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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9

       사실 사람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제어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자기감정을 쉽게 제어할 수 있었다면,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직업이었을 테니까.

        

       나한테 감정을 숨기는 재능은 없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감정의 수준은 그저 나를 갈구는 직장 상사 앞에서 간신히 좆같다는 표정을 숨길 정도의 요령뿐이었다. 그나마도 그날 저녁에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누구한테 하소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티가 날 만큼 나는 표정 관리에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이쪽 세상으로 돌아와 내가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굳이 연기를 할 필요 없이 감정을 미리 다 쏟아내고, 아니면 최소한 감정을 갈무리하여 얼굴에 딱 필요한 부분만 드러낸 채 상대를 마주하는 거다. 그러면 적어도 상대방 앞에서 표정이 흐트러질 일은 없다. 공포영화에서 깜짝 놀라는 장면을 본 뒤 다시 돌려서 한 번 더 보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못 하지.

        

       “…….”

        

       그래도 그날은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레나나 미아와 단둘이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그래도 꽤 중요한 것이었고, 사실 따지고 보자면 나, 앨리스, 샤를로트는 각자 사는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깊은 곳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이 끼어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지나갔다고 해도, 우리가 얼굴을 볼 날은 많다. 굳이 학교에서 보는 것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종종 만나고는 살 테니까.

        

       “실비아.”

        

       “……네.”

        

       미아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하긴, 여신이 만든 환상 속의 세상에서 미아의 성격은 지금의 미아와는 달랐으니까. 내성적인 성격을 미처 극복해내지 못했던 미아는, 나와 이름을 부르는 사이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미아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미아와 동일 인물이었다. 그저 나와의 접점이 많이 줄어들었던 사람일 뿐.

        

       그러고 바로 다음 날에 이렇게 단둘이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니, 딱히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마주친 곳은 기숙사 복도였으니까.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1년에도 여기저기 먼 곳까지 돌아다니고, 그러다 보니 앨리스와 같은 방을 쓸 일이 많았기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1인실이다. 아무리 나와 자주 함께 다니는 앨리스라도 기숙사에서까지 나와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미아의 방은 내 방이 있는 복도와 꽤 떨어져 있다. 우리가 미처 짐을 빼기도 전에 아카데미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었으므로 방의 위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미아가 내 방이 있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는 건, 당연히 나를 독대하고 싶다는 뜻이다.

        

       “잠깐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미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기 초의 미아나, 아버지가 죽지 않은 세계의 미아와는 완전히 다른,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와 눈을 완전히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 채 시선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 양손 손가락 끝을 초조하게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대범한 성격이 되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고 생각하곤 있었으니까.

        

       만약 미아가 내가 돌렸던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냈다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미아와 나의 첫 만남은 별로 우호적이지는 못했으니까.

        

       아버지를 죽이고도 당당하게 구는 인간과 그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살아온 자.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사이가 나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아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의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결국, 그 말은 옳은 말이었어요.”

        

       “옳은 말이라니요?”

        

       “저를 처음 만나고 하셨던 말씀이요.”

        

       나는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가 올라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사실 그때는 내가 나의 능력을 거의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하게 시간을 돌린 것이다. 미아 크로우필드라는 캐릭터가 나에게 가진 감정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알고 있어야 대응을 할 테니까.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황제 폐하의 권력을 위해서 미아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했었나.

        

       그리고 네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을 범하고 죽인 쓰레기라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옆에 있던 샤를로트가 나를 쓰레기 보는 눈으로 봤을 정도니, 내 말이 얼마나 대놓고 패드립이었는지 알만하다.

        

       시간을 돌려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 뒤로 가 뒤통수를 후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능력이 없었으므로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아니, 그보다, 이 세계에서 시간을 돌린다는 행위는 과거의 나를 볼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으니 애초에 불가능했겠지만.

        

       무엇보다, 만약 내가 거기까지 시간을 돌렸다면 성장했던 미아의 노력을 다시 한번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설령 할 수 있더라도 하면 안 되겠지.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께 자기 치부를 들켰어요. 아니, 어머니는 아예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어렸던 시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라는 존재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내가 간신히 할 수 있었던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죽은 자기 아버지를 가지고 패드립을 치던 상대에게, 그 패드립을 당한 사람이 ‘실제로 겪어보니 네 말대로다’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는가.

        

       차라리 얼마 전 그레이스 가에서 있었던 그 불편했던 시간이 아주아주 폭신하고 따뜻한 자리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 자리는 폭신하고 따뜻한 자리가 맞았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다시 한번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준 자리였으니까.

        

       반면에, 여기서는—미아의 본심은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내가 과거에 잘못했던 행동에 대해서 하나하나 파내고 있었다. 내가 이 세상으로 오고 나서 한 행동의 흑역사 순위를 매긴다면 ‘절대로 상대가 알 수 없을 거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했던 그 패드립이야말로 최악의 흑역사였다.

        

       뭐, 내가 죽인 사람의 딸한테 대체 어떻게 그 상황을 설명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웠어요. 제가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했는지, 왜 일이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모르는 채 그저 상황만을 탓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진실을 알게 되고…… 어떤 의미에서, 제 두 번째 유년기는 지옥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아버지를 죽여버린 것에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내가 당시의 미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긴 했다. 저택에서 미아를 몇 번 마주친 적도 있겠지만, 미아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듯 나도 미아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 미아에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간 어린 하녀였을 뿐이고, 나는 당시에 내가 황녀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애쓰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어린 시절의 미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그때도 미아가 대단히 꾸미고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애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

        

       “죄송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실비아가 대답할 수가 없겠죠.”

        

       불편하기는 했다. 사실 별로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관심이 없어서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미아의 불행에 어떤 식으로건 내가 관여하고 있었기에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듣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듣지 않을 권리는 없다.

        

       나도 나 나름대로 생각한다. 사람을 죽여야 할 때라면, 그리고 그 죽여야 할 사람이 전장에서 마주쳐 급하게 쏴야 할 상대가 아니라 꽤 중요하고, 왜 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할 상대라면, 더 자세하게 생각한다.

        

       크로우필드 백작을 죽일 때도 그랬다. 원작에서 백작의 죽음이 미아와 클레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원작에선 나오지 않은 크로우필드 백작이 왜 죽게 되었는지를 나름대로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죽어도 좋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거다. 누가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냐고 묻는다면 ‘너라면 안 죽이겠냐?’고 되물어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을 그 딸 앞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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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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