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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7

       시간이 흘러 아카데미도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의무교육이 없다. 당연히 ‘반드시 들어야 할 교육 시간’ 같은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어느 정도 대체하는 아카데미였지만, 내가 살던 세상처럼 ‘학기 중에 많이 쉬었으니 방학을 줄여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라는 법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법은 없지만, 돈은 존재한다.

        

       그리고, 황립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많은 등록금을 요구하는 곳이다.

        

       제국민의 경우 황실이 전액‘지원’하고, 외국인이라고 해도 상당량‘지원’할 뿐, 아카데미 자체가 공짜인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 등록금을 지원하는 황실, 특히 황실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수업 시간이 줄어든다’라는 것은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다. 기껏 돈 들여서 향후 제국에 도움이 될만한 인재들, 혹은 친제국주의자가 될 인재들을 키워내는 중인데 그 돈의 일정량을 떼어먹겠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등록금을 황실에서 대주는 곳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아카데미나 교사의 사정으로 인해 수업이 줄어들었습니다’. 같은 소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사정이 얽힌 결과, 아카데미의 겨울방학은 통째로 날아가게 되었다.

        

       우는소리를 하는 학생들도 꽤 있는 모양이지만, 어쩌겠는가. 무려 황실에서 아카데미에 딴지를 걸어 일어난 일인데.

        

       “아니, 진짜로 아껴야 한다니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앨리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주도자들이 체포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뒤쪽에서 아무런 거래가 없었던 건 아니야. 아무래도 주도자가 무려 제국의 황제인 만큼 배상을 하긴 해야 했다고.”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법국이었을 텐데요?”

        

       내 물음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벨부르 쪽 병사들한테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건 아니니까. 결계로 들어가다가 크게 다친 병사도 있었고. 그나마 전면전이 아니라서 범국가적인 손해배상을 할 일은 아니었고, 제국 자체의 예산이 아니라 황실 예산에서 지불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었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덕분에 올해 예산은 빠듯해. 이미 낸 등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제국의 예산과 황실의 예산은 별개다. 제국 예산은 철저하게 제국을 운영하는 데 쓰이는 ‘나랏돈’이다. 아무리 제국의 주인인 황실이라도 함부로 빼다 쓸 수는 없다. 대통령이 자기 월급 외에 국가 예산을 개인 돈으로 쓰면 안 되는 것과 동일하다.

        

       반대로, 제국의 예산이 쪼들리더라도 황실에 예산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황실의 예산은 말 그대로 황실의 예산일 뿐이니까. 귀족 중 눈치 더럽게 없는 자가 황제에게 ‘황실 예산을 좀 써라’라고 한다면, 역으로 황제는 ‘그렇다면 그대 가문의 예산도 좀 보태 주시겠소?’하고 되물을 것이다.

        

       아카데미는 황실에서 낸 등록금으로 굴러간다. 그렇기에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이다. ‘제립’ 론다리움 아카데미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미 낸 부분은 확실하게 받아내야지.”

        

       앨리스는 교복 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리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귀찮아 할 필요 없잖아?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너,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그 카페 음식도 좋아했잖아.”

        

       아니, 좋아하긴 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돌려가면서 여러 가지 맛을 전부 골라 맛볼 정도로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쪽이 아닌데.

        

       “그리고, 남아있던 학교 행사들도 있고. 문화제라던가.”

        

       아.

        

       맞다. 그런 것도 있었다.

        

       게임이건 만화건 라이트노벨이건, 일본 서브컬쳐에 중학교나 고등학교 생활이 등장한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문화제였다. 심지어 클럽활동이나 수업 같은 부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작품이라도 문화제만큼은 빼놓지 않고 나온다.

        

       그리고 보통 그 문화제에서 미소녀 캐릭터들은 코스프레를 한다. 높은 확률로 웨이트리스나 메이드. 사실 그 두 복장의 차이점이라곤 색이 좀 화려한지 아닌지 정도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나는 미소녀 캐릭터였다.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앨리스가 내 표정을 바로 알아보고 물어보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래도 앨리스의 말이 맞다. 2학기를 그대로 포기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코스프레하는 게 나뿐만인 건 아닐 테니까.

        

       *

        

       클레어나 레오만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앨리스의 성격도 상당히 성실한 편이다. 우리가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우리보다 먼저 등교한 학생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꽤 오랜만에 온 아카데미라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황궁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는데.

        

       내 자리에 앉아 잠깐 오늘 들을 수업에 관련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알리스, 실비아.”

        

       앨리스를 알리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내 주변에는 한 명밖에 없다.

        

       “샬럿.”

        

       그리고 마찬가지로 샤를로트를 샬럿이라는 제국식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도 앨리스밖엔 없었다.

        

       “그동안 잘 쉬었어?”

        

       “쉬다뇨?”

        

       앨리스의 안부 인사에 샤를로트가 되물었다.

        

       “그 이후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어요. 특히 저는 그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니까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증언을 하고 다니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었네요.”

        

       투덜거리듯 그렇게 말한 샤를로트는 곧 우리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뭐, 두 분보다 바쁘지는 않았겠지만요.”

        

       그랬다. 아마 우리만큼 바쁘지는 않았을 거다. 사실, 아카데미가 거의 멈춰있었던 것도 우리가 더럽게 바빴기 때문이다.

        

       벨부르는 적어도 국왕이 그대로 있다. 게다가 아직 건강에 이상도 없는 정정한 사람이다. 앞으로 못해도 20년은 더 자리에 앉아있지 않을까?

        

       그러니 아무리 적법한 후계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급하게 이것저것 인수인계받을 필요는 없다. 더 멀리 보고 조금 더 느긋하게 후계자 수업받고, 적절한 시기에 왕세녀 자리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샤를로트가 겪은 ‘바쁨’은 이번 사건에 한한 일회성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나나 앨리스가 받아야 했던 인수인계는…… 사실 아직도 한참 받아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아마 앞으로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리리라. 앨리스가 아카데미 핑계로 몇 년을 더 늦춰놓은 것도, 짧은 시간 내에 배우고 외워야 할 것들의 양을 보곤 기겁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체포되었다’라는 전례 없는 대사건 때문에, 귀족들은 차기 황제 자리에 가장 가까운 이인자도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땍땍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땍땍거림 이면에는 ‘그것도 하지 못하면 황제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라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수상할 정도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그리폰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면 그 귀족들 머리가 으적 씹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뭐, 그걸 직접 말로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걱정해줘서 고마운걸.”

        

       앨리스는 샤를로트의 그 놀림을 웃어넘겼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이 맞고, 도중에 여신이 끼어들어서 일이 더 커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선 세상의 미래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황제는 아직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황제의 피가 섞인 것이 분명한 다른 아이들도. 벨부르와 제국의 견해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아서, 아직도 황제는 루테티아 귀족 전용 감옥에 수감되어있긴 했지만, 향후의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도 앞으로 몇 년은 부딪혀야 할 일이다.

        

       원작에서는, 그것보다도 훨씬 약한 이유 때문에도 샤를로트와 앨리스가 자주 부딪혔다. 두 사람이 친한 친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두 사람 다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웃는 얼굴에선 싸우겠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이전에 카페에서 제국과 벨부르의 음식을 비교하며 싸우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역시 함께 싸운 전우 사이에는 더 깊은 우정이 싹트는 걸까.

        

       “그리폰은 아직 황궁에 있는 모양이네요.”

        

       “그야 아카데미에 데리고 올 수는 없으니까요.”

        

       “타고 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마차 대신 쓰려고 하면 화낼 텐데요.”

        

       샤를로트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해서 조금 식겁했다. 그리폰이 없다는 것을 듣고 어깨가 살짝 떨어지는 것을 보니 반 정도는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보는 감각이냐고.

        

       그런데 가만 보면 강아지같이 보이긴 해.

        

       먹는 게 돼지 한 마리고 싸는 것도 돼지 한 마리만큼인 게 문제지.

        

       물론 챙겨주는 것도 치워주는 것도 내가 직접 하는 건 아니라 안심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그리폰을 돌봐주고 있는 사람들이 좀 불쌍했다.

        

       이번 학기 끝나고 나면 그 사람들 월급을 올려주는 걸 좀 고려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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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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