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7

       후끈거리는 열기는 여전하다.

       

       저 너머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태여 보지 않아도 될 만큼.

       

       가득하고 진득한 열기와 투기였다.

       

       추위가 주변을 이루는 겨울의 밤임에도.

       서리는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사박.

       

       나뭇잎이 밟히며 소리를 낸다.

       

       느껴지는 열기를 뒤로하고.

       위설아는 조금 걸었다.

       

       가능하면 달빛이 잘 보이는 곳으로.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지 않아도 괜찮니?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걱정 어린 듯 물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다지 멀리 가지는 않았다.

       

       이차 시험이 잠깐 동결된 동안 움직이는 것이니.

       금방 돌아가야 했다.

       

       조금 걸어가니, 다행히도 달빛이 확연히 내려오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자리를 잡았을 즈음.

       

       “의외요.”

       

       뒤편에서 따라오던 이가 끝내 말을 건다.

       

       알고 있었다.

       그가 따라오고 있음을 말이다.

       

       “그대라면, 그가 무얼 하는지 지켜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

       “궁금하지 않은가 봅니다.”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어쩐 일인지 금이 가는 게 보인다.

       더불어 저열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걸 보며 위설아는 별다른 말을 내뱉지 않았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부탁을 무시하며, 먼저 출발까지 해놓고선 말이오.”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의무는 없으니까요.”

       

       위설아의 날선 말에 장선연이 피식 웃는다.

       

       “항상 그랬지만, 이해가 되지 않소.”

       “무엇이 말인가요.”

       “그대가 날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말이오.”

       

       장선연의 말에도 위설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다.

       

       “나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오. 어째서 그토록 나를 싫어하는 게요?”

       “아직은 그렇겠지요.”

       “…하.”

       

       단호하기까지 한 말에.

       장선연은 쓰게 웃을 뿐이다.

       

       “어찌 그리 단정 지으시오? 마치 내가 무언가를 할 것 같다는 확신이라니.”

       “아닌가요?”

       

       위설아는 덤덤한 목소리였다.

       마치 너는 분명히 무언가 저지를 거라는 듯이.

       

       너무나 확고한 말에, 장선연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정말 너무하는군.”

       “당신도. 부정은 안 하네요.”

       “내가 부정을 하면, 그대는 믿을 수 있고?”

       “아니요.”

       

       큭큭.

       장선연은 웃었다.

       

       근래 들어 머릿속을 차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다.

       

       ‘꼬여있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로 펼쳐져 있었을 길이.

       어디서부터인가 꼬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부터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자신의 생각과 계획은 완벽했을 터인데.

       

       하물며 그를 뒷받침할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거늘.

       

       ‘대체….’

       

       주변의 인물들은 물론이고.

       저 여인까지.

       

       점차 깊게 꼬여가는 것 같은 기분만이 들 뿐이다.

       

       무수한 후기지수와 주변인들은 자신에게 감탄과 기대를 보내거늘.

       정작 제일 바라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고 있으니. 어째서 이런 차이가 벌어진 걸까.

       

       생각을 하면서도.

       장선연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놈 때문이겠지.’

       

       장선연은 머릿속에 얼굴을 떠올린다.

       처음 보았을 때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며 자신을 바라볼 때.

       

       유독 시선이 달랐음은 기억한다.

       

       악의.

       

       당시 놈의 시선에는 악의가 가득했다.

       숨길 생각조차 없는지.

       

       바라보는 눈빛은 경멸이 여려 있었다.

       

       자신을 저런 식으로 쳐다보던 인물은 처음이었기에.

       장선연은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장선연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놈에게는 ‘아직’ 그런 눈빛을 받을 만한 짓을 않았으며.

       만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게 했을 테니 말이다.

       

       그저 단순한 악의.

       

       장선연은 그런 눈빛이 익숙지 않았으나.

       더불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부러워하니 저렇겠지.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며 바라는 이의 눈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

       

       떠올리던 장선연은 속으로 헛숨을 뱉었다.

       고작 그런 것으로 생각했던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러워 한다라.’

       

       놈은 자신을 부러워했을까?

       그럴 리 없다.

       

       자신이 빛이 나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였으나.

       정작 이목은 다른 놈이 끌어갔다.

       

       진룡(眞龍).

       

       생각하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별호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놈이 하필이면 나와 같은 세대인가.

       

       잠이 들 때쯤 항상 떠오르던 비루하면서 이가 갈리는 생각이었다.

       

       자괴감이 물씬 드는 말들을.

       다른 이도 아닌 내가 할 줄은 몰랐던 이야기다.

       

       놈은, 받은 별호가 그러하듯.

       

       바글바글한 뱀들의 틈에서.

       홀로 숨을 죽이고 있던 용이었다.

       

       그 거대한 몸집을 꿈틀거리니.

       

       겨우 틀을 잡고 선을 지키던 뱀들의 향연이 무너지더라.

       당시 놈의 등장이란 그런 것이었다.

       

       애써 개방이 말을 돌리고.

       

       자신이 탈을 써가며 신성이라 말한들.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미 장선연 스스로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물며.

       

       지금 멀리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말이다.

       

       ‘…내게 보여주려는 것인가.’

       

       장선연은 놈의 의도를 떠올리며 이를 까득 깨물었다.

       사방에 투기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시작한 이유는.

       

       보란 듯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장선연은 그렇게 확신한다.

       

       -너도 나 좆 같아 하잖아.

       

       자신을 왜 그리 싫어하냐고 물었을 때.

       구양천이 장선연에게 했던 말이다.

       

       거친 어투와.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 탓에 떠올리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지만.

       

       반대로 의문이 든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째서인지.

       구양천은 자신에 대해 꿰뚫고 있다는 듯한 눈빛과 말투를 쓰고 있었으니.

       

       분명 용봉지회 이전까지는 서로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어찌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자신이 받고자 했던 관심을 모조리 가로채 간 놈이거늘.

       

       게다가.

       

       ‘그걸 뒷받침할 재능이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아.’

       

       인정하기 싫지만.

       

       놈은 다른 후기지수들과 격이 다른 존재다.

       마치 하늘이 내린 듯 홀로 환하게 빛나는 별과 같다.

       

       별?

       

       우습다.

       

       유성의 세대라 하여 각자 별이라 불리는 천재들 틈에서도.

       놈은 궤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없애야 해.’

       

       눈앞에서 치워야 했다.

       

       언제나 가장 빛나는 별은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지금 눈에 띈다는 검룡과 잠룡 또한 거슬리나.

       구양천 만큼은 아니었다.

       

       속으로 갑갑함을 돌리던 장선연은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본다.

       

       피풍의를 뒤집어써 제 외모를 가렸으나.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만큼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외모에 빛을 머금는 느낌이다.

       

       어렴풋한 달빛보단.

       대낮의 태양이 어울리는 외모.

       

       모순적이게도.

       본인의 검은 달을 보며 만들어진 검술일 텐데 말이다.

       

       여인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있었고.

       

       그녀가 가진 배경은 더 없이 장선연에겐 이로웠다.

       

       검존의 유일한 후인. 

       심지어 여인은 재능까지 뛰어났다.

       

       ‘그 구양천이 아무리 뛰어난들.’

       

       일이 년 만에 벽을 넘어선 저 여인보다 대단할까?

       

       “잊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오.”

       

       장선연의 말에 위설아가 입술을 조금 깨문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게 되면. 그대는 내 것이 되기로 한 걸 말이오.”

       

       이곳으로 오기 전.

       위설아와 나누었던 내기이자 약조였다.

       

       그녀는 반대로 묻는다.

       

       “…반대의 이야기는 잊었나요?”

       “아. 그거?”

       

       위설아의 말에 장선연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 담긴 감정에 위설아가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그러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들어주겠소.”

       

       무엇이었더라.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태천의 마경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였던가.

       

       더불어, 장가가 소유한 귀물 중 하나를 가지고 싶다 하였지.

       

       “하나 물어도 되겠소.”

       “…”

       

       위설아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듯 싶었으나.

       장선연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가 뭐가 그리 좋아 그러시오?”

       “뭐?”

       

       장선연의 입에서 구양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위설아의 목소리와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장선연의 입이 막아 지지는 않겠지만.

       

       “그대가 그의 집안에서 시종 노릇을 하던 것은 알고 있소만. 그때의 기억이 그리도 소중하오? 고작 일 년 남짓일 터인데.”

       “당신이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 거지?”

       “알지 못하니 알려달라 청하는 것인데, 화가 많이 나셨군.”

       

       열이 받은 듯 이를 가는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심지어 그는 다른 여인과 약혼까지 했다 들었는데.”

       “….”

       “시종 노릇을 하며, 연심이 쌓였다면 이해를 하겠으나. 그의 옆에 이제 와 당신의 빈자리가 있을 것 같소?”

       

       장선연이 뱉는 말에.

       위설아의 반응이 격렬하게 보인다.

       

       예전부터 그러했다.

       

       위설아는 유독, 놈에 관한 이야기에 약했다.

       

       그토록 좋을까.

       그토록 바랄까.

       

       그게 마음에 안 들면서도. 

       저런 반응이니 참으로 자극하기 편한 수단이었다.

       

       “당신….”

       “아마, 나와의 약조를 수락한 이유도. 결국, 그가 있으니 내가 올라서지 못할 거라 보기 때문일 터.”

       

       어찌 보면 위설아에게 편한 이야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진룡이 신룡관을 간다고 하였고.

       하물며 위설아 본인조차 신룡관에 가게 될 터이니.

       

       이런 약조쯤은 얼마든 깨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야.’

       

       높게 올라가 있어 쫓아가지 못하겠다면.

       끌어내리면 그만이다.

        

       이 단순한 이치에 대해, 그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머리가 꽃밭인가 보오.’

       

       세상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을 터인데.

       아쉽게도 그녀는 여전히 평화 속에 사는 모양이었다.

       

       ‘더 자극하면, 검이라도 뽑을 기세다.’

       

       애써 감정을 참는 모양이지만.

       

       장선연은 알 수 있었다.

       

       위설아가 한계에 닿아 있음을.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위설아는 참을 수 있을까?

       장선연은 그게 궁금했다.

       

       “잘 보고 계시오. 그가 끝내 망가져서 내게 고개를….”

       

       철컥.

       

       서늘한 감각에 장선연이 곧바로 기운을 끌어 올린다.

       역시, 이대로만 간다면….

       

       툭.

       

       “…엇?”

       

       곧바로 위설아가 검을 뽑아 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장선연은 벌어진 상황에 몸을 굳혀야 했다.

       

       눈앞에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귀신과 같다.

       

       갑자기 자신과 위설아의 사이에 나타날 때까지.

       

       다가오는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고 놀란 것은 위설아도 마찬가지.

       

       놀람이 섞인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고요한 바람이 불었다.

       

       “…언니…?”

       

       바람을 타고 위설아의 목소리가 흘러간다.

       위설아가 속삭이듯 말을 내뱉으니.

       

       중간에 끼어든 이가 시선을 그쪽으로 보낸다.

       

       달빛을 가득 머금은 백금발과.

       남청색의 무복.

       

       은은하게 느껴지는 뇌기까지.

       

       ‘…저 여인은.’

       

       장선연은 곧바로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면사를 쓰고 있다고 한들.

       저런 모습을 한 여인이 머릿속에 깊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검무희…?’

       

       용봉지회에서 자신의 검에 패했던 여인이다.

       

       검무희, 남궁비아는 위설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살짝 흔들며 위설아에게 말한다.

       

       “…안녕.”

       

       분위기와 닮은 잠잠한 음색.

       그녀를 살피는 위설아는 자못 놀란 얼굴이었다.

       

       “언니가…왜…?”

       “…찾고 있었거든. 찾아서…다행이야.”

       “저를요…?”

       “응….”

       

       남궁비아의 말에 위설아의 눈이 떨린다.

       그런 위설아를 보며.

       

       남궁비아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아직 인사를 못 했어….”

       

       찾은 이유에 대해 말하고선.

       위설아에게 다시금 말을 꺼내든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잘…지냈어…?”

       

       덤덤했던 목소리는.

       듣다 보니 다소 상냥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반갑다는 듯이.

       

       하지만 위설아는.

       

       잘 지냈냐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달싹이며 침묵한다.

       

       그 모습에 남궁비아가 위설아에게 한 걸음 다가가려 할 때.

       

       “검무희.”

       

       장선연이 남궁비아를 불러 세운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만, 그녀와 저는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평소와 달리 장선연의 목소리는 차갑게 눌려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여럿 직면하니 중첩이 되어 조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니, 대화는 나중에….”

       “누구?”

       “…예?”

       

       남궁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장선연을 돌아보며 뱉은 말에.

       장선연이 순간 말을 잃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들은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당신…누구?”

       

       하지만 제대로 들은 게 맞다는 듯.

       남궁비아는 똑같은 말을 되묻는다.

       

       장선연을 남궁비아는 한껏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가 누구냐고 말이다.

       

       이에 장선연은 끓어오르는 속을 재우며 애써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남궁비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럴 리 없다.

       

       “농담하지 마십시오. 검무희.”

       

       그때 비무제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던 여인이.

       

       나를 기억 못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소저께서 나를 기억 못 할 리….”

       “…다가오지 마.”

       

       그러자 남궁비아가 손짓을 보내며 가까이 오지 말라며 선을 긋는다.

       

       면사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가 무언가 힘들어 보이는 음색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장선연의 표정이 조금씩 흔들릴 무렵.

       

       “…냄새나니까…. 더 이상 다가오지 마….”

       

       남궁비아의 단호한 말에.

       

       끝내 장선연의 가면이 부서졌다.

       

       

       

       

       

       ******************

       

       

       

       

       

       화르르륵!

       

       주변 일대가 불꽃으로 가득하다.

       

       선홍빛을 머금은 거대한 불의 줄기가. 

       의지를 가진 듯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쾅!

       

       “으아악!”

       

       근처에 있던 후기지수가 풍압에 휩쓸려 허공에 붕 뜨더니.

       그대로 바닥을 구른다. 주변에는 이런 이들이 수두룩했다.

       

       교관들 또한 어찌하지 못하고 이들을 수습하기에만 바빴다.

       

       콰드득!

       

       스치고 지나간 열기가 고목 한 그루를 집어삼키고.

       

       화르륵!

       

       그대로 불귀에 휩쓸린 나무가 잿더미로 변화되는 게 보인다.

       불꽃에 휩싸인 일대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다.

       

       ‘굉장하구나.’

       

       멀찍이서 열기를 느끼며 지켜보던 비의진은.

       만족스러운 감상을 내비친다.

       

       ‘기운을 조절하는 능력이 상당해.’

       

       커다란 불덩이가 주변에 몰아치고 있음에도.

       

       가끔 하나씩 태워질 뿐.

       정말 주변에 불씨가 붙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말인즉슨.

       

       저런 힘을 뿜어내면서도.

       완벽하다 할 만큼 조절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고작 저 나이에 말이지?’

       

       이야.

       

       이 사나운 불꽃의 주인을 떠올리니.

       패존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화르륵!

       

       “으익!”

       

       열기가 새어나오며 이쪽으로 흘러오려 하니.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비비가 깜짝 놀라며 비의진의 등에 숨는다.

       

       우웅.

       

       그걸 보며 비의진이 아무도 모르게 기막을 펼쳤다.

       

       “…우와….”

       

       열기가 조금 줄어들어서 그런지.

       비비가 반짝이는 눈으로 불꽃을 지켜본다.

       

       “대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신기하더냐.”

       “그럼요!”

       

       아무리 후기지수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 후기지수였고.

       상대는 무려 검후라 불리는 고수였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뜨겁고 짙은 불꽃은,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대단해…!’

       

       비비는 눈을 빛낸다.

       

       이런 짓은 제 오라비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육룡삼봉들은 다 이런 걸까?

       

       재능의 차이를 느끼며 자신에게 실망할 법도 한데.

       비비는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었다.

       

       “검후가 밀리실 줄은 몰랐어요.”

       “누가 밀린다고?”

       

       비비의 말에 비의진이 툭 하고 말을 끊어 낸다.

       

       “그야, 지금 검후께서 아무것도 못 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밀리는 게….”

       “아무것도 못 한 다라….”

       

       흐음.

       

       비비의 말에 비의진은 수염도 없는 턱을 살짝 쓰다듬으며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저런 반응을 보일 때는 대부분.

       

       자신이 이상한 말을 했거나.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정정해주기 귀찮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이씨….”

       

       반응이 마음에 안 들어.

       비비가 씩씩 거리며 비의진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려고 들 때.

       

       사락.

       

       “응?”

       

       주변을 부수고 다니던 괴음이 순간 조용해지고는.

       

       어디선가 꽃잎이 날아와 비비의 코에 살포시 앉는다.

       

       “오잉?”

       

       뭔가 싶어 만지려고 하니, 꽃잎은 살짝 반짝이더니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더라.

       그걸 보며 비비가 비의진에게 다급히 말하려 하지만.

       

       “오라버니, 방금….”

       “잘 지켜보거라. 재밌는 시점이니 말이야.”

       

       비의진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비비는 비의진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그가 말했듯 다시금 불꽃의 중심을 살핀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비비의 눈에도 차이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거칠던 불꽃들 틈에서.

       꽃잎이 뒤섞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잎새인가.

       

       비비는 잠시 고민하지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매화(梅華)잎이다.

       

       무수한 매화잎이 불꽃을 타고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비의진은 생각했다.

       

       ‘나쁘진 않으나, 어설프다.’

       

       가공할 내기와.

       

       그를 조절하는 능력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나지만.

       정작 육탄전 쪽에서 무언가가 비어 보인다.

       

       그런 상황에 검후가 마치 밀리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그저 피하고만 있기 때문이며.

       보법만을 가볍게 취하며 거리를 벌리고만 있을 뿐이니 그런 것이다.

       

       저 거친 불꽃들을 모두 피하며 말이다.

       

       곧이어.

       

       화아악!

       

       매화잎이 바람에 휩쓸려 돌풍과 같은 모습을 취하더니.

       주변에 이르고 있던 불꽃이 모조리 휩쓸리며 허공으로 치솟으며.

       

       모든 불꽃을 잠재운다.

       

       ‘오호….’

       

       비의진은 이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 많던 불꽃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바람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변한 것인가.’

       

       비의진은 검후를 보며 의아함을 내배친다.

       

       예전의 검후였다면.

       조금 더 다정한 방식을 취했을 터인데.

       

       후배를 대하는 방식이 상당히 과격했다.

       그녀답지 않게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검후 또한 저 아해에게 기대를 품고 있는 듯했다.

       

       더 보여달라고.

       이 정도는 아쉽다고.

       

       그런 뜻을 담고 있는 행위일 터.

       

       그녀가 가진기대치가 상당한 모양이다.

       자신조차도 방금의 모습으로 어느 정도는 만족했는데 말이다.

       

       ‘그녀가 시간이 좀 흘렀다고 나이와 함께 주책이 늘었구나.’

       

       아마 검후 앞에서 뱉었다면.

       패존이고 나발이고 검을 뽑아 들었을 말이지만.

       

       속으로 뱉는 말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비의진은 즐거운 듯 웃으며 검후를 지나 다른 이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제, 너는 어쩔 생각이지?’

       

       두르고 있던 불꽃이 모두 사라졌다.

       열기는 남아 있었으나.

       

       불꽃의 주인인 구양천은.

       얼굴을 상당히 찌푸린 채 검후를 바라볼 뿐이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음을.

       입관 시험이니 그런 게 아니라.

       

       검후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것을, 구양천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여줄 생각일까.’

       

       천하의 검후를 앞에 두고 찡그린 얼굴은.

       상당히 불만이 많아 보인다.

       

       뜻을 살피자면.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는 듯한 모습이지만.

       

       검후는 처음과 같이 기대를 품은 얼굴이었다.

       

       “아휴.”

       

       그걸 보며 구양천은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더불어 마치 포기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기에.

       

       비의진은 조금의 아쉬움을 품어야 했다.

       

       구양천의 포기에 고작 이 정도라는 아쉬움과 실망이 아니라.

       

       ‘감출 생각인가 보군.’

       

       더 있지만 보여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기에.

       

       그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역시 저 아해가 제격…?’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역시 구양천이 딱이라는 마음을 확정 지을 무렵.

       

       “수습은 검후께서 빈틈없이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구양천이 알 수 없는 말을 뱉음과 동시에.

       

       후우욱!

       

       “…!”

       

       비의진과 검후의 눈이 동시에 부릅떠진다.

       

       구양천이 손바닥을 펼치며 눈을 감은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며.

       

       “염옥(炎玉).”

       

       밤하늘이 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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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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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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