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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6

     드래곤.

     

     노스트럼에는 드래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전설이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드래곤은 대부분 ‘비룡’이 전부였다.

     드레이크, 와이번, 그리핀.

     만일 진짜로 수십 미터에 이르는 드래곤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윈체스터 대공이 비룡기사단을 새롭게 정비할 때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드래곤들이 있었더라면’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설이 거짓이라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백금경에게 물어보면 아마 피를 토하며 계약을 어긴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라고 말한 적도 없다.

     A가 아니니 B다.

     이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상은 자유.

     수십 년 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드래곤 알을 깨먹었다.

     왕가에 내려오는 왕가의 수호룡은 점차 그 크기가 작아졌다고 하고, 그 모습이 그냥 덩치 큰 드레이크와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

     황금색인 걸 제외하면.

     그 알이 깨진 걸로 당시 왕가의 수호룡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 드래곤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그 때 깨진 드래곤의 알이 노스트럼을 위해 드래곤이 안배해둔 진짜 드래곤의 후손, 대를 이어 노스트럼을 지키고 있던 황금룡의 화신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도련님. 저거 진짜 드래곤이겠죠? 건국신화의 삽화에 나오던 모습이랑 엄청 똑같은데.”

     로버트 경은 드래곤의 웅장한 자태를 보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드래곤이 황금이 되어버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마법의 힘으로 황금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드래곤의 황금상을 향해 다가갔다.

     “로버트 경. 드래곤을 잡을 준비는 되어 있나?”

     “도련님? 혹시…자, 잠깐만요! 또 피를…!”

     

     푸화악.

     이번에는 제법 크게 손을 베었다.

     피가 흘러내릴 정도였고, 당연히 드래곤의 황금상에도 피가 튀었다.

     “……거짓된 황금은 아니라는 건가?”

     거짓된 황금이 일으키는 반응을 생각하면 내 피에 반응하여 무언가 녹아내리거나 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황금이 녹아내리면서 ‘잘 왔다, 지브롤터의 후예여’라고 하면서 서서히 봉인에서 깨어난다거나 하는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들이 실망하겠군. 그냥 황금이 된 드래곤을 발견한 걸로 끝나버렸으니.”

     “하아…. 진짜로 드래곤이 깨어나는 줄 알고 당황했잖습니까. 봉인이라도 풀리면 어쩌려고.”

     “봉인이 풀리면 대화도 하고 좋지. 적어도 그냥 광물 덩어리를 상대로 머리 아프게 추측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결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황금룡이 깨어나면 지금까지 베일에 쌓여있던 모든 것이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다.

     “황금에 관한 것들이요?”

     “뭐, 그런 것들.”

     회귀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매국노 그레이의 인생과는 다른, 거짓된 황금 속 ‘최후의 수호자 그레이’의 세계는 무엇인가.

     무능왕은 그 이명과도 같이, 시간을 거슬러 봐도 유일무이한 머저리인가.

     그러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다면 참으로 고마울텐데, 유감스럽게도 황금룡은 묵묵부답이다.

     “로버트 경.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 드래곤은 노스트럼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모양이야.”

     “노스트럼을….”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몸까지 이렇게 황금으로 만들어 노스트럼의 후손들이 쓰도록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나는 지팡이를 뽑아들었다.

     

     “도련님, 설마 채광하려는 건 아니죠?”

     “곡괭이로 캐는 건 아니고, 끝을 가볍게 자르는 거지.”

     “도련님….”

     “괜찮아. 니드호그 손톱을 오러 블레이드로 가끔 갈아줘서 아는 건데, 비룡이든 드래곤이든 각질 정리를 하는 정도로 자르면 아무런 문제 없다고.”

     

     지팡이에 오러를 담아 칼날을 만들어낸 뒤, 그대로 똬리를 튼 드래곤의 몸에서 야주 얇게 포를 뜨듯 검을 움직인다.

     “아무런 반응이 없군. 이거, 황금이랑 다를 바 없겠지?”

     “그건 왜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지 않는 겁니까? 드래곤의…껍질이라서?”

     “마력으로 만들어진 황금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의 육신이라서 그런 걸수도 있지. 이런 건 바토리 소장 같은 마도공학 연구소에서 알아봐야 하는 문제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군.”

     나는 잘라낸 껍질황금을 로버트 경에게 건넸다.

     “이건 명실상부, 황금이야.”

     “…….”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황금이라고 생각했던 광물이 실은 드래곤의 육신이 광물로 변한 걸지도 모르지.”

     “바르셀로나는 그러면 드래곤의 무덤이었던 겁니까?”

     “그럴 지도 모르고.”

     

     로버트 경은 한숨을 푹 내쉬며 황금의 껍질을 받았다.

     “신나셨군요, 도련님. 농담을 그렇게 하시고.”

     “이렇게 하나하나 가능성을 지워나가는 거지. 바르셀로나 땅에서 흘러나온 황금은 진짜니까.”

     “그래서 결론은 무엇입니까?”

     “오랜만에, 한 번 물어볼까?”

     “…….”

     로버트 경은 황금을 한참 동안 바라본 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너스 점수를 더 받거나 할 필요 없습니다. 황금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노스트럼의 수호룡께서 후손들을 위해 자기 스스로 황금이 되어버렸다. 그게 제일 가능성 있는 추론이겠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황금과 드래곤은 별개다.

     황금으로 드래곤 조각상을 만드는 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드래곤이 황금이 된다면, 그건 마법과 기적만이 가능한 일.

     드래곤은 기적의 존재다.

     한 인간이 기억을 가진 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어주는 기적도 있는데,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당사자가 스스로 황금이 되지 못한다?

     ‘그럴 리가.’

     그냥 모든 게 황금룡의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노스트럼 땅에 수많은 영웅들이 태어나던 것도.

     노스트럼 왕가의 사람들이 회귀의 기적을 누리는 것도.

     그 회귀의 기적을 망국의 공주가 자신이 아닌 나를 과거로 보내 노스트럼을 구하라고 한 것도.

     백금경과 모종의 계약을 통해 백금경이 계약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엘프들이 숲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현재,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마음대로 황금의 영령을 노예로 부리는 것도.

     그 모든 것이 황금룡의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될 일이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수호룡이군.”

     후손들을 위해 장벽도 세워줘, 땅도 비옥하게 만들어줘, 바다를 통해 침공할 수도 없게 만들어줘, 영웅들이 계속 태어나게 만들어줘.

     심지어 국가의 위기에는 시간까지 되돌리게 만들어줬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노스트럼이 망했다?

     ‘500년이면 오래 해먹었지.’

     드래곤의 입장에서 보면 짧은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국가의 역사가 500년 가까이 된 경우는 없다.

     물론 나머지 국가라는 게 전부 제국에 먹혀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간을 감아, 어떻게든 노스트럼 왕국이 유지되게 만들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적이 통한 건가?’

     비록 제국에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먹혀들어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경제침략은 막대한 황금의 범람으로 인해 오히려 제국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매국노 그레이가 과거로 돌아왔어도 결국 노스트럼 왕국 자체는 유지되기에, 황금룡의 수호는 이어지고 있다는 건가.’

     아마도 황금룡은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같은 이가 나와서 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같은 이가 희망이 되어 노스트럼을 이어나갈 것이다.

     꼭 노스트럼 왕가의 핏줄이 영웅이 아니어도 된다.

     

     노스트럼 왕국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노스트럼을 가장 빛나게 해주면서 왕가의 혈통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영웅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은 분명 회귀 전에 비해 친 노스트럼 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거짓된 황금의 기억에 있는 정도로 극단적 노스트럼 수호자까지는 아니겠지만.’

     수호룡은 할만큼 다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노스트럼이 멸망한다면, 그건 노스트럼의 문제다.

     “로버트 경.”

     “예, 도련님.”

     “노스트럼이라는 건 국가일까, 인종일까, 아니면 정신일까?”

     “갑자기 엄청 철학적인 문제가 나왔군요. 혹시 노스트럼을 멸망시키려고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꼭 노스트럼이 사라질 거라는 전제를 깔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로버트 경이 내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마도 그는 소드 마스터의 직감으로서, 내 질문에 담긴 비밀-회귀 전 매국노 그레이의 노스트럼에 대한 기억을 어느정도 읽어낸 게 아닐까 싶었다.

     “사라졌겠지. 지브롤터가 작정하고 제국편을 들었다면.”

     “아, 그런 말씀이십니까. 음…뭐, 무엇이든 끝났으면 끝인 거죠.”

     로버트 경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만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이 나리아 여왕님을 죽였다거나, 그래서 대가 끊어졌다거나, 그 바람에 도저히 참지 못한 노스트럼 국민들이 대규모 반역으로 궐기하여 지브롤터 왕국을 세웠다고 해도 황금룡은 인정할 겁니다.”

     “인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같은 자에게 자기가 수호하는 땅의 백성들이 고통받을 바에는, 노스트럼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라고 해도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바라지 않을까요?”

     “…….”

     “그 뭐냐, 이렇게 말하는 건 조금 그럴 수 있지만, 에단 세자르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단?”

     여기서 에단이?

     “예. 정확히는 지브롤터에 온 고아들. 그들 중에는 원래 자기 가문의 이름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보육원에서 자랐어도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잖습니까? 오히려 지브롤터에서 일한다는 것에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하고요.”

     “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뭐…황금룡께서 노스트럼을 수호해주기로 계약한 시간이 500년이었다거나. 으음, 그러니까….”

     로버트가 머리를 여러번 긁적이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는 도련님이 이 황금으로 나라를 세우든, 노스트럼을 잡아먹든, 아니면 제국까지 잡아먹어서 통일제국 지브롤터를 세우든, 저는 끝까지 따라갈 거라는 겁니다!”

     “…….”

     “그, 그렇게 계속 바라보시면 민망합니다. 크흠.”

     “내가 사람 하나는 확실히 잘 봤지.”

     로버트 경을 나의 기사로 삼은 선택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로버트 경. 자네가 나에게 충성하겠다고 한 것과 별개로, 이 황금을 이용해서 뭘 어떻게 하길래 나라를 만드니 마니 이야기를 하는 건가?”

     “어, 그야….”

     로버트 경이 황금의 드래곤을 가리켰다.

     “이 드래곤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대륙 전체에 풀린 황금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

     “…그렇지.”

     “더군다나 드래곤이 휘감고 있는 탑이라거나 이 바닥, 신전. 전부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그것도…그렇겠지. 녹아내리지 않으니까.”

     이곳은, 진짜 황금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도련님. 저는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이 황금은 지브롤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른 곳은 몰라도, 이 ‘지브롤터 협곡’은 지브롤터가 500년 동안 피로서 지켜온 땅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지브롤터가 이 협곡에서 ‘채광’한 자원에 대한 모든 권한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도, 일리가 있어.”

     노스트럼을 위해 500년 동안 수호한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퇴직금으로 이 황금의 수호룡을 받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단순한 황금으로서의 가치로서도. 황금룡이 노스트럼의 땅에 내려준 기적으로서의 가치로서도.”

     그리고, 회귀에 대한 권한도.

     “…….”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이 지브롤터, 나의 자손에게로 이어진다라.

     “…….”

     “도련님?”

     “아니, 그냥. 인간적으로…욕심이 잠깐 났을 뿐이야.”

     기적에 대하여.

     그리고 그 기적을 물려준다는 것에 대하여.

     * * *

     잠시 뒤.

     

     우리는 신전의 입구 방향에 새겨진 원판 위에 섰고, 금방 원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나온 곳은 우리가 들어왔던 곳과 똑같은 협곡의 대공동.

     “시간은….”

     손목시계로 확인한 시간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으나-

     [바르셀로나 총독 각하ㅡㅡㅡ!!]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와 로버트는 잠시 소름이 돋았다.

     [뭔가 보이십니까?!!]

     “……우리, 여기 들어갔다 나온지 꽤나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거의 3시간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

     “…….”

     나는 로버트와 함께 바로 앵커를 챙긴 다음, 원판에서 뛰어내렸다.

     카가가가강!!

     추락 직전에 벽에 앵커를 박아넣었고, 우리는 적당한 높이에서 사뿐히 아래로 뛰어내려 안전하게 착지했다.

     “허, 허억!”

     “테네시 소장. 우리가 올라갔다 내려온지, 얼마나 지났지?”

     “그, 그게….”

     테네시 소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20분.

     우리가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여, 원판을 발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

     “왜, 왜 그러십니까? 뭔가 문제라도…?”

     “로버트 경.”

     나는 테네시 소장을 가리켰다.

     “잡아.”

     “예.”

     “히, 히익…!!”

     테네시 소장을 붙잡고 둘이서 함께 다시 절벽을 올라 원판에 다가간 뒤.

     “열어.”

     “예, 예?!”

     “열어보라고.”

     “어, 어떻게, 끄응…!!”

     우리는 정보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아, 안 열리는…가, 갑자기 피를…?! 으악!! …? 여, 여긴…허, 허억!!!”

     “지브롤터의 피에도 뭔가 있나봐. 나 참.”

     황금신전의 문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오직 지브롤터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 뿐이라는 걸.

     그리고.

     “미치겠군. 로버트 경. 그 손에 든 황금, 그거지?”

     “……예. 드래곤 각질, 가지고 나올 수 있네요.”

     “…….”

     “…….”

     우리는 손에 넣고 말아버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캐낸 것보다 더 많은 황금을.

     “거, 숙청 당하기 딱 좋은 양이군.”

     황금이 너무 많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황금이 네 황금이냐
    저 황금이 네 황금이냐

    착하구나

    내 몸도 황금으로 내어주마

    아낌없이 (황금으로) 주는 황금룡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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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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