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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9

     시간끝으로부터 빠져나온 뒤.

     시간끝에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대해서는 일단 놔두더라도, 우리에게는 당장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령, 황금의 노예.

     시간끝에 있는 황금은 얼마든지 우리가 원할 때 필요한 양만큼 꺼내쓰면 되지만, 거짓된 황금은 지금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그에 대한 수요도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게-

     “후작님! 제1급 긴급보고 드립니다…!”

     “들어오게. 무슨 일인가?”

     “세빌리야의 주민들이 집단으로 거짓된 황금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합니다!!”

     집사장 말콤이 급하게 서재의 문을 노크로 두드려 들어와 보고하는 이 내용.

     “얼마나?”

     “그 수가 현재 30명입니다!”

     “…30명이 일제히 거짓된 황금을 먹어치웠다고?”

     아버지도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

     집사장 말콤조차 자신이 이해하고 보고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예. 세빌리야 영지에 있는 옛 예배소 건물에서 30명이 집단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들 모두 얼굴에 황금룡을 덮어쓴 채 잠들어있었습니다.”

     “그건….”

     “집단선동이군요.”

     나는 노스트럼이 멸망했던 당시, 백은을 판매하던 제국 마약상들의 일화가 하나 떠올랐다.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물건이라면서 섭취를 권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꿈 속의 또다른 자신을 체험하든, 아니면 그런 걸 숨긴 채 건강용품이라고 속이든.”

     

     사기라는 게 영웅급 노스트럼 인재들이 제국을 상대로 제대로 치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사기는 제국인들이 노스트럼 2등 신민들을 상대로 펼친 경우가 정말로 많았다.

     “세빌리야 남작령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여기, 상대적으로 봐도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이들이 사는 곳이죠.”

     

     백은이 그랬다.

     백은이라는 게 비싼 돈을 들여서 섭취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한 이들이 더 쉽게 중독되는 경향이 있었다.

     현실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 망각과 환각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며, 백은몽에 취해있는 동안 현실의 누군가가 자신을 죽인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상황에서의 죽음이 또 없으니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짓된 황금을 섭취할 생각을 못 합니다. 하지만 삶에 여유가 없는 자들이라면? 또다른 삶을 꿈꾸게 해준다는 말에 혹할 수도 있죠. 혹은….”

     “캐롤라인과 비슷한 거라고 속았을 수도 있지.”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에 있는 캐롤라인 병을 만지작거렸다.

     “말콤. 우선 게시판에 공고하도록. 캐롤라인은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항상 조심하라고 말은 했지만, 특히 유사품에 주의하라고. 황금색이라면 더더욱.”

     “알겠습니다, 후작님.”

     말콤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빠져나갔다.

     “세빌리야가 우리 사람이었으면 기사단을 보냈을 것을.”

     “세빌리야는 굳이 따지자면 노스트럼 쪽에 가깝습니다. 세인트 지오의 추종자든, 아니면 나리아 여왕을 따르든.”

     “지브롤터는 왜?”

     “질투심이 나니까요. 자기네 옆은 오염지대라서 마수가 들끓는데, 지브롤터는 제국과 교류하고 있지 않습니까?”

     “10년 전에는 마수보다 제국이 더 성가시지 않았나?”

     “상황이란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지금의 세빌리야 남작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귀에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고, 심지어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된다면 질투하게 되는 법입니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그리고 지금의 세빌리야 남작, 가모스 세빌리야는 그런 부류의 전형적인 인간이다.

     마치 세빌리야 영지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 인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아무래도 누군가가 거짓된 황금을 액화상태로 섭취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테일을 시작으로 꿈 속으로 빠져들어 새로운 세상의 자신을 체험하는 현상.

     

     “이상하군. 정보가 세빌리야까지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따로 이 현상을 함부로 퍼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게 서서히 퍼지고 있다는 건, 우리 말고도 이 현상을 인지한 이들이 슬슬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

     “황제일까?”

     “황제는 아닐 겁니다. 아직은요.”

     “…아직은?”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수호자 지브롤터’의 세상 말입니다. 그게 제국 입장에서는 퍼지면 좋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지브롤터와 제국은 유례없는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꿈 속에서 ‘너희들은 사실 영원히 전쟁하는 사이다’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겠군.”

     “예. 조금 극단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윌리엄 테일이 거짓된 황금을 먹게 한 것도 무능왕일 수도 있습니다.”

     “나라를 말아먹는데 있어서는 참으로 유능한 작자로군.”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능 그 자체죠.”

     무능왕을 억제할 방법은 있을까.

     “아버지. 한 번, 실험을 해보심이 어떠신지?”

     “실험?”

     “예.”

     있기는 하다.

     하지만 덫을 놓는다고해서 항상 쥐가 잡히는 건 아니다.

     “무능왕이 노리는 건 결국 한 사람 뿐입니다.”

     “…너, 설마?”

     “당연히 어머니를 위험에 빠뜨리자, 는 건 아니죠. 제가 설마 그런 불효를 저지르겠습니까?”

     덫을 놓기는 할 거지만, 아버지를 분리불안에 빠뜨릴 수는 없는 법.

     “어쩌면 어머니보다도 더 무능왕에게 중요할 수 있는 물건이 저희에게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추측일 뿐이지만요.”

     나는 옆을 가리켰다.

     “바토리 소장.”

     “…….”

     원판을 향해 엎어진 채, 안경을 끼고 원판의 구조를 하나하나 눈으로 담고 있던 어느 한 여인을.

     “그 원판 말입니다. 공개하려고 합니다.”

     “……뭣?”

     “지브롤터 협곡에서 찾아낸 고대의 유물. 원판이라는 형태까지 알리는 거죠. 마침 지브롤터 협곡을 대대적으로 공사하고 있다는 건 지브롤터 사람들 뿐만 아니라, 노스트럼 전체가 알고 있는 일.”

     거짓된 황금의 꿈 속에서 사람들이 빠져있는 것과 별개로, 이건 무능왕을 낚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려고? 대놓고 후작성 꼭대기에 꽂아두려고?”

     “그것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광고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에 달죠.”

     “…….”

     “황금의 비행선에다가 이 원판을 달아 홍보하는 겁니다. 지브롤터 협곡에는 이런 황금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아주 그냥, 앙큼한 짓을 하려고 하네.”

     바토리 소장이 키득거리며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시간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르는데, 그걸 그냥 비행선에다가 묶어다가 그냥 보물 따위로 홍보해서 낚아버리자?”

     “시간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지금 5명 뿐입니다.”

     나. 아버지. 바토리 소장. 로버트 경. 그리고 테네시 소장.

     “정보 통제를 확실하게 하고자 한다면, 한 명에게 더 알려주는 방법도 있죠.”

     “…합스베르크 황제 폐하?”

     “예.”

     “위험하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자에게 이런 걸 보여준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오히려 이걸 빼앗으려고 들 수도 있어.”

     “압니다. 통제하려고 하기에 딱 좋은 물건이니까요.”

     현재 대륙에 풀린 황금의 양보다 더 많은 황금.

     그리고 드래곤의 몸통과 정체불명의 기둥.

     “그런데 그런 걸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능왕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한다면, 황제도 수용할 겁니다. 그 자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싫어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레이.”

     “괜찮습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무능한 것’으로 포장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제 주특기 아니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대가 암살을 할 수 있도록 품을 열어주는 척.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에 천불이 나겠죠. 아니, 드래곤의 레어로 통하는 차원문을 저따위로 관리한다고? 당연하죠.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유물이 황금으로 된 장식물인지, 아니면 시간끝으로 들어가는 드래곤의 유산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끼리 입을 다물면, 공식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신의 기적이 깃든 성물이든, 아니면 드래곤을 부활시킬 수 있는 기적의 유물이든. 우리는 그냥 협곡에서 황금으로 된 원판 하나를 얻었을 뿐인 겁니다.”

     덫에 황금을 놓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리겠지.

     그런데 그 덫을 지키는 사람이 지브롤터인 걸 아는데도 덤벼든다?

     황금이 단순한 금덩어리가 아닌 걸 아는 자 뿐이리라.

     나는 추측할 뿐이지만, 무능왕이 내 생각대로의 존재라면 무조건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거짓된 황금을 먹어치우려는 자들이 없어지겠죠. 먹어치운 황금은 사라지지만, 협곡에 숨겨진 황금은 당장 자기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으니.”

     “…….”

     “협곡은 넓습니다. 제국이 개발하는 곳 이외에도, 왕국 사람들이 개발할 수 있는 자리는 차고 넘치죠.”

     제국이 협곡 근방을 선점하기는 했지만, 아직 협곡에 빈 자리는 차고 넘친다.

     “거짓된 황금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꿈 속 세상을 누빌 것인가. 아니면 협곡에 숨겨진 드래곤의 유산을 찾아나설 것인가. 여기, 실제 드래곤의 유산이 나타났으니 나머지는 홍보만 하면 끝입니다.”

     “…….”

     “이미 황금에 눈이 먼 자들이 어디까지 욕심을 내는지, 우리는 바르셀로나 금광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는 발자크 렘부르 군터 같은 자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나는 원판을 발로 가볍게 두드렸다.

     “10만 발자크가 나오더라도, 그 중에 숨어있는 단 한 명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잡으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잡으면, 어떻게 하려고?”

     “별 거 있겠습니까? 이제, 남은 시간은 약 2달.”

     

     어느덧, 제국력 99년 10월 하고도 그 절반을 훌쩍 넘어간 시기.

     “초조해지는 건 우리가 아닙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죠.”

     나리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제 불과 2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회귀장치는 우리 손에 있다.

     아니면….

     ‘말고.’

     아니어도, 지금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니.

     “아버지. 아무리 드래곤의 유산이라고 해도, 모르고 쓰면 그냥 예쁜 장식물일 뿐입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나는 연초를 태우는 시늉을 하며, 원판을 향해 재를 털었다.

     “모르면 재떨이 되는 겁니다.”

     “그레이. 너, 담배 피우냐?”

     “……아버지.”

     “아스타시아를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여러번 피워본 것처럼 익숙한 거지?”

     “…….”

     변명을 하나 하자면.

     아스타시아가 살아있을 때는 안 피웠다.

     * * *

     사흘 뒤.

     지브롤터 후작성의 상공, 거대한 황금의 비행선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갑판으로부터 황금으로 칠해진 밧줄이 내려와있었고, 그 끝에는 닻 대신 황금으로 된 거대한 원판이 칭칭 휘감겨있었다.

     [저게 그 지브롤터 협곡에 묻혀있었다는 드래곤의 유산인가?]

     [세상에. 저런 기하학적인 무늬라니. 진짜 드래곤이 남겨둔 건가?]

     영지민들은 속닥거리며 바람에 펄럭거리는 거대한 원판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그 영지민들이 속닥거리는 걸 수정구 너머로 보고 있는 금발의 남자는 원판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하늘에 펄럭거리는 원판을 수정구가 뚫어질 정도로 바라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것이, 무엇인 줄 알고…!”

     

     지브롤터는 모른다.

     “…….”

     그저, 황금의 원판을 지키기 위한 용기사들을 배치한 채 광고만 하고 있을 뿐.

     [아아.]

     상공으로부터,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지브롤터의 영지민들이여. 그레이 지브롤터다. 본론만 빠르게 이야기하겠다.]

     툭툭, 툭.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안전하게 협곡을 개발할 노동자를 모집 중이다. 사망사고 없이 안전하게 협곡을 개발할 것이며,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드래곤의 유산은 전부 그 발견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미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황금? 원한다면 주마. 이 세상 모든 황금이 지브롤터 협곡에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틀린 말은 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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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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