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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세계 유일한 네크로맨서인 그녀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이유는 한 소년 때문이었다.

     

   “맨날 나한테 시키기만 하고, 내가 자기 시중이야!”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제블람 왕궁을 성큼성큼 이동 중이었다.

   그에 따라 그녀의 상체가 거칠게 흔들렸다.

     

   분노를 듬뿍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천상사강이 지내는 곳인 만큼 솔직히 쬐끔 겁나기는 했지만.

   이미 결계사까지 아예 들어와 산 적이 있는 마당에 테라시우스가 신경이나 쓸까 싶었다.

     

   무엇보다 크라슈의 얼굴을 직접 보고 한소리를 하지 않고서는 못 참겠다.

     

   쿵!

     

   결국 크라슈가 있던 훈련실에 도착한 에벨아스크는 문을 확 열어젖혔다.

     

   “아, 왔어?”

     

   그러자 훈련실에서 우뢰성을 점검하고 있던 크라슈가 이쪽을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반가움이 담긴 웃음이었다.

     

   그 미소와 마주한 순간 에벨아스크가 무심코 움찔거렸다.

   방금까지 성을 내려던 마음이 스리슬쩍 녹아내리고 만 것이다.

     

   “……응.”

     

   그러고는 어느새 소극적으로 변한 그녀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만을 응시했다.

     

   어째선가 괜히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이후였다.

   하덴하르츠 사건 당시, 크라슈가 자신을 붙잡은 그 날부터.

     

   에벨아스크는 크라슈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몸은?”

   “이제는 멀쩡하지.”

     

   얼마 전 테라시우스의 마법을 거는 과정에서 크라슈는 정말 죽을 만큼 고생했다.

     

   시체 쥐를 통해 그 고생을 엿본 에벨아스크는 가슴이 찢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죽하면 그만하라고 울고불고 소리를 쳤겠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에벨아스크는 쪽팔려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에벨아스크는 똑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았다.

     

   크라슈는 늘 무리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을 항상 알고 있지만, 크라슈가 엉망진창이 되어 오는 꼴을 가면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에벨아스크였다.

     

   “그, 무리 좀 안 하면 안 되는 거지.”

     

   에벨아스크의 소극적인 시위가 잠시 이어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크라슈는 짧게 웃음을 흘리더니 에벨아스크의 앞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여전히 눈을 피하고 있는 에벨아스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을 거니까. 그리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한 말은 무조건 지켜.”

   “…….”

     

   그 말이 아닌데.

     

   에벨아스크는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말았다.

   머리에서 쓰다듬어지는 크라슈의 손의 감촉을 좀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보고 머저리지.’

     

   이런 애한테 코나 꿰이고.

   에벨아스크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니 부탁 좀 하자. 내가 살려면 네 힘이 필요해.”

     

   크라슈의 손이 머리에서 떼어지자 아쉬운 눈길로 그쪽을 본 에벨아스크는 정신을 되잡았다.

     

   “훈련하면 조금도 안 봐주고 할 거야.”

   “바라던 바야.”

     

   에벨아스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이 바라는 바는 무리를 안 하는 거지만.

   크라슈가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계속 무리를 할 것 같았다.

     

   ‘세계를 구하겠다고 했지.’

     

   에벨아스크는 시체 쥐를 통해 그동안 크라슈와 크림슨가든과의 대화도 본의 아니게 엿들었다.

     

   크라슈가 당시에 이야기하던 걸 듣고, 대충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크라슈는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는 그 부분에 관해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런 독종의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부 이해가 되었다.

     

   에벨아스크 또한 멸망해 버린 자기 세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신과 함께해준 동료, 베나포치를 구하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을 테니까.

     

   ‘유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약한 것도 그런 거겠지.’

     

   크라슈는 특정 인물들에게 굉장히 약했다.

   에벨아스크는 그것이 미래에서 여러 이유로 인해 엮인 이들이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은 한 번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신에게 중요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크라슈의 마음속 한편에는 그들을 다시금 잃을까 싶은 두려움이 은연중에 남아 있었다.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그걸 잃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 결과.

     

   ‘……자꾸 옆에 붙잖아.’

     

   크라슈 기준 과거의 일들 탓에 크라슈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여성진들을 적극적으로 밀어내지를 못했다.

   그리고 여성진들도 분명히 그 부분을 눈치채고 있었다.

     

   ‘영악한 년들.’

     

   정작, 본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에벨아스크는 은근한 질투심을 드러냈다.

     

   “아, 에벨아스크, 결계사 쪽은 별다른 정보 없지.”

     

   그러는 순간 크라슈가 사전에 부탁했던 결계사 이야기가 나왔다.

   에벨아스크는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조용해. 정확히는 결계사 쪽 정보는 거의 들어오지를 않아.”

   “본인한테 결계를 사용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결계사도 세계 침식자다.

   분명 세계 침식자의 눈을 피할 방법은 갖추고 있겠지.

     

   에벨아스크가 그녀를 쫓지 못한 것도 그럴 만했다.

     

   ‘에벨아스크가 쫓지 못하는 시점에서 내가 쫓을 방법은 없다.’

     

   크라슈에게 에벨아스크는 가장 뛰어난 정보원이었다.

   그런 그녀조차 찾지 못하는 정보라면 크라슈가 열심히 발로 뛴다 한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정보를 가져오겠다고 하긴 했는데.’

     

   아직은 조용한 게 쭉 마음에 걸렸다.

     

   크라슈는 이 부분이 꽤나 걱정이었다.

   익시온 쪽에는 크라슈와 같이 미래를 알고 있는 아벨라가 있다.

     

   당장 가짜 아서가 진짜 아서일지도 모른다는 가설부터 시작해.

   아벨라의 목표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어지고 있는 만큼, 크라슈는 아벨라라는 변수를 끊임없이 고려하고 있었다.

     

   ‘역시 그때 결계사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당시에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았다.

     

   회귀 전에도 조금이라도 질기게 살아 보고자 정보란 정보는 닥치는 대로 모았던 크라슈지만.

   그 당시에 그토록 모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정보에 허덕이고 있었다.

     

   세계가 바뀐 만큼 수없이 많은 변수가 튀어나오고 있으니.

   크림슨가든과 에벨아스크라는 실력 있는 정보원이 있음에도 최신 정보에 따라가지를 못했다.

     

   ‘조급해서는 안 되겠지.’

     

   섣부르게 움직여봤자 일을 그르칠 뿐이다.

     

   크라슈는 아직 익시온과 부딪칠만한 전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그 전력을 갖추고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에벨아스크, 훈련 시작해줘.”

     

   크라슈는 우뢰성을 가볍게 휘둘러 몸을 푼 채 에벨아스크에게 훈련을 부탁했다.

   그러자 에벨아스크는 한숨을 푹 쉬더니 바닥을 쿵 찍었다.

     

   그 순간 에벨아스크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치솟아 올랐다.

   치솟아 오른 그림자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관이었다.

     

   관의 갯수는 무려 8개.

   관에는 하나씩 숫자가 박혀 있었다.

     

   관에 박힌 숫자는 2호부터 9호까지.

   에벨아스크가 주로 사용하는 정예 시체 넘버였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하나씩 꺼내주지 않을 거야.”

   “바라던 바다.”

     

   에벨아스크는 네크로맨서다.

   그녀가 다루는 시체들은 단일 개체로서의 힘보다는 집단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

     

   거기에 그녀의 시체들은 에벨아스크가 더해졌을 때야말로 진짜 진가를 발휘한다.

     

   쿵! 쿵! 쿵! 쿵!

     

   에벨아스크의 손짓에 따라 관들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걸어 나온 시체들이 일제히 에벨아스크를 중심으로 섰다.

     

   “싸움이야? 싸움이다!”

   “오랜만이네요. 크라슈 님.”

     

   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게걸스러운 침을 흘리고 있는 9호.

   여전히 검은 토끼 귀 머리띠를 장식삼아 쓴 메이드 차림의 8호.

     

   “와아, 주인님, 오랜만에 꺼내주네.”

   “전 더 자고 싶은데요.”

     

   머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7호는 조금이라도 바깥 공기를 맡고자 코를 킁킁거렸다.

   반대로 시체임에도 피로감이 있는 듯 토끼 인형까지 들고 자던 작은 소녀 6호가 기다랗게 하품을 내뱉었다.

     

   “…….”

   “어머, 크라슈 님이시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무인처럼 검을 늘어트리고 있는 5호는 머리가 없어 대화할 수 없었다.

   고귀한 귀족 여식처럼 보이는 4호는 부채를 촤악 펼친 채 가면 너머 웃음을 그렸다.

     

   “다들 제대로 정립하세요.”

     

   집사처럼 보이는 노인의 남성 3호가 시체들을 다그쳤다.

     

   “피휴웅.”

     

   마지막으로 검은 말, 2호가 갈기 대신 푸른 불길을 휘몰아치며 크라슈에게 반가운 듯 투레질을 해 보였다.

     

   “거의 다 꺼냈군.”

   “봐줄 생각 없으니까. 이참에 세계 침식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 거야. 그러니.”

     

   에벨아스크는 발을 한 번 더 쿵하니 굴렀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관 하나가 더 치솟아 올랐다.

     

   그 관을 마주한 순간 크라슈마저도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다른 넘버들도 관이 나타난 순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관에 적힌 것은 1호.

   에벨아스크가 지닌 최강의 시체였다.

     

   ‘정말로 제대로 하겠다는 거네.’

     

   크라슈가 그 관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곧이어 관이 텅하니 열렸다.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온 관 안.

   한 거대한 체구의 기사가 걸어 나왔다.

     

   투구 안에서 섬찟한 붉은 기운을 흘린 기사는 갑옷 위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신분이 고귀하다는 것을 드러내듯.

   그의 투구 위에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검은색 왕관이 드리워 있었다.

     

   “피휴웅!”

     

   그 순간 2호가 제 주인을 만나기라도 한 양 기쁨의 소리를 내질렀다.

   2호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의 앞에 다가서자 1호는 가뿐하게 도약하여 2호 위에 탑승했다.

     

   2호의 푸른색 갈기가 거세게 불타올랐다.

   1호의 출력과 합쳐지며 그 힘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각오해.”

     

   에벨아스크의 입가에 당찬 미소가 걸렸다.

     

   저 녀석, 은근히 남을 괴롭힐 때 희열을 느끼는 변태적인 취향이 있단 말이지.

   에발아스크의 안 좋은 버릇이 엿보였다.

     

   “좋지.”

     

   하지만 훈련하기에는 최고였다.

     

   “아, 백염은 반칙이니까! 내 시체들 사라진단 말이야!”

     

   그러자 에벨아스크가 시위하듯이 외쳤다.

   아우라가 더해진 백염은 세계 침식자나 침식종에게는 극독이다.

     

   당연히 세계 침식으로 돌아가는 시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생각 있어. 아우라를 쓸 생각은 없다.”

     

   훈련으로 에벨아스크의 전력을 깎다니.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대신 흑염을 천천히 피워 올랐다.

     

   이번 훈련은 이 육체에 익숙해지기 위함인 훈련이다.

   그러니 크라슈도 최대한 자기 육체의 힘에 적응하기로 했다.

     

   피어오른 흑염의 기운이 어느새인가 방 안을 가득 메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크라슈를 마주한 시체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긴장으로 물들어 갔다.

     

   크라슈에게서 흘러나온 흑염은 백룡의 기세와 맞물려 압도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그러한 크라슈를 마주한 에벨아스크마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는 백염이 문제가 아니네.’

     

   크라슈가 만약 저 힘을 완전히 다루게 되고, 끝내는 창제무신까지 배우게 된다면.

   이제 세계 침식자 중에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라슈가 완전히 힘에 적응하도록 돕는 건 자신의 몫이겠지.

     

   “넘버들.”

     

   에벨아스크가 당찬 미소와 함께 넘버를 전원 호령했다.

   그러자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어 듦과 함께 에벨아스크의 네크로맨서 술과 연결되었다.

     

   “어디,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자.”

   

   

     

   세계 유일한 네크로맨서의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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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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