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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술에 진탕 취한 뮬이었지만, 그는 상대가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3배는 긴 코에 등에 짊어진 커다란 혹을 쉽게 잊을 리 없었다.

         

       “혹시 지난주에 기념관의 전시실에 있었던……?”

       “끌끌, 기억하는군?”

         

       뮬은 잠시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이마를 짚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혹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팽이처럼 뱅뱅 돌던 노인의 꼴은 다시 떠올려 봐도 우스웠다.

         

       “푸흐흣, 쿡, 아, 미안하오.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런덴 여긴 어쩐 일이오? 혹시 극장 측에 뭔가 받아낼 생각으로 온 거라면 너무 늦었소. 이미 예선전 장소로 확정이 났거든.”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자네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을 뿐이야.”

       “응? 뭘 확인한단 말이오?”

         

       이고르는 뾰족한 이빨들을 드러내며 씩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뮬은 그것이 몇 달 전에 발간된 <빵과 서커스> 잡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펼치더니 정확히 자신이 썼던 평론 중 한 문단을 읽어 내려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이제는 축제에 얼굴을 비추는 것 자체가 관계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정도로 퇴물이 된 거장의 안쓰러운 몸부림은 보기 괴로웠다. 그날 축제에서 그가 선보인 세 작품에 점수를 매겨 보자면 나는 각각 38점, 33점, 21점을 줄 것이다. 조금의 에누리도 없이. 이거……네가 쓴 것 맞지?”

         

       뮬은 노인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리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이곳은 현재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어두운 골목. 그제야 위험을 감지한 그는 취기가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 이봐요. 난 그냥 내 솔직한 평가를 말했을 뿐이오. 불만이 있소?”

       “아니, 그럴 리가. 끌끌, 오히려 나는 감탄했다네. 공연을 보는 ‘자네들’의 눈은 정말 대단해.”

         

       자네들? 평론가들을 말하는 건가?

       그때, 뮬은 어디선가 딱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와 유사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곧 노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하하, 가, 감탄했다니 다행입니다. 그, 그야 물론 제 평론은…….”

       “아니, 평론 말고. 나는 눈을 말한 건데?”

         

       다시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뮬은 그것이 노인에게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말하면서 동시에 이빨 부딪치는 소리를 내다니?

         

       불안함을 느낀 그는 노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몸이 무언가에 꽉 묶인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그곳에는 문어 다리와 비슷한 형태의 꾸물대는 촉수들이 수십 개가 뒤엉켜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노인의 발아래에서부터 뻗어 나온 것이었다.

         

       괴물이다!

       뮬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촉수들은 어느새 그의 몸을 타고 올라와 입을 꽁꽁 막아버렸다.

         

       “으으읍!”

         

       그는 몸을 마구 비틀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촉수는 단단하게 그의 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다시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어느새 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키르쿠스의 눈을 타고난 자여. 내 눈 역시 봐주지 않겠나?”

         

       노인은 쓰고 있던 색안경을 벗었다.

       뮬의 두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그는 그제야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어디서 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안경을 벗은 노인의 두 눈두덩이.

       눈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대신 입이 달려 있었다. 딱딱거리는 소리는 그곳에 달린 이빨들이 흥분으로 떨리면서 내는 것이었다.

         

       노인이 미소를 짓자, 눈에 달린 두 개의 입도 이빨을 드러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뮬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마치 먹이를 향해 뻗는 개구리의 혀처럼 이고르의 두 눈이 선홍빛 속살을 드러내며 쭉 늘어나더니 그대로 뮬의 두 눈을 콱 물어뜯었다.

       우드득. 콰직. 으적으적.

       이빨은 그의 피부를 찢고 뼈를 부수고 살을 씹어 삼켰다.

         

       이고르는 뮬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로써 키르쿠스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돋보기가 하나 더 사라졌다. 현재 이고르의 몸속에는 키르쿠스의 눈이 수백 쌍이나 들어 있었다. 지난 10년간 눈을 타고난 사람들을 추적하여 죽이고 뺏은 결과였다.

         

       원래 키르쿠스의 눈을 가진 사람을 특정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에게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특징도 없었다. 그들은 데볼루트 면역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악수를 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있었다. 바로 저주 역병이었다.

       애초에 저주 역병이라는 것은 일종의 ‘강신(降神)’ 현상이었다. 잠든 혼돈이 인간의 몸에 깃들면서 데볼루트가 몸 안에 퍼지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신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제사가 필요했다.

       키르쿠스를 위한 제사라는 것은 당연히 공연을 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르쿠스와 공명하는 행동, 즉, ‘웃음’을 지으면 그와 통하게 됐다.

       여기까지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공연을 보면서 사람들이 단체로 박장대소를 한다고 해도 저주 역병이 퍼지는 일은 없었다.

       다른 마신들과 다른 규격을 지닌 키르쿠스의 어마어마한 힘을 생각하면 그런 걸로 그를 맞으려면 최소 수십만 명의 관중이 필요했다. 거기다 건전한 웃음이나 감동은 이 세계와 어비스와의 연결 자체가 약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애초에 키르쿠스가 세간에 ‘무해한 마신’으로 알려진 것도 그래서였다. 신을 영접하는 의식을 치러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달라졌다.

       바로 키르쿠스의 눈과 괴물 서커스였다.

         

       키르쿠스의 눈은 키르쿠스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창구였다. 눈을 가진 사람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면 제사의 위력이 수십 배는 증가했다.

         

       거기다 괴물 서커스는 키르쿠스의 가장 음습한 욕망인 비웃고, 깔보고, 경멸하는 웃음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공연보다 키르쿠스의 만족도가 수백 배에 달했다.

         

       즉, 저 2가지 조건이 합쳐지면 저주 역병이 일어날 확률이 수만 배는 증가하는 것이다.

       공연이 꼭 괴물 서커스일 필요도 없었다. 공개적인 무대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면서 구경꾼들의 경멸과 멸시가 담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면 충분히 키르쿠스에게 통했다.

         

       그러나 저주 역병의 발원지를 추적해 키르쿠스의 눈을 탐색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도 모르고, 막상 가서도 눈을 가진 자를 특정 짓는 것도 힘들고, 정작 찾았는데 이미 저주 역병 관련 사태에 휘말려 죽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고르는 그렇게 몇 년을 추적한 끝에 키르쿠스의 눈 한 쌍을 간신히 손에 넣었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그는 더는 소문을 수집하거나 정보를 캐러 다니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정보를 가져다 바쳤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앙 가이드.

       빵과 서커스와 양대 쌍벽을 이루는 그 공연 전문 비평지로 매일 전 세계에서 수백, 수천의 독자들이 점수를 보내왔다. 그들은 그것들로 세계 각지의 볼거리들의 평론가 점수와 독자 점수를 매겨 잡지에 실었다.

         

       이고르는 10여 년 전, 그곳의 편집자 한 명과 접촉했다. 그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로부터 내부 정보를 받았다.

         

       마침 이고르가 손에 넣은 첫 번째 눈의 소유자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그는 같은 공연에 대해 그와 매긴 점수가 똑같은 사람을 찾게 했다.

         

       원래 키르쿠스의 눈을 가진 사람끼리 같은 공연을 본다고 해서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호화찬란한 생활을 보내는 왕이 50점짜리 공연을 보면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겠지만, 아무것도 즐길 거리가 없는 오지의 소년이 50점짜리 공연을 보면 두근거리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생기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점수’라는 기준이 생겼다. 아니, 적어도 크리스티앙 가이드를 구독하고 그곳에 투고하는 사람들은 점수라는 기준으로 자신의 평가를 표현했다.

         

       키르쿠스의 대변자들은 거기서 놀라운 일치율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같은 공연에 모두 같은 점수를 매겼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가진 사람끼리 똑같은 일시에 똑같은 공연을 보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사하게는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고르에겐 그 정도로 충분했다. 한두 개가 맞았다거나 혹은 여러 개가 유사하게 맞물리면, 일단 찾아가서 직접 확인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10여 년간, 수백 명의 눈을 사냥해왔다.

       방금 죽인 뮬 같은 경우는 평소와 같은 경로로는 알아낼 수 없는 자였다. 그는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아닌 <빵과 서커스>에 평론을 기고했었다. 그 잡지는 공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 맛깔난 묘사나 주관적인 감상 위주의 평가를 주로 실었다. 즉, 점수를 수집하지 않았다.

         

       하지만 뮬은 몇 달 전에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이 본 공연에 대한 점수를 언급한 것이다. 이고르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에 있는 그의 친구를 통해 자료를 검토하게 했고, 세 공연 다 이전의 사냥감들과 점수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고르는 그를 10일 전에 바로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문뜩 한 가지가 떠올라 사냥을 미룬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 기다린 것이었는데, 그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주었다.

         

       이고르는 죽은 뮬의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빼냈다.

       그곳에는 그가 이번 극장가 축제에서 봤던 공연들의 점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고르는 그가 해당 공연을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기 위해 궁리한 비유나 단어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다음 눈을 추적할 단서뿐이었다.

         

       “크아악, 퉤!”

         

       이고르는 목에서 가래를 한 움큼 뱉어냈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얹고 데볼루트를 조작했다. 그러자 그 가래 덩어리는 점토처럼 꾸물대더니 피와 뼈와 근육이 얽히고 자라나 한 마리의 생물이 되었다.

       녀석은 갓 태어난 새끼 새처럼 몸을 엉거주춤 일으키더니 이고르의 손에 몸을 비비며 아양을 떨어댔다.

         

       “꿰엑!”

         

       물론 그것은 진짜 새라기보다 도축장에 남은 내장 찌꺼기를 끌어모아서 어떻게 새 형상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녀석은 실제로 툭 불거진 안구를 이리저리 굴려댔고, 목이나 날개 같은 부위도 삐걱거리는 듯했지만 어쨌든 움직였다.

         

       “자, 이 자료를 전해다오.”

       “꿰에엑!”

         

       새는 이고르가 건넨 자료를 부리에 물고 <크릐스티앙 가이드>의 본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았다.

         

       아마 이번 극장가 축제를 본 독자들이 많은 후기를 보낼 것이다. 자신의 평론이 잡지에 실리길 빌며, 혹은 애독자 상의 추첨 상품을 타길 빌며, 혹은 미래의 평가원이 되기 위해 수습 과정에 초청받길 빌며.

         

       이고르는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며 히죽 웃었다.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 그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유용하군.”

         

       그는 달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길고 구부러진 코는 달빛에 비춰 마치 새의 부리처럼 보였다. 마치 한 마리의 까마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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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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