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

소녀에게 형형색색의 음료 캐리어를 넘겨준 뒤.
     
   자매는 길드장의 염동력에 축 늘어진 꼴로 질질 끌려갔다.
     
     
   대체 얼마나 혼내려고 이렇게 따로 부르시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한테 너무 달라붙지 말걸!
     
   그런데 저 귀여운 애를 보고 어떻게 모른 척을 해?
     
   제삼자가 이런 자매의 모습을 봤더라면 ‘그 미친 애들이 겁을 먹는다고?’라거나 ‘에이 또 연기하는 거겠지’라며 우스갯소리로 흘릴 법한 반응이었는데.
     
   정작 길드장이 보기엔 같잖을 뿐이었다.
     
   학생일 적부터 재능을 눈치채고 데려와 기른 녀석들이다.
     
   평소 저희 자매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거리를 벌리고 차갑게 대왔는지를 알고 있기에.
     
   불쌍한 척이라도 해야 덜 혼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연기하고 있을 게 뻔하다.
     
     
   때문에, 쾅- 문이 닫히고 길드장은 부러 차가운 분위기를 유지한 채 서문을 열었다.
     
   “아이를 좋아해서 다행이군. 당분간 너희가 아이의 곁에 붙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네?”
     
   꽤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전의 대화와 연결되는 제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에게 크싸레 소리 들을 만한 오해할 짓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에 소녀가 길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걸 벌이랍시고 내렸는데.
     
   우습게도 그 덕분에 자매를 소녀에게 붙여줄 그럴싸한 명분이 되어 있었다.
     
   “왜 처음 듣는 얘기처럼 반응하지? 너희 벌에 관한 얘기다.”
   “아하!”
     
     
   심상찮은 분위기에 슬그머니 서로를 앞으로 내세우던 자매가 뒤늦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S급 각성자라는 녀석들이 아직도 애처럼 굴다니.
     
   어쩌면 이번 일이 저 철없는 자매에게 책임감이란 걸 알게 해줄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이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너희가 북한산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다던 때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그렇게 길드장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장난기 가득한 자매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검열된 부분 없이, 자명 스님과 소녀에게 들었던 내용 그대로였다.
     
     
   독버섯을 먹고 죽을 뻔하고.
     
   장마철에는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가다가 머리를 찧어 기절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겠다며 마약 중독자처럼 환각 버섯을 먹고.
     
   가끔은 자아가 두 개라도 되는 듯, 정신병자처럼 혼자 대화를 나눈다는 등의 이야기.
     
     
   “어… 아…?”
     
   수양 깊은 자명 스님조차 순간 부처님을 의심하고, 잔혹한 세상을 원망할 정도의 끔찍한 과거사였다.
     
   그마저도 교단과 관련된 일은 아직 밝히지도 않은 건데.
     
   “우, 우리가 아이를 두고 와서… 그랬던 건가요…?”
     
   차마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한다연이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빤한 시선을 보냈다.
     
   부디 저희가 생각한 게 틀렸길 바라며, 그녀들 때문이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너희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아이를 도와줬다면, 아이가 믿고 몸을 맡길 어른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던 일들이었지.”
     
   길드장은 단호했다.
     
   오히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으니.
     
     
   “교단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는 가감 없이, 한 치의 꾸밈 없이 적나라한 진실을 밝혔다.
     
   소녀가 적어도 수년간 교단 놈들에게 세뇌당했을 거란 추측.
     
   그리고 그 키워드로 확신 되는 ‘악마’.
     
   키워드로 의심 중인 ‘불꽃’, ‘천벌’, ‘섬광’에 대한 정보.
     
   오늘의 가상현실 체험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까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소녀에 대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자매의 표정은 엉망이 되어갔다.
     
     
   아…….
     
   우리가 그때 안일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두고 오지만 않았어도.
     
   한 번만 더 제대로 말을 걸어봤더라면.
     
   외모만 보고 곱게 자란 아이라고 오해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스르륵, 다리에 힘이 풀린 한다연이 망연자실하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한유연은 제 언니보다 침착해 보이나 싶었더니.
     
   “…개새끼들, 건드릴 애가 없어서 이 작은 애를. 다 죽여버릴 거야.”
     
   침착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미쳐버린 모양이었다.
     
   길드장이 보는 앞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기를 풀풀 흘릴 정도였다.
     
   그 작은 아이가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 무관심은 학대라고 주구장창 떠들어대던 육아 방송 진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아이의 세뇌를 확실히 풀 수 있을 때까진 여러 보호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이젠 길드장의 이야기조차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대신, 자매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삼켰다.
     
   카페에서 시켰던 달달한 음료?
     
   이런 얘기를 듣고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게 사람일 리 없다.
     
   새삼 소녀가 생각 이상으로 배려가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를 방치하고 사라졌던 주제에 이제와 억지로 친한척 하던 게 얼마나 역겨웠을까.
     
   만약 자매가 같은 상황을 겪었더라면, 적어도 상대에게 비슷한 고통을 느끼게 해 주겠다며 길길이 날뛰었을 거다.
     
   실제로 어릴적 그녀들을 거둬주겠다던 길드장의 이야기에 몸이라도 살 생각이냐면서 주먹질주터 했었다.
     
   그래서 더욱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퀭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자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아이를 놔두고 왔던 건 잘못이야.
     
   이제와 후회한다고 지워지지 않을 상처고 흉터겠지.
     
   그러니까,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흉터가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속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차라리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면 안 되나요?”
     
   고심하던 한다연이 조심스레 의견을 꺼냈다.
     
   소녀의 능력이 문제였다면, 그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고생할 일은 다른 어른들에게 맡기고 아이는 아이답게 평범한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길드장 역시 한 번 생각해 본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생각만 해 본 방법이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안일한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으니.
     
   “정부와 3대 길드의 합동 토벌에도 살아남은 놈들이다. 아이의 외모를 봐라. 언제고 눈에 띄어 다시 납치를 시도할 거다. 무엇보다 너희도 알지 않나.”
     
   길드장의 은밀한 이야기에 자매가 무슨 약속이라도 나눈 듯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렇지.
     
   그 착한 소녀를 이 꼴이 될 때까지 세뇌하고도 들키지 않은 교단 놈들이다.
     
   심지어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만 평화로울 뿐, 3대 길드의 일원쯤 된다면 생각보다 더 큰 불안이 암약하고 있음을 알 수 밖에 없었다.
     
   3대길드에 버금가는 빌런 단체의 존재.
     
   게이트를 처리하고도 남는 오염 지대.
     
   그로 인해 엉망이 되어가는 생태계와 점점 줄어가는 거주 환경.
     
   심지어 그렇게 남은 오염 지대에는 인간히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동시다발적이고 갑작스러운 게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라고 한들,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다간 언제고 그런 사고에 휘말리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자매의 부모 역시 그런 식으로 희생된 당사자 중 하나였다.
     
   차라리 스스로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편이 나았다.
     
   “결국… 아이가 훈련받고, 각성자로 활동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거네요….”
   “그래. 그래서 너희를 비롯한 팀장급들에겐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
     
     
   그제야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유연이 한다연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능력을 사용한 듯, 보라빛 눈동자 위로 소름끼치는 귀기가 줄줄 흘러 나왔다.
     
   “그 개새끼들 위치 파악된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냥 다 잡아 족치면 되잖아요.”
     
   길게 얘기할 게 뭐 있나.
     
   아이에게 위협이 될 게 있으면 싹 다 지워버리면 되잖아?
     
   다른 두 3대 길드의 조력을 받으면 어지간한 나라 하나도 쉽게 지워버릴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휴우. 저도 이번만큼은 동생의 말에 찬성이이에요.”
     
   A급 각성자인 한다연과 S급 각성자인 한다연과 한유연.
     
   단순한 수치로 보자면 A급과 S급이지만, 청성 길드 내에서 자매 팀에 대한 평가는 그 이상이었다.
     
   못믿음직한 행동과 달리, 둘의 능력을 합쳤을 때는 이성환 길드장 만큼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혔다.
     
   여태껏 이미 그만한 전적을 보여준 자매이기도 했으니.
     
   한다연의 호응에 한유연이 평소같지 않게도 싸늘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가면을 쓰고 저 자신을 숨기라니. 열 살짜리 아이한테 너무 가혹하잖아요.”
   “저희가 고생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교단 놈들을 박살내면 되잖아요?”
     
   길드장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의 전 국토를 뒤지고 다닐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래도 초심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나.’
     
   천만다행이었다.
     
   돈도 벌고, 유명세도 얻었겠다 슬슬 오만해져가나 싶었는데.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하며, 분노하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소녀를 믿고 맡겨도 되겠지.
     
   “안 그래도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너희가 아이를 잘 돌봐주도록.”
   “맡겨주세요. 게이트 공략도 전부 미뤄버릴게요!”
     
   “아니, 게이트 공략은 해야 한다.”
   “힝.”
     
   그렇게 막 자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녀를 데리고 뭘 해 볼까, 뭘 해 줘야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막 고민하던 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가상현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다음화는 08월 14일 18시 업데이트 됩니다.

소녀에게 형형색색의 음료 캐리어를 넘겨준 뒤.

자매는 길드장의 염동력에 축 늘어진 꼴로 질질 끌려갔다.

대체 얼마나 혼내려고 이렇게 따로 부르시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한테 너무 달라붙지 말걸!

그런데 저 귀여운 애를 보고 어떻게 모른 척을 해?

제삼자가 이런 자매의 모습을 봤더라면 ‘그 미친 애들이 겁을 먹는다고?’라거나 ‘에이 또 연기하는 거겠지’라며 우스갯소리로 흘릴 법한 반응이었는데.

정작 길드장이 보기엔 같잖을 뿐이었다.

학생일 적부터 재능을 눈치채고 데려와 기른 녀석들이다.

평소 저희 자매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거리를 벌리고 차갑게 대왔는지를 알고 있기에.

불쌍한 척이라도 해야 덜 혼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연기하고 있을 게 뻔하다.

때문에, 쾅- 문이 닫히고 길드장은 부러 차가운 분위기를 유지한 채 서문을 열었다.

“아이를 좋아해서 다행이군. 당분간 너희가 아이의 곁에 붙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네?”

꽤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전의 대화와 연결되는 제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에게 크싸레 소리 들을 만한 오해할 짓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에 소녀가 길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걸 벌이랍시고 내렸는데.

우습게도 그 덕분에 자매를 소녀에게 붙여줄 그럴싸한 명분이 되어 있었다.

“왜 처음 듣는 얘기처럼 반응하지? 너희 벌에 관한 얘기다.”

“아하!”

심상찮은 분위기에 슬그머니 서로를 앞으로 내세우던 자매가 뒤늦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S급 각성자라는 녀석들이 아직도 애처럼 굴다니.

어쩌면 이번 일이 저 철없는 자매에게 책임감이란 걸 알게 해줄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이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너희가 북한산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다던 때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그렇게 길드장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장난기 가득한 자매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검열된 부분 없이, 자명 스님과 소녀에게 들었던 내용 그대로였다.

독버섯을 먹고 죽을 뻔하고.

장마철에는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가다가 머리를 찧어 기절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겠다며 마약 중독자처럼 환각 버섯을 먹고.

가끔은 자아가 두 개라도 되는 듯, 정신병자처럼 혼자 대화를 나눈다는 등의 이야기.

“어… 아…?”

수양 깊은 자명 스님조차 순간 부처님을 의심하고, 잔혹한 세상을 원망할 정도의 끔찍한 과거사였다.

그마저도 교단과 관련된 일은 아직 밝히지도 않은 건데.

“우, 우리가 아이를 두고 와서… 그랬던 건가요…?”

차마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한다연이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빤한 시선을 보냈다.

부디 저희가 생각한 게 틀렸길 바라며, 그녀들 때문이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너희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아이를 도와줬다면, 아이가 믿고 몸을 맡길 어른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던 일들이었지.”

길드장은 단호했다.

오히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으니.

“교단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는 가감 없이, 한 치의 꾸밈 없이 적나라한 진실을 밝혔다.

소녀가 적어도 수년간 교단 놈들에게 세뇌당했을 거란 추측.

그리고 그 키워드로 확신 되는 ‘악마’.

키워드로 의심 중인 ‘불꽃’, ‘천벌’, ‘섬광’에 대한 정보.

오늘의 가상현실 체험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까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소녀에 대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자매의 표정은 엉망이 되어갔다.

아…….

우리가 그때 안일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두고 오지만 않았어도.

한 번만 더 제대로 말을 걸어봤더라면.

외모만 보고 곱게 자란 아이라고 오해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스르륵, 다리에 힘이 풀린 한다연이 망연자실하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한유연은 제 언니보다 침착해 보이나 싶었더니.

“…개새끼들, 건드릴 애가 없어서 이 작은 애를. 다 죽여버릴 거야.”

침착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미쳐버린 모양이었다.

길드장이 보는 앞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기를 풀풀 흘릴 정도였다.

그 작은 아이가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 무관심은 학대라고 주구장창 떠들어대던 육아 방송 진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아이의 세뇌를 확실히 풀 수 있을 때까진 여러 보호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이젠 길드장의 이야기조차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대신, 자매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삼켰다.

카페에서 시켰던 달달한 음료?

이런 얘기를 듣고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게 사람일 리 없다.

새삼 소녀가 생각 이상으로 배려가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를 방치하고 사라졌던 주제에 이제와 억지로 친한척 하던 게 얼마나 역겨웠을까.

만약 자매가 같은 상황을 겪었더라면, 적어도 상대에게 비슷한 고통을 느끼게 해 주겠다며 길길이 날뛰었을 거다.

실제로 어릴적 그녀들을 거둬주겠다던 길드장의 이야기에 몸이라도 살 생각이냐면서 주먹질주터 했었다.

그래서 더욱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퀭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자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아이를 놔두고 왔던 건 잘못이야.

이제와 후회한다고 지워지지 않을 상처고 흉터겠지.

그러니까,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흉터가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속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차라리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면 안 되나요?”

고심하던 한다연이 조심스레 의견을 꺼냈다.

소녀의 능력이 문제였다면, 그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고생할 일은 다른 어른들에게 맡기고 아이는 아이답게 평범한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길드장 역시 한 번 생각해 본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생각만 해 본 방법이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안일한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으니.

“정부와 3대 길드의 합동 토벌에도 살아남은 놈들이다. 아이의 외모를 봐라. 언제고 눈에 띄어 다시 납치를 시도할 거다. 무엇보다 너희도 알지 않나.”

길드장의 은밀한 이야기에 자매가 무슨 약속이라도 나눈 듯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렇지.

그 착한 소녀를 이 꼴이 될 때까지 세뇌하고도 들키지 않은 교단 놈들이다.

심지어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만 평화로울 뿐, 3대 길드의 일원쯤 된다면 생각보다 더 큰 불안이 암약하고 있음을 알 수 밖에 없었다.

3대길드에 버금가는 빌런 단체의 존재.

게이트를 처리하고도 남는 오염 지대.

그로 인해 엉망이 되어가는 생태계와 점점 줄어가는 거주 환경.

심지어 그렇게 남은 오염 지대에는 인간히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동시다발적이고 갑작스러운 게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라고 한들,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다간 언제고 그런 사고에 휘말리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자매의 부모 역시 그런 식으로 희생된 당사자 중 하나였다.

차라리 스스로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편이 나았다.

“결국… 아이가 훈련받고, 각성자로 활동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거네요….”

“그래. 그래서 너희를 비롯한 팀장급들에겐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

그제야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유연이 한다연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능력을 사용한 듯, 보라빛 눈동자 위로 소름끼치는 귀기가 줄줄 흘러 나왔다.

“그 개새끼들 위치 파악된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냥 다 잡아 족치면 되잖아요.”

길게 얘기할 게 뭐 있나.

아이에게 위협이 될 게 있으면 싹 다 지워버리면 되잖아?

다른 두 3대 길드의 조력을 받으면 어지간한 나라 하나도 쉽게 지워버릴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휴우. 저도 이번만큼은 동생의 말에 찬성이이에요.”

A급 각성자인 한다연과 S급 각성자인 한다연과 한유연.

단순한 수치로 보자면 A급과 S급이지만, 청성 길드 내에서 자매 팀에 대한 평가는 그 이상이었다.

못믿음직한 행동과 달리, 둘의 능력을 합쳤을 때는 이성환 길드장 만큼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혔다.

여태껏 이미 그만한 전적을 보여준 자매이기도 했으니.

한다연의 호응에 한유연이 평소같지 않게도 싸늘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가면을 쓰고 저 자신을 숨기라니. 열 살짜리 아이한테 너무 가혹하잖아요.”

“저희가 고생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교단 놈들을 박살내면 되잖아요?”

길드장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의 전 국토를 뒤지고 다닐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래도 초심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나.’

천만다행이었다.

돈도 벌고, 유명세도 얻었겠다 슬슬 오만해져가나 싶었는데.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하며, 분노하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소녀를 믿고 맡겨도 되겠지.

“안 그래도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너희가 아이를 잘 돌봐주도록.”

“맡겨주세요. 게이트 공략도 전부 미뤄버릴게요!”

“아니, 게이트 공략은 해야 한다.”

“힝.”

그렇게 막 자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녀를 데리고 뭘 해 볼까, 뭘 해 줘야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막 고민하던 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가상현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다음화는 08월 14일 18시 업데이트 됩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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