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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는 것은, 마법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보다 비교적 어려운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마력흔을 조사한다면 자신에게 걸린 ‘폴리모프’ 때문에 생긴 마력흔으로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엉덩이를 맞거나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서있기 등의 체벌은 결코 받고 싶지 않았던 루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을 간단히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이기에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법.

    루크는 굉장히 억울하단 표정으로 호소했다.

     

    “아, 엄마, 진짜라니까요!”

    “어, 엄마?”

     

    예르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엄마라니?

    솔직히 드디어 루크가 자신을 엄마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쁘긴 하지만, ‘이런 때에?’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뭔가 계산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예르나는 간신히 단호한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엄……마는 루크가 마법을 쓴 걸 혼내는 게 아니라, 거짓말하는 걸 혼내는거야. 루, 정말 거짓말 아냐?”

    “거짓말 아니에요, 왜 제 말을 안 믿어주시나요? 제가 대체 뭐 하러 이런 데에 마법을 쓰겠어요!”

     

    솔직히 말해, 샌드백 따위를 고장내기 위해 마법을 쓰는 것은 굉장한 낭비가 아닌가?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그런 멍청한 장난 같은 일에 마나를 낭비한다는 것은 정말 요만큼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낭비이며, 루크는 원래 낭비를 싫어하다못해 혐오하는 마법사다.

     

    “진짜 마법 쓴 거 아닌데……. 그냥 좀 세게 때렸을 뿐인데……”

     

    그리고, 자신이 저 샌드백을 파괴할 목적으로 마법을 쓰려고 했다면, 굳이 손을 댈 필요도 없이 눈 깜짝할 새에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만일 파괴를 목적으로 했다면 완벽주의자인 루크로서도 오히려 그 편이 더 성에 차는 결과이리라.

     

    “그런데, 엄마는 절 믿어주지 않으시는군요.”

     

    루크의 억울함을 넘어 울먹이는 목소리에 결국 예르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나는 거짓말하는 건 줄 알고 그랬지…….”

     

    예르나에게는 사실 루크가 마법을 썼다는 사실 보다는, 루크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마법을 쓰는 건 위험하니까 걱정을 하는 것에 가깝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화를 내야 하는 일에 가까운 일이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장은 누가 봐도 마법을 쓴 결과인데 루크는 마법을 쓰지 않았음을 주장하니 거짓말로 여기고 추궁을 했을 뿐, 딱히 탄탄한 논리와 사고를 통해 도출된 결론이 아니긴 하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0%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법을 쓰지 않았다는 경우도 완벽한 0%는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루크는 그 0%의 극한과도 같은 존재, 일상적으로는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것들이 한데 뭉쳐진 결과로 만들어진 키메라가 아닌가.

     

    자신이 키메라의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없는 한, 실제로 ‘루크가 정말 신체능력만 사용해서 이런 결과를 냈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고 있기는 한 것이다.

     

    “…….”

     

    예르나가 고민하는 듯 보이자, 루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에 담긴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더욱 끌어올리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가족이니까, 믿어줘야 한다고 해 놓고선…….”

    “……아, 알겠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마, 뚝!”

     

    결국 진심이 담긴 일관된 진술(?)로 인해, 결국 루크의 결백은 증명이 되었다.

     

    가끔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우는 것도 필요한 법이었다.

     

    ——-

     

    하지만 그렇게 오해는 어떻게든 풀었다고 해도, 그 사실이 고장난 샌드백을 고쳐주지는 않는다.

     

    쏟아진 모래를 쓸어담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린 샌드백을 저리 치웠다.

    당연히 그 값을 배상 해야하리라.

    그것은 정말로 굉장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루크는 그냥 이 시대의 샌드백 내부구조에 대한 공부가 된 셈 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소동은 정말로 완전히 의미없는 짓이 되어버리니까.

     

    “…….”

     

    하지만 역시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다.

    어쨌든 샌드백을 터트린 것은 자신의 탓이고, 덕분에 쓸데없는 지출이 생긴 것은 사실이었으니.

     

    이것이 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면목이 없었다.

    뭐, 원래도 이 몸의 힘이 일반적인 생물보다 강하다고 알고는 있었다만, 애초에 루크가 몸의 힘을 쓸 만한 일도 없다보니 자신의 몸의 한계를 몰랐다는 문제도 있었다.

    마법사인 루크는 육체노동을 그리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고, 이 몸 역시 겉보기에는 굉장히 가녀린 여자아이의 모습이기에 누군가에 의해 강한 힘을 필요로하는 노동에 투입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서 자신의 몸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해야하는 것은 바로 루크 자신이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이 몸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허나 조금이나마 변명하자면, 자신이 서클을 ‘키메라에 담던 기억’은 없으니, 자신이 ‘이 몸’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기는 하다.

    아마 절반정도는 사고였겠지.

    때문에 몸이 도저히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예측할 수 없는 탓에, 루크에겐 현대의 어떤 상위 클래스마법의 이론보다도 자신의 몸 그 자체가 가장 큰 미지였다.

    간단히 말해, 현재 루크의 몸은 ‘일단 완벽히 작동하지만, 사실 그 원리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루크가 그동안 몸에 대해 알아낸 것도 재료의 근원을 떠올려 가능성과 가설을 제시할 뿐이지, 모든 것이 정확히 그렇게 작동한다고 확정 짓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자신의 몸에서 또 어떤 이상한 일이 벌어질 지, 루크는 아직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예르나에게도 도리어 화를 내버린 꼴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또, 루크는 기껏해야 체벌을 좀 피하고 싶다고 그렇게 아이처럼 칭얼거렸다는 사실도 굉장히 부끄러웠다.

    뭐가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란 말인가,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때는 급해서 아무 방식이나 주워섬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몸이 어리다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좋다만, 마법사가 논리보다 감정을 내세우다니, 루크는 고작 그 방식밖에 떠올리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다.

    철저한 증거와 논리를 통해 변증을 하는 마법사가 한다는 것이 어떻게 ‘제발 믿어달라’며 호소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냐는 말이다.

     

    자신이 마법사라면, 증거를 대 주어야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 증거를 보여준단 말인가?

     

    루크는 당시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마법을 썼으면 이랬다’라며 벽에 구멍이라도 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건 조금도 증거가 될 수 없다.

    마법이란게 항상 더 큰 파괴력을 내도록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위력 쯤이야 얼마든지 조절할 수가 있으니까.

     

    그럼 대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엔 어떻게 무엇을 보여줘야 한단 말인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어떤 증거도 남지 않는 종류의 주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법을 썼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루크가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의 문제였다.

     

    그건, 루크가 ‘마나를 볼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무슨 마법을 쓰는 지, 언제 마법을 쓰는 지, 지금 마법을 쓰고 있는 지 등등.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마력시 덕분에 이런 자잘한 정보들은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루크는, 일반인에게 어떤 식으로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지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마치 색맹인 사람에게 붉은 색은 어떻게 보이느냐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마나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재 ‘마력흔’을 추적하는 방식은 여러모로 허점이 너무 많았다.

     

    그 방식은 단순하게 말하면 마치 발자국의 깊이나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키와 무게를 추측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발자국이 깊으니, 이 사람은 무게가 나갈 것이다, 또는 발자국이 크니, 이 사람은 키가 클 것이다, 또는 이 발자국은 꽤 풍화되었으니, 오래 되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꽤나 타당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마력흔을 위조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가능한 루크의 입장에서, 그 방식은 신뢰도를 잃는다.

     

    루크는 자신의 발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자국을 깊게 찍어 누르거나, 사뿐사뿐 움직여 발자국을 얕게 만들 수도 있었다.

    위 아래로 흔들어 더욱 크게 만들 수도 있었고, 까치발을 들어 발자국을 작게 만들 수도 있었다.

     

    이처럼 이미 마력흔에 대해 인지하고 조작할 능력이 있다면 그 누구나 마력흔이라는 추적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력흔을 추적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조작이 가능할지언정, 인위적으로 마력흔 자체를 지울 수는 없으니까.

     

    마력흔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유일했다.

     

    ‘더 많은 사람이 마력시를 지닐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방식도 사용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마력시는 정말로 희귀한 재능이고, 만에하나 갖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해도 그가 마법적인 재능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마력시와 재능을 그럭저럭 동시에 지녔다고해도 마땅한 재산이 없고 후원자를 구할 수 없어 마법을 배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옛날에는 애초에 자신이 마력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다.

    농부와 같은 보통의 서민들은 마법을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루크 이루시라는 영웅의 존재는 그야말로 기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마력시와 천재적인 재능, 남부럽지 않은 재산과 권력에 더해, 성품까지 흠잡을 데 없는 인간은 역사에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력시를 모두가 갖게 된다면?

     

    어쩌면 클래스이후로 세상이 한번 더 바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넓은 세상의 누군가가 루크 자신조차 떠올리지못한 엄청난 마력패턴을 발견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대단한 연금술 레시피를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 ‘어떻게’ 마력시를 모두에게 구현하느냐는 것이 문제.

    루크는 분명 과거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으나, 그 때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시간도 부족했고, 자원도 없었던 데다가, 기반되는 법칙이나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아.’

     

     

    현대는 클래스마법과 말도 안되게 섬세한 고성능 인챈트방식, 대량생산이 가능한 인프라 역시 갖춰진 상태였다.

    그것은 지금에서는 마냥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가능할 지도…….’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루크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운전을 하던 예르나는 문득 루크가 잘 있나 확인할 겸, 중앙 백미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백미러에는 아까까지는 엄청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서 곰인형 ‘리브’를 쓰다듬고 있던 루크가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것일까?

    예르나는 운전을 계속하며 루크에게 물었다.

     

    “루? 혹시 화장실 가고 싶니? 휴게소 들릴까?”

    “아니, 그냥 이대로 가주게.”

    “그럼, 배고파?”

    “아니, 배는 괜찮다네.”

    “그럼……. 답답해서 그러니? 창문 좀 내릴까?”

    “아니……, 하아. 이제 말 좀 그만 걸어주겠나? 도저히 생각이라는 걸 못 하겠군.”

    “으, 응…….”

     

    자꾸 말을 걸어서 도저히 암산을 할 수 없었던 루크는 예르나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루크의 머릿 속을 알 리 없는 예르나는 조수석에 앉은 다이튼을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아까 잘못 혼내서 루크가 엄청 삐친 것 같아, 어쩌지?”

    “하긴……. 루크도 애는 애니까…….”

     

    다이튼은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누가 애 아니랄까봐,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

    어른스러워 보이긴 해도, 혼내면 혼자서 침울해졌다가 결국에는 토라지는 것이 딱 디아나랑 그리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다이튼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아이가 기분을 푸는 지, 디아나를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따가 다른 애들 몰래 뭐 맛있는 거라도 사 주자, 루크는 먹는 거 좋아하잖아.”

    “으음……. 그래, 그게 낫겠다.”

     

    잠시 후, 루크는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치즈돈가스를 먹게 되었다.

     

    참으로 맛있었으나, 갑자기 자신이 이걸 왜 먹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짜 개오래걸렸다.. 이제 잘 수 있어…

    PS. 현재 디아나와 파이리스는 집에서 정령소녀 메루루 무한시청중이라, 안 따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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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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