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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아버지가 베지 못하는 건 없다.

     

     베지 않는 것이 있을 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게 크림슨 지브롤터-대륙 최강의 소드마스터다.

     당장 황금룡의 몸통만 하더라도, 무르디 무른 아이스크림을 향해 철제 스푼을 찔러넣듯 가볍게 금을 썰어대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탑은 안 된다?

     “어떠냐?”

     “…저도 안 되는군요.”

     혹시나 아버지 개인에게 걸린 무언가 저주 같은 문제가 아닐까 싶었지만, 나 또한 탑을 건드릴 수 없었다.

     서걱, 서걱.

     오러 블레이드를 최대한 얇게 펼쳐서 검날에 끝을 집중했으나, 도저히 탑이 베이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황금룡은 검에 베이는데, 정작 황금룡이 보호하고 있는 이 탑 같은 것은 베이지 않는다는 건.

     “역시….”

     “황금룡이 지키는 무언가라고 한다면. 자기 몸보다 더 소중하게 펼쳐놓은 결계라고 한다면. 아직 인류가 닿을 수 없는 무언가라면.”

     황금룡이 제 몸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이 탑, 기둥은 현재 지브롤터는 물론이거니와 인류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다.

     “어쩔 수 없군요. 이건 가만히 놔두는 수밖에.”

     “그렇다면, 이것 이외에는 전부 건드려도 되겠구나.”

     “예.”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황금의 탑 말고는 딱히 무언가 마법적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 없어보인다.

     바닥도, 신전 기둥도.

     어느정도 파고 또 파면 오러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또 나타나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자르고 토막을 내서 챙겨나가도 앞으로 500년은 거뜬히 쓸 양이다.

     500년이 뭔가.

     천년 만년, 어쩌면 인류가 갑자기 노스트럼의 대재앙에 휘말려 전부 죽어버리는 시기에 이르러 소멸하게 되더라도 그 후대를 위한 황금은 넘쳐날 것이다.

     “바토리 소장이 연구할 게 많겠어. 드래곤도 그렇고, 다른 황금도 그렇고, 이 황금신전도 그렇고….”

     “예. 연구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일단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는 신전 바닥에 이미 누워버린 채, 황금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 약물을 뿌리고 있는 바토리 소장을 가리켰다.

     “여기, 바깥과는 시간이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니까요.”

     “…음. 그랬다고 했지.”

     아버지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레이. 네가 잠시 밖에 다녀와보겠느냐?”

     “예?”

     “밖에 나갔다가 한 10초 정도만 시간을 헤아리고 안으로 들어와보렴. 그러면 이 신전과 바깥의 시간을….”

     “안 흘러요.”

     바토리 소장이 낮게 웃으며 상반신만 들었다.

     “이곳이 신전이라.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인류가 정상적으로 올 수 없는 곳이니까.”

     “바토리 소장.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소?”

     “으음, 알고 있다고 하는 건 좀 그렇고. 추론이죠?”

     “추론이라도 좋소. 그걸 받아들이는 건 우리의 몫이니.”

     “그렇다면…아아. 태초에, 황금과 백은의 용이 있었으니….”

     “기각.”

     바토리 소장이 옛날 이야기를 읊으려고 하기 무섭게,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바토리 소장의 말을 끊었다.

     “이 장소에 대해서.”

     “…여기는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겠네요.”

     바토리 소장이 두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시간끝!”

     “…….”

     “모든 시간의 종점. 혹은 모든 시간이 모이는 곳. 황금이라는 형태로,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모이는 곳. 마도를 다루는 자들이 도달하기를 바라는 궁극의 이상향, 바야흐로 아카식 레코드…!”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아버지가 한 번 더 끊었다.

     “뭐, 잘 모르시겠죠. 500년도 전에 나왔던 용어기도 하고, 금방 사장된 표현이기도 한….”

     

     바토리 소장이 싱긋 미소를 한 번 지은 뒤,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오해를 할까봐 말씀드리자면, 제가 뭐 500살을 먹었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그냥 500년 전에 그런 표현이 있었다는 거예요.”

     “알지. 바토리 소장이 설마 500년이나 살았던 전설적인 흡혈귀일까. 그렇지 않느냐, 아들아.”

     “…예. 뭐.”

     그런 걸로 하죠, 라고 하기에는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아버지의 눈빛이 매서웠다.

     “바토리 소장님의 조상님께서는 노스트럼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자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것도 자세히 아시고.”

     “호, 호호. 그럼요, 도련님. 저는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역사 강의를 해도 될 정도로 역사적 지식이 풍부하답니다? 경험으로 아는 게 아니라, 역사서를 공부했기에 아는 부분이죠.”

     그렇다고 한다.

     그런 걸로 하고.

     “그래서 이곳은 어딥니까? 시간끝?”

     “말 그대로 시간끝이라는 거죠. 모든 시간의 끝. 우리는 지금 제국력 99년에서 모든 시간의 끝으로 날아온 거예요.”

     “그렇다는 건, 노스트럼은 멸망했다는 건가?”

     “노스트럼 뿐만이 아니에요. 지브롤터, 제국, 그런 국가의 차원을 넘어선 ‘시간’의 개념이죠.”

     “…….”

     

     아버지가 입꼬리를 비틀며 질색한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마법이나 기적과 같은 부류는 상당히 질색하는 편이기에, 이런 이야기는 좀처럼 바라는 사람은 아니다.

     “저도 이렇게 직접 겪는 건 처음이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로부터 10만년 뒤의 세상일 수도 있고, 3년 뒤의 세상일 수도 있죠. 어떤 세상이든, 황금룡이 인류가 인지하는 모든 역사의 종말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렇군.”

     “…그다지 집중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크흠.”

     나도 회귀라는 기적을 겪어서 시간끝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관심이 생길 뿐이지만, 나와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이 황금을 어떻게 지브롤터에 좋게 써먹을까하는 부분이다.

     “좋아요. 이 황금신전, 황금룡의 무덤의 기원에 대한 건 차근차근 파악한 뒤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거니까.”

     “그렇지.”

     인간은 도구의 기원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도구의 기능과 성능, 그리고 그게 나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요시한다.

     첫 번째가 무수히 많은 황금이다.

     두 번째는 이곳과 현실의 괴리-무한에 가까운 ‘시간’.

     “그레이 지브롤터 도련님께서 이미 파악하셨다시피, 현재와 이곳의 시간은 달라요.”

     바토리 소장이 자신의 왼쪽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거 보이세요? 정교하게 만들어진 쿼츠형 시계는 계속 돌아가지만, 노스트럼산 마석시계는 지금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 거.”

     “…….”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시침은 움직이지만, 마법으로 확인하는 시계는 멈췄다? 황금룡이랑 엮어서 계산해보면, 이곳은 마법에 의해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시간끝이라고 부른 건…그냥 제 바람이고요. 후후.”

     “바토리 소장. 시간끝이 아니라, 그냥 황금룡의 레어일 가능성은?”

     “그 가능성도 있지만…!”

     바토리 소장이 두 팔을 한 번 더 크게 펼쳤다.

     “시간끝이라고 하면, 낭만있으니까!!”

     “……그렇군.”

     아버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원판을 밟아서 지브롤터 협곡 어딘가에 숨겨진 황금룡의 신전으로 텔레포트한다는 것보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인류 역사의 끝에 도착했다. 그게 더 뭔가 있어보이긴 해.”

     “아버지….”

     “마린이나 샤피가 좋아하겠군.”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상 속 이야기처럼 비춰지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후작님께서도 풍류를 아시는군요!”

     답이 없다.

     회귀라는 기적을 겪은 당사자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두 사람은 인지를 초월한 신의 영역을 논하고 있다.

     ‘이런 관점도 필요한 건가.’

     인간을 초월한 이들.

     아버지는 검으로서 인간을 초월했고, 바토리 소장은 나이를-

     정정.

     연금술과 마도공학으로 인간을 초월하여 인류 문명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마치 드래곤이 인류에게 마법을 전수하여 인류 중 누군가가 ‘마법사’가 된 것처럼,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인도 하에 인류는 연금술과 마도공학을 익혀 문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황금룡이 인류에게 마법을 줬다면.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인류에게 마도공학을 하사하시다.

     ‘낭만이긴 해.’

     낭만적이다.

     멈춰있는 세상이라니.

     “바토리 소장. 하나 여쭙겠습니다. 여기에서 계속 있는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굶어 죽을 수도 있겠죠? 식량을 가져온다거나, 황금을 씹어먹는 게 아니라면.”

     “…….”

     “설령 그런 게 필요 없는 존재가 온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정신이 나가버리고 미쳐버릴 거예요. 그리고 기적적으로 그런 걸 버틴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바토리 소장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에서 무한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죠. 하지만 그건 알아두세요. 이곳에서 10년을 지내고 10년 동안 나이를 먹은 채로 신전을 나간다면, 이곳에 들어온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이미 시간의 차이를 확인했다.

     로버트 경과 3시간 정도, 황금신전에서 다른 이들보다 나이를 더 먹어버리고 말았다.

     좋은 건 아니다.

     법적 나이는 19살인데, 육신이 29살, 39살이 되어버린다는 건.

     “혹시 모르죠. 유령이 되어서 이곳에 흘러들어온다면, 이 황금신전에서 영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으흐흐.”

     “유령이라….”

     “그렇잖아요? 어쩌면 이곳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무한한 황금의 노예를 보내주는 군사기지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겁니까?”

     “안에 있는 황금을 전부 빼내면 더 이상 황금의 영령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바토리 소장은 쓰게 웃었다.

     “뭐든지 추론하고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 만일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면 어느정도 모든 게 명확해지겠죠.”

     “그 사람?”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

     확실히, 가능성 있다.

     아니, 분명 그라면 모든 걸 알아낼 것이다.

     모든 역사의 기원, 황금룡이 왜 황금이 되었는지, 그리고 저 탑은 무엇인지.

     

     “아버지. 일단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을 정리해도 여기에서 하다가는 황금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군요.”

     일단, 밖으로 나갈 때다.

     

     “영원히 젊은 형태를 유지하는 엘프 같은 종족도 아닌 만큼, 굳이 남들보다 한두 시간 더 빠르게 늙을 필요는 없죠.”

     “그런 엘프들도 남들보다 더 빠르게 늙기는 바라지 않겠지. 바토리 소장. 나가도록 합시다.”

     “…….”

     바토리 소장이 잠시 입술을 삐죽였다.

     아무래도 시간끝이라는 이 공간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고 분석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바토리 소장도 남들보다 더 빨리 늙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아버지가 없으면 영영 이곳에 갇힐 수 있다.

     “그레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라도 하느냐?”

     “아니요. 그냥, 이게 뭘까 싶어서요.”

     황금룡이 지키고 있는 거대한 탑.

     탑일까?

     아니면, 탑처럼 생긴 무언가일까.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금룡이 가장 소중히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나도 아버지도 베어낼 수 없는 기적이 들어있는 무언가라고 한다면.

     ‘모래시계.’

     뒤집으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게 된다.

     지브롤터의 피가 이곳으로 이끄는 열쇠라고 한다면.

     노스트럼의 피에 반응하는 무언가는, 황금룡이 아니라 아마도 이것이겠지.

     “…….”

     착각일까.

     황금의 탑 안쪽에서, 망국의 공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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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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