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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7

     너무나도 많은 황금이 생겼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일이 많아졌지만, 일단 나와 로버트 경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게 그 원판입니다, 아버지.”

     “…….”

     원판을 뜯어냈다.

     

     “문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원판 너머에는 다른 게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거, 순간이동장치…뭐 그런 거 아닐까요?”

     

     사람 네 명 정도 설 수 있는 좁은 공간.

     두 사람 정도가 발을 디디고 서면 딱 알맞겠구나 싶은 너비.

     “지브롤터의 피를 흘리면 골드드래곤의 레어로 들어갈 수 있다고?”

     “예.”

     “레어의 안에는 황금룡이 자신을 황금으로 만들고, 무언가 탑 같은 걸 지키듯이 몸을 휘감고 있었다고.”

     “예.”

     “…….”

     “짐작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아니.”

     아버지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전승이라도 전해지는 게 있으면 바로 떠올렸겠지만, 그런 게 전혀 없구나.”

     “전승이 끊어졌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런 게 있었다고 해도, 지브롤터 백작성에 있는 모든 사료를 파악한 네가 먼저 알아차리지 않았겠느냐.”

     “그거야…그렇죠.”

     회귀한 이후, 나는 10살 때부터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을 시간에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탐독했다.

     회귀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살펴봤고, 500년동안 쌓인 서적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회귀나 지브롤터 협곡, 그리고 협곡 안에 숨겨진 황금룡의 무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레이. 나는 조상님들께서 이걸 언급하지 않은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면 무조건 욕심이 나기 마련이니까.”

     “예.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황금룡의 무덤을 처음 본 순간, 나조차도 욕심이 날 정도였다.

     내가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로버트 경은 우리에게 이제 이 막대한 황금이 생겼으니, 지브롤터 왕국을 세울 차례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지브롤터 왕국이라. 할 생각 있느냐?”

     “아버지께서 바라신다면, 아버지를 초대 국왕으로 만들어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노스트럼과 테르시안, 두 왕국과 제국 사이에서 적절히 조율하면 되겠군요.”

     “기형적인 나라가 되겠구나.”

     “누구나 왕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저 왕국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왕국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

     아버지는 원판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고민하더니.

     “아니. 왕국은 안 된다.”

     지브롤터 왕국이 되기를 거부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귀찮아.”

     “…….”

     타당하다.

     어느 한 영지의 영주일 때와 어느 한 나라의 지배자일 때, 해야 할 일의 차이는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영지가 하나의 작은 나라 아니냐고?

     카르멘 왕비가 편하게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날려버리면서까지 국정을 운영한 게 아니다.

     “백작이었을 때도 할 일이 많았고, 후작으로 오른 뒤로도 할 일이 많았다. 제국의 첩자들이 행정관이라고 들어와도 가만히 내버려둔 것이 무슨 이유더냐?”

     “시키면 잘 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정의 일부를 제국에서 넘어온 행정관들에게 맡기고 있다.

     

     우수한 인재니까.

     그들이 지브롤터의 정보를 캐내고 제국으로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친 제국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냥 마음껏 굴려도 되는 행정관일 뿐이다.

     적어도 그레이 지브롤터가 합스베르크 황제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그래. 우리는 귀족이고, 무력과 치안을 담당하지. 행정적인 문제는 제국산 행정관들에게 맡겨두면 일사천리다.”

     “저희가 감사를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요.”

     “왕국이 되면 밤새도록 서류를 보고 대신들과 정치 문제를 다퉈야하겠지. 그럴 바에는 네 어머니와 데이트를 즐기고, 네 동생들과 다같이 비행선을 타고 하늘을 날며 다른 영지 유람을 다니는 게 훨씬 좋겠지 않겠더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처럼 하실 생각이십니까?”

     “왕이 그 짓을 하면 무능왕이지만, 후작이 하면 휴가일 뿐이지.”

     아버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너도 바라는 게 아니더냐.”

     “그렇죠. 저도 아스타시아와 함께 놀고 먹기를 바라지, 귀찮은 일은 질색입니다.”

     “그래서 누아르에게 지브롤터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고, 국제적인 일들은 나리아 여왕에게 맡기려고 하는 거지.”

     “둘 다 능력은 충분합니다.”

     “너와 비교를 하면?”

     “능력과 재능은 출중하나, 의지가 없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른 문제죠.”

     “…….”

     아버지와 나는 한참을 서로 바라본 뒤,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경제적 협박 수단으로 쓰는 게 아니라면, 이 황금은 몹시 귀찮은 물건이 되어버렸군.”

     “예. 황금의 활용에 대하여 몇 가지 계획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현재 황금은 총 세 종류가 있습니다. 광물로서의 황금. 마나가 굳어진 황금. 그리고 드래곤이 굳어진 황금.”

     “마나…거짓된 황금은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지.”

     “예. 하지만 드래곤이 굳어진 황금은 다릅니다. 분석 결과, 마나전도성이 기존 황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죠. 심지어 황금처럼 무르지도 않습니다.”

     “제련은?”

     “황금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까지 불을 올려야 녹아내리기는 합니다만, 대장장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기존의 어떤 금속보다도 더 단단한 금속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직접 실험은 해봐야 하겠지만요.”

     “…….”

     아버지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원판을 내려다봤다.

     “그레이.”

     “예.”

     “이 황금이 제국쪽으로 퍼지게 될 경우, 제국의 경제 자체가 망가지게 되겠지.”

     “예. 지금은 지금까지 쌓아온 체력으로 버티고 있는 단계지만, 이게 뚝 떨어지면 제국의 탈러는 종잇조각이 될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빵 한 조각을 사는데 수레 가득 탈러를 싣고 와야 살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로 극단적으로 된다고?”

     “10년, 20년이 지나면요. 어쩌면 근 시일 내에 그렇게 될 수도 있고요.”

     원판은 단순한 원판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체계가 발달한 제국에 있어, 이 원판 속 드래곤의 육신은 대재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중앙은행장이 경룡장에서 자기 사비를 전부 도박으로 날려먹은 뒤, 중앙은행에 예치된 고객들의 돈을 사용했다가 대부분 날려먹은 게 더 낫다고 할 정도.

     “황금룡은 여기까지 본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1골드를 진짜 금화로 만들 정도로 황금룡이 노스트럼을 너무나도 사랑한 흔적이겠죠. 인간이 개미 왕국을 위해 기꺼이 물을 제공할 때, 약간의 물방울만 흘려줘도 개미들은 빠져죽을 수 있는 그런 차이 아니겠습니까.”

     “인간과 개미라. …황금룡과 인간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어떤 느낌인지 알겠군. 그레이.”

     “예, 아버지.”

     “이 황금. 우리가 사용한다.”

     아버지가 결론을 내렸다.

     “가만히 두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제국이 신경이 쓰인다고 한들, 황금을 가만히 놔두면 그건 그냥 장식물일 뿐이다.”

     “활용방법에 대해서는….”

     “네게 전적으로 일임하마. 단, 제국이 무너지면 그건 곤란하다.”

     아버지가 나의 왼손을 가리켰다.

     “합스베르크 황제는 건방진 녀석이지만, 에르윈 황후는 네 장모가 될 사람이지. 그리고 제국이 흔들리면 네 결혼식의 규모가 작아지고 분란이 생길 수도 있다.”

     “…….”

     

     그건, 조금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이 황금을 우리가 쓴다는 것은 곧 제국 경제를 뒤흔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황금룡의 무덤에 대한 문제는 소유권 문제도 있다.”

     “노스트럼.”

     “협곡은 지브롤터의 영지지만, 모든 노스트럼 땅은 노스트럼 왕가의 것. 땅에서 파낸 것 또한 노스트럼의 것이며, 협곡에서 찾아낸 이 드래곤의 무덤으로 통하는 문과 무덤 속 모든 것들이 왕가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제국 입장에서도 경제대란이 와서 20년 정도 경제가 퇴보한다고 하더라도 욕심을 낼 황금이고, 노스트럼 왕국 입장에서는 제국이 망하든 말든 황금신전의 기둥을 전부 뽑아다가 황금을 마구 뿌려댈 수 있다.

     “그레이. 바토리 소장을 불러다가 한 번 연구를 해보자꾸나.”

     “연구요?”

     “그래. 드래곤이 기원이 된 황금…. 가장 관심이 많을 것 같은 이가 바토리 소장 아니겠느냐.”

     아버지는 무덤에서 깎아온 드래곤의 황금 조각 일부를 흔들었다.

     “이게 꼭 황금일 필요는 없지.”

     “…….”

     “여차하면 도금으로 위에 색을 덮어버려도 되고. 아니면….”

     아버지는 탁자의 위, 여동생들이 가지고 놀다가 남은 제국산 크레용을 하나 움켜쥐었다.

     “여기다가 색칠한 다음, 황금이 아닌 새로운 광물이라고 세상에 풀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

     “…….”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나는 회색크레용으로 칠해진 황금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토리 소장에게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데려오거라. 직접. 납치를 해서라도 잡아와.”

     “예.”

     * * *

     잠시 뒤.

     “아아….”

     “정신차리세요, 소장.”

     “나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바토리 소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직접 그녀를 잡아다가 황금룡의 신전으로 초대한 뒤.

     “드래곤인데, 해체해도 되나요? 후작님?”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베도록 하지.”

     “아앗….”

     바토리 소장은 드래곤을 해체할 기세였고, 아버지 또한 딱히 문제삼지 않았다.

     이유?

     “아버지. 그래도 드래곤인데.”

     “황금이 되어있을 때 미리 해체해둬야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그 미친 자가 막 이상한 노스트럼의 기적을 동원해서 이 드래곤을 일깨우면 어떻게 되겠느냐?”

     “…귀찮아지겠죠?”

     “그래. 너와 나는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래곤을 상대하려면 하늘까지 올라갈 비룡들은 드래곤에게 겁을 먹을 것이다.”

     아무리 니드호그가 억센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수십 미터짜리 드래곤이라는 생물의 정점에 있는 존재를 향해 날아가는 건 조금 무리가 있다.

     “혹시 모르지. 노스트럼의 피를 뿌리면 드래곤이 봉인에서 깨어날지도.”

     “으음….”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아깝더냐?”

     “아니요. 대신 해체하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겨두는 걸로 하죠.”

     “그러면 우선 사진에 찍히지 않는 부분부터 드래곤을 잘라보도록 할까. 깨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눈을 반짝이며 검을 뽑았다.

     

     서걱, 서걱, 서걱.

     아버지는 바로 드래곤의 몸통 부분을 향해 오러가 깃든 검을 찔러넣었다.

     붉은빛 오러는 순식간에 드래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마치 붉은 나이프가 황금색 아이스크림 속으로 푹푹 파고들어간 다음, 아이스크림을 퍼내는 것 같은 느낌.

     “흐흐, 흐헤헤….”

     바토리 소장은 잘려진 드래곤황금을 그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하다는 듯 두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황금을 자신이 부자가 되는 재물로서가 아닌, 이걸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하면 좋을까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 정도.

     “…….”

     나는 묵묵히 아버지가 드래곤을 해체하여, 연구용 황금을 퍼내는 걸 지켜봤다.

     나중에 사진이 찍혀도 티가 나지 않을 부분이 뭉텅뭉텅 잘려나왔지만, 드래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노스트럼의 후손들이 언젠가 제 몸까지 뜯어다가 쓰는 것조차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동화를 하나 만들어서 들려줘야겠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황금나무라고.”

     “응?”

     “황금룡이라고 하면 너무 노스트럼스러우니까, 황금나무라고 하죠.”

     잎사귀도 나눠주고, 황금으로 빛나는 사과도 나눠주고, 나무 기둥까지 잘려나가 마지막에는 나이테가 훤히 보이는 작은 그루터기만 남을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황금 나무.

     그 동화의 결말은-

     “그레이. 잠깐, 여기 와보거라.”

     아버지가 심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칼 꺼내. 그리고 이거 한 번 찔러보겠느냐?”

     “아버지?”

     “이거.”

     아버지가 황금룡이 휘감고 있는 황금의 탑을 가리켰다.

     “검이, 안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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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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