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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8

       

       

       오늘 밤이면 떠난다, 라고. 

       

       그 말은, 도망친다는게 아니라,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얘기였던가. 

       

       아닌게 아니라 의자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청년은 몰골도 앙상한데다, 우리가 들어와서 이 난리를 쳐도 미동조차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는 그대로였다. 

       

       미약하게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라도 들리지 않았더라면,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설명해 봐. 왜 이렇게 된 건지, 그리고 이 신종 마약은 무엇인지.” 

       

       내가 소녀에게 묻자, 소녀는 묶여있는 청년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저렇지 않았어요. 저희 오빠는…… 참 건실한 사내였지요. 원래는 저희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가게를 물려받기로—”

       “아니, 어디서부터 얘기하려는 거야?” 

       

       나는 소녀의 말을 끊었다. 무슨 구구절절한 가족사까지 전부 이야기할 셈인가. 

       

       “중요한 부분만 짧게 얘기를…… 응?”

       

       뒤에서 내 소매를 툭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이유하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사연이 깊은 듯하니, 길게 들어보는 것이 좋겠소.”

       

       으음. 이유하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알아서 설명해 봐.”

       “……예. 오빠는 가게를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가게 형편이 어려워져서 공사장에 나가서 쿨리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결국 아편 장사에 손을 대고 말았어요.”

       “아니, 잠깐! 너네 가게, 장사 잘 되지 않았어?” 

       

       나는 다시 소녀의 말을 끊었다. 아까도 보니까 저녁에는 손님도 많고 왁자지껄하던데.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가게가 형편이 어렵다니 말이 되나.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였죠? 그렇지도 않아요. 속을 들여다보면, 곧 망할 처지니까요. 이 거리가 모두 그래요.” 

       

       홍옥례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줬다. 

       

       “나도 알아. 장삿집은 제삼자가 보면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지. 우리 마작구락부도—물론 위장영업이긴 하지만—손님은 많은데, 막상 세금 떼고 뭐 떼면 남는 것도 없어.” 

       

       홍옥례의 말을 들은 소녀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요. 또, 저희 중국 사람들은 그렇잖아도 적잖이 멸시를 받아왔는데, 일본이 중국이랑 전쟁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심해져서…… 적성국민이라느니 비국민이라느니 하는 취급을 받고, 저희 중국 사람들이 돈을 잘 벌고 사치스럽게 산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세금을 강요하고……”

       

       그렇게 신세를 한탄하듯 말하던 소녀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얘기까지 길게 할 필요는 없겠죠. 아무튼, 그렇게 가게 형편이 어려워져서 아편 소매장을 시작한 오빠는, 얼마 전부터 새 마약을 들여왔어요. 이름도 모르는 유통업자가 전해준 건데…… 아편도 모루히네도 아니고, 지금까지랑은 전혀 다른 마약이었죠.”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그 마약을 팔던 곳이었어요. 저희 식당 뒤에서…… 장사가 몹시도 잘 되었었죠. 지금은 보셨다시피, 신종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저희가 ‘격리’해둔 곳이지만요.” 

       

       사람을 이상할 정도로 폭력적이게 만드는 마약이었다. 거리에 놔두다간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어,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이 중독자들을 자체적으로 격리해둔 것이었던가. 

       

       경찰의 도움이나 바깥 사회의 처분을 바라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해결하려고…….

       

       이제 아편 따위가 아니라 이 신종 마약이야말로 진짜 문제로 느껴졌다. 대체 어디서 이런 마약이 나온 것일까.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너희 오빠는 그 마약을 어디서 구했어? 네 오빠가 소매상이었다면, 진짜 유통업자는? 유통업자는 지금 어디 있어?”

       “죽었어요.”

       “……죽었다고?”

       “예. 저희 오빠가 그 유통업자를 죽였어요. 아! 오빠는 왜 그랬을까요.” 

       

       소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그 전까지는 아편도 모루히네도 하지 않았지만…… 이 신종 마약에는 결국 손을 대고 말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자기 스스로도 저 무서운 약의 중독자가 되어서…… 결국, 며칠 전에 그 유통업자라는 사내를 쳐죽여버리고 말았겠지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경찰서에서 본 사진이 그거였구나.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이 신종 마약의 유통업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약에 중독되면 오래 살지 못 해요.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돼요. 제가 말했지요. 저희 오빠는, 오늘 밤이면 떠날 거라고……. 저희 오빠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예요. 이곳에 격리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죽겠죠.”

        

       소녀는 나를 간절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저희 사정을 보아서라도 이만……” 

       

       ‘후우…… 어떻게 할까.’ 

       

       여기까지 들어보니 사정은 딱했지만, 사정이야 이 사람들 사정일 뿐이다. 

       

       솔직히 법대로 하자면, 이 중국인 청년는 물론이고 이 청년의 마약 밀매를 방관해온 가족들과, 다른 중독자들과, 이들을 숨겨준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잡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의자에 묶인 청년을 흘깃 돌아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으로 끝일까? 

       

       이 청년 역시 마약을 다른 어디선가 입수한 것 뿐. 골목골목에 있던 수많은 아편굴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아무리 잡아봤자, 그들에게 마약을 만들어주는 사람을 찾아내지 않는 한 이 중국인 거리의 마약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 죽은 유통업자라는 사람이 직접 마약을 만들던 사람은 아니었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는요. 유통업자도 마약을 어디선가 구해왔어요.” 

       “그럼, 마약을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얘긴데. 그러니까, 약제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말야……. 유통업자도 죽고 네 오빠도 이렇게 되었다지만, 이 마약을 만든 약제사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 계속 마약을 만들고 있겠지?” 

       “아……”

       “그리고 유통업자와 소매상을 새로 구해서 다시 마약을 유통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거야.” 

       

       내가 경찰서장에게 받은 임무는 마약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찾아내는 것.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지금 이곳의 중국인들을 싸그리 잡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약제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 약제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몰라요.”

       

       소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저도 오빠의 뒤를 쫓다가 유통업자만 멀리서 한 번 본게 전부라서요.”

       

       이 말을 믿어도 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소녀로서는 그 약제사라는 사람을 감싸줄 이유는 없다. 자신의 오빠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이니, 알고있는게 있다면 복수를 위해서라도 나에게 바로 말했으리라. 

       

       “알겠어. 모르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래도 네 오빠는 데려가야 돼.” 

       “예?”

       

       소녀는 몸을 굳히며 경계태세를 취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오빠는 그 약제사라는 사람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데려가서 증언을 들어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에 사정을 알리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증언을 들으려면 우선 치료하고 봐야 하니까.”

       “저, 정말요?”

       

       순간이지만 얼굴에 활기가 돌며 놀라는 소녀. 하지만, 

       

       “그, 그렇지만, 저희 오빠가 살아남더라도……”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만약 치료를 받아 운 좋게 살아나더라도, 이미 지은 죄가 있으니 받게 될 벌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엄연히 마약을 밀매한 죄가 있으니 재판을 받게 될 거야. 감방에 들어가게 될수도 있고, 중국으로 추방당할 수도 있겠지. 그것까진 내가 어떻게 해줄 순 없어. 그건 내 재량이 아니거든.”

       

       소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재판은 받겠죠. 재판을 받으면, 분명히 사형—”

       “으흠! 흠!”

       

       그 때 송병오 녀석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확실히, 형무소에서는 해마다 마약 범죄자를 사형시키곤 하지!”

       

       그 말을 들은 중국 소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니, 송병오 이 자식은 왜 또 눈치없이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곱창내는 것이지? 하지만 송병오 녀석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걱정 말게.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주로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을 들여오는 밀수업자나, 국내에서 마약을 제조해 판매하는 약제사들일세. ……그러니까 그, 중국 아가씨의 오라비 되시는 저 사내는, 마약을 판매하고 스스로 중독자가 되기까지 했지마는, 내가 보기엔 형무소 생활을 하게 될지언정 아마 사형까지 처해지지는 않을 걸세.”

        

       ……휴우. 뭔 이상한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안심시켜주는 것이었구나. 소녀의 얼굴이 다소 밝아진 것을 확인한 나도 덧붙였다. 

       

       “들었지? 그리고 나도 힘써볼게. 내가 이래뵈도 좀 끗빨이 있으니, 종로경찰서장에게 말해서 네 오빠가 신종마약 수사에 도움을 줬다는 식으로 포장하면, 확실히 사형은 피할 수 있을 거야.” 

       “……! 저, 정말 그렇다면…….”

       “뭐가 되었든 이대로 죽게 놔두는 것보단 낫잖아? 살아야 뭐든 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굳은 결심을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좋아. 그러면 한시라도 빨리 데려가야지.” 

       

       어차피 오늘 약제사를 찾아내는 것은 무리다. 그저 이 중국인 청년을 경찰서로 데려가서, 치료부터 시키고 실마리라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랄까…… 라기보단, 그 정도면 이미 내 할일은 마친 것이겠지. 그 이후는 내가 아니라 경찰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중국인 청년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저 의자에 묶인 쇠사슬부터 풀 건데, 움직이거나 저항하진 않겠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폭했었는데, 그 뒤부터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없었어요. 지금처럼 정신도 못 차리고……” 

       

       청년의 몸에 칭칭 감긴 쇠사슬. 

       

       【우…… 으……】 

       

       묶인 것을 풀고, 칭칭 감겨있던 쇠사슬을 풀기 시작하자 청년이 움찔거렸다. 그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징챠…… 부야오…… 부야오 징챠……】

       

       깨어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정신이 혼미해서인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눈을 꾹 감고, 몸을 움찔거리며 계속 중얼거리는 청년.

       

       【워 뼤이 쭈아 저우…… 나 워더 찌아슈…… 워디엔…… 빠바…… 옌링…… 부야오……】

       

        나는 칭칭 감긴 쇠사슬을 풀며 소녀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그게, 경찰은 안된다고…… 경찰에 잡혀가면, 그러면 우리 가족, 가게, 아버지, 저 모두 안된다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내가 데려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경찰에 잡혀가면 가족들 역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청년이 몸을 뒤트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에잇, 그만 좀 가만히…… 야!”

       “예?”

       “우리가 데려가면 치료부터 해줄거고, 가족들의 안전도 보장해준다고 좀 말해 줘!”

       “아, 알겠어요!”

       

       하지만 소녀가 청년에게 뭐라고 통역해주기도 전에,

       

       【부야오…… 부야오!】

       

       청년은 그렇게 한 번 크게 내뱉고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스으으으……】

       

       ‘뭐지?’

       

       청년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낀 나는, 쇠사슬을 풀던 것을 멈추고 즉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까드득…… 텅!

       

       청년의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이 엿가락마냥 끊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루한 설명이 너무 많은 구다리라서 다음편이랑 함께 올리려고 했는데, 다음편 쓰는게 조금 늦어져서 어제 올리지 못했어용.

    대신 오늘 올립니당! 다음편 바로 올라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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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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