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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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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 방에 인형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피아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들고 있던 인형을 건네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순간, 피아가 내 몸을 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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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더니 눈앞이 심각하게 꿀렁거렸다. 허우적거리며 “이게 뭔 일이야?!”를 입 밖으로 외친 순간 허공에서 퉤하고 뱉어져 쓰레기 더미 위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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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온다고 그러던데, 내가 딱 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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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흐! 성공! 성공했다!”
    ​
    ​
    원시인 같은 남자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 더미에 엎어져 있던 몸을 바로 하고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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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여긴 또 어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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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갑작스러운 시공간 이동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기에 빠르게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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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만 있으면 최고의 걸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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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입을 헤벌쭉하게 벌린 채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치아가 몇 개 비어있어 더 무섭게 보였다. 부러진 지팡이를 까딱거리며 다가오는 남자는 딱 봐도 미치광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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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 사람…어디서 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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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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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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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쓰레기는 물론 나까지 뒤로 훅 날아갔다. 여기저기 스프링이 튀어나온 침대 위로 날아가 상처는 없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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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기다리길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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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늬가 그려진 얇은 셔츠, 끝이 뾰족한 구두를 신은 양아치처럼 생긴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노숙자를 잘근잘근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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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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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밟힌 노숙자는 거품을 뱉어내며 몸을 파드득 떨었다. 기절한 개구리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슬금슬금 일어나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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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좋은 물건을 가져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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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앞에 보이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뒤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실눈의 남자가 씩 웃으며 내 뒷덜미를 덥석 붙잡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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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가져갔던 그 물건이랑 같이 내놓으면 딱이겠는데? 그치?”
   “예,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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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의 옆으로 머리를 높게 묶은 미녀가 보였다. 양아치 같은 실눈의 남자와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상의 여자를 보자 번뜩 두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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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왕 지소랑 그의 오른팔 백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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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릿속에 쿠구궁! 하는 벼락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
    ​
    “그럼 수확할 건 다 수확한 거 같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저건 어쩔까요?”
    ​
    ​
    고양이상의 미녀 백루가 쓰레기 더미에서 꿈틀거리는 남자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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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아다가 노예로 쓰던가 재료로 쓰지 뭐.”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
    ​
    백루가 눈앞에서 슛하고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노숙자 옆으로 이동했다.
    ​
    ​
    쯔거억.
    ​
    ​
    백루의 그림자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 개의 검은 색 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
    ​
    츄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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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 개의 검은 손이 노숙자의 몸을 휘감아 그림자 속으로 순식간에 끌고 들어갔다.
    ​
    ​
    “‘그것’도 보관할까요?”
    ​
    ​
    백루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자 몸이 움찔 떨렸다. 
    ​
    ​
    ‘야,야야야,얌전히 있자.’
    ​
    ​
    아무리 개그 필터가 있다고 해도 사지가 분해되거나,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무해한 척 애처롭게 백루를 바라보았다.
    ​
    ​
    흡사 버려진 아기 고양이 같은 표정!
    ​
    ​
    지소를 바라보던 백루가 내 얼굴을 흘긋 바라보더니, 그대로 덜컥 굳어버렸다.
    ​
    ​
    ‘이렇게 불쌍해 보이는데, 그런 무지막지한 곳에 날 넣을 거야? 정말?’
    ​
    ​
    그런 의미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
    ​
    “거기 안에 넣으면 미쳐버릴 수도 있잖아. 그냥 이렇게 들고 가지 뭐.”
    “…안전한 곳에 넣어두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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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 작전이 대차게 실패해버렸다. 그림자 속에 삼켜질 걸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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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제가 이 귀여,큼. 이 노예를 잘 이송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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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소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를 가볍게 휙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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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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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대로 날아가 백루의 그림자 위에 떨어졌다. 
    ​
    ​
    쯔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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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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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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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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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황홀할 정도로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었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반사적으로 뜨자 연분홍색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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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야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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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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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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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하얀 날개를 단 유니콘이 걸어 다니고 말랑하게 생긴 동물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바닥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구름처럼 새하얗고 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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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분명 백루의 그림자 속은 끔찍한 지옥이나 다를 바 없다고 그랬었는데?’
    ​
    ​
    원작의 지식을 와장창 부숴버리는 듯한 풍경에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분홍반짝거리는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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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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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히힝, 그래. 여긴 백루가 마음에 들어 한 것들을 넣어두는 백루의 세계야.”
    “분명 지옥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지옥? 마계를 말하는 건가? 뭐, 그런 곳이 없는 건 아니야. 백루의 그림자 속엔 두 개의 세계가 있거든. 아마 네가 말한 건 다른 쪽을 말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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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하얀 날개를 단 유니콘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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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여기에 인간이 들어온 건 처음이야.”
    “처음?”
    “그래, 백루는 귀여운 걸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인간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
    ​
    유니콘은 신기하다는 듯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푸히힝하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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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순수해서 좋아.”
    “…그거, 무슨, 의미?”
    “아, 하긴 어린 인간은 모를 수 있겠네. 우리 유니콘은 -..”
    “아니아니아니! 말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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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흑,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유니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으면서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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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마음이 여리구나?”
    “그래..그런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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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거리며 동글 말랑한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녀석은 꼬리를 마구 흔들며 내 턱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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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확대범 백루가 억지로 동물들을 살찌게 만든 건가 했는데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동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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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의 꼬순내를 맡으며 힐링하던 중 연분홍색 하늘이 쩍하고 벌어졌다. 위에서 새카만 손이 내려와 내 몸을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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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가 내 품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가 유니콘의 다리에 몸이 부딪쳐 멈췄다. 유니콘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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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 인간! 순결 잘 지키고!”
    “크아악!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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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의 몸이니까 당연하거지! 라고 웃으며 넘기기엔 전생과 전전생에서도 난 순결했다. 순결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순결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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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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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그림자 밖으로 꺼내졌다. 검은색 손은 밖으로 나왔음에도 나를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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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검은손에 붙잡혀 허공에 떠 있었다. 엉덩이 아래쪽을 바쳐주고 있어 불편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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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오오오오! 
    크아아악!
    끼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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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린 건 커다란 함성과 비명, 마물의 울음소리였다. 주변은 밤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웠다. 벽에 걸린 횃불이 주변을 밝혀주어 그나마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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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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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에 가득 들어온 건 줄줄이 늘어선 감옥이었다. 창살 안은 어두워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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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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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나쁜 쇳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오뚜기처럼 몸이 통통하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남자가 기분 나쁠 정도로 비굴하게 웃으며 가까이에 있는 감옥을 열고 있었다.
    ​
    ​
    “여기에 준비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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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뚜기가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안쪽으로 들이밀자 차가운 돌바닥에 너덜너덜한 천이 깔린 게 보였다. 한쪽에는 변소용으로 사용하는 듯한 요강이 놓여있었고 한쪽엔 날이 나간 검이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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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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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헛숨을 삼키며 감옥 안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먼지 구덩이를 구른 듯 회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초점이 없는 듯한 금안,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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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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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주인공 아이리스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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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진짜 아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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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씩 웃어 보였다. 그는 나와 아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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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진 남매가 이제야 만난 건가? 이거 감동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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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는 “상품 가치가 더 높아지겠어.”라고 중얼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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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넣어둬, 나중에 이벤트용으로 쓸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 방은 여기 말고 더 아래층으로 옮겨주고. 그게 더 재밌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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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키득거리다가 백루를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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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해? 안 넣어놓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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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루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를 감옥 안쪽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오뚜기가 몸을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쇠목줄을 가져와 내 목에 착용시켰다. 꽤 묵직해서 몸이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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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닫지 말고. 바로 이동시켜.”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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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소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백루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지소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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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너희 둘, 날 따라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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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원작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와! 아이리스!

노아와 피아 시점은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다음화 보기

애들 방에 인형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피아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들고 있던 인형을 건네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순간, 피아가 내 몸을 밀쳤다.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더니 눈앞이 심각하게 꿀렁거렸다. 허우적거리며 “이게 뭔 일이야?!”를 입 밖으로 외친 순간 허공에서 퉤하고 뱉어져 쓰레기 더미 위에 떨어졌다.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온다고 그러던데, 내가 딱 그 상태였다.

“크흐흐! 성공! 성공했다!”

원시인 같은 남자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 더미에 엎어져 있던 몸을 바로 하고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지? 여긴 또 어디고?’

개그 세계에선 갑작스러운 시공간 이동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기에 빠르게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 녀석만 있으면 최고의 걸작이…!”

남자가 입을 헤벌쭉하게 벌린 채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치아가 몇 개 비어있어 더 무섭게 보였다. 부러진 지팡이를 까딱거리며 다가오는 남자는 딱 봐도 미치광이같았다.

‘어? 이 사람…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콰아앙!

남자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쓰레기는 물론 나까지 뒤로 훅 날아갔다. 여기저기 스프링이 튀어나온 침대 위로 날아가 상처는 없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역시 기다리길 잘했네.”

꽃무늬가 그려진 얇은 셔츠, 끝이 뾰족한 구두를 신은 양아치처럼 생긴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노숙자를 잘근잘근 밟고 있었다.

“끄으윽..”

밟힌 노숙자는 거품을 뱉어내며 몸을 파드득 떨었다. 기절한 개구리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슬금슬금 일어나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꽤 좋은 물건을 가져왔잖아.”

눈앞에 보이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뒤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실눈의 남자가 씩 웃으며 내 뒷덜미를 덥석 붙잡아 들어올렸다.

“전에 가져갔던 그 물건이랑 같이 내놓으면 딱이겠는데? 그치?”

“예,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남자의 옆으로 머리를 높게 묶은 미녀가 보였다. 양아치 같은 실눈의 남자와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상의 여자를 보자 번뜩 두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천왕 지소랑 그의 오른팔 백루잖아!’

머릿속에 쿠구궁! 하는 벼락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럼 수확할 건 다 수확한 거 같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저건 어쩔까요?”

고양이상의 미녀 백루가 쓰레기 더미에서 꿈틀거리는 남자를 가리켰다.

“잡아다가 노예로 쓰던가 재료로 쓰지 뭐.”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백루가 눈앞에서 슛하고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노숙자 옆으로 이동했다.

쯔거억.

백루의 그림자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 개의 검은 색 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츄르르륵!

수십 개의 검은 손이 노숙자의 몸을 휘감아 그림자 속으로 순식간에 끌고 들어갔다.

“‘그것’도 보관할까요?”

백루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자 몸이 움찔 떨렸다.

‘야,야야야,얌전히 있자.’

아무리 개그 필터가 있다고 해도 사지가 분해되거나,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무해한 척 애처롭게 백루를 바라보았다.

흡사 버려진 아기 고양이 같은 표정!

지소를 바라보던 백루가 내 얼굴을 흘긋 바라보더니, 그대로 덜컥 굳어버렸다.

‘이렇게 불쌍해 보이는데, 그런 무지막지한 곳에 날 넣을 거야? 정말?’

그런 의미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거기 안에 넣으면 미쳐버릴 수도 있잖아. 그냥 이렇게 들고 가지 뭐.”

“…안전한 곳에 넣어두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해?”

고양이 눈 작전이 대차게 실패해버렸다. 그림자 속에 삼켜질 걸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예, 제가 이 귀여,큼. 이 노예를 잘 이송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지소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를 가볍게 휙 던져버렸다.

“우와악!”

나는 그대로 날아가 백루의 그림자 위에 떨어졌다.

쯔거억.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말랑.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황홀할 정도로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었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반사적으로 뜨자 연분홍색 하늘이 보였다.

“뭐,뭐야 여긴?”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히힝.”

새 하얀 날개를 단 유니콘이 걸어 다니고 말랑하게 생긴 동물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바닥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구름처럼 새하얗고 말랑했다.

‘부,분명 백루의 그림자 속은 끔찍한 지옥이나 다를 바 없다고 그랬었는데?’

원작의 지식을 와장창 부숴버리는 듯한 풍경에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분홍반짝거리는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푸히힝, 그래. 여긴 백루가 마음에 들어 한 것들을 넣어두는 백루의 세계야.”

“분명 지옥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지옥? 마계를 말하는 건가? 뭐, 그런 곳이 없는 건 아니야. 백루의 그림자 속엔 두 개의 세계가 있거든. 아마 네가 말한 건 다른 쪽을 말하는 것 같네.”

새하얀 날개를 단 유니콘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인간이 들어온 건 처음이야.”

“처음?”

“그래, 백루는 귀여운 걸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인간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유니콘은 신기하다는 듯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푸히힝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는 순수해서 좋아.”

“…그거, 무슨, 의미?”

“아, 하긴 어린 인간은 모를 수 있겠네. 우리 유니콘은 -..”

“아니아니아니! 말하지 마!”

크흑,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유니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으면서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너 마음이 여리구나?”

“그래..그런걸로 하자.”

훌쩍거리며 동글 말랑한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녀석은 꼬리를 마구 흔들며 내 턱을 핥았다.

처음에는 확대범 백루가 억지로 동물들을 살찌게 만든 건가 했는데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동물이라고 한다.

강아지의 꼬순내를 맡으며 힐링하던 중 연분홍색 하늘이 쩍하고 벌어졌다. 위에서 새카만 손이 내려와 내 몸을 잡아챘다.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가 내 품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가 유니콘의 다리에 몸이 부딪쳐 멈췄다. 유니콘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잘 가 인간! 순결 잘 지키고!”

“크아악!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

어린아이의 몸이니까 당연하거지! 라고 웃으며 넘기기엔 전생과 전전생에서도 난 순결했다. 순결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순결 당했다.

‘크흑..’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그림자 밖으로 꺼내졌다. 검은색 손은 밖으로 나왔음에도 나를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 탓에 검은손에 붙잡혀 허공에 떠 있었다. 엉덩이 아래쪽을 바쳐주고 있어 불편하진 않았다.

우오오오오!

크아아악!

끼에에에엑!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린 건 커다란 함성과 비명, 마물의 울음소리였다. 주변은 밤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웠다. 벽에 걸린 횃불이 주변을 밝혀주어 그나마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감옥?’

시야에 가득 들어온 건 줄줄이 늘어선 감옥이었다. 창살 안은 어두워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철컹,끼이익.

기분 나쁜 쇳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오뚜기처럼 몸이 통통하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남자가 기분 나쁠 정도로 비굴하게 웃으며 가까이에 있는 감옥을 열고 있었다.

“여기에 준비해뒀습니다!”

오뚜기가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안쪽으로 들이밀자 차가운 돌바닥에 너덜너덜한 천이 깔린 게 보였다. 한쪽에는 변소용으로 사용하는 듯한 요강이 놓여있었고 한쪽엔 날이 나간 검이 굴러다녔다.

“헉…!”

나는 헛숨을 삼키며 감옥 안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먼지 구덩이를 구른 듯 회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초점이 없는 듯한 금안,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아이리스!”

원작 주인공 아이리스가 그곳에 있었다.

“뭐야? 진짜 아는 사이?”

지소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씩 웃어 보였다. 그는 나와 아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헤어진 남매가 이제야 만난 건가? 이거 감동이네.”

지소는 “상품 가치가 더 높아지겠어.”라고 중얼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같이 넣어둬, 나중에 이벤트용으로 쓸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 방은 여기 말고 더 아래층으로 옮겨주고. 그게 더 재밌을 거야.”

지소가 키득거리다가 백루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해? 안 넣어놓고?”

“…예.”

백루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를 감옥 안쪽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오뚜기가 몸을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쇠목줄을 가져와 내 목에 착용시켰다. 꽤 묵직해서 몸이 휘청거렸다.

“문 닫지 말고. 바로 이동시켜.”

“예! 알겠습니다!”

오뚜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소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백루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지소의 뒤를 따라갔다.

“어이 너희 둘, 날 따라오도록.”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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