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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기대와 달리 허무하게 끝난 대련.

         

       이한으로선 실망만이 가득했지만, 정작 대련을 지켜본 이들이 느낀 감상은 달랐다.

         

       -…꿀꺽.

         

       가장 바뀐 건 그를 보는 시선이었다.

       원래는 어느 정도 혐오 어린 시선도 있었는데, 이제는 혐오는 없었으며 간간이 동경이나 흠모의 시선도 가득했다.

       대부분 평민 출신이었고, 나머지 귀족 출신 같은 경우엔 탐색하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친분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을 터.

         

       하여튼, 이래서 귀족이란 인종은 정이 안 가는 놈들이다.

         

       허나 정이 안 가는 건 정이 안 가는 거고.

       이한은 드디어 제대로 된 인사부터 시작했다.

         

       “대련 전에도 소개했지만 다시 소개하마. 이한 터틀이다. 참고로 리한이 아니라 이한이다. 잘 기억해둬라.”

         

       -…….

         

       “답변 정도는 좀 해라, 이 눈치 없는 것들아.”

         

       -예, 예에!

         

       “대답은 좋다.”

         

       하여튼 이놈의 햇병아리 금쪽이들, 언제 사람 새끼 될까.

         

       “…백은사자 기사단 출신이며, 알다시피 평민 출신이다. 아마 알 녀석은 다 알 테지. 아, 혹시 내가 평민 출신이라 가르침이 받기 싫은 녀석들은 2,3학년들처럼 안 나와도 된다. 어차피 나중에 가서 안 나오나, 지금 안 나오나 비슷하니까.”

         

       “벌점은….”

         

       “벌점은 없다. 나도 가르칠 사람만 가르치는 게 편해. 그냥 시험기간에만 잘 나와라. 학점은 따고 싶을 거 아니야. 뭐, 그것도 필요 없으면 그냥 다른 과목 들어라. 정정기간은 끝났지만, 내가 다른 수업 교관이나 강사한테 찾아가서 같이 부탁해줄 테니까.”

         

       이한으로선 나름 선의를 발휘한 것이다.

       대련용 장난감이 줄어드는 건 아깝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진지하게 배우고 싶은 녀석들을 놔두고 놀 정도로 무책임한 인간은 아니었다.

       도리어 노력하겠다는 녀석은 환영한다.

         

       러닝메이트란 것이 있듯, 함께 훈련한다는 건 제법 좋은 효과를 보이니.

         

       “아, 언제든 덤비고 싶은 녀석은 덤벼도 좋아. 대련은 환영하니까.”

       “쿤타가 나선다!”

       “넌 허리 부상이나 치료하고 와라. 남들 대련할 때 뭐했냐?”

       “……으음.”

         

       쿤타는 시무룩해졌다.

         

       허나 이는 마냥 쿤타에게만 해당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야. 대련 구경한다고 치료 안 하고 있던 놈들, 다 바로 치료부터 하고 와. 환자만 넘쳐 나선.”

       “그거 다 교관이 하신 일 아니오?”

       “어쩌라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요.”

         

       가란드의 말이 묵살됐고, 이후 오늘 땅바닥을 구른 인원들이 재빠르게 사라졌다.

       치유사제가 대기하는 회복실로 가는 거였다.

         

       ‘역시 학술원. 지원 미쳤네.’

         

       치유사제 연봉이 대략 대기업 차장급인 걸 감안했을 때, 그걸 감당하고 있지 않던가.

       그뿐인가, 치유사제를 고용하면 자동적으로 신전에 헌금도 달마다 납부해야 한다.

       저 돈이면 건물 하나를 매주 새로 짓고도 남을 터.

         

       ‘앞으로 자주 이용해먹어야겠어.’

         

       치유사제를 떠올리며 묘한 만족스러움을 느낄 때.

         

       “교, 교관님, 그럼 저흰 뭘 배우게 되나요?”

         

       그다지 관심에 두지 않던 이들에게서 질문이 나왔다.

         

       “이름이?”

       “레, 레비 폴트입니다, 교관님.”

       “흠. 귀족인가?”

       “하, 한미한 가문일 뿐입니다.”

       “흠, 생도는 검술을 배우고 싶나?”

       “…그래도, 한 번 수강한 이상 배울 수 있다면 하고…, 하고 싶습니다!”

       “그래…?”

         

       제법 똑 부러진 애 같다.

         

       딱 봐도 검술은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귀족 소녀다.

       검술보단 사교계 데뷔탕트(Débutante)를 준비하는 게 우선으로 보이는 허약한 소녀가 아닐 수 없다.

       검술학부엔 어울리지 않는 소녀.

         

       허나 딱히 이상할 건 아니다.

       저 소녀 말고도 대충 절반가량이 그러했으니까.

       솔직히 설거지 한 번 안 해봤을 법한 소녀들이 그의 강의에 나온 이유는 대부분….

         

       ‘약혼자 감을 찾거나, 데뷔탕트 파트너를 찾으러 온 거겠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프롬 파티에서 프롬 퀸과 킹을 뽑듯, 멋진 파트너의 요소는 데뷔탕트에서 중요하다.

       특히 미래의 기사가 될지 모르는 이들과 데뷔탕트에 나가 혼약까지 하는 경우는 귀족 사회에서 흔한 편.

         

       저들도 아마 이를 노리고 온 부류이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괘씸한 거긴 하다만.

       이한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이 아카데미가 유지되는 이유가 저러한 귀족들의 막대한 후원으로 유지되는 거니까.

       치유사제를 고용할 여력이 있는 이유기도 했고.

         

       다만 저들이 가르침을 구하듯 눈을 반짝이는 건 상정외다.

       왜 저러지?

         

       “교관님과 로엔 공자의 싸움이 워낙 대단했기에 저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못 하는 일에 대해 동경심을 가지게 되는 법이니.”

       “…그런가?”

       “특히 귀족가의 소녀들이지 않습니까. 평생 온실 속에서 자랐을 테니, 이러한 자극이 신비한 것이겠죠. 뭐, 그래 봤자 얼마 가진 않을 겁니다. 땀 흘리는 일을 극도로 멀리하는 귀족 여성 특성상 땀 좀 흘리고 나면 다 빠져나갈 겁니다. 그래선지 검술학부는 1학기만 지나도 여성들은 다 수업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너 되게 잘 안다?”

       “헤헤, 형님께서 학술원 출신인지라, 들은 게 좀 많습니다.”

       “정보통이네, 이거. 쓸 만해.”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교야.”

       “예에?”

       “얼굴 들이밀지 말아 줄래? 네 얼굴 보니까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래.”

       “…예에.”

       “응, 보기 좋다. 넌 앞으로 나랑 대화할 때 항상 그렇게 있으렴.”

       “……젠장.”

       “들린다, 조교야.”

         

       데미안, 아니 조교(노예)의 눈은 다시금 촉촉하게 젖어갔다.

         

       * * *

         

       오늘 수업이 종료됐다.

       원래 대학도 강의 첫날에는 일찍 마쳐주듯, 그 또한 융통성을 발휘한 거다.

         

       어느새 생도들이 모두 돌아가고 연무장은 적막해졌다.

       오로지 이한 한 사람만이 남았으며, 어스름해진 하늘이 그나마 제법 볼 만 했었다.

         

       “흠.”

         

       허나 이한은 멋들어진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보단, 당장 오늘 있었던 대련을 복기하는 게 더 도움 됐다.

         

       ‘스읍, 그때는 좀 더 빠르게 파고들어야 했었나?’

         

       비록 그보다 한없이 약한 이들과의 대련이었다고 한들,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다.

       명문가가 왜 명문가겠는가.

       기본은 더럽게 없는 것들이지만, 고급 기술은 잔뜩 알고 있지 않은가.

         

       돼지 목의 진주지만, 돼지가 아닌 이가 진주를 어느 정도 취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성과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네 사람.

         

       ‘쿤타라고 했던가? 그 바바리안 녀석은 내일 한 번 더 붙어보던가 하고. 이번엔 좀 천천히 상대해봐야겠네. 그놈 나랑 비슷한 타입이라 재밌을 것 같던데.’

         

       ‘쌍검 든 녀석이랑 방천화극 든 녀석도 괜찮았지.’

         

       ‘…회귀자 녀석은 생각보다 더 음흉했고.’

         

       내심 기대했던 녀석보다 다른 이들에게 도리어 더 관심이 간다.

       배울 게 많다.

       또한 그와 달리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녀석들이다.

       이른바 천재란 녀석들일 테지.

         

       그러한 놈들을 관찰하고 싸워본다면 그때마다 그의 몸은 새로운 정보를 축적하리라.

         

       발타르가 그랬지 않은가.

       그에게 필요한 이론적인 배움보단 실전을 통한 정보의 축적이라고.

         

       그리고 배울 게 많은 녀석이 있다는 건 충분히 환영할 만한 바이다.

         

       “…이제 보니 이 일, 나름 괜찮네.”

         

       아이시스에 의해 억지로 맡게 된 일이었다.

       한데 오늘, 이렇게 해보고 나니 나쁘지 않다.

         

       아니, 더할 나위 없다.

         

       “완전 보람찬데?”

         

       아카데미 교관이란 직함.

       이제 보니 기사단에 있을 때보다 보람차다.

         

       이한은 뜻밖에도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했다는 것에 허탈하면서도 실실 웃었다.

       대련 피하는 놈들만 있고, 아무런 보람도 없는 기사단보단 지루함이 없을 것 같지 않은가.

         

       ……또한.

         

       “야, 거기 쥐새끼.”

         

       흥미로운 놈도 제법 더 있고.

         

       “빨리 나와. 그저께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왜 그렇게 훔쳐보냐?”

         

       사아아악.

         

       텅 빈 공터 잔디를 핥는 듯 바람이 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일 뿐인데, 과연 그가 말하는 뜻은 무엇일까.

       어딘지 모를 기묘한 상황 속에서 이한이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려 들자….

         

       후욱.

         

       “…죄송합니다, 교관님. 거슬리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갑작스레 남성 하나가 나타났다.

         

       얼굴은 안다.

       생도들 사이에서 본 얼굴들 중 하나다.

       로엔 녀석 옆에 딱 붙어 있던 존재감 없던 놈.

       분명 이름이.

         

       “한스였나?”

       “…잭입니다.”

       “아, 그랬지 참.”

       “……손도끼는 이만 넣어주시면 안 됩니까?”

       “네 대답부터 좀 듣고.”

         

       툭툭.

         

       가볍게 손도끼로 땅을 치며 이한은 답변을 강요했다.

         

       수상하게 그를 지켜본 것부터 이미 도끼가 날아가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 험악한 상황에서 잭은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하지만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어제 감시한 것도 눈치 챘었나?’

         

       정확히는 그가 아니라 아이린 윈들러를 감시한 것이지만, 설마 그걸 눈치 챌 줄이야.

         

       ‘역시 주군의 말대로 보통 인간이 아니야.’

         

       위험한 사람이다.

       마냥 강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다.

         

       그러니 주군께서도.

         

       ‘어느 정도 선을 데려는 거겠지.’

         

       잭은 메마른 입술을 가까스로 떼었다.

         

       “…주군께서 전하란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아까 하면 될 것이지, 꼭 이렇게 해야 하냐? 하여간 귀족들이란….”

       “혹시, ‘천사’에 대해 아십니까?”

       “…?”

       “모르시는군요. 그거면 됐습니다.”

       “천사?”

       “이것만 말해드리겠습니다. 천사와 신전을 믿으면 안 됩니다.”

         

       의미 모를 발언이었다.

         

       천사?

         

       …저 자식 혹시 정신병이라도 있나?

         

       의심정황은 많으나, 나중에 머리나 때려보자.

       고쳐질지 어찌 아나.

         

       남몰래 그를 치료해주잔 선의(?)를 발휘하며 그가 능청스레 대꾸했다.

         

       “내가 무신론자이긴 하지.”

       “하하, 불경하시군요. 하지만 저도 같으니 저 또한 불경한 놈이군요.”

       “흠, 뭔지 모르겠지만 너희 되게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아카데미에 온 모양이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잭은 이 순간 죽을 수도 있다 여겼다.

       교관이 그를 죽이려고 하면 충분히 죽을 테니까.

       그런데

         

       “근데 너 나이 몇이냐?”

       “예에?”

       “몇 살이냐고, 인마.”

       “스, 스물입니다만.”

       “…거 노안이 심하네. 나이 속이고 입학 한 줄 알았다.”

       “너무하십니다, 교관님….”

         

       뜬금 억장 무너지는 비난을 갈기는 이한이었고, 잭은 울상을 지었다.

         

       이한은 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충 예상은 했다.

       천사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원래 로판에서 사골처럼 단골 악역으로 나오는 건 대개.

         

       ‘왕족 아니면 신전이 악역이지.’

         

       하여튼 사골 우리듯 써먹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며 이한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었다.

         

       “내가 더 경계해야 할 인간들은 더 없고?”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냥 감이야. 내가 경계해야 할 이야기도 아닌 것 같구먼.”

       “…정말 특이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교관님께선.”

       “아부는 됐고, 더 없냐고. 재밌는 거.”

       “재, 재미라니….”

         

       잭은 더 이상의 발언이 월권이 아닐까 싶었다.

       허나 잭은 저를 위협하지도 않으며, 도리어 흥미 가득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이한의 흥미로움에 월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이 사람에게 호감을 사놓으면 왠지 훗날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 들었기에.

         

       “…망나니 2왕자에 대해 좀 아시는 게 있습니까?”

       “2왕자? 왕국에서 아직도 왕자를 키우고 있었어?”

         

       그 누님이 왕태녀가 된 이후로 국내에 왕자는 전부 사라진 것으로 안다.

       내쫓기거나, 그도 아니면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었다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답일 터.

       한데 남은 왕자가 있었다고?

         

       “와, 왕자님은 개가 아닙니다, 교관님.”

         

       격의 없는 막말.

       이 사람은 기사란 사람이 입조심 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됐고, 망나니 왕자? 뭐야, 그 흔해빠진 이름은.”

       “어어…, 제법 유명할 텐데 모르십니까? 포악하고도 정신병이 심한 왕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이한은 슬슬 관심도 없는 왕자의 이름이 왜 나오나 싶어 물었고, 잭은.

         

       “…이번에 그 망나니가 신분을 숨긴 채 학술원에 입학했단 얘기가 있습니다.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입학?”

       “예. 솔직히 경계까지 필요하나 싶지만, 일단 왕자이니 주의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수긍할 만한 얘기였고, 이한은 슬쩍 고개를 주억거리며 재차 물었다.

       혹시 특징 같은 건 없냐고.

         

       “으음, 아! 듣기론 왕자는 정신병이 있다고 합니다.”

       “정신병?”

       “예에, 허공에 대고 자주 손가락질을 하는 등에 헛짓을 한다고 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그냥. 좀 많이 미쳤다 싶어서.”

         

       이한은 또 다시 막말을 내뱉었고, 잭은 혹시 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느냐고 조언했으나 이한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장 막말을 내뱉은 것보단.

         

       ‘…뭐야, 이거. 한 마리 더 있었네?’

         

       로판 빙의.

       회귀.

         

       이것만 해도 상당히 많은 건데….

         

       ‘이번엔 상태창이냐?’

         

       다시금 생각하는 건데, 이 아카데미 생활이.

         

       “하.”

         

         

       지루할 틈은 없겠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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