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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9

       본인은 과거 세상을 유랑할 적에 어지간한 일은 다 해 보았다.

       

       최초에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수련을 해야 했으며, 그 후에는 복수를 위해 살아야 했고, 그 직후에는 신교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그 곳에 잡혀 살아야 했으니.

       

       그 모든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에 해보고 싶었던 모든 일들을 해보았더랬지.

       

       세상의 미식을 찾아 헤매다 무림에 미식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한 번 술에 취해보려고 들이키다가 만독불침이 이런 데서 본인을 가로막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러는 와중에 여러 도박장에 들리기도 했었다.

       

       당시의 본인은 꽤나 돈을 흥청망청 쓰는 성향이 있었던지라 슬슬 돈이 부족해진다 싶으면 도박장에 들려 여행자금을 만들고는 했다.

       

       당연한 소리다만 순수히 운에 걸고서 도박을 하진 않았다. 본인의 운은 평균보다 낮으면 낮았지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없이 내 자신을 믿고 도박을 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날백수가 되었을 터.

       

       본인은 그 시절에 수많은 잡기를 익혔고 그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오! 이번엔 제가 운이 좋았네요!”

       “그래.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자꾸나.”

       “네!”

       

       처음부터 도박의 잡기를 안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처음에 도박장에 들어간 것은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불과했으니.

       

       당시의 본인은 흔히 이야기하는 돈 많은 호구였다. 다만 천하제일이라 불러 마땅한 능력을 지닌 호구였지.

       

       그게 호구가 맞냐고? 으음. 어쨌든 세상물정을 몰랐던 것은 사실이니 그리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촌놈 티를 제대로 냈던 본인은 그 도박장에서 벌이를 하던 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본인은 도박 기술은 몰랐지만 그를 본 눈은 있었다.

       

       그 도박장의 사기꾼 무리가 바람을 잡으며 사기를 치는 광경을 포착한 본인은 처음에 좋은 말로 그를 지적했다.

       

       도박을 체험하러 왔는데 초장부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았으니까 온건하게 말로써 풀 생각이었지.

       

       허나 그 놈들은 본인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더구나.

       

       녀석들은 최소한의 무공도 익히지 못한 시정잡배들이었으니 본인의 겉모습만을 보고 물정모르는 처자라 생각했던 것이다.

       

       분위기로 위압하면 저 알아 찌그러들 줄 알았겠지.

       

       허나 본인은 당시에도 이미 천하를 평정한 무인이었으니. 놈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임 필요가 없었다.

       

       녀석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제발 목숨만은 부지해달라 소리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차이로 이기시다니!”

       “하하. 운이 좋았구나.”

       “바로 다음으로 갈까요?”

       “말 해 무엇 할까. 그래야지.”

       

       본인은 바란다면 언제라도 그들의 목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에게 물었다. 네놈들이 지닌 모든 기술을 내놓으라고. 그렇다면 살려주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고.

       

       자신의 목숨이 아까웠던 녀석들은 내 앞에 모든 것을 바쳤다.

       

       다만 녀석들이 지닌 것은 그리 대단할 것이 못됐다. 단순한 손장난과 도구를 이용한 장난질이었으니까.

       

       그 후로도 본인은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많은 도박장을 돌아다녔다.

       

       여러 규율과 법이 규정되어 있는 현대라면 모를까. 당하는 놈이 병신 취급을 당하는 무림의 세상에서 도박장이란 사기꾼들이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한 여성으로 보이는 본인은 언제나 그들에게 노림의 대상이 되었고 본인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을 노리고서 온 사기꾼들과 놀아주다가 그들을 털어먹는 방법을 익혔지.

       

       “다음 게임을 시작하죠!”

       

       사기꾼을 털어먹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인 체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술을 쓰는 걸 눈치챘다 하더라도 결코 그를 티내서는 안 된다.

       

       대신 상대방의 기술을 살피며 그를 눈에 새기고 가지고 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계속해서 돈을 땄다가 잃었다가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돈을 잃을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실력 있는 사기꾼들은 결코 처음부터 상대방의 모든 걸 털어먹지 않으니까.

       

       잃었다가 얻는 것을 반복하며 상대방의 기분을 띄워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큰 한 번으로 상대방을 빈털터리로 만드니까.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금 난 이 녀석을 가지고 놀 방법을 알아낸 듯 하구나.

         

       슬슬 시작해볼까.

       

       “오늘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이러다 저희 쪽이 거덜나는 게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헛소리를. 번만큼 잃어서 가지고 있는 것도 얼마 되지 않거늘.”

       “하하. 그래도 처음보다 많아지지 않으셨습니까.”

       

       그 동안에 돈을 벌었다 잃기를 반복하며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은 금화 오십개 가량이다.

       

       어느 정도 돈을 벌어 둔 셈이라 할 수 있지. 정확히는 저 놈이 돈을 버는 걸 허락한 것이다. 일부러 본인의 기분을 띄우기 위해 패배를 택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얼마를 거시겠습니까?”

       “마흔개.”

       “마흔 개나요?!”

       “원래 이런 것은 흐름을 타야 하는 것이니까.”

       

       – 그게 맞아?

       – 도박에 흐름 같은 건 없는데.

       – 탕진각이 찐하게 보인다.

       

       남자의 허술한 눈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기술을 쓰겠군.

       

       본인이 돈을 잃게 만든 다음 다시 조금씩 채워 주겠지. 이 자는 그런 녀석이니.

       

       잔에 주사위를 집어넣고 뒤흔든다. 본인은 수많은 도박장을 다니며 온갖 도박을 해 보았다.

       

       그 중에는 이처럼 주사위를 가지고서 하는 것도 있었지.

       

       본인이 주사위를 다루는 도박을 해보았다는 이야기가 무엇이겠나. 이를 가지고서 사기를 치는 녀석을 만났고 그 놈에게 기술을 가져왔다는 소리다.

       

       단언컨대 본인은 본인의 잔 안에 들어있는 주사위의 숫자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대방의 잔 안에서 움직이는 주사위의 소리를 듣고서 어떤 숫자가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느니라.

       

       “오오. 이번엔 운이 저를 따르는 듯 합니다.”

       

       잔을 흔드는 게 끝나고 나서 남자가 공개한 주사위의 합은 31이었다.

       

       이 도박을 하면서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조합 중 하나.

       

       숫자를 공개한 후에 배팅할 수 있다면 전재산을 집어넣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

       

       그를 본 남자는 웃으며 자신의 승리를 확언했다.

       

       방금 전에 손장난을 쳐서 저 숫자를 만들어 낸 녀석이 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 입장에선 실로 가증스러운 발언이었다.

       

       – ㅁㅊ

       – 이게 말이 됌?!

       – 결정적인 순간 저런 숫자가 나온다고?

       – 사기치는 거 아냐?

       – 그러게 왜 돈을 다 검?

       – 아 ㅋㅋ 누가 큰 돈 걸라고 협박했냐고 ㅋㅋ

       

       “자. 어서 공개하시죠.”

       

       본인은 남자가 하는 말을 따르며 컵 안에 들어있는 주사위를 공개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여유로웠지만 본인의 주사위가 하나 하나 공개될 때마다 그 표정이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6. 6. 4. 5. 6. 6.

       

       총합 33.

       

       남자가 내놓은 31을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 중 하나.

       

       “말했잖느냐. 본인이 흐름을 탔다고.”

       

       – 도박혐오자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안 믿고 있었다구! 젠장!]

       

       – 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

       – 도신 도신!도신!

       – 화령을 의심한 사람이 있다고? 화령을 의심한 사람이 있다고?

       

       지금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좀 더 높은 숫자를 만들었어야 했다거나.

       

       상대의 운이 좋았다거나.

       

       혹시 무슨 기술을 쓴 게 아닐까 라거나.

       

       허술한 웃음으로 표정을 위장하고 있다만 본인에게는 그대의 생각이 훤히 보인다.

       

       자아. 무얼 망설이고 있는 것이냐. 계속 해야지.

       

       그대가 잃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을 생각은 아니지 않으냐.

       

       무얼.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대에게는 자신이 자랑하는 기술이 있지 않나. 그를 이용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잔 안에 주사위를 집어 던져라. 판 위에 돈을 가져와라.

       

       자아.

       

       어서.

       

       도박사가 도박을 멈추어서야 쓰겠느냐.

       

       “다음으로 넘어가자꾸나.”

       

       *

       

       “왜! 왜 저게 5인데! 아무리 봐도 10에서 멈췄잖아! 사기치지마. 이 좆망겜아!”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좆망한 건 게임이 아니라 엔리의 지갑이었구요.]

       

       – 대체 올인을 왜 함?

       – 멍청한 올인 그 자체였다.

       – 10에 걸면 열배였을 텐데. ㄲㅂ

       – 어허. 자기 지갑을 털어서 도박의 위험성을 알려주려는 엔리님의 위대한 뜻이거늘.

       – 난 그것도 모르고…

       – 야랄하넼ㅋㅋㅋ

       

       자신이 들고 온 모든 돈을 날려버리고 룰렛의 앞에서 발광을 하던 엔리는 이내 차디찬 현실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룰렛을 돌리러 온 지 얼마 됐다고 벌써 탕진이라니. 역시 난 도박에 자질이 없나.

       

       – 나케타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눈 앞에 있는데 여기서 멈출 거임?]

       

       땅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던 엔리는 자신에게 날아든 후원음성을 듣고는 다시금 고갤 들었다.

       

       그래. 이대로 멈출 순 없어.

       

       지금 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파고드는 중에 곡괭이를 부셔 먹은 거야.

       

       이 상황에서 좌절하고 멈춘다면 곡괭이만 날린 셈이지만 새로운 곡괭이를 구해 앞으로 나아간다면 다이아몬드를 만날 수 있을 터!

       

       곡괭이를 구하기만 하면 돼! 그럼 성공할 수 있을 거야!

       

       – 희망 넘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냥 도박에 눈이 먼 겁니다.

       – 희망 넘치는 것 같지도 않아요.

       – 자기 돈 꼴고 이젠 집안까지 말아먹으려 드는 거야?

       – 난 절대 도박하지 말아야지.

       

       “시끄러워요! 지금 저희 팀원 중에 누가 잘 따고 있는 지나 알려주세요!”

       

       그래야 그 사람한테 돈을 받아서 룰렛을 돌릴 거 아니에요!

       

       엔리가 그리 고함치자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녀를 비웃었지만 그 중에 몇 명이 현 상황을 알려주기는 했다.

       

       피피는 이미 돈을 다 잃어버린 지 오래. 그냥 강아지들이 내달리는 것을 보며 즐기는 중.

       

       엔리의 다른 팀원인 아라는.

       

       “…지금 가진 금화가 이 백 개를 넘었다고요?”

       

       – 타짜야. 타짜.

       – 주사위 굴리는 데 숫자가 36. 32. 35. 31이 연속으로 나왔다니까?

       – 진짜 저 사람 못 하는 게 뭔지 몰겠음.

       

       그 이야기를 들은 엔리는 주사위 도박장 쪽으로 자연스레 발을 옮겼다.

       

       저기에 다이아몬드로 향하기 위한 곡괭이가 있구나!

       

       의기양양하게 주사위 도박장의 문을 연 엔리가 보게 된 풍경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사위를 바라보는 딜러와 느긋허니 테이블에 놓인 금화 더미를 매만지는 아라의 모습이었다.

       

       “엔리. 마침 잘 왔구나. 돈을 어디까지 벌면 좋을지 몰라서 말이다.”

       “…대체 얼마나 버신 거에요?”

       “지금이 사백 몇십개였을 것이다.”

       

       원한다면 필요한 만큼 벌어갈 수 있다는 아라의 선언에 엔리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저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운이 좋아서 딴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기술을 쓰신 게 분명하네.

       

       아라 씨는 이런 능력도 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아라 씨 그림도 꽤 잘그리셨지.

       

       손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 잘 하시는 가보다.

       

       “…당신.”

       

       금화 더미를 보고서 엔리가 경탄을 하던 때에 딜러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기술을 쓰고 있죠.”

       “그는 그대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본인이 몰라서 가만 내버려 두었다 생각하는가?”

       

       첨예한 대치 속에서 아라는 웃음을 지었고 딜러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기꾼이면 사기꾼답게 사기로 승부를 보거라. 그대가 최선을 다한다 하여도 본인을 이길 수는 없을 테지만.”

       “…좋습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해보도록 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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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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