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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9

   칼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 수도 없이 대련을 해 온 상대이기도 하고. 알른 가문에 머무를 적에 칼이 다른 기사들과 수련하는 걸 자주 지켜보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강함을 직접 맞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크읍!”

   

   칼이 휘두른 검을 막아냄에 따라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기껏 좁힌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

   

   하. 젠장. 검격 자체는 막아낼 만한데 몸이 밀려나 버리니까 귀찮네.

   

   칼 저 녀석 떡대도 아닌데 뭐 이리 힘이 강한 거야!? 외장형 근육과 내장형 근육의 혼종이냐?!

   

   “이것도 막아내시다니. 실전을 거치면서 실력이 확 뛰어 오르셨군요. 역시 아가씨이십니다.”

   

   몇 걸음 너머에 서 있는 칼이 진심 어린 감탄을 내비쳤지만 내게 그건 티배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주도권을 쥔 채로 날 괴롭히던 녀석이 강해졌다고 해봐야 짜증만 날 뿐이거든!

   

   “방패 하나 못 뚫는 게 창피하니까 칭찬하는 척 하는 거야?♡ 검도 발상도 허접한 개허접♡”

   “하하! 부끄러울 것이 있겠습니까! 아가씨의 방패인데 말입니다!”

   

   더 거슬리는 건 칼에게 도발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이쯤 하면 열이 받았다는 느낌이라도 생겨야 하는데 저 녀석은 여전히 태연해.

   

   평소에 하도 자주 매도를 듣다 보니 내성이 생겼다는 건가.

   

   또 온다. 오른 쪽 위에서 시작되는 검격.

   

   강하게 내리쳐 데미지를 주려는 듯한 저 검은 가짜임과 동시에 진짜다.

   

   대처하지 않으면 진심을 담아 휘둘러 박살을 내려 들 테고 그렇다고 대처하면 저걸 허수로 만들고 다음을 노린다.

   

   나를 상대하는 것에 여유가 있기에 어떻게든 방패만을 뚫으면 되는 승부라서 할 수 있는 수작질.

   

   당하는 입장에서는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짓.

   

   저기에 당하기 싫으면 발을 움직여서 공격을 하러 들어가야 함을 알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있지만.

   

   굳이 도박수를 둬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도 아니니까.

   

   “이야.”

   

   두 번의 검격에 깔끔하게 대처해 보이자 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노림수가 이렇게까지 쉽게 파훼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은 걸 테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놀랐다.

   

   확실히 방패의 숙련도가 급격히 오른 덕분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몸이 이상할 정도로 경쾌해.

   

   “이런 허접허접개허접 검으로 뭘 벨 수는 있어?♡ 머리 손질도 못 해줄 것 같은데~♡”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네요! 한 번 맡겨보시겠습니까?!”

   “사양이야♡ 너 같은 로리콘 변태를 어떻게 믿어?♡”

   

   계속해서 공방이 이어진다.

   

   내 방어를 뚫기 위해 칼이 검을 휘두르고. 나는 그 검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옆에서 본다면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지는 전투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안다.

   

   아직까지 칼이 몇 가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포셀과 대련을 할 때 보여주었던 칼의 필사는,

   

   얼마 전 버로우 공작과 검을 겨룰 때 그가 보여주었던 최선은.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이것도 막아내시다니!”

   

   지지부진한 대치를 얼마나 이어나갔을까. 신성의 격이 오르며 생겨난 육신의 변화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육신의 안에서 신성을 운용하는 것이 너무도 편안하다.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신성이 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어.

   

   그 뿐만이 아냐. 전반적으로 신체 능력이 올라간 게 느껴져.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게 보이고.

   

   이전이라면 막을 수 없었던 게 막아지고.

   

   반응할 수 없었어야 하는 게 반응이 된다.

   

   분명해.

   

   근력도. 민첩함도. 반응 속도도. 동체 시력도.

   

   전부 다 한 층 더 뛰어나졌어.

   

   이게 신성의 격이 오른다는 건가.

   

   거울을 볼 땐 체감하기 어려웠는데 강한 녀석을 상대해보니 변화했다는 게 자연스레 느껴지네.

   

   아르마디님! 무작정 로리콘 변태 새끼라고 매도해서 죄송하긴한데요! 상태창도 없는데 제 몸이 좋아진 걸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까 상태창 내놔! 상태창! 뭐든 알기 편하게 상태창 내놓으라고!

   

   “허접견♡ 진짜 이것 밖에 못해?♡”

   

   나에게 생긴 변화에 익숙해져가다 보니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칼이 지금처럼만 계속 싸운다면 언젠가 승기를 붙잡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이 녀석의 배려를 이용하면 분명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거야.

   

   뼈에 금이 가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날려버릴 한 방을.

   

   “우리 허접견은 참 배려심이 넘치네♡”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냐.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밀 수 없단 거려나?♡”

   

   지금 내 목적은 칼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고.

   

   난 내가 극한 상황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단 말이다.

   

   그러니까 칼 네 속을 좀 긁을게.

   

   네가 눈치가 좋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겠지만.

   

   어쩌겠어. 네가 주인의 의중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개허접견인 걸.

   

   “충성심 넘치는 개새끼다워♡”

   “칭찬 감사합니다!”

   

   개새끼라는 단어에도 웃음 짓는 칼을 보며 마주 웃어 준다.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저 녀석도 나를 파악하고 있었겠지만 나도 마찬가지.

   

   내가 지닌 약점 파악은 저 녀석이 껄끄러워 하는 걸 내게 알려 줬어.

   

   칼의 검이 지닌 부족한 부분뿐만이 아니라 칼이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말이 무엇인지까지도.

   

   “안타깝네♡ 내가 바라는 개는 이런 귀여운 강아지가 아닌데 말야♡”

   “…예?”

   

   내가 내뱉은 말에 처음으로 칼의 얼굴에 동요가 새겨진다.

   

   그로 인해 생겨난 검격 사이의 틈을 파고든 나는 방패로 녀석을 후려치려고 했다.

   

   허나 칼은 칼이었다.

   

   그는 내 움직임을 보자마자 다급히 검을 움직여 내 공격을 막아 냈다.

   

   “난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무시무시한 개를 바라거든♡”

   

   입을 움직이면서 생각한다.

   

   자세가 살짝 무너져있으니 안 쪽으로 파고들까?

   

   …아니다. 더 나가면 당할 거야.

   

   다시 물러나서 정비하자.

   

   “너처럼 남성성이 거세된 패배견이 아니라♡”

   “아가씨. 그건.”

   “왜?♡ 아 혹시 전력을 다한 게 이거야?♡ 푸핫♡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거세당한 강아지였네♡ 불쌍해라♡”

   “…알겠습니다. 조금 속도를 올리죠.”

   

   칼이 치켜든 검에 마력이 서린다.

   

   오러.

   

   하하. 그래. 처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충성심이 깊은 건 알겠지만 마냥 주인을 배려할 게 아니라 주인의 의향이 뭔지도 고민하라고. 이 허접견아.

   

   내가 이렇게 마음을 써야 겠어?

   

   점차 짙어져 가는 오러를 보며 방패에 신성을 담는다.

   

   그리고서 그를 치켜 든 순간 방패 뒤편에 내 미소가 비친다.

   

   상대를 놀리기 위한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 상황이 즐거워서 만들어지는 미소가.

   

   “이 충직한 개가 얼마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녔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로?♡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가 남은 이빨마저 다 빠져 버리면 너무 추해지잖아♡”

   

   일단 당장의 목표는.

   

   아직 순수한 마력뿐인 저 오러에 색을 담는 걸로 할까.

   

   *

   

   루시 알른이 아카데미 1학년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녀는 규격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괴물 중의 괴물. 베네딕 알른의 뒤를 이어 왕국에 영광을 가져다 줄 신성이라 여겨졌으니까.

   

   당연히 아서도 그녀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뛰어 넘는 것을 소망으로 품은 것이 그이니만큼 누구보다 루시의 강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하기도 했고.

   

   “…하.”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렇게 많은 걸 숨겨두고 있었다고?”

   

   지금 눈앞에서 자신의 기사와 싸우고 있는 루시는.

   

   “미쳐버리겠군.”

   

   학생이란 단어로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뭐냐. 저 방패술은.

   

   오러가 서린 검을 가볍게 막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볍게 튕겨내다니.

   

   심지어 그 검을 휘두른 자가 평범한 기사인 것도 아니다.

   

   왕국의 정예만이 모이는 수도의 제 1기사단마저도 깔보지 못하는 알른 가문의 기사.

   

   심지어 그 중에서도 베네딕 알른이 딸아이의 호위를 맡길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가 어느 정도 진심을 담아 내지른 검을 어찌 코웃음을 치며 막아낼 수 있단 말이냐.

   

   무언가에 홀린 듯 그 공방을 지켜보던 아서는 두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

   

   내가 칼의 맞은 편에 선다면?

   

   이기고 지냐의 문제가 아니다.

   

   몇 초를 버티느냐겠군.

   

   10초를 버틸 수 있다면 잘 발악한 것이 아닐까.

   

   루시의 맞은편에 선다면?

   

   이것도 이야기 할 가치가 없다.

   

   칼이 하듯 루시를 몰아붙이기는커녕 루시 저 녀석의 세치혀에 놀아나다가 자멸하고 저 녀석에게 깔봐지겠지.

   

   하하. 빌어먹을.

   

   무어가 천재냐.

   

   천재란 저런 괴물들을 천재라 부르는 것이다.

   

   나 따위는 그저 자기가 잘난 줄 아는 멍청한 범재에 불과하다.

   

   마음이 꺾이는 듯한 이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군.

   

   아프구나. 너무도 아파.

   

   큰 형님이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야.

   

   “본인이 저 녀석을 이기는 건 평생 불가능하겠군.”

   “그렇진 않아.”

   

   허탈한 마음에 무심코 내뱉어버린 약한 말.

   

   거기에 대답을 한 것은 프레이였다. 그녀는 뚫어져라 루시와 칼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말을 이었다.

   

   “루시는 분명 강하지만 한 방을 못 먹일 수준은 아냐.”

   “저걸 보고서 그런 말이 나오는가?”

   “오러에 색을 두를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해.”

   

   이 녀석이 또 본인을 놀리는 것인가.

   

   아카데미의 1학년이 오러를 사용하는 것조차 경이로운 일일지언데 오러에 색을 두른다고?

   

   작은 형님께서 오러에 색을 둘렀단 사실만으로 자신이 저지른 무수한 잘못을 뒤로 한 채 무재를 칭송받고 있는 게 현실이거늘?

   

   적당히 하라 이야기해주려 고갤 돌린 아서였지만 그는 프레이의 얼굴을 본 순간 하려던 말을 삼켰다. 공방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희열이 담겨 있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2왕자님도 했는데 못할 게 뭐야? 그 분 나보다 검 못 다루는데다가 3왕자님보다 멍청한 걸.”

   

   아아.

   

   그래. 그랬지.

   

   루시 알른이라는 혜성이 나타났기에 흐려졌다만 이 녀석도 충분하고도 남을 괴물이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루시 알른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녀석 아닌가.

   

   어이가 없어 아서가 헛웃음을 흘리던 그 때에 프레이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3왕자님은 자신 없어? 2왕자님보다 허접해?”

   

   2왕자보다 못하냐는 질문에 아서가 이빨을 갈았다.

   

   알고서 한 도발인가?

   

   아니. 그렇진 않겠지. 검밖에 모르는 이 꼬맹이가 작은 형님과 나의 사이를 어찌 알까.

   

   “그럴 리가 있나.”

   

   허나 무심코 내뱉은 말이라도 열이 받는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멍청한 형님보다야 내가 더 유능하지.”

   “정말?”

   “보여주마.”

   

   이미 고된 수련을 반복하며 오러에 대한 감은 잡았다.

   

   아직 자유자재로 다룰 수준은 아니지만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진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

   

   “그대보다 먼저 색에 닿는 걸.”

   

   그렇담 그 다음이야 별 거 아니지. 얼마든 해보이겠다.

   

   작은 형님도. 그대도. 내 아래에 두고 말테다.

   

   “3왕자님이? 나보다?”

   “멍청한 짐승인 그대보다야 내가 빠른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치만 3왕자님. 나한테 발리는 허접이잖아.”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대는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는 인간인 모양이야.”

   “붙어볼래?”

   “덤벼라.”

   

   아서는 프레이의 시비에 어린애마냥 대응을 하며 점차 격해지는 루시와 칼의 공방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알른 가문의 기사가 오러를 다루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서.

   

   *

   

   어느 순간부터 칼이 잔재주를 부리지 않기 시작했다.

   

   내 방어를 뚫기 위해 수작질을 부리는 대신에 오롯이 위력으로 내 방패를 박살내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선 과거 포셀과 대련할 때 보았던 그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방금 전이 장난이고 이 쪽이 진심이라는 거겠지.

   

   나의 신성을 파고들며 방패 채로 날 박살내려 드는 극강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으려니 자꾸만 웃음이 새 나왔다.

   

   즐거워.

   

   내가 강해졌다는 게.

   

   이런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게.

   

   내 방패가 검을 받아내고 있다는 게.

   

   그리고 칼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지는 게!

   

   “패배견의♡… 송곳니는♡… 이렇게나 무딘 거구나?!♡…”

   “그런 말씀하시는 것 치곤 여유가 없으신 듯 합니다만!”

   “그냥…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겠지!♡…”

   

   점차 칼의 검을 받아내는 게 버거워지고 있지만.

   

   아직이다.

   

   아직 난 녀석의 색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러니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목줄도 아까운♡… 고자 패배견아!♡”

   

   내 전력을 다할 수 있게 네 전력을 보이란 말이다!

   

   눈치 없는 개허접변태기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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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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