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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7

   “자칼! 오. 신이시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머님. 잠시!…”

   “잠시는 무슨 잠시니!”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버로우 공작은 흐뭇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여기까지 자칼을 데리고 와 준 귀인이 앉아 있었다.

   

   “카리아.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겠네.”

   “됐다고 몇 번 말해?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데려온 것밖에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래도?”

   “하하. 그렇지만 내가 감사를 전할 대상이 그대밖에 없는데 어찌하겠는가.”

   

   한 나라의 공작을 상대하는 태도로써는 부적절한 건방짐이었지만 버로우 공작은 그런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한 때 같은 전선을 돌아다니던 동료였으며, 그 전에는 공작과 마주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던 이였으니.

   

   “참 놀라운 일 뿐이야. 악신의 사도가 이 영지를 집어삼키려 든 것도. 그 위기에서 구원받은 것도. 또 다시 잃어버릴지 모른다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그 구원자가 죽은 줄 알았던 그대인 것도.”

   

   카리아. 왕국의 그림자. 과거 국왕 아래의 직속기관을 이끌던 자.

   

   그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음에도 철저한 은밀을 지키던 괴물.

   

   “왜. 내가 살아 돌아와서 거슬려?”

   “흐음. 그런 것도 없잖아 있지. 그대의 존재는 상당히 껄끄러우니까 말이야.”

   “걱정 마. 보시다시피 퇴물이 다 됐거든. 예전처럼 활발하게는 못 움직여.”

   “그대도 나이를 먹었단 것인가.”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순간 카리아의 한 쪽 눈썹이 들렸고 그를 본 공작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 그대도 여자긴 여자인가 보군! 나이에 민감할 줄이야!”

   “…요즘 자꾸 누가 그거 가지고 놀려서 곤란하거든? 공작님까지 그러지 말아줄래?”

   “그럴수록 대범하게 웃어넘겨야지. 늙은이. 그대가 자주 하던 말 아닌가.”

   “자꾸 그럼 나도 할배라고 부른다?!”

   “뭐. 나는 상관없네.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야.”

   

   버로우 공작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짓다가 조심스레 목걸이를 매만졌다.

   

   “악신의 사도가 부린 수작질에 그대로 넘어갈 정도로 쇠한 무인이다. 골방에 처박혀야 할 늙은이 취급을 당하는 게 정상이지.”

   

   이번의 사건은 버로우 공작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쇠하고 있다 생각을 했지만 악신의 수작질을 눈치 채지도 못한 채 당해버릴 줄이야.

   

   나의 무능함이 영지 전체를 위기로 이끌었다. 다른 이의 구원이 아니었더라면 영지는 그대로 악신에게 바쳐졌겠지.

   

   “물러나려고?”

   “아니. 아직 아들 녀석이 대성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듯 하니 그럴 순 없지.”

   “그럼?”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야지.”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전에.

   

   자신의 첫 아들이 죽은 것을 본 버로우 공작은 실의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모든 것들 바쳐 사랑하던 아들이 사라졌다는 것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아 그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치워버렸다.

   

   아들의 유품을 모두 내다 버리고.

   

   평생 동안 붙잡아왔던 창 대신 검을 들고.

   

   사랑하던 것을 또 다시 잃게 되면 무너져 내릴까 싶어 남은 아들을 멀리 했다.

   

   맏아들이 죽은 후로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

   

   “다시 창을 들어 볼 생각이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만난 이 때문이었다.

   

   태양과 같은 따스함을 품었으며.

   

   신께서 직접 빚으신듯한 아름다움을 지닌데다가.

   

   선명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성스러운 누군가.

   

   그녀가 했던 질책이 여전히 공작의 마음에 남았기에.

   

   “내 손에 이 목걸이를 쥐어주셨을 분께서 한 말을 떠올리면 마음에 열정이 절로 생겨나서 말이야.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 그거 참 잘 된 일이네.”

   

   목걸이를 보면서 감격스러운 듯 말을 하는 공작을 보던 카리아는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분명 저 목걸이를 쥐어준 건 우리 고용주님일 테고. 고용주님이 한 말이라면 분명 허접이니 좆밥이니 뭐니 하는 말일 텐데.

   

   대체 머릿속에서 어떻게 왜곡이 되면 그게 감동적인 말이 될 수가 있는 거야?!

   

   “그 분을 만날 수 있다면 내 몇 번이라도 고개를 숙일 터인데.”

   

   절대로 사실을 말하지 말자.

   

   고용주님이 그 감격을 선사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지 말자.

   

   환상은 환상으로 남아야 아름다운 때도 있는 거잖아.

   

   “카리아. 내 그래서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네.”

   “뭔데?”

   “혹여 이 목걸이를 건네준 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가?”

   

   환상이 환상일 때에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응. 알지. 당장 공자님을 구해준 것부터가 우리 고용주님이니까.”

   “예술교단의 사람인가?”

   “아닌 거 알면서 묻지 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카리아가 사람의 몸짓, 눈빛, 어투 같은 것만으로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당장 그 능력 때문에 왕이 회담하는 자리에 항시 동행하던 것이 그녀이니까.

   

   “그 능력은 쇠하지 않았나? 더 껄끄럽게 됐군.”

   “아하하. 어쩌겠어. 이건 내가 지닌 재능인 걸.”

   “하아. 그래. 알고 있다. 지금은 영지에서 예술 교단이 구원자 취급을 받고 있다만 아마 진정 이 영지를 구한 것은 주신을 모시는 분 중 하나겠지. 신성의 잔향을 보면 추측하는 게 가능해.”

   “정답.”

   “그 분께서 예술 교단에 공을 돌린 것은 현재의 주신 교회를 껄끄러워하기 때문일 테고.”

   “그것도 정답.”

   “내가 주신 교회와 협력하는 것도 바라지 않을 게야.”

   “공작님들은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니까.”

   “반 강제로 빠르게 만든 것이 그대 아니었던가?”

   “자잘한 일을 잊자고. 오래된 이야기잖아?”

   

   어깨를 으쓱이는 카리아의 모습에 공작이 헛웃음을 흘렸다. 예전에는 좀 더 사람 같지 않은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좀 사람다워졌군.

   

   “그 분이 그대의 현 주인인가.”

   “고용주. 주인하고는 약간 다르지.”

   “어쨌든 그 분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은 같지 않은가. 부디 감사를 전해주게. 그리고 이 비루한 늙은이가 보답을 위해 모든 걸 내걸 수 있단 사실도 말이야.”

   

   영지민들의 목숨을 구원했으며. 가문을 구원했고. 공작이 아끼던 이들을 구원했으며. 공작에게 깨달음까지 선사한 사람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았으니 목숨을 바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알겠어. 공작님. 고용주님께 전해두도록 할게.”

   

   카리아는 그리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는가?”

   “가족의 재회를 이 이상 방해할 순 없으니까 말이야.”

   “그것 참. 그래. 잘 가도록 하게.”

   

   공작의 배웅을 받으며 문 앞에 선 카리아는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아. 맞다. 공작님.”

   

   그리고서 고개를 돌렸을 때에 카리아의 얼굴은 방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을 적당히 귀엽고 정감가는 아가씨의 것으로.

   

   “…뭐지?”

   “나중에 공자님을 잠시 빌려갈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 고용주님께서 공자님을 키워보고 싶다 그러셨거든.”

   

   방금 전까지는 무어라도 해줄 듯 이야기하던 공작이었지만 공자의 이름이 나오자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본인이 바란다면이야 내 기꺼이 허락하겠네만.”

   “공자님 본인이 바란다면 괜찮단 거지?”

   “그래.”

   “그거면 됐어. 좋은 대답 고마워. 공작님.”

   

   그렇게 카리아가 빠져나간 후. 공작은 등받이에 기대며 긴 한숨과 함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 비해서 유해졌을 뿐 예전 성격은 여전하군 그래.

   

   굳이 그런 식으로 언제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를 할 필욘 없는데 말이야.

   

   “내가 그 분께 해가 될 행동을 할 리가 없잖은가.”

   

   이것도 그녀가 인간적으로 변했다는 증거일까.

   

   *

   

   자칼을 영지로 돌려보낸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교복을 수선하는 것이었다.

   

   예전 교복이라 해서 못 입을 건 없지만 입고서 움직이다 보니 불편한 부분이 여럿 있더라고.

   

   그래서 알새틴에게 물어 아카데미 교복점 중에 제일 괜찮은 곳을 방문했지. 오늘 맡겨두고 내일 아침에 칼에게 찾아와 달라 할 생각으로.

   

   “지금 몸에 맞게 해달라는 거죠?”

   

   근데 지금은 그 선택이 살짝 후회돼.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교복점 주인의 눈총을 받고 있자니 심적부담이 장난 아냐.

   

   옷가게에 갔을 때 내 옆에 점원 세 사람이 착 달라붙어 있는 수준의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여기에서도 무슨 패악질을 부린 게냐?>

   ‘그런 적 없!…을 거에요. 아마도.’

   

   과거의 루시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깽판을 치고 다녔는지 알 수 없어서 차마 단언할 수가 없네.

   

   혹시 이 분도 과거 루시의 피해자인가? 그래서 원한을 담아 노려보는 건가!?

   

   “알겠습니다. 영애. 내일 다시 찾아와 주십시오.”

   

   ‘저어. 치수라든가 그런 건…’

   “구닥다리 할매. 낡아빠진 건 알겠지만 줄자 정도는 써야 하는 거 아냐?”

   

   “괜찮습니다. 이 눈에 담겨있으니까요.”

   

   …어. 믿어도 되겠지?

   

   알새틴이 소개해 준 사람이니까 실력은 분명할 거 아냐. 혹시나 잘못 되면 카리아한테 일러서 알새틴을 괴롭혀주면 될 테고.

   

   짧은 망설임 끝에 들고 온 교복을 맡겼더니 주인 할머니가 단호히 목소리를 냈다.

   

   “지금 입고 계시는 것도 주시죠.”

   

   ‘네? 아니. 저 그러면…’

   “그럼 난 뭘 입고 돌아가라고? 그런 것도 생각 못 하는 거야?”

   

   “걱정마십시오. 하나를 하는 덴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할머니는 그리 이야기를 하며 내게 잠시 입을 옷을 내어주었다.

   

   으음.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시니 잠시 기다려 볼까?

   

   얼마나 잘 하시는 지 구경도 할 겸.

   

   그렇게 옆에서 할머니가 옷을 수선하는 과정을 본 감상은 이러했다.

   

   바늘이 움직이는 걸 보다가 그대로 홀려버릴 것 같아.

   

   분명 별 거 안 하는 것 같은데 손이 움직일 때마다 옷이 휙휙 바뀌다니!

   

   이건 이미 사람의 기술이 아냐!

   

   마법이라고! 마법!

   

   “한 번 착용해 주시겠습니까? 고칠 점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할머님이 지닌 기술에 경탄을 표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수선이 끝나 있었다.

   

   우아아. 개쩐다.

   

   눈으로 대충 살펴봤을 뿐인데 어쩜 이리 몸에 딱 맞는 거야?!

   

   이 할머님 눈에는 사람의 치수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건가!?

   

   “좋군요. 내일 오실 때까지 모두 끝내두도록 하겠습니다.”

   

   ‘넵! 잘 부탁 드립니다!’

   “흥. 쓸데없이 주름만 많은 건 아니네. 귀여운 나한테 맞춰서 잘 해두도록 해.”

   

   게임 속에선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기인을 만나 신이 난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아카데미 거리를 걸었다.

   

   요 근래 죽어라 고생만 했으니까.

   

   오늘은 쉬는 김에 관광이나 해볼까.

   

   아카데미 거리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옛 추억을 되새겨 보는 거야.

   

   그래. 그게…

   

   어라? 저기 가게 바깥에 앉아 있는 거 조이 아냐?

   

   맞네. 조이랑 아서 거기에 프레이까지.

   

   아서가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또 프레이가 무슨 사고를 친 거 같은데.

   

   궁금증이 생긴 나는 종종걸음으로 저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허접들. 여기서 또 시간 낭비 하고 있어?”

   

   평소처럼 인사를 건넨 나였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평소와 같지 못했다.

   

   원래라면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을 이들이 입을 헤 벌린 채 가만 내 얼굴을 살피고만 있었으니까.

   

   ‘…왜들그러세요?’

   “안 그래도 멍청한 데 왜 더 멍청해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재차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프레이가 목소리를 냈다.

   

   “…루시?”

   

   ‘네. 맞아요.’

   “뇌에 정보가 가득 차서 기억이 날아가기라도 한 거야 바보검사? 보면 알잖아.”

   

   “루시구나. 많이 달라져서 놀랐어.”

   “정말요. 주말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영애님이 너무 아름다워 지셔서 못 알아 볼 뻔 했답니다.”

   

   ‘그런가요?’

   “우리 얼빵이의 시력이 허접해서 못 알아볼 뻔 한 건 아니고?”

   

   “제 눈은 지극히 멀쩡하답니다!”

   

   프레이에 이어 조이까지 정신을 차리며 테이블 위가 소란으로 가득 차던 그 때에도 아서는 여전히 내 얼굴을 바라본 채로 굳어 있었다.

   

   뭐야? 얘 어디 아파?

   

   ‘아서?’

   “불쌍왕자님? 말을 하는 법을 잊으셨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더니 아서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 그. 뭐냐. 루시 알른.”

   

   ‘네.’

   “왜 그러시나요?”

   

   “나…난 할 일이 생각나서 잠시 가보도록 하겠다.”

   

   쟤 진짜 뭐야? 답잖게 왜 저래?

   

   …설마.

   

   내가 타리키를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감시가 덜해진 동안 시킨 걸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건가?!

   

   그걸 들켜서 더 구르게 될까봐 도망친 거구나!

   

   아서. 그래봐야 넌 내 손바닥 안이야.

   

   차근차근 굴리면서 네가 게으름을 피웠는지 안 피웠는지 검사할 거야! 딱 기다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버로우 공작이 루시가 진짜로 한 말을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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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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