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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7

        

       이제순은 얌전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첩이 진짜인 것도 확인했고, 더 좋은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밖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배 때문에 잡친 기분 역시 품 안에 있는 ‘수첩’이 주는 든든함 때문인지 어느새 사라졌었다.

         

       ‘흐흐흐. 이 수첩만 있으면 나는….’

         

       수첩에 제물을 바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기자에게 정보는 뭐다?

         

       밥줄이자 성공의 길이다.

         

       가치가 있는 정보만 얻는다면 이런 하잘것없는 곳이 아니라 높이 비상하는 것도 시간문제이리라.

         

       이제순은 그렇게 확신했다.

         

       ‘잠깐만. 가치 있는 정보라…?’

         

       그런데 문득 이제순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수첩이 자신에게 방금 준 정보가, 정말 가치가 없는 것이 맞냐는 의문이었다.

         

       『 배우 정훈상은 어릴 적부터 귀신을 볼 수 있었다. 』

         

       ‘귀신을 볼 수 있었다…. 팬들은 그런 일도 있었냐며 좋아할 것 같은 정보이기는 한데, 그냥 기사로 쓰기에는 좀 약한데….’

         

       수첩이 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 정보는 가치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정훈상 배우의 팬들은 이 기사를 소비해줄 테니까.

       그리고 정훈상에 관한 기사를 몇 번 좋게 써준다면 자연스레 접근해서 인맥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를 통해서 인맥을 넓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나쁘지는.

         

       하지만 이제순의 마음속에서는 수첩이 준 정보가 고작 이 정도의 가치가 아니라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수첩은 진짜배기다. 제물을 바치면 정보를 주는 진짜배기라고! 주물인지 아티팩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쩌는 진짜배기!’

         

       범상치 않은 물건이 자신에게 준 정보가, 고작 이렇게 1차원적인 생각으로 끝날만큼 가치가 없는 것일 리가 없다.

         

       이제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첩이 준 정보를 어떻게 사용해야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이 정보를 자신이 이 수첩의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잠깐만. 귀신, 귀신이라…. 그러고 보니 옛날에 예능에서 그거 관련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머리를 미친 듯이 돌린 덕분일까?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실마리가 잡혔다.

         

       그는 인터넷에 들어가 정훈상에 대한 자료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뉴스, 짤, 위키.

       심지어 정훈상의 팬카페에 가입해서 그곳의 자료들을 겉핥기로나마 훑어보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이제순은 훌륭한 재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 정훈상의 증조할머니는 유명한 무당이셨다. 그 덕분에 집안은 꽤 유복한 편이었다고 한다. 』

       『 정훈상의 증조할머니는 말년에 치매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병인의 눈을 피해서 집으로 나온 뒤, 선산에 있는 고목 아래에서 그대로 숨이 멎으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당신이 그곳을 묫자리로 삼았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한 뒤 고목 아래에 잘 묻어두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훈상의 가족들은 성묘하러 갈 때 그곳에서 간단한 제사를 한다고 한다. 』

       『 정훈상의 할머니는 남산에서 연락받은 적이 있다. 북한 붕괴 전 요인 납치를 명령받은 남파 간첩이 잡혔는데, 그 남파 간첩이 가지고 있는 리스트 중 정훈상의 할머니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훈상의 증조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었기에 그 딸인 정훈상의 할머니 역시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

       『 정훈상의 외가는 유명한 군인 가문이다. 아들이 태어나면 모두 군대에 보내는 것이 전통이었고, 요새는 딸도 군대에 보낸다고 한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한다면 최소한의 재산만 주고 그대로 내쫓고, 유산도 제대로 분배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

       『 정훈상은 어릴 적부터 외가 사람들에게 ‘너도 군대에 가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듣곤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친가 사람들은 ‘이노마는 군대에 갈 놈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외가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일축했다고 한다. 』

       『 정훈상이 어릴 적, 법력이 대단하다는 스님 한 분이 정훈상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겠으나, 궁합이 맞지 않는 곳에 있으면 큰 횡액을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날붙이가 가득한 곳, 양기가 밀집된 곳, 음기가 넘치는 곳에는 절대 가까이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

       『 배우 김세훈”훈상이 이놈은 참 특이한 놈입니다. 무당 팔자랑 연예인 팔자가 한 끗 차이라는 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니까요. 아마 이놈은 연예인이 안 됐으면 무당이 돼서 돈을 쓸어 담았을 겁니다.” 』

       『 정훈상”공포영화 촬영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요? 하하하, 귀신 소동이었을까요? 귀신 나오는 작품은 대박이 난다고 하잖아요? 이 작품 역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이것 봐라?’

         

       자료들은 묘했다.

       정훈상의 가계도에 유명한 무당이 있었다는 것, 그 때문에 특이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 신기라도 물려받은 것처럼 묘하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는 것 등.

         

       정훈상에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이야기는 가득했지만, 그 핵심으로 향하는 길은 교묘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 새끼가 영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없네?’

         

       그래.

       어디에도 없었다.

         

       정훈상이 영안(靈眼)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도, 그것 때문에 어릴 적부터 고생했다는 것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이거지? 보자, 아예 꼭꼭 숨기지는 못했을 테고…. 가족은 알겠고, 소속사도 알 수도 있고…. 흠. 잠깐만….’

         

       이제순은 퍼즐 조각이 모이며 그림으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림이다.

         

       아주 깔끔하고, 아름답고, 고풍스러우며, 가치 있는 그림.

         

       자신을 저 높은 곳으로 가게 해 줄 그림!

         

       오늘 자신이 갈궈지는 것을 보면서 비웃던 동료 놈들의 콧대를 콱 눌러줄 수 있을 훌륭한 그림 말이다!

         

       ‘캬아. 역시 대단하다니까. 이게 하찮은 정보가 아니었어. 역시 보물이야 보물.’

         

       이제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미친 듯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수첩에서 얻은 소중한 정보를 사용한, ‘끝내주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이게 바로 이 몸의 성공을 알리는 첫 번째 기사다.’

         

       이 기사가 바로 그의 첫걸음이 되리라.

         

       높이 비상하기 위한 첫걸음 말이다!

         

         

         

        * * *

         

         

         

       『 배우 정훈상, 알고 보니 영안(靈眼)을 가진 능력자. 』

       『 익명의 군인”정훈상은 자신의 재능을 더 값진 곳에 사용할 수 있었을 것. 매우 아쉽다.” 』

       『 라이징 스타 정훈상, 알고 보니 금수저…친가는 부자, 외가는 군인 가문?』

       『 누리꾼, 정훈상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요구…그 능력으로 DMZ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

       『 배우 정훈상 논란,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짓. 나라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 』

       『 軍”통일 대한민국의 군대는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입대를 강요할 수는 없다.” 』

       『 軍, 정훈상 배우 육군 홍보대사 위촉 가능성 있어. 』

       『 軍”DMZ의 경계는 철통같다. 영안을 가지고 있는 정훈상 배우를 육군 홍보대사로 임명하여 철옹성 같은 경계를 홍보할 것.” 』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헤드라인들.

         

       ‘가벼운 정보를 주었거늘….’

         

       진성이 보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연예 뉴스에는 정훈상에 관한 내용이 도배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캔들이나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적혀있어야 할 연예란은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친 듯이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실시간으로 기사의 조회 수와 댓글의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흐음.”

         

       이 기사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

         

       ‘정훈상’과 ‘군대’를 연관을 지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바로 이제순이라는 것이다.

         

       ‘보자. 논란을 크게 일으켜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이름값을 높인다…. 그래. 정석이지, 아주 정석적인 방법이야.’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본래 기자라는 직업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사의 당사자, ‘정훈상’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면모.

       그것이 기사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있었다.

         

       ‘보자. 이 기사를 읽다 보면 정훈상이 겁쟁이같이 느껴지고, 이 기사에서는 정훈상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묘한 의구심을 남기고, 이 기사에서는 외가와의 불화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이 기사에서는 다른 해프닝을 끌어와서 애국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만들고, 이 기사에서는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아니냐는 느낌을 주고…. 허허허.’

         

       기사는 그야말로 교묘했다.

       시간이나 순서를 교묘하게 배치해서 정훈상을 비호감으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은 기본이었고, 정훈상이 했던 발언을 끌어와서 짜깁기해서 이상하게 보이도록 논조를 보였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정훈상이 하지 않은 일이나 발언을 직접 만들어서라도 붙였다.

         

       그야말로 작정하고 한 사람을 매장해버리겠다는 의도가 여과 없이 보이는 글이었다.

         

       게다가 더 대단한 것은 기사에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것.

       마치 다른 기자들에게 ‘여기 맛 좋은 먹잇감이 있다. 나눠줄 생각이 있으니까 빨리 와서 같이 뜯어먹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 라이징 스타 정훈상, 논란에 시청자들 경악….』

       『 정훈상 군대 논란, 촬영 중인 드라마에 적신호 켜지나? 』

       『 차정주 영화감독”논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훈상의 주연배우 자리는 굳건할 것.” 』

       『 익명의 제보…정훈상, 사석에서 군대 비하 발언했다. 』

         

       당연하게도 기자는 이 맛난 먹잇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냥 소재에 자극적인 맛만 첨가해서 올리면 조회 수가 쭉쭉 올라갈 텐데,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이제순 기자를 시작으로 다른 기자들은 빠르게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연예란은 정훈상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기사는, 정훈상을 비난하는 논조였다.

         

       이건 이미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기자라는 이름의 상어 떼가 정훈상이라는 먹잇감을 맛나게 뜯어먹는 축제.

         

       ‘이 녀석의 과거를 알아차리고 기사로 낼 줄 알았거늘. 허허허.’

         

       정훈상.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라이징 스타.

         

       하지만 그 실체는, 박진성조차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추악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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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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