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7

       나라가 망했다.

       

       무척이나 사랑하던 조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다. 황궁은 온데간데없고, 군대는 궤주하는 현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기사 내용이 소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라가 망할 때 로테는 그 자리에 없었다.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정보의 비대칭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웠다.

       

       “…….”

       

       그래서 로테는 머리를 파묻었다.

       

       유피엘의 집에서 쓰러진 이후로 식음을 전폐했다. 그렇게 기숙사에 틀어박힌 지 며칠이 지났다.

       

       똑똑.

       

       “……저기, 들어가도 돼?”

       

       방 밖으로 친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들을 내칠 수는 없었다. 로테는 목소리를 겨우 쥐어짜냈다.

       

       빼꼼.

       

       허락이 떨어지자 세 학생이 머리를 내밀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레니냐, 유피엘, 프레이였다.

       

       “로테, 안 좋은 소식이야.”

       “제국 영토가 전부 마왕군 손에 떨어졌대.”

       

       ‘듣기 싫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씌운다. 그것도 모자라 귀를 틀어막는다. 이렇게라도 좋으니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면에 소녀에겐 기다릴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나라는 망했다. 마왕군은 점점 남진하고 있다. 얼마 전 해상에서도 마수들이 나타났다. 그런 마당에,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친구는 감옥에 들어갔다.

       

       가능한 방법을 모두 써 보았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의지는 진작에 상실했다. 어디, 편안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야.”

       

       프레이가 힘없이 로테를 불렀다.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해져야 해. 일단 에테르부터 꺼내와야 할 거 아니야….”

       

       물기에 젖은 것처럼 촉촉한 목소리였다.

       

       “이제 에테르가 아니면 우리는 끝장이야. 하루라도 빨리 마법을 연구하지 않으면 모두 마왕 손에 끝장이라구…! 그런데, 그런 에테르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응? 로테, 빨리 가자. 빨리 가자니까…?”

       

       프레이는 낑낑거리며 이불을 세게 잡아당겼다.

       

       요호족다운 완력이었다. 로테는 앗, 하는 사이에 이불을 빼앗기고 말았다.

       

       “자, 빨리…….”

       

       프레이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로테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백옥과도 같은 피부 위로 둥그런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녀의 세상에서 구슬비가 쏟아진다.

       

       멘탈이,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가족도 나라도 잃었는데 이제 무얼 하란 말인가. 연명한 목숨이라도 살 가치가 있단 말인가.

       

       마왕군의 행적은 소녀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이제 막 아카데미에서 개화하려던 천재가 맥없이 흐느낀다.

       

       “……로테.”

       

       그 누구도 별다른 말을 건넬 수 없었다.

       

       프레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나 유피엘, 레니냐로는 로테를 웃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에테르가 와야 한다.

       

       그녀가 와야만 모든 게 뒤바뀐다.

       

       ‘어떡하지….’

       

       똑똑똑.

       

       그때 점잖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정작 방 주인인 로테가 대답을 안 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눈치를 보던 유피엘과 레니냐가 입을 뗐다.

       

       “…누구세요?”

       

       그러자 현관문 바깥에서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살리에르 양, 거기 있니?

       

       유피엘과 레니냐는 그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프레이와 로테는 알 수 있었다.

       

       틸레트에 있었던 시절, 매일같이 들었던 그리운 목소리였다.

       

       “드, 들어오세요.”

       

       덜컥.

       

       문 너머로 나타난 사람은 장신의 여성이었다.

       

       한쪽으로 빗어넘긴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보이는 실눈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능글맞은 인상을 지닌 여자였다. 

       

       어떻게 보면 수상하기도 했다. 암시장에 일하는 마도사 같다고 해야 하나.

       

       “정말이지, 선생님이 없다고 이렇게 울면 되니?”

       

       그러나 그녀의 팔뚝에는 군 인장이 찍혀있었다. 틸레트 소속, 서방군 사령부의 부대 마크. 영락없는 정예 중의 정예인 마도사.

       

       로테는 여인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헤, 헤를라인 선생님…!”

       

       메리가 헤를라인.

       

       틸레트에 있었던 시절, 로테의 담임이었던 여인.

       

       “어떻게, 선생님이 여길….”

       

       그런 그녀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순간 로테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싶어서 입이 떡 벌어진다.

       

       “왜, 내가 죽은 줄 알았니? 선생님처럼 강한 마도사는 쉽게 죽지 않는단다. 흐흠, 정확히 얘기하면 거의 죽을 뻔하긴 했지만.”

       “선생님. 정말 헤를라인 선생님이 맞아요?”

       

       헤를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발을 활짝 벌렸다.

       

       “그래, 선생님 맞아. 자, 이리로 오렴. 우리 제자 꼭 안아 줘야지.”

       

       로테는 마룻바닥을 딛고 천천히 일어났다. 처음에 느릿했던 걸음걸이가 도도도, 하고 빨라진다.

       

       “선생님, 선생님!”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헤를라인의 품에 쏙 들어갔다. 갓난아이처럼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마왕군이 제국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헤를라인을 비롯한 틸레트의 모두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혹은 마왕군의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다니.

       

       기뻤다.

       

       동시에 슬펐다. 헤를라인은 살았어도,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선생님,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가 사라졌대요…. 사실인가요…?”

       “응, 사실이야.”

       “저희 아버지는요. 오빠는요. 다른 사람은요. 모두, 모두 다…….”

       “응응.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아.”

       

       헤를라인은 로테를 최대한 깊이 안아주었다. 손수건을 꺼내 로테의 눈물샘을 직접 말려 주기도 했다.

       

       문 너머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무렵이었다.

       

       “…메리, 들어가도 되나요?”

       

       빼꼼.

       

       다음으로 머리를 내민 것은 금발적안의 여성이었다.

       

       헤를라인과 비견되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장인이 빚어낸 백자처럼 고아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내는 사람.

       

       “크, 클라이스 선생님.”

       

       로테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클라이스 하스펠트. 마수에게 당해 사망 처리되었던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굉장히 멀쩡한 모습으로.

       

       짜악!

       

       로테는 뺨을 강하게 두들겼다.

       

       “읏, 아파.”

       

       꿈이나 사후세계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히 로테가 아는 클라이스의 모습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는 것 정도.

       

       과거의 클라이스는 무언가에 미친 폐인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그런 독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클라이스 하스펠트 선생님이시잖아요. 저희 반 담임이셨던….”

       “앗….”

       

       클라이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가 곧장 내려온다.

       

       그러더니 굉장히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아니면 당황하고 있는 건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야, 좋으면 좋다고 말해. 몇 번 보지도 않은 학생이 얼굴을 기억해 줬잖아?”

       “…….”

       

       클라이스의 뺨이 살짝 홍조를 띠었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로 뻣뻣하게 굳었다.

       

       “으휴, 됐다 됐어.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로테 살리에르 양?”

       “네, 네?”

       “지금부터 놀라면 곤란해. 우리 둘만 온 게 아니거든.”

       

       로테는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전부 훔쳐냈다. 울적한 감정은 있어도, 선생님 두 명을 보고 나니 희망이 피어났다.

       

       특히 클라이스는 죽다 살아 돌아온 게 아니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지금 겪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옛날 생각나는군요.”

       

       이번에는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제 딸아이가 다섯 살 때였나? 마시멜로를 구워 먹겠답시고 손에 불을 튕긴 적 있었죠. 그런데 화력 조절을 잘못해서 그만 홀라당 태워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먹을 게 새까맣게 다 타버렸다고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로테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려왔다.

       

       방금 그거, 가족만 아는 흑역사일 텐데.

       

       “그런데 지금도 우는 거니?”

       

       기숙사 현관문이 활짝 열린다.

       

       남자 두 명이 차례로 들어왔다. 한 명은 중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로테 자신과 또래였다.

       

       둘 다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지녔다.

       

       “아….”

       

       숨이 멎는 듯한 기분.

       

       가까스로 가라앉혔던 기분이 다시 뛰어오른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숨이 가빠진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아빠, 오빠…!!”

       

       로테는 완전히 어린애가 되었다.

       

       

       **

       

       

       제국이 패망한 이후. 마왕군은 티림스 강까지 도하했다.

       

       이젠 정말 엘프국이 코앞이었다.

       

       이쯤 되니 나라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판단을 내렸다기에는 제국 패망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행정부는 거의 마비 직전이었다.

       

       “총장님, 같이 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버멜은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세실에게 그리 물었다. 세실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에 말을 전하고 싶은 거죠? 좋아요.”

       

       일리야드 아카데미는 국립 아카데미. 당연히 총장은 공무원이다. 아무리 못해도 장관급 되는 고위 공직자.

       

       어렵지 않게 대통령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호르데 학생이라면 데려가도 문제는 없겠죠.”

       

       세실은 인재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버멜도 아주 뛰어난 인재였다.

       

       리바이어던을 물리칠 때부터 그리 생각했다.

       

       버멜 호르데. 이 학생은 해룡의 약점을 정확히 알았다.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운 따위는 아니었다. 이후 제국군이 티림스 강에서 철수하리라는 걸 알아챈 것도 버멜이었으니까.

       

       제국과 엘프국 간 연락망이 박살 난 상태였다. 버멜이 없었더라면 제국인은 몰살이었다. 마왕군이란 그런 군대이니까.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어떻게 해룡의 공략법을 알고, 티림스 강에서의 일을 알았는지… 원리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공군(空君)의 비호를 받고 있다.’

       

       세실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곳에는, 시스루 복장을 한 바람 정령이 하나.

       

       ‘에어리얼 님.’

       

       공계마도를 관장하는 정령왕, 공군(空君) 에어리얼.

       

       그녀는 버멜과 계약을 맺지 않았을 터. 그런데도 그의 뒤를 뱅뱅 맴돌며 관찰하기 바빴다.

       

       에어리얼이 변덕이 많다는 건 들었지만, 설마 이런 청년에게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을 줄이야.

       

       필시 보통 학생은 아니니라.

       

       그리 생각한 세실은 버멜을 데리고 직접 행정부 문을 두들겼다.

       

       “세실 르네이 총장입니다. 대통령 각하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아, 총장님. 안 그래도 모셔 오려던 참입니다. 드시지요.”

       

       경비는 서둘러 세실과 버멜을 안으로 들였다.

       

       경비의 얼굴은 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