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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6

        

       남자의 머릿속에 찰칵, 하는 금속음이 들리는 듯 했다.

         

       그 소리는 브레이크가 사라지는 소리였다.

         

       공포, 그리고 걱정이라는 이름의 브레이크가 말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불과 같아서, 다른 모든 것을 불살라 집어먹으면서 그 크기를 불리고, 공포를 삼켜버리고 그 크기를 불려 나가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제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선배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은 이제순의 머릿속에는 저 빌어먹을 놈에게 한 방을 먹이겠다는 생각이 떠돌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공하겠다.’

         

       자신을 모자란 놈이라도 되는 것처럼 쳐다보는 저 동료 놈들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알려야 한다.

       자신을 바보 취급한 선배 놈에게 자신의 진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을 저주하고, 애걸복걸하며 용서를 비는 것을 매몰차게 차버려 절망 속에서 헤엄치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은 저 빌어먹을 낙오자 놈들이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 부와 명예를 거머쥐리라.

         

       그래.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꺼림칙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어떤 대가를 바쳐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라면 그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접은 채 거리낌 없이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각오.

       각오에서 오는 용기다.

         

       괴한이 준 꺼림칙한 물건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용기!

       제물을 바치라는 꺼림칙한 말임에도 그것을 망설임 없이 행할 수 있는 용기!

         

       자신에게 걸맞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자로서의 마땅한 행보를 보이기 위한 용기!

         

       ‘빌어먹을 놈들!’

         

       이제순은 수첩을 쥐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그를 막아 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전 그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순은 그렇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이제순은 화단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앉았다가는 개미가 몸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개미가 잔뜩 들끓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벽면에 난 구멍을 찾기 시작했고, 이윽고 자그마한 구멍에서 수많은 개미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규칙 1. 제물을 바치면 정보를 얻는다. 』

         

       제물을 바쳐라.

       그리하면 정보를 얻으리라.

         

       ‘제물….’

         

       그렇다면 그 바쳐야 하는 ‘제물’은 무엇인가?

         

       금은보화?

       사람?

       진귀한 꽃과 풀?

       거대한 나무?

       아니면 땅을 봉헌해야 하는가?

         

       ‘제물은 소모품이지.’

         

       사전에서는 제물을 숭배의 대상에게 의식이나 제사를 통해 바치는 물건이며, 한 번 사용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소모품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음식과 생명이 있었다.

         

       음식은 먹지 않으면 썩고 변질하여서 가치를 잃어버리고, 생명은 숨이 끊어지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덧없음이 제물(祭物)이라는 것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귀한 것을 고스란히 바치고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만큼 지극한 숭배와 숭앙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낭비가 미덕이 되는 사치와 같이, 제물 역시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을 그저 의식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

       귀한 것임에도 소중히 다루는 대신 숭배의 대상에게 바친다는 것.

         

       ‘그래. 제물은 생명을 바쳐야 하는 거지….’

         

       그렇기에 남자는 개미집을 찾아왔다.

         

       구멍에 들락날락하는 개미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말이다.

         

       그가 개미를 첫 제물로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수첩이 어떤 정보를 줄지 모른다는 것.

       수첩이 주는 정보가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노력에 비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면 ‘생명’을 바치는 것은 큰 리스크를 지닌다. 돼지나 소 같은 가축은 엄청나게 비싸서 제물로 바치기에는 그의 지갑이 너무 쪼들렸고, 그렇다면 고양이나 개 같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만약 그것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면 잘못하면 동물보호법에 걸릴 것이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리스크가 존재했다.

         

       귀엽고 작은 동물들을 잔혹하게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라….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훌륭한 살인마 예비군으로 취급받아도 할 말이 없으리라.

         

       사람을 두루 사귀며 인맥을 넓혀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제순으로서는 그런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리라.

         

       어떻게든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 친해져서 정보를 뽑아내야 하는 직업인데, 그 장벽을 얇게 만들기는커녕 두꺼운 장벽을 몇 겹이나 치게 될 테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기자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리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수첩이 어떤 물건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귀한 물건을 바쳤더니 그에게 저주를 걸어버릴 수도 있고, 입맛이 높아져서 그 귀한 물건 수준의 물건이 아니면 정보를 내뱉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모종의 방법으로 귀중한 물건들만 요구해서 그를 거지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처음에 귀한 제물을 바치는 것은 멍청한 짓이리라.

         

       그렇기에 그는 개미를 구했다.

         

       구하기가 쉽고.

       잡을 때 노력이 들어가니 최소한 성의는 있으며.

       살아있는 것이니 나름 제물로서 구색은 갖춘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바쳐야 하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개미를 제물로 정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을 어떻게 바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식물이라면 짓이기거나 즙을 짜서 먹이고, 동물이라면 벌린 입에다가 처넣으면 될 텐데….

         

       이제순은 고민하며 수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첩은 그의 고민을 인지하고 있다는 듯,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첩의 첫 번째 페이지에 검은 점이 갑자기 생겨났고, 그 점은 물감이 물에 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크게 벌어지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면서 줄 위에 자리를 잡았고, 서서히 글자의 형상이 되었다.

         

       『 규칙 2. 제물은 수첩 위에 올린다. 』

       『 규칙 3. 정보의 질은 제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이런 제기랄.’

         

       이제순은 떠오르는 문구를 읽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 저주받은 수첩이 자기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소름이 돋는 것과는 별개로 믿음이 솟기도 했다.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제물’을 제대로 바치기만 한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순은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침을 삼키곤 수첩을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왕개미를 한 마리 한 마리를 잡아다가 수첩 위에다가 올렸다. 하지만 수첩 위에 올라간 왕개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수첩 밖으로 기어 나와 뽈뽈뽈 움직이며 자신의 갈 길을 걸었고, 그것을 본 이제순은 그냥 단순히 왕개미를 잡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뿌직.

         

       이제순은 왕개미를 엄지로 하나하나 눌러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짓이겨진 시체를 손톱으로 긁어 수첩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마치 그 모습이 어린아이가 개미를 가지고 잔혹하게 노는 것 같았지만….

         

       이제순은 아주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로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반복했다.

         

       수첩이 ‘제물’에 만족할 때까지.

       제물로 인해 수첩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때까지.

         

       계속.

       계속 말이다.

         

       그렇게 백 단위의 개미를 죽여서 수첩 위에 올렸을 때.

         

       마침내 수첩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팔랑.

         

       수첩의 페이지가 제멋대로 넘어간 것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음에도 수첩은 살아있는 것처럼 저 스스로 종이를 넘겨주었고, 오물이 묻어있는 빈 페이지에 서서히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개미의 사체에서 나온 즙으로 쓴 것 같은, 아주 역겨운 색의 글씨로 말이다.

         

       『 배우 정훈상은 어릴 적부터 귀신을 볼 수 있었다. 』

         

       정보.

       이제순이 바라마지않던 ‘정보’였다.

         

       하지만 이제순은 제물을 바치고 정보를 얻었음에도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듯 그 문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딴 정보 가지고 뭘 하라고….’

         

       배우 정훈상이 뭐?

       귀신을 볼 수 있었다고?

       어릴 때부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거창한 정보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건 좀….’

         

       대단한 정보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유명인의 추문에 대한 진실이라거나, 무슨 무슨 게이트라면서 나라를 진동시킬 거대한 비리에 대한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제물을 바칠 정도라면, 적어도 1면에 실릴만한 정보가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나온 정보가 뭐?

         

       고작 배우에 대한 정보?

         

       심지어 떠들썩하게 만들 스캔들에 대한 것도 아니고, 어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십거리로 떠들어댈 만한 하찮은 정보다.

         

       이제순은 수첩에 떠오른 정보를 보며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 빌어먹을.’

         

       『 규칙 3. 정보의 질은 제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하지만 이제순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어쨌든 수첩에 적힌 문구가 진짜라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수첩에 적힌 정보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것은 수첩의 잘못이 아니라, 그가 바친 제물이 고작 개미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 어차피 이건 진짜배기야. 제물을 바치면 정보를 주는, 아티팩트라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좀 커다란 걸 주면 되겠지. 햄스터라던가, 새라던가….’

         

       앞으로는 제물로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데다가 갑자기 없어져도 죽거나 잃어버렸다고 변명해도 될만한 작은 동물을 바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이제순은 수첩을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이 수첩은 저주받은 물건도, 꺼림칙한 물건도 아니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 수첩은 이제부터 이제순의 보물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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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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