 피부의 아이린과 누가 봐도 빛의 운반자다 싶은 마주보면 눈이 괴로워지는 엄청난 광채의 조명을 든 티토소가의 등장.

    …솔직히 조명이 너무 강렬해서 피부색이고 얼굴이고 전부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일단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은근슬쩍 선상반란에 끼어들어 기여도를 높일 속셈으로 뻗던 손이 자신도 모르게 덜컥 멈추었다.

    비키니아머의 개방적인 차림새 탓에 고스란히 노출된 등골이 찌르르 떨렸다.

     

    위험해.

    나가면 안 돼.

     

    모퉁이에 숨은 그녀의 귓가에 제어실 안에서부터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선상반란이라. 5년 전의 우리와 같은 짓을 저지르는 후학들이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어. 아주 유쾌한 일이야. 그렇지 않나, 킬덤? 킬킬. 네 말이 맞아, 우손. 젊은 것들이 아주 크게 될 싹이 보여.”

     

    허공을 보며 눈을 까뒤집고 혼잣말을 하며 몇 번이고 휙휙 사람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투와 분위기, 자세와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는 남자.

     

    “당신은 누구죠?”

    “당신? 틀렸어. ‘우리’라고 불러야지.”

     

    남자는 스스로를, 아니 자신들을 소개했다.

     

    “우리는 안라게의 사도. 재단이 감춘 교단의 비보를 얻고자 승선했던 무모한 도전자이자 영육이 하나로 빚어진 타락한 군령체다.”

     

    조나 와이히엠하이와 동격의 위험한 존재.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를 재단의 간부가 제어실에서 나타났다.

     

    ‘다중인격 혼잣말 빌런은 누가 봐도 위험하지!’

     

    비키니아머를 사람들에게 강제로 입히는 테러리스트의 생각이었다.

     

     

    * *

     

     

    경매를 멈추기 위해 선상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크루즈선에 돌아온 아카디아. 그녀는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여전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웅장한 초호화 크루즈선이지만 그 사치스러움을 알릴 형형색색의 조명이 잔뜩 사라졌다.

     

    ‘배가 왜 어둡죠?’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마석낭비를 줄이려고.

    그럴 생각을 했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큰 배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뭔가가 벌어졌다.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자연스럽게 단련된 <사건감지> 기능이 그녀의 내면에서 연신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그런 아카디아의 어깨에 닿는 종이비행기가 하나.

    삐뚤삐뚤 날아오르는 궤적이 형편없지만 대운동회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종이비행기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실린 술식이 중요함을 알고 있다.

    비행기를 펼치자 술식으로 새기는 초보적인 암호가 눈에 띄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귀족들도 교양삼아 배우는 술식암호학의 기초암호.

    번호가 적힌 선실로 들어가니 하루 먼저 배에 돌아왔던 조각상로지니와 샌드쿠커가 있었다.

     

    “역시 귀족력이 높은 아카디아 영애라면 알아볼 줄 알았어!”

    “샌드쿠커. 마탑의 마법사가 저를 찾는 이유는 역시 로지니의 해주를 도와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겠죠. 미안하지만 지금은…”

    “아, 조각상은 괜찮아.”

    “…정말로요?”

    “햇볕에 두면 알아서 석화가 풀리거든.”

     

    묘하게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석화상태인 로지니의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괜한 호기심에 샌드쿠커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니 로지니의 눈에 힘이 실렸다.

    내 동료한테 허튼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경고의 눈빛!

     

    ‘…조각상이 된 몸으로 눈만 저렇게 뜬다고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선상반란을 위해 경매상품을 구매한 당일에 크루즈선으로 돌아온 아카디아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걸린 석화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는 조각상로지니의 건방진 눈짓.

    요컨대 로지니는 운이 나빴다.

     

    ‘조금 화풀이를 해버릴까요?’

     

    아카디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각상로지니와 샌드쿠커를 번갈아 쳐다보자 로지니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망한 아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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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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