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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6

   크라슈가 테라시우스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시각.

   도중부터 둘의 대화에 질려 버린 바이오렌은 구석에서 다리를 가슴 가에 모은 채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루하네.’

     

   바이오렌은 솔직한 심정을 내뱉으며 혀를 찼다.

     

   크라슈가 하고자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으나.

   테라시우스의 눈에는 크라슈를 통해 얻을 연구 자료를 떠올리며 눈을 거세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 인간이 저런 눈도 할 수 있었구나.

     

   테라시우스가 자신을 보는 눈은 늘 실험체에 지나지 않았던 만큼.

   바이오렌은 어딘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나 다른 데 갔다 올게.”

     

   결국 한참을 기다리다 못해 지친 바이오렌이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둘은 크라슈에게 걸 마법을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크라슈까지 대답이 없자 입술이 삐죽 나온 바이오렌은 그대로 테라시우스의 연구실을 나와 버렸다.

     

   곧이어 그녀가 향한 곳은 아슬란이 있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들린 그녀는 곧 엄청난 광경을 보았다.

     

   사락사락사락사락-

     

   도서관에 있는 책이란 책은 전부 꺼내 놓은 채 책장을 한시도 멈추지 않고 넘기고 있는 아슬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운 걸까.

   그는 자기 눈에 물 마법과 시야 마법까지 걸어둔 채 속독하고 있었다.

     

   ‘이쪽도 단단히 돌아버린 거 같은데.’

     

   도무지 정상이 아닌 모습에 바이오렌은 살짝 질렸다.

   그러는 순간 아슬란이 읽은 책들을 정리하던 시녀와 눈이 마주쳤다.

     

   베이지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그녀는 바이오렌과 눈이 마주치자 쉿하고 입가에 손을 올렸다.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바이오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번에 찾은 곳은 로나가 있는 곳이었다.

     

   마도구 제작사 로나 임블라이즈.

   그녀와 대화해본 적은 없지만, 바이오렌도 그녀의 소문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바이오렌이 들린 곳에서 그녀는 곧 황당한 광경을 보았다.

     

   “이것도, 이것도 가능해! 그러네. 이쪽 프레이시 마도구와 펜타론 마도구를 동시에 이용하면.”

     

   전문 용어를 미친 듯이 내뱉으며 로나는 광기 섞인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거기에 차마 말을 걸겠다는 생각을 못 한 그녀는 조용히 마도구 실을 빠져나왔다.

     

   ‘정상이 없네.’

     

   바이오렌은 솔직히 평가하며 결국 터덜터덜 왕궁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하던 걸음이 어느 순간 익숙한 길을 따랐다.

     

   그것이 익숙한 길임을 깨달은 그녀가 뒤늦게 고개를 든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의 방문이었다.

     

   라헬른 아카데미로 가기 전 거의 평생을 갇혀 살았던 방.

   오랜만에 마주한 그 방을 보고, 바이오렌은 문고리에 스윽하니 손을 올렸다.

     

   어째선가 선뜻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문고리를 잡은 채 한참을 서 있던 그녀는 이내 이를 꽉 깨물었다.

     

   ‘뭘 쫄고 있어.’

     

   그녀는 문고리를 누르며 방문을 당겼다.

   곧이어 그녀의 눈에 자신의 방이 들어왔다.

     

   방에는 자신이 과거에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게다가 자동 청소 마법이 걸려 있는 만큼 방안은 깨끗했다.

     

   대신, 사람의 온기가 텅 비어 있었다.

     

   바이오렌은 혼자 쓰기에는 넓은 침대를 보았다.

   한때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침대였다.

     

   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그녀의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바이오렌의 마음속에서조차 말이다.

     

   「네 어머니인 결계사는 어쩌면 쭉 너를 지키고 싶었을지도 몰라.」

     

   바이오렌의 머릿속에 크라슈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크라슈는 자신이 내놓은 추측을 바이오렌에게도 들려줬다.

   바이오렌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일갈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남았다.

     

   ‘정말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날 떠난 거야?’

     

   바이오렌은 침대 가를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이유와 옛 추억들.

   바이오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추억들을 모두 바꿨다.

     

   어머니는 테라시우스에 의해 자신을 강제로 낳게 된 탓에 모든 게 증오스러워 떠났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바이오렌이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감정이 혼란스러웠던 탓이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바이오렌은 은연중에 자신의 어머니 또한 원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바이오렌의 앞에서 한탄하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늘 자상했고, 바이오렌을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이불보를 손으로 꽉 쥔 바이오렌이 눈가를 손으로 한차례 쓸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있기에 익시온과 테라시우스가 거래까지 했는지는 몰라도.

   그 비밀을 파해 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콰앙!

     

   그 순간 그녀는 들려온 폭발음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이오렌은 서둘러 그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설마 익시온이 눈이 돌아가 제블람 왕궁까지 쳐들어온 건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닌 크라슈와 테라시우스가 있던 장소였다.

     

   “무슨 일이야!”

     

   소리치며 뛰어 들어온 그녀의 눈에 곧이어 예기치 못한 장면이 보였다.

   거기에는 마법진 위에 앉아 있던 크라슈가 새까만 흑염 속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황한 눈을 하였다.

   새까만 흑염 속에서 크라슈는 피부가 짓물러질 정도로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누가봐도 비정상적인 광경이었다.

     

   “크라슈!”

     

   바이오렌이 소리친 순간 마법진 하나가 더 빛이 들어왔다.

   그러자 크라슈에게서 타오른 불길이 더욱더 거세게 치솟아 올랐다.

     

   이만큼 떨어져 있는 바이오렌마저 화상을 입을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그의 불길은 거세졌다.

     

   “괜, 찮아.”

     

   그 순간 불길 너머에서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늘 그렇듯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거닌 채 눈을 감았다.

     

   “거, 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

     

   들려온 말을 듣고, 바이오렌이 멍한 표정을 하였다.

     

   저 녀석은 대체 매번 무엇을 위해 저토록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맞서고 있는 걸까.

     

   어머니를 찾을 생각조차 안하고, 그저 포기해버린 자신과 다르게.

   크라슈는 무슨 일이든 포기하는 법 없이 악착같이 맞서고 있었다.

     

   “차근히 했다면 결국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는 순간 마법진을 하나씩 발동시키던 테라시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돌아본 바이오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다면 지금 크라슈는 왜 저렇게 무리하고 있는 건데.”

     

   크라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히 무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몰라 바이오렌이 묻자 테라시우스는 마법진을 하나 더 발동시켰다.

     

   “뭔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거겠지.”

     

   다음 말을 들은 순간 바이오렌이 멈칫하였다.

   그러고는 그녀가 다시금 천천히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그가 급하게 해야 할 일.

   그리고 그가 저렇게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유.

     

   그것이 무엇인지 바이오렌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 일과 연루되어버렸으니까.’

     

   익시온은 현재 바이오렌을 노리고 있다.

   그것도 어쩌면 이미 결계사가 붙잡혀 바이오렌의 비밀이 심긴 장소에 익시온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익시온은 무려 세계 침식자 집단.

   그들을 상대하려면 웬만한 힘을 지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런 그들을 상대로 바이오렌까지 지켜야 하는 마당.

     

   ‘나 때문에.’

     

   크라슈가 무리하고 있는 이유를 완전히 자기 탓이라 생각한 바이오렌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바이오렌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 대신 테라시우스에게 주먹까지 내질렀던 크라슈가 떠올랐다.

     

   왜 자기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바이오렌은 크라슈가 익시온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목적을 저지하고 싶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들의 목표를 저지시키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거겠지만.

     

   그날, 테라시우스에게 내질렀던 주먹을 떠올리면 자꾸만 바이오렌을 혼란스럽게 했다.

     

   크라슈와 바이오렌의 연은 기껏해야 라헬른 아카데미의 연이 전부였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그를 보고 있으니 방금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다 날아갔다.

     

   의문과는 별개로 바이오렌은 마음이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늘 마음속 한편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바이오렌이었다.

   그러나 지금 크라슈를 보고 있으면 그런 불안감이 전부 사라졌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바이오렌은 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새끼, 좀 더 버텨! 그것도 못 버티면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냐!”

     

   그러니 바이오렌은 괜히 성을 내듯 소리를 내질렀다.

     

   뭔지 모를 창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이오렌도 그녀의 아버지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녀 또한 타인과 교류해본 적 없는 이였으니까.

     

   그러니 처음 생긴 관계인 크라슈는 그녀에게도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오냐.”

     

   돌아온 대답을 듣고, 바이오렌은 괜히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

     

   언젠가 저 녀석에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있다면.

   그때는 크라슈가 치른 고통을 자신이 감내해주겠다고 말이다.

     

   그 결심을 하자 왜인지 바이오렌은 자신의 마음이 무척이나 평온해졌음을 느꼈다.

   오히려 가슴에 차오른 막연한 감정이 그녀를 벅차게 만들었다.

     

   크라슈는 생존만이 삶의 목적이었던 그녀에게.

   어머니를 찾으라는 새로운 삶의 목적을 부여했고.

   이제는 진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살아갈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바이오렌이 보기에 이 빚은 평생 갚는다 해도 갚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크다.

   아주 커서 갚기도 힘들 만큼 크니까.

     

   ‘살아야겠네. 진짜 질리도록 살아야겠어.’

   

   

   

   

     

   그래야 이 녀석이 준 도움을 전부 갚을 수 있을 테니까.

     

   바이오렌이 웃었다.

   그 웃음은 예전과 같은 억지웃음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을 수 있는 별과 같이 가장 환한 웃음이었으니까.

     

     

   * * *

     

     

   완전한 용왕족이 되고자 크라슈에게 발동된 마법은 총 백여든 두 가지.

     

   크라슈는 이와 같은 마법진 속에서 오랜만에 후회를 해봤다.

   강해지기 위해 뭐든 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테라시우스의 힘을 빌리는 건 좀 더 고려해볼 걸 이라고 말이다.

     

   테라시우스는 크라슈에게 손속을 두지 않았다.

     

   테라시우스의 마법에 따라 크라슈가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고통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테라시우스가 발동시킨 마법 중에는 정신계 마법도 다중으로 걸려 있었다.

   정신 쪽에 강제 내성을 극단적으로 올려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크라슈는 몸이 직접 깎여 나가는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정신만은 온전했다.

   그리고 그건 상상 이상으로 죽을 맛이었다.

     

   고통 내성만큼은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크라슈다.

   그런 크라슈조차 후회할 만큼 테라시우스의 마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몸 내부부터 차근히 불로 지져지는 느낌으로 시작해.

   몸이 한순간의 압력에 짓눌렸다가 다시 곱게 펴진 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감각까지.

     

   육체 자체를 뒤바꾼다는 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철저하게 주입된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중간에 크림슨가든이 질려 한숨을 내쉬었고.

   에벨아스크가 애 죽는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크림슨가든이 에벨아스크를 잘 갈무리해 준 모양인데.

   비앙카나 다른 애들을 데려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득은 있었다.

     

   그러한 고통을 감내하는 만큼.

   크라슈는 백룡왕의 모든 힘이 몸 전체에 스며드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와 동시에 크라슈의 근골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뼈와 근육이 가루부터 새롭게 조합되고, 몸 내부에 있는 노폐물은 죄다 불살라졌다.

     

   거기에 오러 또한 거듭 새로운 성장을 맞이했다.

     

   육체를 부수는 과정에서 오러의 그릇까지 부순 뒤.

   그러한 그릇을 강제로 더 늘려 놨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크라슈의 뇌가 순간적으로 바보가 될 만큼 끊어져 버리려고도 했지만.

   테라시우스의 정신계 마법은 그런 크라슈의 뇌조차 단단히 붙들어 놓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장장 일주일에 걸쳐 지나갔다.

     

   어느 조용한 방.

   크라슈는 귓가를 간질이는 새소리를 들었다.

     

   어느 순간 생각하기를 포기한 이후.

   크라슈는 시간 개념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살아 있네.’

     

   크라슈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몸에 더 이상의 고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제 진짜 웬만한 시련은 오늘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난 회귀 두 번은 못 하겠다.’

     

   내가 이 짓을 또 하면 혀 깨물고 죽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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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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