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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9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진다니?”

       “저 사진에 찍힌 마법은 에테르가 만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것이 ‘흑주’는 아닙니다.”

       

       버멜은 마지막 손가락을 접으며 토해내듯 말했다. 어느덧 그의 어조는 격정적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흑주는 에테르의 고유마도입니다. 저것에 수백 배, 어쩌면 수천 배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마법이죠. 그걸 개발할 수 있다면 이 전쟁은 필승(必勝)이요, 그렇지 않고 저대로 감옥에서 내버려 둔다면 필패(必敗)입니다.”

       

       지금 마왕군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또 난사할 수 있다.

       

       반면에 엘프들에겐 무엇이 있는가.

       

       정령왕의 비호? 막강한 경제력?

       

       전부 부질없다.

       

       정령왕이라도 핵폭탄 수백 발을 맞으면 죽는다. 설령 살아남더라도 인간과 엘프가 절멸한다.

       

       “그러면 우리도 저 버섯구름을 만드는 기술을 얻으면 되는 것 아니오?”

       “그게 가능하십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버멜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안일해도 너무 안일했다.

       

       “행정부장관께선 저 마법이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동작하는지 아십니까?”

       “그건 스크롤 만드는 마도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전계마도입니다.”

       

       그 말에, 행정부장관은 입을 다물었다.

       

       “전자라고 불리는 마소의 상호작용으로 동작합니다. 즉, 저것은 금안족의 마법입니다.”

       

       사실 버멜도 원자폭탄의 원리는 잘 몰랐다. 그냥 전계마도니 전자로 돌아가겠구나 싶었다. 이 부분에선 약간의 과장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이란 건 100%의 진실보다는, 99%의 진실과 1%의 거짓으로 이루어질 때 더욱더 설득력을 갖추는 법.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 폭탄의 제조에는 피치블렌드가 필요합니다. 피치블렌드 마석, 이 나라에는 그리 많이 생산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야 대부분은 제국 서부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니까요.”

       “…….”

       “이게 그 지역이 마왕군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기술이 있어도 재료가 없어서야 같은 걸 만들 수 없죠.”

       

       당황한 장관의 표정을 포착한 버멜. 그가 공세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흑주’는 다릅니다. 제가 알기로, 그 마법은 바닷물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그 흑주인가 뭔가를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되겠군.”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인데.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버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론을 내뱉었다.

       

       “흑주도 전계 기반입니다. 금안족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도 마법에 아주 정통한 금안족이어야 하죠. 제가 알기로, 판자촌에 사는 남쪽의 금안족들은 당장 먹고사는 일도 힘든 하류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남았을까요?”

       

       당연히 에테르뿐이다.

       

       “가장 좋은 기술자…. 아니, 저 마도의 창시자가 저리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그녀를 믿어주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마수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가요? 그렇다면 저도 그 말씀에 코멘트를 달도록 하겠습니다.”

       

       버멜은 조금 전 행정부장관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카우렐리아는 제정 분리 국가입니다. 즉, 정령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말입니다, 마수라는 건 대체 누가 정의하는 것인가요?”

       “……!”

       “어떤 대상이 마수인지 아닌지는 정령이 정합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에테르가 사천으로 있던 시절, 그녀를 마수라고 정의한 건 정령들일 텐데…….”

       

       말이 앞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버멜은 웃으며 행정부장관을 사근사근하게 쏘아붙였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국가, 아니. 대륙의 존망이 걸린 일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눈앞의 판단을 흐리지 말아 주십시오. 높으신 분들, 여러분의 결단이 카우렐리아의 흥망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것을 끝으로 버멜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엘프국의 다른 이들도 입맛을 다실 뿐, 딱히 말을 꺼내진 못했다.

       

       완벽하게 설득당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펙튼 장관이 입매를 비틀었다.

       

       “흐, 흐하하하하!!”

       

       그러더니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이런, 내가 영웅을 몰라봤군. 천하의 달변가로다!”

       

       벌떡 일어나는 펙튼 장관. 그가 성큼성큼 버멜 앞으로 다가오더니 어깨를 콱 잡아 쥐었다.

       

       버멜은 펙튼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는 겁쟁이를 매우 싫어한다.

       

       반면에,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제 주장을 굽히지 않는 자를 용감하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 얄궃은 면상을 뚫어져라 노려봐주었다.

       

       “이거, 이거! 눈에 패기 넘치는 것 보소!”

       

       180도 변한 펙튼의 태도에, 다른 이들은 눈만 끔뻑였다.

       

       “그래! 꼬추 달고 태어났으면 무릇 이래야지! 내 그동안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군. 좋아, 자네! 이름이 뭐라고?”

       “버멜 호르데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국방부장관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린다. 아니, 이채보다는 광기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잠깐만.

       

       “자네는 지금부터 내 부대에 배속이야!”

       “……?”

       

       무언가 잘못됐다.

       

       “씨바알, 드디어 전쟁이구나!!”

       

       생각해 보니 펙튼 장관은 자기 위치도 잊어버릴 만큼 싸움에 환장한 전쟁광이었지.

       

       그만큼 호전적인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펙튼은 자신이 싸움닭 기질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즉, 지금 자신의 상황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군대 두 번 가게 생겼네.’

       

       좆됐다.

       

       

       **

       

       

       군대를 두 번째 다니게 됐다.

       

       “씨발.”

       

       당장 다음 주부터 입영이란다. 그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이별할 준비를 하라더라.

       

       펙튼 장관은 대통령에게 장관직을 해임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외교적 결례 및 폭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세상에 야전사령관으로 가고 싶어서 장관을 그만두는 놈이 어디 있냐고.

       

       ‘설마 그 전쟁광이 회의에서까지 그 지랄을 떨 줄은 몰랐지.’

       

       버멜은 마지못해 펙튼의 입대 제안을 수락했다.

       

       거기선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입대 안 하겠다고 버티면 진정성이 사라지니까. 아마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을 거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긍정해야 했다.

       

       실제로 군대 가겠다고 하니까 엘프들이 단체로 일어나서 박수를 치더라.

       

       – 당신의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죽하면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그런 경례까지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행정부의 수반씩이나 되는 사람에게 말이다!

       

       ‘오히려 좋나…?’

       

       행동에 제약이 걸리긴 해도, 에테르를 못 만나는 수준이다.

       

       어차피 마왕을 잡으려면 입대해야 한다. 게임에서도 그쪽이 일반적인 루트였다. 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마왕을 잡는 건 어려우니까.

       

       이렇게 된 이상 에테르가 흑주를 완성할 때까지 전선에서 버티자고 다짐한 버멜이었다.

       

       일단 그러려면 에테르 자매가 감옥에서 나와야 한다.

       

       “법무부장관께서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에게 건의했대요. 두 사람을 꺼내줄 수 있느냐고.”

       “얼마나 걸릴까요?”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내로 성사되겠죠.”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마왕군이 브륄리움 강에 도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을 기점으로 행정부는 석방하는 쪽으로 의견을 통합했다.

       

       버멜은 거기에 순수한 의도가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제 밥그릇 지키기지 뭐.’

       

       관료들은 원자폭탄을 두려워하고 있다.

       

       필리우트 제국처럼 자기들도 핵샤워에 단명할까 봐.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봐.

       

       그 꼰대 같던 하이엘프들도 정작 위험이 닥쳐오니 두 금안족을 석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법무부장관 존 폴턴입니다. 검찰청과 원만한 협의를 통해 피고 에테르 및 아카샤의 구속영장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바, 오늘부로 두 사람에 대한 모든 조사를 중지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너른 마음으로…….]

       

       “지랄하네.”

       

       정부와 국민의 뜻이 맞지 않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저것들 마수들하고 완전히 한패가 됐어! 에잉, 쯧쯧.”

       “카우렐리아도 이렇게 망하는구나.”

       “엄마, 대통령 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왜 괴물을 감옥에 안 넣어?”

       

       정부는 설득했어도 국민은 설득하지 못했다.

       

       이 점은 버멜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야, 그 금안족 때문에 전쟁 난 거라며?”

       “안 그래도 인구 많은데.”

       “잘 됐네. 걔네부터 최전방에 보내면 되겠다.”

       

       ‘미친 새끼들.’

       

       버멜은 사람이 마수보다 더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제삼자인 자기가 들어도 저런데, 정작 금안족들은 어땠을까. 에테르가 받았을 고통이 가늠이 안 된다.

       

       그런데도 그녀는 끝내 인간과 엘프의 편에 서겠다고 결심했다. 이는 저런 불특정 다수를 위함이 아니었다.

       

       로테가 죽는 걸 보기 싫어서.

       

       프레이가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믿어줄 다른 누군가가 같이 고통받는 것이 더욱더 끔찍할 테니까.

       

       “어, 왔냐.”

       

       세상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기에. 이리 감옥에 갇히고도 태연할 수 있겠지.

       

       “왜 이제 왔어, 이 새끼야.”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카락과, 휘영청 밝은 달을 담아 놓은 듯한 눈동자.

       

       에테르는 처음 자신과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미안해. 사정이 있어서.”

       “아, 그러셔?”

       

       에테르는 눈을 샐긋 뒤틀더니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서늘한 눈빛이었지만 버멜은 움츠러들지 않고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이 여기 들어올 수 있다는 건, 그녀가 곧 석방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동안에는 가족 외 면회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30분 정도 기다리면 넌 여기서 나올 수 있어.”

       “……그래?”

       “그래. 너뿐만 아니라 네 쌍둥이 여동생도.”

       “잠깐 이리 좀 와라.”

       

       에테르는 철창 사이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더니 양장본 사이로 캘리퍼스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을 한 적 있었다.

       

       통보 없이 멋대로 행동하면, 잘못을 한 쪽이 한 대 얻어맞기.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대역죄인처럼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힘을 천천히 빼고, 고개를 숙여 처분을 기다린다.

       

       “때리고 싶은 만큼 때려.”

       “정말?”

       

       이젠 엘프만 보면 씩씩거리던 아카샤가 빵긋 웃으며 스태프를 꺼냈다. 졸지에 두 배로 쥐어 터지게 생겼다.

       

       “너는 때릴 자격 없고.”

       

       “하지만 테르.”

       “이건 얘랑 나 사이의 약속이거든? 넌 몰라도 돼.”

       “도대체 무슨 등신 같은 약속을 잡은 건데?”

       “있어, 그런 거.”

       

       실랑이를 벌이던 자매. 싸움은 에테르의 승리로 끝났다. 아카샤는 마지못해 피뢰침을 거두었다.

       

       그래, 그래도 피뢰침보다는 캘리퍼스가 훨씬 낫지.

       

       “화난 만큼 때릴 거야.”

       

       버멜은 눈을 감은 채로 처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툭.

       

       “……?”

       “자, 끝.”

       “너 뭐 해?”

       

       이 소녀에게 잘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적이 빈번했다.

       

       지금도 그랬다. 머리통이 아작날 정도로 맞아야 정상인데.

       

       “화난 만큼만 때린다고 했어.”

       

       소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스태프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30분 동안, 버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에테르, 아카샤. 두 사람 모두 현 시간부로 구속을 해제합니다.”

       

       촤라락!

       

       멍을 때리는 사이에 철창문이 열렸다.

       

       됐다.

       

       이제 에테르가 풀려났으니 남은 건 흑주가 개발될 때까지 버티는 일뿐이다.

       

       그렇게 마왕이 죽고 모든 게 끝난다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만, 눈앞의 소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기꺼이 엔딩까지 가 주리라.

       

       버멜은 씁쓸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멍청한 놈들, 진작 이렇게 해 주지. 진짜 언니 말대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라니까?”

       “…….”

       “자, 테르. 나가자. 다 같이 망하는 건 막아야지.”

       “…흐.”

       “……에테르?”

       

       에테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얼마 안 지나 감방 깊숙이 들어갔다.

       

       버멜도, 아카샤도. 처음에는 그녀가 잊어버린 물건을 가져오려는 건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달리, 에테르는 대뜸 침대에 누웠다. 그러더니 이불을 허리까지 덮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입술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난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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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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