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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경비는 두 사람을 커다란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 내부에는 카우렐리아의 공무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는 이미 망명 절차를 받은 제국 인사들도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레너윌 하스펠트 공작과 그 딸인 클라라 하스펠트. 토츠펠 공작. 살리에르 백작. 셀리스턴 후작. 엘리예프 자작.

       

       그 외에도 살아남은 제국 상층부 인원이 상당수.

       

       세실은 눈동자를 굴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기억에, 이만한 규모의 회의는 한평생 본 적이 없었다.

       

       “거기 그 학생은 누굽니까?”

       

       백발 성성한 엘프 하나가 버멜을 짚어 물었다.

       

       “버멜 호르데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학생이에요.”

       

       버멜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흔들림 하나 없이 떳떳하고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이에 대한 엘프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이런 회의에 아카데미 학생을 데려오다니, 총장은 제정신이오?”

       

       아니, 오히려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엘프측 장관 몇 명이 비슷하게 늙은 엘프를 따라 역정을 부렸다.

       

       “기밀이 최우선인 회의입니다!”

       “외부인을 들여오고 이게 뭐하는 짓이요.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쇼?”

       

       그런 식으로 욕을 먹고 있을 무렵이었다.

       

       “들여 보내시죠.”

       

       끄트머리에 있던 레너윌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 학생은 상천의 중요한 참고인이오. 여기 있을 가치가 있소.”

       “…….”

       

       망국의 관료라고는 해도, 레너윌 하스펠트는 유능한 마도사. 그가 그리 말하는 것이니 엘프들도 함부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공작님,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면 공작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저 친구가 오늘 회의를 발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내 가문의 명예를 담보로 맹세하리라.”

       

       레너윌의 말은 신원 보증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스펠트 공작의 보증이라니. 제국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발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곳은 카우렐리아. 귀족정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였다. 소신 발언 좀 한다고 목숨이 날아갈 일은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요.”

       

       따라서 공작의 말에 토를 다는 엘프도 존재했다.

       

       “항복한 마왕군 간부의 지인이라고? 헛소리 마쇼. 아니지, 그게 가능하더라도 그런 녀석이 비상대책회의에 왜 나타납니까?”

       

       남자는 책상을 짚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뒷목을 잡으며 비틀거리기를 잠시. 살집이 낀 얼굴에 불퉁한 감정이 어렸다.

       

       “이런 회의, 있어 봤자 아무런 수확도 안 되겠군. 됐소, 나는 집에 가겠네!”

       

       남자가 바리바리 짐을 싸서 출구로 나가려 했다. 뚱뚱한 것과는 달리 움직임에는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장관!”

       “가시면 안 됩니다, 펙튼 장관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만류했다. 그는 몇 차례 신경질을 부리며 아랫사람과 입씨름을 벌였다.

       

       “다들 엿이나 드쇼. 애새끼들 소꿉놀이에 어울릴 생각 없으니까!”

       “장관님, 각하 앞입니다. 말씀을 순화하셔서…!”

       “알겠소. 내 말은 조금 돌려서 하지.”

       

       결국 남자는 사정에 못 이겨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버멜은 보고 말았다. 그가 쓰고 있는 철모자에 ‘ㅗ’ 모양으로 새겨진 네 개의 별을.

       

       “다들 좆이나 까쇼. 나는 집에 갈 테니까.”

       

       뒤를 돈 남자는 그대로 백스텝을 밟았다.

       

       “장관님─!!”

       

       “국방부장관께서 가시면 대책은 어떻게 논의하란 겁니까!!”

       

       이번에는 다른 장관까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씨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국인들은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장과아아안─!!”

       “제국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외교적 결례입니다!!”

       

       회의실은 회의 시작 전부터 아수라장이 되었다. 외교부장관은 머리를 싸매며 혀를 차댔고, 레너윌 공작은 물을 연신 마셨다.

       

       “르네이 총장, 당신 혼자서 들어오시오. 저 비실비실한 놈은 당장 내보내고!!”

       “…….”

       

       버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나 심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게오르그 펙튼.

       

       좋은 가문 출신에 전쟁영웅이라는 타이틀까지 쥐고 있는 그는, 빠꾸 없는 성격으로 유명한 군인이었다.

       

       “애송아, 전쟁 얘기는 아무하고나 하는 게 아니다. 눈치가 있으면 꺼져 있어라!!”

       

       우레와도 같은 호통이었다. 몸이 옴쭉도 못 하고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멜은 태연을 가장한 채 꿋꿋하게 서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눈치만 보던 그때.

       

       “…언성을.”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의 가장 앞.

       

       안경을 쓴 점잖은 인상의 엘프가 검지를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그리 언성을 높이지 마시오, 펙튼 장관.”

       

       [대통령│드와이트 아이젠]

       

       그 앞에 놓인 이름판이 조명을 받아 찬연하게 빛났다.

       

       

       **

       

       대통령의 중재로 소란은 진압되었다.

       

       “현재 마왕군 선봉이 티림스 강을 도하했습니다. 그 규모는 20개 사단에 달하며, 이들은 전부 기동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시작된 회의.

       

       버멜은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 진행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버멜은 이런 지루한 시간을 꾹 참고 넘겨야만 했다.

       

       세실이나 자신이 발언권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20개 사단? 웃기는군! 그깟 놈들, 사단 다섯 개만 있으면 격퇴할 수 있어.”

       

       펙튼 장관이 코웃음을 치며 군홧발을 흔들었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현재 가장 큰 위협은 재래식 전력이 아닙니다.”

       

       처억.

       

       칠판에 몇몇 사진을 붙이는 군인. 그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보이는 건 엘랑카야 북부에서 관측된 버섯구름입니다. ‘흑주’라는 마법의 결과라고 하지요.”

       “누가 저 사진을 찍었소?”

       

       그 물음에, 토츠펠 공작이 손을 들어 대답했다.

       

       “제 딸아이요. 종군기자거든요.”

       “공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신뢰가 더 가는군요. 좋소, 계속해 주시오.”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이 마법은 마왕군의 사천이었던 에테르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 때문에 그녀에 대한 국민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에테르가 만든 마법이 제국을 멸망시켰다. 제국이 망하면 엘프국도 끝이다. 그러니 에테르는 재판장에 세워서 죽여야 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민간인은 그리 생각했다. 그것이 엘프국의 현주소였다.

       

       이 현실을 뒤집어야만 한다.

       

       “이쯤에서 버멜 호르데 군에게 묻고 싶습니다.”

       

       왔다.

       

       발언 기회가.

       

       “에테르라는 마수를 어떻게 보십니까?”

       

       잘 말해야 한다.

       

       한 차례 심호흡한 버멜이 입을 열었다.

       

       “과거 마왕군에 종군했으나, 이제는 우리 편입니다.”

       “근거를 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버멜은 세 손가락을 펼치며 논리를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그녀는 현재 우리에게 지닌 악의가 없습니다. 본래 그녀는 사천인데, 사천은 영락없이 절멸급으로 분류됩니다. 그만한 존재가 인간이나 엘프에 대한 적개심 없이 스스로 고개를 숙였고, 카우렐리아에 투항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마수로서의 악의가 없다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거짓 투항을 했을 수도 있지. 우릴 교란하기 위해서 말일세.”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를 들어보시지요.”

       

       손가락을 하나 접는 버멜.

       

       “둘째. 에테르는 정령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사실 금안족은 전계정령이 다스려야 하는데, 과거엔 그 세력이 미미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기(電氣)라는 개념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개념이 확실해졌고, 정령들도 금안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거로 그녀는 마수임에도 전계정령의 비호를 받고 있지요. 여러분도 다 아실 것이라 사료합니다.”

       “…….”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마수는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에테르는 제 정령에게 축복받은 것도 모자라 대화까지 나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언은 차고 넘칩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지요. 당장 정령왕들께서 공인하셨습니다. 그녀는 이제 정령과 카우렐리아의 적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면 정령신앙을 믿지 않는 쪽에서 태클이 걸어오겠지.

       

       그리 생각한 버멜은 마지막으로 생각해 둔 말을 되뇌었다.

       

       “학생은 제정분리도 모르나 보오. 카우렐리아는 예전과 같지 않아. 신앙은 신앙이 있는 대로, 정치는 정치가 있는 대로 움직여야 하네. 그 에테르라는 자가 마수인가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지.”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자가 우리나라에 해를 끼치느냐, 혹은 끼치지 않느냐.”

       

       이제 버멜은 손가락 하나를 더 접으며 웃었다.

       

       에테르,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주 내로 너를 꺼내줄 테니까.

       

       “마지막 이유를 들어보시죠. 마지막은 그녀의 유용성입니다.”

       “유용성?”

       “네, 조금 전 장관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국익에 해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관건이라고. 그렇다면 현실적인 이유를 대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얼굴을 굳힌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간에 간격을 둔다.

       

       모두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된다. 대통령, 각 부처의 장관, 제국 인사들…… 심지어 이 근처에 있는 바람의 정령왕까지.

       

       “버멜 호르데. 비록 아카데미의 학생에 불과한 신분이지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나라의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일개 학생이 언성을 높인다.

       

       “에테르가 없으면, 이 전쟁은 필패(必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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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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