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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반가운 얼굴은 샤를로트뿐만이 아니었다.

        

       제국은 넓은 나라다. 내가 이전에 살던 한국을 하나의 나라의 크기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제국은 나라 몇 개를 모아 뭉쳐놓은 듯한 크기니까. 식민지까지 영토라고 생각하면 제국은 아예 바다 건너에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된다.

        

       아니지, 그 식민지 일부를 직접 점령한 린드버러가 있으니 진짜로 나라 가운데 바다를 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다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크로우필드, 바다를 건너가야 영지의 중심지가 보이는 린드버러, 제국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윈터필드나 역시 몇 시간은 기차로 달려야 겨우 도착하는 노스우드.

        

       그런 공작이나 백작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작은 영지인 남작가의 아이들도 제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애들은 제도에 거주하는 평민 출신 아이들인데 나는 이쪽과는 크게 친분이 없었다.

        

       친분이 있더라도 신분의 차이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측에서 애초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나려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테니까.

        

       그런 이유로 우리가 아카데미에 가지 않은 기간 동안 제대로 만날 수 있었던 상대는 클레어와 레오 정도였다.

        

       교실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씩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만나는데도 거창한 말 없이 담백하게 인사하는 레나.

        

       “펴, 평안하셨나요?”

        

       나름대로 귀족 영애의 말투를 내보는 미아.

        

       “오, 생각했던 것보다는 여유가 있었나 봐?”

        

       “……도련님의 무례한 말씀에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여전히 친해 보이는 제이크와 로티.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모두.”

        

       여전히 조금은 어두운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 보이는 표정의 소피아.

        

       아마 평민 반에는 릴리 베이커도 와 있을 것이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사를 건네지는 않겠지만.

        

       의외로 내 친구들의 표정은 꽤 밝아 보였다. 아예 자기 가치관 자체가 부정당했던 소피아도 그때보다는 훨씬 나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조심하는 애들은 같은 반의 다른 아이들이었다.

        

       아마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앨리스가 그야말로 ‘황태녀’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리폰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귀족 일각에서는 앨리스가 황제를 밀어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그 소문이, 말만 따지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게 더 골치 아팠다.

        

       애초에 우리가 바라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정도는 벌써 소문으로 널리 퍼졌다.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도.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는 동안 영지로 돌아간 귀족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떤 지시를 듣고 왔을지는 뻔하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건 놓치지 않고 다 들어오라고 했겠지.

        

       그리고 귀족인 내 친구들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우리는 교실에서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히 이야기가 잘못 퍼지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팠으니까.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

        

       “한 달 동안 살이 꽤 많이 빠졌어요.”

        

       소피아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검술 훈련을 할 때도 이렇게 살이 빠지지는 않았는데…….”

        

       기껏해야 여고생이라고 할만한 나이의 애가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살이 빠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보통 그런 걱정은 슬슬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정말로 생명 유지에 타격이 오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할 걱정일 텐데.

        

       “그야 애초에 당신이 벨부르의 법을 크게 어기고 있었으니까요.”

        

       샤를로트는 그런 소피아를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소피아는 그 눈을 피했다.

        

       ……아, 얼굴이 어두웠던 건 순전히 그 기간에 이리저리 쪼였기 때문인가.

        

       “애초에 국적 세탁은 중범죄. 여기 이렇게 무사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샤를로트는 작은 스푼으로 자기 앞에 놓인 파르페를 쿡 찔렀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곳은, 우리가 아카데미에 와서 자주 오던 카페였다. 앉아있는 자리도 언제나 앉던 테라스.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거리 자체가 꽤 시끌시끌해서, 우리가 너무 크게 떠들지만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으리라.

        

       그렇다고 너무 민감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절차 자체는 합법적이었다고요…….”

        

       소피아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샤를로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법적으로 정말 벨부르 국민이 되었다고 해도, 충성하는 대상이 벨부르가 아니라 법국이었다면 범죄죠. 속으로만 애향심을 가지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아니, 겉으로 드러내더라도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잡힐 일도 없었을 텐데요? 주장하는 대로 하면 ‘국가 반역’이 되는데, 괜찮겠어요?”

        

       “……죄송합니다.”

        

       샤를로트의 말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던 소피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살이 빠질만 했다. 한 달 내내, 그것도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관료들한테도 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니까.

        

       그나마 마지막에는 우리 편에 서서 싸웠고, 잠입해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곳도 벨부르가 아닌 제국, 그 목적도 벨부르가 아니라 제국의 황녀인 나였으므로 감옥에 평생 갇혀야 할만한 중범죄 취급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역으로 제국에 알려졌다면 진짜 중범죄가 되었겠지만, 소피아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우리가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어차피 법국은 통째로 와해하기 직전이다. 그렇다고 법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사라지게 두지는 않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수뇌부가 텅 비어버린 상태다. 황제와 아이들, 기사단이 빈집 털이를 하면서 족쳐버렸으니까.

        

       그나마 남은 존재들은 외국에 나가 있는 추기경들인데, 그 추기경 사이에서도 누가 교황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하루아침에 신성력이라는 현상이 싹 사라졌다. 누가 어떤 식으로 자기 신앙을 증명하겠는가?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교황은 존재했고, 거대한 교단도 존재했으니 언젠가는 재건되겠지만, 한동안은 그 논쟁이 계속될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배후에서 암약하며 공격적인 정책을 펼칠 수도 없을 것이고.

        

       “벨부르 상황은 조금 괜찮은가요?”

        

       편지를 주고받긴 했지만, 서면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과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에는 그 한계점이 다르다.

        

       “글쎄요…….”

        

       나의 질문에 샤를로트의 동공이 조금 풀어졌다.

        

       “지하에서 썩은 내가 올라온다는 민원이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왕도 아래에 있는 그 지하 시설의 규모가 너무 커서, 앞으로 조사하는 데만 수십 년은 걸릴 거라는 전문가들의 말도 있고요.”

        

       “…….”

        

       진짜로 파리 카타콤이네.

        

       물론 실제 카타콤과는 다르게 훨씬 더 넓긴 했지만, 그렇기에 더 골치 아플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 지하 자체를 법국이 관리했지만, 지금은 텅 비어버렸으니까. 게다가 사람들한테 그 존재가 알려지기까지 했고.

        

       비어있는 지하를 중심으로 치안이 나빠질 여지가 있다.

        

       그리고 내가 추기경이 가지고 있던 장치를 박살 내면서, 그 아래 법국이 깔아두었던 온갖 짐승들이 즉사해버리기까지 했다. 그 시체가 시간이 지나며 썩어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면 왕국 입장에서는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냄새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부패한 시체는 온갖 병균의 온상지가 된다. 아직 바이러스니, 세균이니 하는 것들이 막 밝혀지고 있는 이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썩은 시체에서 병이 옮아온다’라는 상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냄새가 올라올 때마다 원인이 되는 구역을 찾아 들어가 시체를 치워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라고 한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요. 그런 식으로 지하를 청소하지 않았다면 나중에는 다른 의미로 훨씬 위험했을 테니까.”

        

       내가 조금 죄책감 서린 표정을 짓자, 샤를로트는 시원하게 말했다. 덕분에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다.

        

       “…….”

        

       그리고, 나의 ‘표정’을 보고 반응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아니, 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두 명이다.

        

       한 사람은 미아였고, 한 사람은 레나였다.

        

       두 사람 다 얼굴에 뭔가 대단한 표정을 띠지는 않았지만, 눈이 커졌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감정 없는 연기’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던 두 사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아직은 무표정을 확 풀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망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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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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